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7. 26. 08:27

<두 도시 이야기>

일시 : 2013.06.18. ~ 2013.08.11.

장소 : 샤롯데씨어터

원작 : 찰스 디킨스

대본, 작사, 작곡 : 질 산토리엘로

연출 : 제임스 바버

음악감독 : 강수진

출연 : 류정한, 윤형렬, 서범석 (시드니 칼튼)

        카이, 최수형 (찰스 다네이) / 최현주, 임혜영 (루시 마네뜨)

        신영숙, 백민정 (마담 드파르지) / 김도형, 김봉환 (마네뜨박사)

        임현수, 배준성, 김대종, 박송권, 김덕환, 전국향 외

제작 : (주)비오엠코리아, 롯데엔터테인먼트

 

벌써 네번째 관람이 되버렸다.

변명을 하자면,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최상의 캐스팅이었다.

류정한, 최현주, 카이, 김도형, 신영숙.

내가 그토록 바랐던 초연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는 날.

김도형과 카이의 듀엣, 류정한과 카이의 듀엣, 카이와 최현주의 듀엣.

그리고 류정한, 카이, 신영숙, 최현주의 솔로곡.

어들이 부르는 넘버 한 곡 한 곡은 전부 다 완벽한 하나의 작품이다.

그 이야기 속의 숨겨진 단어 찾기!

오늘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이 작품을 이야기하련다.

나는 이제부터 "단어"를 추적하려고 한다.

내 머릿속에만 봉인되어 있던 단어들에 대한 추적.

그걸 기록하려고 한다.

 

류정한이 표현하는 찰스 다네이는 "절제"다.

결코 전소(全燒)되어질 수 없는 슬픔의 끝을 그는 품고 품고 또 품는다.

염세와 숭고함 사이의 그 교차되지 않는 막막한 폐허의 땅에 직접 발자국을 꾹꾹 새기며 길을 낸다.

길을 만드는 사람.

아! 이 작품을 류정한이란 배우는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

그의 여정 속에서 나는 그걸  절실히 느꼈다.

게다가 그가 보여준 "절제" 속엔 "미(美)" 이상의 것이 담겨있다.

한 사람의 모든 것이 달라지는 몇 번의 순간들, 순간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깨끝이 턱턱 무너졌다.

 

최현주 루시를 보고 있으면 루시의 "견고"함에 매번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 견고함을 표현하는 방법은 온기가 실감될 정도로 따뜻하고 다정하다.

류정한 시드니의 결핍이 "삐딱함"으로 표현된다면

최현주 루시의 결핍은 모든 걸 인정하고 이해하는 포용의 형태다.

둘은 reflection의 가사처럼 정말 다른 세계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인데...

납득되어질 수 없는 다른 세계 사람을 최현주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류정한과 최현주.

두 사람의 표현방식은 묘하게도 상호보완적이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시드나와 루시를 보고 있으면

마치 이 두 사람이(배우 말고) 샴쌍둥이처럼 느껴진다.

온전한 삶을 위해서 한 사람의 희생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샴쌍둥이...

나는 과연 그 둘 중 누구를 선택할 수 있을까???

 

카이의 찰스는 "선함"의 다른 이름이다.

찰스의 모든 선택은 강직함에 가까운 "선함"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세계가 무너질거란걸 아는 절박함에도

선함을 위한 찰스의 선택은 너무나 단호하다.

그래서 도저히 막을 수 없다.

그게 루시일지라도...

그건 세상에 자신의 선함을 기필코 보여주겠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야만 한다는 일종의 당위성의 표현이다.

타인이 받을 상처과 아픔을 지켜보는 게 너무나 아픈 게 찰스다.

찰스의 선택은 그래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세상을 향해서다.

부드러운 선함이 강함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

카이의 찰스를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신영숙의 마담 드파르지는 쌓이고 쌓인 "한(恨)"이다.

백민정의 마담 드파르지가 살의에 가까운 독기를 보여줬다면

신영숙은 자의든, 타의든 오래 참고 견딘 사람이 갖는

감히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절망과 슬픔이다.

그녀의 버텨온 이유는 결코"복수"뿐만은 아닐거다.

그래선가!

그녀의 최후는 오히려 편안했다.

오래고 긴 한의 굴레에서 비로소 벗어난 것 같아서. 

(그런데 신영숙, 몸이 안 좋아 보인다. 혹시 어디가 아픈건가???)

그리고 나를 너무나 많이 감동시켰던 <두 도시 이야기>의 앙상블들.

확실히 이들이 이 작품의 진정하고 주인공이다.

이들은 마치 지구상에 이 작품 하나밖에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들같다. 

그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집중과 몰입은 일종의 광기였다.

"미쳐야 미친다!"

그래, 아무래도 이 말은 진실인 모양이다.

 

어쩌면 마지막 관람이라는 현실감이

나를 더 감상적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작품 때문에 나는 잠시 꿈을 꿀 수 있었다.

잠시 숨을 쉴 수 있었다.

비록 잠깐뿐일지라도

나는 오랫만에 평온했다.

그거면 됐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