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10. 7. 08:19

피나코테카(Pinacoteca)

드디어 고대했던 바티칸 박물관의 회화관에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서 찬찬히 둘러보고 싶지만

단체 투어에서 개별행동은 민폐가 되니 부지런히 쫒아다녔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성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관람이 민망할 정도라는데

우리는 대부분의 작품 앞에서 막힘없이 통째로 서있을 수 있었다.

(복되고 복도도다, 비성수기의 은혜로움이여...)

 

 

벌써 꽤 오래된 일이긴한데

몇 년 전 바티칸의 보물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었다.

그때 한가람미술관을 몇 번씩 돌면서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내가 바티칸에 가서 이 작품들을, 이보다 더 많은 작품들을 실제로 보는 날이 올까....

특히 시스타나 성당은 모형과 비디오 자료뿐이어서 갈증이 더했다.

그런데... 그런 날이 정말 왔다.

파니코테카에 있는 작품들을 둘러 보면서 

그때 생각에 혼자 감회가 깊었다.

여담인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저 아기 천사들은 화가 잔득 났을 때 쳐다보면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작품이란다.

좀 찔리는 마음에 사진 속에 담아왔다.

(화가 났을 때 극약처방용을 사용하려고...)

 

 

앞의 작품은 르네상스 최고의 꽃미남 라파엘로 역작 세 편

"폴리뇨의 성모"와 "에수 그리스도의 변모" 그리고 "성모대관"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는 라파엘로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명성도 전부 라파엘로 사후의 영예고

살아 있을 때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단다.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모방했다며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다.

"에수 그리스도의 변모"는 마태복은 17장의 내용을 그린 작품인데

게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를 하던 중 모세와 엘리야 예언자를 만나 고난 뒤의 영광을 예고하는 모습이다. 

라파엘로가 죽은 후 발견되 그의 장례식장을 장식했던 그림이다.

고난 후의 영광...

그건 어쩌면 라파엘로 개인의 간절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키리바조...

그의 그림은 어둡다.

하지만 그의 색채는 너무도 선명하고 엄격하다.

특히 "십자가에서 내리심"이 보여주는 입체감은 경이 그 자체였다.

그림과 현실의 경계가 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가 관람자가 아닌 그림과 같은 공간에 있는, 아직 그려지지 않는 인물같다.

섬세한 근육과 피부, 그리고 그 집요한 시선이 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

 

 

1시간 30분 가량 주어진 점심시간.

나는 아주 깔끔하고 단호하게 점심을 포기했다.

그리고 지나온 길들을 다시 되집어 혼자 그림 앞에 섰다.

그때 느꼈다.

신은 지금 나와 함께 있노라고.

 

완벽한 기쁨이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