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3. 9. 30. 13:40

출근을 해서 오전 근무를 마쳤다. 많이 탔고 장기간 비행으로 몸이 부었다. 내 몸을 나 아닌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이상하지! 이런 이물감이 좋다. 내가 타인처럼 느껴진다는 것... 나는 역시 익숙해지기 쉽지 않는 사람이구나! 돌아온 일상은 나 외에도 변화되는 것들이 많다.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동료가 사직을 결심했다. 걱정스런 마음도 있지만 그런 결단을 내린 용기가 나는 또 부럽다. 연말까지 쉬면서 생각을 하겠단다. 이 나이쯤 되면 안다. 사직을 결정한다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걸, 게다가 번복할 결정도 아니라는 걸... 사직은 결코 도망이 아니니까. 사직을 결정한 동료는 아마도 더 나은 뭔가를 시작하리라. 그럴 수 있을거라고 나는 믿는다. 부렵다. 사직이 아니라 그녀의 용기가!

여행을 떠나기전 내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공항 서점을 찾아 책 한권을 구입한 일이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거억법>. 충격적인 서술이고 허를 찌르는 구성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 가까운 과거와 미래기억보다는 아주 먼 기억들을 방금 일어난 일처럼 선명히 기억하는 사람. 기억이 기억을 배반하고 내가 나를 배반하고 외면한다. 아마도 지금 내가 섬망현상에 빠져 있어 더 간곡하게 다가온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출근하면서 마지막 장을 덮으며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은 형식도, 문체도, 구성도, 그리고 방식도 내겐 아주 충격적이다. 김영하의 천재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작품.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김영하는 얼마나 행복하고 좋을까를 생각하니 불같은 화가 치민다. 질투심이 느껴지는 걸 보니 이제 조금씩 내가 깨어나려는 모양이다. 두고 온 것들, 남겨진 것들을 나는 다시 되새김질하려한다. 기억이 무딘 칼이 되어 나를 찌른다면 고통은 더 묵직하고 강하다. 피할 수 없는 칼날이라면 차라리 날카로운 게 더 좋겠다.

사진들을 정리하는 동안은, 어쩌면 아직 꿈 속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꿈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걸. 이건 단지 기억의 정리일 뿐이라는 걸. 잠에 깊게 빠지지 않는 사람과 짧은 잠에 익숙한 사람에게 "시차적응"이라는 말은 오히려 낯선 이국의 단어다. 시간에 적응하는 것보다 스스로에 적응하는 게 몇 백배 더 힘들다는 걸 아니까... 나는 어쩌면 영원히 나를 낯설게 느끼며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여행이 그걸 내게 또 다시 말해줬다. 

적응되는 "낯섬"이라는게 과연 있을 수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