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9. 3. 08:18

로마의 상징 콜로세오(Colosseo)

로마에 가는 모든 사람들은 예외없이 콜로세오를 찾아 간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에서 사진을 찍듯

로마에서는 콜로세오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 로마에 왔음이 증명된다.

로마에 와서 콜로세오를 안보고 가는 사람은...

아마도 단언컨데 단 한 명도 없을거다.

그래서 그 주변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로 북적이고

성수기때는 입장하려는 줄뿐만 아니라 티켓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줄도 엄청 길다.

고대 로마로의 통과의례이자 현대 로마의 로망인 곳.

콜로세오.

 

 

 

서기 72년에 만들어진 콜로세오는 고대 로마 시민들의 최고의 사교장이자 유흥 장소였다.

지금은 1/3 정도만 남아있지만

원래는 지름 156~188m, 둘레 527m, 높이 48.5m의 거대한 원형 경기장으로 총 4층의 건축물이었다.

1층은 왕과 귀빈들만 들어갈 수 있었고

2, 3층은 일반석, 그리고 4층은 입석으로 천민들의 자리였다.

4층까지 총 7만명의 인원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80여 개의 아치문 위에 번호가 표시되어 있어 지정된 아치문으로 15분이면 입퇴장이 가능했단다.

저지대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배수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물을 채워 모의해전까지 열렸다니 엄청난 고대 건축물이긴 하다.

게다가 80여가 넘는 아치의 기둥은 전부 다른 양식으로 만들어졌는데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과 4층은 코린트 양식이다.

4층에는 가죽차양을 설치하는 시설까지 있어 뜨거운 햇빛을 가릴 수도 있었단다.

그야말로 현대의 실내경기장이 우숩게 느껴질 정도.

4층은 거의 뜯겨져 있는데

포로 로마노처럼 르네상스시대에 귀족들과 교황들의 집을 짓기 위한 건축자재로 무자비하게 사용됐다.

그리고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도...

 

한때 콜로세오는 만신창이로 버려졌었는

<콜로세오의 식물도감>이라는 책자가 발간될 정도로 잡초가 무성한 폐허지였단다.

그러다 교황 베네틱투스 14세가 이곳을 기독교 순교지로 정하고 그 안에 큼지막한 십자가를 세우게 된다.

그 이후부터는 차기 교황들이 복원할 수 있는 데까지 복원해 더 이상 무너지는 것을 막았다. 

그래서 지금도 부활절을 앞둔 성금요일이면 콜로세오 앞에서 대규모 촛물 미사가 열리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란다.

그러니까 저 십자가가 콜로세오를 부활시킨 거룩한 성물이다.

 

 

글쎄... 개인적으로 검투사들 살육의 현장인 내부보다는

웅장한 외부의 모습이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특히 석양이 물들기 시작하는 콜로세오는 깊고도 오묘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사위는 빛이 남기는 흔적을 따라 카메라가 함께 움직인다.

이럴 때면 건축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완벽한 생명체같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바라보니 저만큼 앞쪽에 무지개가 떴다.

(비록 사진은 흔들렸지만...)

내 입에서도 절로 감탄사가 새어나온다.

또 다시 무지개라니...

어둑해지는 하늘 사이로 신기루처럼 떠있는 무지개.

이번 여행은 무지개와 인연이 깊다.

전부 세 번의 무지개 목격 ^^

일곱빛깔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라는 의미였을까?

 

 

어스름과 함께 콜로세오 일대에 하나 둘 불이 켜진다.

분명 똑같은 곳일 뿐인데

빛의 흐름, 그 잠깐이 차이가 다른 시간을 불러낸다.

그대로 모든게 멈춘다.

다만 돌바닥에 주저앉아 그대로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뿐.

 

맹렬한 노숙(路宿)의 욕망.

그걸 잠재우고 돌아서기가

콜로세오에서는 왜 그렇게 억울하던지...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