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14. 08:06

그리스의 환성의 섬 "Santorini"

공식 명칭인 "Thira"보다 산토리니로 더 알려진 이곳은 결혼하는 사람들이 신혼여행으로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면인들의 섬인 이곳을 조카녀석들과 정말 용감하게 다녀왔다.

아테네에 피레우스 항구에서 아침 7시 10분에 출발하는 고속페리.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비행기를 이용할지 페리로 갈지를 두고 꽤 오래 고민하다

그러다 좀 힘들어도 조카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서 산토리니로 들어갈 때는 고속페리로

나올 때는 야간페리 침대칸을 선택했다..

혹시 배멀미가 심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바다가 잔잔해서 약간 울렁거리는 정도로 그쳤다.

이번 여행에서 날씨가 참 많은 도움을 줬다.

맨 앞자리 좌석이라 창으로 밖이 잘 보이겠구나 싶어 좋아했는데

그 자리가 하필이면 여행객들의 짐을 올려놓는 곳이었다.

정말 야무지게 차곡차곡 가려지는 시야를 보면서 참 여행객이 많구나... 생각했다.

하긴 나도 지금 여행중이니까!

 

신항구 Athinios port에서 내려서 Fira로 가기 위에 로컬버스를 탔다.

굽이굽이 산길을 넘는 버스를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꿈결 같다.

방금 내가 내렸던 페리에 산토리니를 떠나는 사람들이 타는 모습과

더 먼저 떠난 페리가 남긴 비행운같은 물결의 흔적들.

아마 그 순간이었을거다.

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여행자의 마음이 됐던 게!

아마 나는 그때 그 물결속에 풀어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무심한 마음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Fira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지도를 보고 숙소를 찾아갔다.

지금도 신기한 게 난 결코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그게 코 앞의 길일지라도...

그런데 지도를 보고 찾아갔다!

조카들의 말똥말똥한 눈망울이 그걸 가능하게 하더라.

산토리니는 어디를 가든 꼭 Fira 버스정류장에서 로컬버스를 타고 이동해야만 하는데

다행히 숙소가 이 버스 정류장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있었다.

탁 트인 호텔 앞 뷰도 너무나 좋았지만

문만 열면 바로 수영장이라 조카들이 너무나 좋아했다.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풍덩!

게다가 길만 건너면 바로 "카르푸"라서 그것도 너무 좋았다.

(3박 4일 동안 참 알뜰하게, 자주 이용했던 곳!)

 

그리스는 바다를 가를듯 쑥 밀고 들어간 곳이라서 늘 거센 바람이 그칠 줄 모른단다.

그 바람이 포도와 오이, 올리브를 익게 만들고

종을 치는 사람이 없어도 교회 종탑에서 종이 울리게 한다.

산토리니를 다니면서 정말 많이 봤던 종탑들...

때로는 교회였고, 때로는 음식점이었고, 때로는 묘지이기도 했던 곳.

그러니까 이곳들이 모두 바람이 드나드는 길이었던거다.

산토리니가 메마르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섬 도처에 바람의 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바람 속에 물의 기운도 함께 이동하기 때문에...

뜨거운 지중해의 햇살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가 이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에서 아크로폴리스에 이어 두번째 대면한 "바람")

 

초등학생 조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보니 아무래도 무리하게 움직일 수 없어서

도착 첫날은 피라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걸로 만족했다.

(페리 보딩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부산을 떨었던 탓에...)

그리스의 섬들이 다 그렇겠지만 이곳 산토리니의 피라는 "햇살"이 유난히 좋았다.

눈을 뜨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기가 힘들만큼 강렬했지만

그 강렬함은 주변을 넓고 부드럽게 감싸안는 포근함이었다.

어쩐지 피라의 햇살 속에 서있으니 나까지도 말갛게 행궈지는 기분이다.

조카들의 웃음소리도 발랄하게 사방을  뛰어다닌다.

하늘을 보는 것도, 바다를 보는 것도 눈부시게 예뻐서

이곳에서라면 풍경 속에 한 입에 삼켜져도 진심으로 행복할것 같았다.

하얀 풍경 속에 서 있어보니 

왜 흰색이 무채색인지 정확히 알겠다.

흰색은 주변의 색에 쉽게 흡수되고, 주변의 색에 쉽게 번진다.

흰색이 눈부신 건 아마도 그래서가 아닐까?

하얀 건물이 뿜어내는 햇살의 빛남은

그 어떤 보석의 반짝임보다 화려하고 눈부셨다.

아마도 그 순간이었나보다.

"햇살"을 향한 불같은 질투가 시작된 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