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7. 29. 07:49

<Dracula>

일시 : 2014.07.15. ~ 2014.09.05.

장소 :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원작 : 브램 스토커 <드라큘라>

작곡 : 프랭크 와일드혼

연출, 안무 : 데이비드 스완

무대 : 오필영

음악감독 : 원미솔

출연 : 류정한, 김준수, 박은석 (드라큘라)

        조정은, 정선아 (미나) / 카이, 조강현 (조나단)

        양준모 (반헬싱), 이지혜 (루시) 외 

제작 : (주)오디뮤지컬컴퍼니, 롯데엔터테인먼트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7월 18일 첫공을 보고나서 안타까웠었다.

류정한의 연기와 노래는 나쁘지 않았지만

작품 속의 드라큘라에게 매혹과 관능이 아닌 징징대며 울어대는 찌질한 아이가 느껴져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건 내가 생각하는 "드라큘라"의 이미지와는 달라도 너무 많이 달랐기에!

그래서 더이상의 티켓팅을 없겠구나 생각했다.

일주일이 지나 공연장을 찾으면서도 작품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조정은 미나와 류정한 드라큘라의 하모니를 보게 됐다는 기대감이 훨씬 컸다.

그랬더랬는데... 그랬더랬는데...

정말 몰랐다.

이 작품이 내게 이렇게까지 엄청난 반전을 안길줄은...

나는... 나는... 드라큘라는 믿지 않는다.

이건 단시 오래된 이야기일 뿐이라고,

전설이 되버린 저주받은 사랑이야기일 뿐이라고...

 

관능의 불꽃은,

내가 누군가의 앞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낄때 격렬하게 타오른다 

그렇다.

류정한의 드라큘라를 보면서

내 육체는 뜨겁게 타올랐고, 내 오감은 일시에 집어삼켜졌고, 결국 뇌수까지 철저히 파먹혔다.

성적인 감각 그 이성을 뛰어 넘는 관능의 힘은 너무나 집요하고 또 강렬했다.

숨이 저절로 멈춰지는 희열와 맞먹을만큼.

게다가 그 희열는 어쩌자고 거부할 수 없게 매혹적이며 잔인하게  매력적인가!

우습다.

<트와일라잇>의 로버트 패트슨에게도 흔들려본 적 없는 내 심장이

그가 보여준 사랑, 그 불가능의 가능 앞에 빠르게 요동친다.

400년이라는 먼 길을 걸어온 자의 긴 시간이 느닷없이 내 가슴 속을 후려친다.

깊고, 깊고, 깊은 그리움이 만든 불멸의 생,

그 불멸의 생이 지금 내게 묻는다.

그대는 그대의 생이 아직도 찬란하다고 믿는가?

그대는 지금 어떤 기쁨과 어떤 가슴떨림으로 살고 있는가?

내가 감당하지 못할 질문을 던져대는 이 작품을 나는 또 어찌해야하나!

견뎌야할까? 모른척 해야할까?

 

그 격정의 시간 속에...

그러나 류정한은 없었다.

오직 400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온 "드라큘라"만이 있을뿐.

(나는 그 오랜 시간을  결코 "저주"라 말하지 않으련다!)

"신선한 피"는 점점 변화되는 드라큘라의 모습을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그대로 보여준다..

삼엄한 경고를 선언하는 도입부 루마니아어 대사부터 압권이더니

권위적이면서 위압적인 시작과 조금씩 부드러워지면서도 날카롭고 강해지는 후반부의 표현은

넘버 한 곡을 그대로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고백컨데 나는 이 넘버에서 그의 J&H 잔상을 보게될까봐 걱정했었다.

그런데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우에 불과했다.

"confrontation"이 맞긴 하지만 J&H의 confrontation과는 완전히, 확실히, 분명히 다른 또 하나의 "confrontation"이 탄생되는 순간이다.

목소리톤의 변화와 높낮이, 섬세한 손끝의 표현과 표정들,

격양되고 확장되는 액팅과 "내 사랑 미나!"에서의 무시무시한 타이밍까지.

내가 본 건 냉혹한 분노였고 뜨겁게 불타오르는 열망이었다  

그런데 그런 잔혹한 피의 파괴를 서슴치 않는 드라큘라가..

유일한 사랑 미나 앞에서는 너무나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결국 "Loving You Keeps Me Alive" 앞에서 나 역시도 함께 우루루 무너져내렸다.

