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7. 11. 07:33

<풍월주>

부제 : 바람과 달의 주인

일시 : 2012.05.04. ~ 2012.07.29.

장소 : 컬처스페이스 엔유

극본 : 정민아

작곡 : 박기현

연출 : 이재준

음악감독 : 구소영

출연 : 성두섭, 이율 (열) / 김재범, 신성민 (사담)

        구원영, 최유하 (진성), 김대종 (운장어른)

        원종환 (궁곰), 임진아, 신미영 (부인들)

 

이렇게해서 자체 막공이라며 <풍월주> 네 번째를 찍었다.

궁금했던 이율의 열까지 봤으니 뭐 굳이 더 볼 이유가 없어지긴 했다.

(휴~~ 다행이다)

 

다른 거 다 두고 이율의 열에 대해서만 말해보련다.

(뭐 사실 다른 건 이제 더 이상 할 말도 없다)

아마도 성두섭 열에 익숙한 사람은 이율 열의 첫장면에서 당혹감을 느꼈으리라.

성두섭 열은 참 부드럽고 다정했는데 열은 너무 시크해서.

심지어 이율 열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시크의 절정이다.

성두섭 열이 마냥 좋았던 게 아닌 나도 솔직히 무지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운장어른과 대화할 때도 이율 열은 슬퍼보이거나 원망하는 기색도 안 보인다.

"열 왜 저래? 제 사실은 사담을 별로 안 좋아했구나..."

순간 오만가지 생각들이 마구 뒤범벅이 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율이 해석하고 표현한 열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후 느낌을 표현하자면,

"이율 열, 이 놈 진짜 남자다!"였다.

 

남자기생에게도 이런 분류가 적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어화"라고 불리는 여자기생은 소위 등급(?)에 따라 1패, 2패, 3패로 나뉜다.

1패는 고급기생이라 자존감과 도도함은 물론 학식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 그룹이었다.

따라서 접대하는 손님도 당연히 고위급 인사들이 대부분.

2패는 가장 많은 부류의 기생들, 3패는 퇴물 기생이나 함부러 몸을 파는 기생을 말한다.

이율의 열은 뭐랄까 1패 기생의 느낌이었다.

성두섭 열은 사담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느낌인데

이율의 열은 확실히 차별적이다.

내가 비록 웃음과 몸을 파는 풍월주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담이 구걸하지 않고 먹고 살게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것 뿐이라는 가오(?)가 있다. 

사담이 아니었으면 풍월주 따윈 안하겠다는 의지(?)가 다분해보인다.

(이런 모습 의외로 도발적이다)

그래서 사담에게 풍월주인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경계한다.

사담이 춤 좀 보여달라고 했을 때도 안 보여주는 이유를 이율의 열을 보고 비로소 알았다.

게다가 사담을 제외한 사람들과 말할 때 톤을 보면 소위 네가지도 가히 없어 보인다.

진성여왕이고 운장어른이고 대갓집 부인네들이고 없다. 

그런 가오가 있는 놈이 사담엑 말할 때는 그렇게 다정하고 부드러울 수가 없다.

톤 자체에 느낌이 팍 온다.

"내가 너(사담) 땜에 산다!"

첫 장면에서는 이 놈 사담없이도 잘 먹고 잘 살 놈이네 싶었는데,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 놈 결국 못살겠구나 싶어 불쌍하고 짠해진다.

이율이 이런 의도로 열이라는 캐릭터를 분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느낌은 그랬다.

성두섭 열은 모성본능을 자극하면서 연민을 자아내는데

당췌 이율의 열은 그런 약한 모습을 찾아볼 길이 없다.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다.

열 입장에서는 귀부인이고 운장어른이고  진성여왕이고간에 다 사담 밑이다.

그런데 이런 놈이 무너질 때는 일시에, 한꺼번에, 가차없이 무너진다.

사담이 죽으니까 센 척 하면서 한 큐에 훅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 역시도 그렇게 당당하고 힘찰 수가 없다.

왜?

어차피 자신은 사담을 잃음으로 모든 걸 다 잃었기 때문에 더이상 미련도 두려움도 없다.

그래서 자기 앞에 여왕 무릎을 꿇어도 소위 꿀릴게 전혀 없는 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뱃 속에 칼을 넣으면서도 그로테스크하게 웃을 수 있는거다.

통쾌하고 강하게!

정말 센 놈이 바로 이런 놈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따지자면

연기는 성두섭 열이, 해석이나 태도는 이율의 열이 좋았다.

(어떻게 둘을 적당히 잘 섞어보면 안 될까???)

"밤의 남자"에서 성두섭 열이 춤과 노래가 다 약해서 은근히 율열을 기대했었는데

율열 역시도 얕다.

춤은 오히려 성두섭 열이 그럴듯하다.

춤따위에 주력하지 않겠다는 시크함으로 해석하자면 좀 그런가?

(좀 그렇긴 하다. ^^ )

이율 열 이야기만 하겠다고 했는데 반칙 한 번 하자.

성두섭, 이율 각자의 캐릭터에 맞게 발란스를 맞춰준 김재범 사담은 여러모로 돋보인다.

노래도  극의 분위기에 잘 맞게 부르고 연기도 정말 섬세하고 좋다.

특히 두 사람이 죽은 후 주고받는 대화는 여러번 봐도 좋다.

주도권을 장악한 김재범 사담이 보여주는 일종의 밀당의 진수라고 하겠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과 그 뒤에 이어지는 액팅, 대사톤 전부 괜찮다.

처음엔 이 작품의 호불호를 결정하기가 참 어려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번을 관람하게 된 건 순전히 김재범 사담 때문이었다.

그것도 이젠 전부 끝났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맘의 해와 맘의 달로 바뀌는 과정을 이해하면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