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6. 8. 11. 08:20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지하에선 왜 생각을 못했을까?

일회용 우비가 아니라 아예 우산을 샀어야만 했다고!

우비는 아주 성실하고 착실하게 딱 일회용의 기능만 했다.

결국은 편의점에 들러 우비와 똑같은 가격인 30kn를 주고 우산을 샀다.

더불어 은의 문에 있는 시장에서 저녁으로 먹을 과일을 사겠다는 꿈도 야무지게 날아갔다.

결국 그날 저녁은 편의점에서 산 요거트와 초코푸딩, 비스켓과 서양배로 해결했다.

39kn의 성대한 만찬.

특히 비스켓은 웃지 못할 사연이 좀 있다.

누가 맛있다고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편의점 점원에서 보여줬더니 기다리라며 가져다줬다.

그런데 그게 사이즈가 너무 커서... 헐~~!

일부러 가져다 주기까지 했는데 됐다고 할 수도 없어서 일단은 샀다.

결국 그 비스켓은 두브로비니크를 거쳐 마지막날 자그레브까지 

성실근면하게 내 끼니와 간식이 돼줬다.

(굳이 안그랬어도 됐는데 너무 성실하고 근면했지...)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다시 숙소를 나섰다.

다행히 비는 그쳐있었고 하늘도 점점 저녁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비 온 뒤라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도 한산하다.

어딘지 고전적으로 바뀐듯한 느낌적인 느낌.

낯의 스플리트가 활기차고 화려하다면

저녁의 스플리트는 수줍고 투명하다.

물에 씻긴 민낮과 대면하고 있는 기분.

좋더라.

그 한적함이, 그 평온함이.

 

 

열주광장과 이어지는 네 개의 문 사이로

조금씩 조금씩 푸른색으로 변하는 하늘.

인민광장으로 불리는 나로드니 광장의 종탑은 중세시대의 위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저녁 어스름에 보는 그레고리우스난의 동상은 예언자적인 아우라를 풍긴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하나 둘 껴지는 상점의 불빛과 가로등.

곱고 은은해서 나른해진다.

문득 명동, 신촌, 강남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떠올랐다.

점점 더 소란스럽고 시끄럽고 자극적으로 변하는 간판들, 조명들.

빛이 소음으로 변하는걸 지켜보는건 좀 막막한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어두울 권리가 간절해진다.

빛에게도, 나에게도, 주변에게도!

 

 

숙소로 돌아서는 발걸음을 이번엔 또 리바거리가 제대로 낚아챈다.

삼각대없이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서 찍은 스플리트 야경.

깊어서 푸르고, 푸르러서 깊은 밤.

이날 나는 밤 11시가 넘어서까지 스플리트 골목을 걷고 또 걸었다.

솔직히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났다는것도

숙소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이곳에 많이 홀려버렸다는걸...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