"그 이름만 속삭여도 심장이 떨리는 사랑"이라니...

(또 다시 내게 묻는다. 너는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사랑을, 그런 사람을 가져본 적이 있느냐고!)

그 마음이 너무 아파 통곡처럼 눈물이 흘렸다.

조용한 울음 끝을 다스린다는게...

이렇게까지 힘들고 고통스런 일이 될 줄은 

정.말.몰.랐.다.

어쩌짜고 뭘 이렇게까지 표현하고 마는가!

스산하고 음산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파열음과 ㅅ발음 강조하던 트란실베니아 성에서의 음색과

미나 앞에서 아이같은 해맑아 오히려 아팠던, 그 묘한 여운이 남던 음색까지.

그는 과연 알고 있을까?

그의 드라큘라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모든 혈관의 피를 멈추게 했다는걸.

"가끔 열정에 휩싸이다보면 스스로 통제가 안돼요..."

그래, 드라큘라의 말은 옳다.

통제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가!

 

 

조정은 미나.

보호본능과 모성애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그녀의 음색은

놀라울정도로 현악기와 흡사했다.

그래서 "Please Don’t Make Me Love You"는

마치 꿈결처럼, 물처럼 스며들어 몽환적인 느낌까지 안긴다.

카이 조나단의 "Before The Summer Ends" 의 조용한 흐느낌은 그대로 적막이더라.
류정한, 조정은, 카이.

클래식하고 우아하고 아주 섬세한 조합.

나는 이들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아! 그리고 드라큘라의 "The Longer I Live"

그 느낌은 감히 표현도 못하겠다.

때로 어떤 것은 설명하려면 할수록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기에...

단지 말할 수 있는 건,

눈과 귀만큼 매혹적이고 매섭고 무서운건 없다는 것 뿐.

 

<드라큘라>

정직히 말하면 이 작품은 완벽하지 않다.

드라큘라의 넘버를 제외한 다른 노래들은 가사번역도 적절하지 않고 운율도 흔들린다.

특히 반헬싱과 드라큘라의 대결 장면의 액션은 에니메이션스러웠고 가사는 너무나 정직(?)했다.

앙상블의 활용도는 심각하고,

그나마 몇 번 나오지 않는 앙상블도 산만하기 그지없다.

곳곳에 지킬을 떠올리게 하는 연출기법과,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 넘버도 많다.

하지만 난 이 작품을, 류정한이라는 배우를 더 많이 사랑하고 믿기로 했다.

그의 표현과 연기가 정답이라 주장하려는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연기와 표현은 충분히 설득력 있었다.

가상의 혹은 미지의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현실화하는 일.

배우가 무대 위에서 그걸 보여줬다면 정답 따위는 필요없다.

눈이 보는 것, 귀가 듣는 것.

오로지 그게 전부다.

 

이런 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류정한이란 배우와  동시대를 살아낸다는 건

조나단이 미나를 만난 것보다 더 벅찬 축복이다.

배우로서 그의 끝없는 도전과 원숙함을 지켜보는게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그건 그의, 그리고 나의 나이듦을 간단없이 무시하게 만들만큼 완벽한 즐거움이다.

한 단 번의 눈길로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엘리자벳을 알아본 드라큘라의 마음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백만명이 목소리를 낸다해도 나 역시 배우 류정한의 목소리만큼은 여지없이 알아챌테니까!.

그가 "망각"되는 날들이 과연 올까?

언젠가 그럴수 있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절대 아니다.

아마도 나는 그가 파파할아버지가 돼 백발의 머리로 작품 속에 단 한 장면 출연한다고해도

파파할머니의 모습으로 기쁘게 공연장을 찾게 되리라.

그렇게 그는 언제까지나 무대 위에서 불멸의 생을 이어가리라.

어쩌면 그는...

정말 뱀파이어가 아닐까?

 

나는 이제 내가 한 말에 스스로 반기를 들려고 한다.

나는... 나는... 드라큘라를 믿는다.

어쩔 수 없다.

배우 류정한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대... 불멸의 삶을,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배우 류정한의 무대를 보라.

그곳에 당신이 찾는 불멸의 삶이, 불멸의 사랑이 있다.

늘 그렇듯

이미 오래전부터 그곳에 항상 있었다.

Life After Life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