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11. 10. 08:35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이 여행의 끝나는 날.

전날 밤에 동생에게 마지막 날은 혼자 다녀보겠다고 말을 해둬서 

조식을 먹자마자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일명 "혼자 하는 광장 투어"를 위해서!

내가 유럽을 좋아하는 이유는 몇 번 곳곳에 자리잡은 크고 작은 광장들 때문이다.

로마만 해도 둘러봐야 할 광장들이 많아서 마음이 급해졌다.

 

 

로마패스로 지하철을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바로 스페인 광장 (Piazza di Spagn).

아침 일찍 도착한 스페인 광장은 한산했다.

오드리헵번 공주로 나온 "로마의 휴일" 촬영장소였던 이곳은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로 계단에 빈틈이 없는 곳으로 유명한데

9시경의 스페인 광장은 시야가 확 뚫려 있었다.

저 위의 삼위일체 성당의 보수가 끝났다면 완벽한 뷰를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삼위일체 성당을 따라 138개의 계단을 올라가 뒤를 돌아서면

로마의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스페인 계단으로 불리는 이 계단의 정식 명칭은 "언덕 위 삼위일체 계단"

여름밤에는 이곳에서 이탈리아 유명 디자이너들의 패션쇼가 열리기도 한단다.

과거에 이곳은 나무로 둘러싸인 비탈길이었다는데

언젠가부터 젊은 연인들이 하나 둘 찾기 시작하더란다.

그러다 성당 관계자들엑 도를 넘는 애정행각(?)이 발각이 되면서

비탈길을 없어버리고 사방이 확 트인 계단을 만들게 됐다고...

(믿거나 말거니...)

계단 앞에 있는 물고기 비슷한 대리석 조각은 "난파선의 분수"는

산 피에트로 광장을 만든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만들었다.

이 지역의 수압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낮아서 이렇게 아래쪽에 놓이게 됐다고...

자세히 보면 분수 양쪽도 높낮이가 살짝 다른데

뒷쪽의 물은 사람들이

아랫쪽 물은 동물들이 마시는 곳이었단다.

물론 지금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없겠지만!

 

 

138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그 위에 또 하나의 광장이 있는데

거리 예술가들이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은 오벨리스크를 등지고 내려다보면

역시나 로마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베드로 대성당의 쿠폴라가 보이고

길게 이어지는 비아 데이 콧돗티(Via dei Condotti)가 보인다.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로마 최고급 명품 거리이자

괴테, 멘델스존, 리스트가 즐겨 찾았던 카페 그레코가 있는 길이다.

(현재까지도 멀쩡하게 영업을 하고 있는 역사 깊은 카페 ^^)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면 일부러 찾아갔었을텐데

조식을 먹으면서 이미 여러 잔을 마신 상태라 명품보다 더 귀한 풍경에 오롯히 집중했다.

이 날 내가 끄적인 메모에 이렇게 적혀 있더라.

"로마를 떠나는 날, 로마는 내게 최고의 날씨를 선사했다..."

Feel so Good.

 

 

삼위일체 성당이 보수중이 아니었다면

이런 모습을 봤을테지만

뭐, 그대도 괜찮았다.

충분히 좋은 뷰를 봤으니까...

아, 아쉬운게 하나 있긴 하다.

저 계단을 젤라또를 먹으면서 내려오고 싶었는데

이른 아침이라 가게가 아직 문을 열지 않는 바람에...

(젤라또는 여기 아닌 다른 곳 먹는 걸로!)

 

 

스페인 광장을 빠져나와 포폴로 광장으로 가는 길.

옷가게 2층 창문에 나란히 서있는 펭귄 두 마리가 눈길을 사로잡았고

전신수트처럼 이끼를 목까지 입고 비스듬이 앉아있는 조각상에 빵 터져버렸다.

자세는 난데없이 요염한데 표정은 근엄하기 이를데 없다.

말도 안되는 미묘한 언발란스가 그날의 내 기분과 어쩜 그렇게 딱 어울리던지

저 이쁜 골목길을 걸어가면서도 몇 번을 뒤돌아봤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올 2월에 IS에서 바티칸을 공격하겠노라 공표했었다.

그래서 여행 내내 로마 거리 곳곳에서 순찰중이거나 단체로 서있는 경찰들을 자주 봤다.

물론 비타칸도, 로마도 당연히 무사했지만

당시에는 진짜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싶어 새가슴이 됐었다.

 

생각해보니

난 참 소심하고, 겁도 많고, 낮가림도 너무 하다 싶게 심한데

그래도 여행지에서는 많이 씩씩하고 제법 똘똘해진다.

놀라기도 많이 놀라고,

웃기도 많이 웃고,

걷기도 많이 걷고.

 

그때의 내 모습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더 간절해지기 전에 천천히 꿈꿀 준비를 해야겠다.

내 머릿속이 꿈꾸고 있는 바로 그곳으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