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10. 31. 07:48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일시 : 2012.10.25. ~ 2012.012.16.

장소 :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출 : 김민정

대본 : 고선웅

작곡 : 정민선

음악감독 : 이성준

제작 : 갖가지

출연 : 김다현, 김재범, 성두섭, 전동석 (베르테르)

        김지우, 김아선 (롯데) / 이상현, 홍경수 (알베르트)

        서주희, 연보라 (오르카) / 지현주, 오승준 (카인즈) 외

 

정말 눈물나는 공연이었다.

세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창작뮤지컬 <베르테르의 슬픔>

프롤로그 "금단의 꽃" 연주만 들어도 가슴을 꿍 내려앉게 만드는 감성적이고 참 아름다운 작품.

작년에 송창의와 박건형이 베르테르로 나왔을 때 유니버설아트센터라는 이유때문에 그냥 넘겼었다.

그런데...그런데...

아무리 유니버설아트센터였어도 그때 봤어야 하는 거다.

2012년 10월 27일.

내가 본 건 지금까지 알던, 그리고 지금까지 봤던 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결코 아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눈물이 날 만큼 슬펐다.

도대체 왜 이 작품을 이렇게 난장판으로 엎어놓고 헝클어놓았느냐 말이다.

분노에 가까운 절망감때문에 지금까지도 당황스럼다.

그 무엇으로도 정복될 수 없는 황폐함.

나, 상처받았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으로 많이...

 

김다현, 김재범, 성두섭, 전동석.

이 좋은 네 명의 배우들을 가지고 왜 이런 작품밖에 만들 수 없었을까?

유니버설의 음향이야 악명이 높아서 기대감 자체가 이미 많이 낮긴 했지만

이건 음향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음악감독 이성준은 전곡을 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제편곡했고 오케스트라도 14명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예전의 그 실내약 분위기의 소박하고 단정한 음악이 훨씬 좋다.

뭐랄까, 이 음악 저 음악을 마구잡이로 섞여서 정체불명이 됐다고나 할까?

풍성함보다는 방정맞고 가벼운 느낌이 강하다.

(정말 절망적이다....)

처음 시작 부분, 사람들이 그림자로 보이면서 한 마디씩 하는 부분부터 놀라웠다.

"그가 간 곳은 발하임이예요!"

라는 대사는 마치 "우리는 슈퍼주니어예요!"처럼 들이대는 아이돌그룹 같아 난감했다.

게다가 베르테르가 프랑크푸르트 출신이라는 건 또 왜 그렇게 자구 들이대듯 말하던지.

그 도시에서 뭐 협찬이라도 받았나?

음악은 이것저것을 마구 짬뽕시켜서 국적불명이 되버렸다.

심지어 어떤 부분은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른 록키가 금방 뛰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안무는 발레를 기본으로 한 것 같은데 어수선한 것이 영 정신없다.

1막 오르카 술집도 그렇고, 2막 결혼식 축하연도 그렇고... 

(또 다시 절망했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였던 배우는 김아선과 홍경수, 그리고 오르카 서주희 정도.

성두섭은 확실히 인물에 푹 빠져있다.

참 신기한 건, 성두섭 베르테르의 연기와 감성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극이 전체적으로 가벼워지면서 성두섭의 표현이 너무 감정 과잉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정말 이러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성두섭 베르테르의 목놓아 우는 장면은 좀 자제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체념하고 꾹꾹 누르면서 떠나는 베르테르가 더 가슴 아프지 않나? 

이번 시즌 젊은 베르테르는 정말 아낌없이, 거침없이 자신의 슬픔을 드러내주신다.

(좀 넣어둬~~~ 넣어둬~~~)

카인즈 오승준은 어쩜 이다지도 세련됐던지...

종놈은 종놈다워야 하는데 오승준의 카인즈는 거의 베르테르 급이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절대로 몸에 소똥냄새 따윈 묻히고 다닐 사람 같지 않다.

노래도 얼마나 우아하고 세련되고 부르던지...

(뭐 종놈이 꼭 촌스럽고 어리숙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마님을 사랑한 순정남이 아니라 살짝 싸이코패스처럼 느껴져서 또 당황했다.

그래도 가장 압권은,

베르테르가 절망하는 장면에서 웃통 벗고 나와 주시는 4명의 무희남들.

이 황당하고 조잡한 표현에 정말 눈물 흘렸다.

이들의 실제 용도(?)는 아무래도 4개의 말도 안되는 기둥을 옮기는 크루가 아닐까?

이건 프랑스판 롬앤줄을 페러디한건지, 아니면 노틀담의 페뷔스의 방황을 페러디한건지... 

(나 여기서 상처 더하기 정말 더하기 좌절했다)

위, 아래로 두 가지 상황이 같이 연출되는 장면도 개인적으론 너무 어수선했고

인물 한 사람만 불렀으면 하는 노래를 느닷없이 다른 사람이 부르는 것도 소란스러웠다.

내가 너무 과거의 베르테르에 집착하는 걸까?

 

롯데의 동생 마리와 한스의 등장도 어리둥절했고

오딧세이아 부분과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 장면은 마치 학예회를 보는 것 같았다.

덕분에 롯데가 밝고 발랄한 소녀의 이미지가 아니라 산전수전 겪은 유부녀같아 보인다.

마지막 장면.

꼭 그렇게 총소리로 마무리를 해야 했나?

그냥 예전처럼 베르테르가 머리에 총을 겨눈 상태에서

하늘이 점점 붉은 핏빛으로 물드는 엔딩이 천만배는 더 좋았은데...

게다가 느닷없이 앞으로 진출하시는 총겨눈 베르테르의 모습이라니!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도 절망적일 수 있나요?)

보는 입장에서 당췌 여운과 절망을 느낄 겨를이 없다.

프리뷰라서 그런가?

라며 다독이기엔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다.

구성이나 넘버가 달라지지 않을테니 이 상처는 치유될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 좋았던 노래들, 그 감성적인 노래들 다 증발한 것 같아 속상하다.

하룻밤이 천년, 달빛 산책, 뭐였을까, 얼어붙은 발길, 번갯불에 쏘인 것처럼, 알 수가 없어,  

다 내가 예전에 알던 젊베슬의 그 넘버들이 아니었던 거다.

그나마 "무례와 사랑"만이 유일하게 옛기억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알베르트의 "난 알아"는 롯데가 깨어있는 상태에서 부르니까 오히려 너무 다 드러내는 것 같아 이물감이 느껴졌다.

(참 오픈 마인드를 가진 부부다.)

게다가 살인자 카인즈를 구해달라고 청원하는 베르테르의

"순결한 천사 지상에 내려와~~~" 로 시작되는 아름다운 넘버는 실종되기까지 했다.

(아! 나 이 노래 정말 좋아했는데...)

 

오랫만에 감성에 푹 빠지고 싶어 유니버설아트센터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을 찾았는데

어쩌나... 나 너무 많이 상처 받았다.

정말 금단의 꽃이 핀 것 같다.

진심으로 바라건데 다시 예전의 베르테르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 가슴 아프고 절절한 감성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하룻밤이 천년같은 시간은 다시 겪고 싶지 않다.

다시 낙원같은 발하임으로 되돌아왔으면 좋겠다.

제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