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10. 22. 08:51

<인당수 사랑가>

일시 : 2013.09.07. ~ 2013.11.03.

장소 :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대본, 작사 : 박새봄

작곡 : 김아람, 김준범

음악감독 : 신은경

연출 : 최성신

출연 : 임강희, 유리아 (춘향) / 박정표, 이창용, 전성우 (몽룡)

        이석준, 고영빈 (변학도) / 안치욱, 이상은 (심봉사)

        서정금, 정상희 (도창) / 이동재 (방자), 박경옥 (뺑덕)

        최명경, 김광만, 김하나, 이종원

 

예전에 이 작품이 소극장에서 공연됐을 때 두 번 정도 관람을 했었다.

처음 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에 여러 형태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그것도 썩 성공적으로 시도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작품을 보기 전에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춘향전>과 <심청전>을 섞는다?

코믹한 마당놀이를 보게 될거라고 생각했더랬는데...

자그마한 극장에서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사랑가"와 "쑥대머리"가 나오니 눈과 귀가 동시에 번쩍했었다.

이야기 구성도 너무나 참신했고

젊은 배우들의 패기와 정성 가득한 연기도 인상깊었고

상식을 뒤짚는 변학도의 캐릭터 반전도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방자 이동재의 맛깔스러운 연기도, 도창 정상희의 구수한 소리도 신선하고 흥겨웠다.

이런 멋진 파격과 도전이라면 우리 고전도 경쟁력이 있겠구나 생각할 정도로

재미와 감동, 친근함과 새로움을 그야말로 적재적소에 질 배치시켜 만든 작품이었다.

내 기억에 이 작품은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출신이 주축이 됐던 걸로 기억한다.

졸업작품이었다는 말도 있고...

"한예종" 출신들이 이렇게 사고를 칠 때마다(?) 나는 아주 흐뭇하고 반갑다.

(그런데 요즘 "한예종"이 너무 조용하다.... 크게 사고 한 번 쳐줬으면 싶은데...) 

 

6년이 훌쩍 지나 다시 보게 된 <인당수 사랑가>는

역시나 참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품에 대한 욕심이 너무 과해서

그 좋은 작품이 오히려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리리 예전처럼 소박하지만 내실있는 작품으로 남아

소극장에서 롱런하는 작품이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좋은 작품이 너무 큰 공연장을 만나 객석의 일부도 온전히 채우고 못하는 걸 목격하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무대도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게 아니라 너무 휑하니 텅 비어 불필요한 공명만 더 생겼다.

오케스트까지 추가돼서 음악이 확실히 풍성해지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소극장에서 도창과 고수 한 명으로 공연됐을 때가 훨씬 좋았다.

그래도 초연때부터 <인당수 사랑가>를 지켜온 방자 이동재를 다시 볼 수 있었던 건 정말 득템이다.

이동재처럼 작품에 깊은 애정을 가진 배우의 무대를 보는 건 언제가 큰 기쁨이다.

 

관람하면서 눈에 담겼던 배우는 춘향역의 유리아와 변학도의 이석준.

<두 도시 이야기> 초연때 눈여겨 봤던 유리아가 재연에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궁금했었는데

이 작품을 준비하느라 그랬나보다.

임강희가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를 하느라 유리아의 회차가 많아졌는데

자기관리를 성실히 했다는 게 무대 위에서 그대로 보여졌다.

아마도 이 작품을 끝내고나면 뮤지컬 배우로서 유리아의 입지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노래도 연기도 목소리 톤도 참 좋았다.

그리고 변학도 이석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꽉꽉 채워지는 이석준은 항상 묘한 "끌림"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배우가 배역 속에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이석준만은 예외다.

그가 만들어 내는 배역은 확실히 "이석준"만의 느낌이 있다.

이 작품 속에서도 휑한 공연장이 민망할 만큼 그의 연기는 좋았다.

독보적이만 결코 함부로 튀지 않으면서 작품 속에 풀어지는 이석준의 연기가 나는 참 좋다.

이석준은 분명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멋진 배우가 될 것 같다.

꽉꽉 차 있으면서 느긋한 여유가 느껴지는 그런 배우.

그래서 나는 지금보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중년을 훌쩍 넘긴 이석준의 모습이 아주 궁금하다.

무대 배우의 복지와 향후에 대해 그만큼 고민하는 배우가 또 있을까!

책임감이라는게 무대 위에 있을 때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석준이 항상 상기시킨다.

나는 그의 확신이 공연계의 화두가 될 날이 꼭 올거라고 확신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배우 이석준이 지금처럼 굳세고 곧은 청춘이길 바라고 또 바란다!)

 

영화배우 조성하를 닮은 멀티맨 최명경의 연기도 아주 맛깔스러웠고

심봉사 이상은의 감쪽같은 연기도 감탄스러웠다.

도창 정상희는 이 작품을 워낙 오래해서 그런지 제대로 한판 노는 재미가 쏠쏠했다.

몽룡 전성우가 오히려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좋았는데

문제는 공연장이 너무 컸다는 거!

일요일 저녁 텅 빈 객석을 보면서 참 쓸쓸했다.

이 작품, 정말 정말 좋은 작품인데...

혹시 다시 예전처럼 소극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아니면 최소한 동숭아트홀이나 연강홀 정도의 규모라도.) 

굳이 규모를 키우고 싶다면 공간을 채우는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으면 정말 좋겠고!

이 좋은 작품이, 이 좋은 배우들이 텅 빈 객석때문에

찬서리를 맞고 있는 것 같아 자꾸 걱정된다.

정말 좋은 작품인데...

정말 좋은 배우들인데...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