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5. 2. 28. 08:26

오전 8시에 시작한 바티칸 투어가 끝난 시간은 오후 6시 30분 정도. 참 많이 걸었고 언제 또 다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시를 올까 싶어 점심도 거르고 돌아다녔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카라바조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이번 여행에서 로마가 주저됐던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로마에 머문다는게 불가능한 일이라는걸 너무나 잘알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아주 깊이 깊이 반성하는 중이다.

스탕달은 피렌체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는데 나는 그 스탕탈신드롬을 오늘 시스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의 천정화를 보면서 느꼈다. 다리가... 실제로 휘청거릴 정도로 황홀했다. 옆에 있던 외국인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바닥으로 꼬꾸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이 거댕산걸 그릴수 잇다는게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미켈란젤로는 분명 광인이었을거다. 제정신으로 만들수 있는 작품이 도저히 아니다.

이주 오래전 처음 이 천정화를 알게 됐을때, 과연 내가 살아서 이곳을 보는 날이 올까 싶었다... 평생 꿈만 꾸다 끝날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는게 뭉클했다. 내게 이게 전부다. 읽고 보고 느끼고 떠나는것! 내가 믿고 의지할건 이것뿐이다. 이게 내게 남은 삶의 유일한 이유이고 희망이고 위로고 목적이고 쉼이다. 또 다른 떠남을 위해 기꺼이 일상으로 돌아갈거고 또 열심히 일할거다.

동생과 조카를 숙소에 두고 밤거리를 오래 걸었다. 그리고 혼자 조용히 걸으며 이 여행을, 나를,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했다. 이 여행이 늘 좋았고 행복했던건 아니다. 동생은 참 안좋은 여행파트너였고 조카는 동선과 시간을 턱없이 짤라먹었다. 그래도 이게  마지막일테니 침묵하기로 했다. 앞으로 내가 과연 몇번 더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번 떠남부터는 오로지 혼자 떠나리라 다짐했다. 

로마 시간으로 자정이 넘었다. 잠도 많은 편이 아니지만 오늘은 쉽게 잠을 이루긴 힘들것 같다. 내일 오후 5시 비행기라 몇군데 더 둘러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리고 그 남은 시간이 나를 아직 설래게한다. 누군가는 사랑하다 죽어버리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럴 수 있다면 여행하다 죽어버리고 싶다. 그게 론다나 터키라면 더없이 좋겠고...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