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4. 20. 08:23

유럽 문화 속에 마지막 아랍 문화의 진수를 꽃피운 "알함브라 궁전"

나스르 왕조 마지막 왕이었던 보압딜은 이곳을 떠나면서 비탄에 잠겨 말했다.

"스페인을 잃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알함브라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원통하구나..."

그리고 궁전의 벽에 누군가 새겨놓은 문구.

"그라나다에서 눈이 머는 것보다 더 참혹한 삶은 없다"

붉은 흙으로 만든 요새 알함브라는

이렇게 신비한 전설이 되어 시간 앞에 서있다.

내 여행의 목적이자 이유인 곳.

스페인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

 

 

오픈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려고 일부러 숙소에서 택시를 탔는데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입구는 벌써 각국 여행자들로 북적댔다.

다들 나같은 마음이구나...

생면부지의 여행자들에게 친밀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경쟁자들이구나... 하는 질투심까지도!

사실은...

턱없는 욕심이긴 하지만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곳을 나혼자 바라보고 싶었지만

그건 아마다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할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스르 궁전 입장을 8:30분 첫타임으로 신청할걸... 후회했다.

(내가 신청한 시간은 10시...)

그래도 오후보다는 덜 번잡할테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웅장하고 신비한 사이프러스 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가는 입구.

또 다시 이상한 나라가 열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드디어...

내가 알함브라 궁전의 사이프러스길을 걸는구나.

꿈이 아니고 진짜로 걷는구나.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디딜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다른 풍경이 열릴때마다

내 가슴은 깊게 떨려왔다.

 

 

제일 처음 찾은 곳은 9세기경 알함브라 궁전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졌다는 알카사르.

지금은 많이 파괴된 상태지만 건축 당시에는 24개의 방루를 가진 견고한 성이었단다.

내부에는 페러이드 운동장과 군대 막사, 군사들의 목욕탕까지 갖춘 완벽한 요새였지만

지금은 가장 높은 벨라의 탑을 중심으로 몇 개의 망루만이 남아

마지막 이슬람 왕국의 영화를 회상할 뿐이다.. 

잔뜩 흐린 하늘,

벨라의 탑에서 바라보는 대성당과 알바이신 지구는

침묵 속에 고요했다.

이 또한 지나갈 뿐이라고...

 

 

알함브라 궁전을 찾은 날,

하늘은 내내 잔뜩 흐려있었고 가끔씩 기습적인 찬바람이 지나갔다. 

그리고 총총총 고전적으로 내리던 잔비.

그날의 날씨와 비를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시간과 장소에 아주 딱 맞는 날씨였고 비였노라고...

비에 젖은 붉은 흙이 풍기는 냄새는 눅진하고 애뜻했다.

세상의 끝에 서있는 느낌.

기독교 세력 앞에 나스르 왕국은 속절없이 무너졌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불멸의 왕국이 되어 거대하게 서있다.

 

이젠 그 누구라도 이곳을 다시 무너뜨리진

못.하.리.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