세상에서 가장 안타깝고 아픈건,
호기심을 잃은 아이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눈을 보고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함에 서러워진다.
그 뒤로 성킁성큼 다가오는 절망.
지금 내가 딱 그런 그렇다.
죽었다 깨어나도 아이의 반짝이는 호기심을 갖을 수도 없고
별로 치열하지 않았던 20대로 굳이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요즘 나는...
너무 앞서 노년의 시간을 지나가는 것 같다.
일종의 역린(逆鱗)
오래 살아갈 자도
오래 살아온 자도 아닌 딱 애매한 나이.
움직임과 행동 사이에 그림자가 많다.
무엇과도, 누구와도 친숙해지고 싶지 않다.
친숙해지는 순간,
복.잡.해.진.다.
"관계"라는 단어는 물에서 거둬지는 그물망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찔하다.
풍경과 나 사이에 여백이 전혀 없으니
아무 것도 지나가지 못한다.
건조하다 못해 쩍쩍 갈라졌다.
바짝 마른 빨래라면 해가 지나간 냄새라도 날텐데...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 이정하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치고 싶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잎보다 먼저 꽃이 만발하는 목련처럼
사랑보다 먼저 아픔을 할게 했던,
현실이 갈라놓은 선 이쪽 저쪽에서
들킬세라 서둘러 자리를 비켜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고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지만
애당초 가까이 가지도 못했기에 잡을 수도 없었던,
외려 한 걸음 더 떨어져서 지켜보아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무슨 일을 하든간에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
눈을 감을수록 더욱 선명한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랑한다는말은 기어이 접어두고
가슴 저리게 환히 웃던, 잊을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빛은 그게 아니었던,
너무도 긴 그림자에 쓸쓸히 무너지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겠지만
내가 지칠 때까지 끊임없이 추억하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는 마지막이란 말을
절대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르다 부르다 끝내 눈물 떨구고야 말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정하의 이 시도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있습니다"와 "있었습니다"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과거라는 시간 속에서 꺼낸 기억은 이미 몇 번의 미화(美化)를 거듭하면서
최초의 모습과 달라졌다.
어쩌면"미화"의 진짜 뜻은 "왜곡"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강렬했고 간절했던 사람도
과거에서 현재로 건너올 수 없다.
"있었던"이 죽었다 깨어나도 "있는"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그건 이쪽과 저쪽만큼이나 닿을 수 없는 먼 거리다.
감정과 시간이
거리감으로 대체됐다.
멀다와 가깝다.
단지 그 두 가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