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9. 7. 08:24

<식구를 찾아서>

일시 : 2012.08.29. ~ 2012.10.17.

장소 : 대학로 예술마당 4관

대본, 작사, 연출 : 오미영

작곡 : 조선형

제작 : MJ Planet, 극단 오징어

출연 : 백현주, 주은 (박복녀) / 유정민(지화자)

        문민형, 이상은 (꼬) / 이우찬, 남정우 (몽)

        김성현, 김태경 (냥)

 

개인적으로 동물이 나오는 뮤지컬이 참 싫다.

(사람이 동물의 탈을 쓰고 연기하는게 솔직히 좀 징그럽고 처량하다)

그래서 <캣츠>는 내한공연도, 라이센스 공연도 안 봤다.

더불어 <피맛골연가>를 보면서도 영 껄끄럽고 막막했고 연극 <황구이야기>를 보면서도 좀 답답했다.

무의식중에 동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건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동물 나오는 걸 보고 유쾌하고 좋았던 기억이 없다.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에 대한 입소문도 들어서 알고 있고

관람한 사람이 감동적이었노라 전해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몽, 냥, 꼬라는 캐릭터가 관람을 무지 망설이게 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처음엔 이 작품이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르자면 그냥 지나쳤을 작품인데

인터파크에 50% 할인 예매가 떴길래 큰 용기를 가지고 예매했다.

(뮤지컬 한 편에 용기까지 내야한다니...)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참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동물에 대한 트라우마에 반전을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노래도 좋고, 스토리도 좋고, 무대도 좋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는 끔찍하게 좋았다.

박복녀 역의 주은과 지화자 역의 유정민은 정말 할머니 같았다.

목소리톤이며 사투리, 할머니 특유의 말투와 행동들

그리고 꾸부정한 걸음걸이와 표정까지도 전부 70대 노인의 모습 그것이었다.

가슴속에 자식에 대한 상처를 품고 있는 두 할머니의 이야기는

너무 아프고, 서글프고 안타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품 안에 화로 하나 품고 있는 것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고, 검버섯 핀 이 두 할머니가 어쩜 그렇게도 예쁘던지...

작품에 나온 노래처럼 정말 "넌 아직 예뻐"였다.

동요 "떴다 떴다 비행기"가 이렇게 처연하고 슬픈 노래로 변할 줄은 정말 몰랐다.

두 할머니의 혼자 말하는 자식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친자식을 일찍 가슴에 묻어야 했던 박복녀 할머니와

전처 소생의 아들에게 버림받는 지화자 할머니의 이야기는

단지 슬픔과 먹먹함만으로 이해하기엔 너무나 현실적이다.

어쩌면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어 무섭고 섬득했다.

(난 반려동물조차 키우지도 못할텐데....)

 

개와 고양이, 닭을 연기했던 3인방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해당 동물에 대한 자료를 많이 찾아서 열심히 연구한 모양이다.

이런 표현 어떨지 모르겠지만,

개는 정말 개같았고, 고양이는 고양이 같았고, 닭은 닭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토크쇼 형식의 이벤트가 있었다.

출연배우들과 작품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소박한 그 자리까지 참 좋았다.

토크쇼 시작하기 전에 관객들에게 강냉이류를 나눠줬는데 그것도 참 인상적이고 따뜻했다. 

(내가 강냉이를 워낙 좋아해서 하는 립서비스는 절대 아니다 ^^)

공연도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어느틉에 작은 소망이 하나 생겨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지금보다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고 늙어지면

반려동물 하나 없이 혼자 늙어지더라도

이쁜 할머니가 돼야 겠다는 소망!

젊음이 상(賞)이 아니듯 늙음 또한 벌(罰)이 아니다.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

작은 작품 속에 정말 큰 따뜻함이 담겨있다.

오랫만에 참 좋은 작품을 만났다.

 

문득 오래전에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생각난다.

우리 할머니도 참 예뻤었는데...

그런데 난 그 예쁨을 너무 늦게서야 알았다.

그게 오래오래 가슴에 멍울로 남아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