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4. 8. 21. 08:39

대단한 건 아니지만,

생각하지 못한 것들에 아주 간곡하고 깊이 사로잡혀있다.

그래서 일상이 조금 틀어졌다.

가장 큰 변화(?)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있다는 거.

거의 매일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자전거를 탄다.

덕분에 퇴근시간이 빨라졌고

책 읽는 시간이 아주 현저하게 줄었다.

이번 달엔 다섯권이나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이건 내겐 무지, 거의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큰 변화다.)

자전거는...

아마도 내게 일종의 대체 호흡기처럼 느껴진다.

저전거를 타고 정신없이 달리다보면 내가 물고기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물 밖으로 나와 아가미로 호흡하는 거대한, 그리고 이상한 물고기.

그러나 그건 생존을 위한 호흡이 아닌 느낌을 위한, 감각을 위한 호흡이다.

바람이 지나가는 느낌,

비가 스치는 느낌,

바퀴가 땅을 뒤로 밀어내는 느낌.

시간이 배경을 바꿔가는 모습을 보는 그 모든 변화들까지...

아마도 지금 내 눈은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읽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로잡은 한 권의 책.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원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고 있었는데

(이 고전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 가끔씩 다시 읽는 책 중의 한 권)

그 책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책을 내 손에서 밀어냈다.

책장을 넘기는게 안스럽고 아파서 한 장 한 장을 한권처럼 읽고 있다.

도저히 속도를 낼 수도 없고, 또 속도를 내서 읽고 싶지도 않은 책.

당연한 말이지만 "전혜린"의 번역본인데

그녀가 왜 젊은 나이에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전혜린이 이 책을 번역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분명 달라졌으리라.

전혜린은 "니나"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봐버린거다.

견디기가... 힘들었을거다.

니나를, 전혜린을 생각하니 한 줄 한 줄을 읽어내는 게 너무 아프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녀들은 내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미리부터 두렵고 겁난다.

 

그리고 현재 나를 사로잡고 있는 두 편의 공연 .

뮤지컬 <드라큘라>와 연극 <프라이드>

<드라큘라>는 이미 몇 번의 리뷰를 썼으니 그럴만도 하고

연극 <프라이드>는 감히 리뷰를 쓸 엄두조차도 못내고 있다.

그 상황들, 그 인물들, 그리고 그 대사들...

가슴 속에 그대로 박힌다.

위로이고 아픔이고, 통증이다.

 

실비아의 마지막 대사.

나를 버티게 하는 주문과 똑같아 그대로 멈춰버렸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이제 눈을 뜨면 난 떠날거예요.

당신은 자고 있겠죠.

당신 이마에 입맞추고 행운을 빌며 조용히 떠날께요.

우린 이 길 끝에 도착했어요.

당신을 탓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저 두려움에 갇힌 죄수니까.

모든 것들을 그냥 견뎌내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던 불쌍한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것들은 손 안에서 죽어가는데

당신 손엔 이제 죽은 까마귀 뿐인데

그저 바라볼 줄밖에 모르네요.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조금씩 시작될거예요.

그 변화가 주는 고통이 당신이 믿었던 삶을 송두리째 흔들겠죠.

 

내가 멀리서 속삭일께요

내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을때까지

당신이 당신에게 닿을때까지

괜찮아요. 괜찮을거예요. 모두 괜찮아질거예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