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5. 13. 08:33

<윤동주 달을 쏘다>

일시 : 2013.05.06. ~ 2013.05.12.

장소 : CJ 토월극장

극본, 작사 : 한아름

작곡 : 오상준

미술 : 윤정섭

무대디자인 : 최수연

연출 : 권호성

출연 : 김수용, 박영수 (윤동주)/김형기, 이사후, 김백현, 하선진 외

        서울예술단원

 

이 작품...

참 나쁘다.

그리고 너무나 못됐다.

그래서 울컥울컥 설움이 복받친다.

설움보다 더한 눈물과 참혹함으로 도무지 말을 할 수가 없다.

모든 장면이 고통스러웠고, 모든 장면이 황홀했다.

이 좋은 작품을...

이 좋은 내용을...

어쩜 그렇게 고작 일주일만 무대에 올릴 수 있으냔 말이다.

까닥하다가는 못 볼 수도 있었단 말이다.

정말 죽도록 달리고 달려서 겨우 에술의 전당에 도착해서 착석했다.

작년에도 입소문보다 짧은 3일이라는 공연기간 때문에 이 작품을 놓치고 말았었다.

그래서 올해에는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 나이에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런데 어쩌나!

이 작품때문에 아직 나는, 내 마음은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달을 쏘기 위해서,

전속력으로!

그리고 누군가 자꾸 내게 묻는다.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

"사람!"

 

서울예술단의 작품은,

정말이지 아름답고, 처연하고, 그리고 고결하다.

게다가 한아름 작가와 오상준 작곡가의 만남은 뭉클한 감동과 함께 파도같은 희열을 안겨준다.

이 작품은... 이 작품은...

도저히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너무나 죄스럽고 너무나 송구스럽고 너무나 안타까워 

나는 여러번 고개를 숙였다.

또.로.록.

눈물이 떨어진다.

내가 감히 울어도 되나 싶어 나는 또 고개를 숙였다.

윤동주의 시가 이렇게 가슴을 치고 들어올줄은 몰랐다.

청년 윤동주로 분한 박영수의 입에서 낭독되는 시들은 그대로 절규였고,바람이었고, 희망이었다.

시가 모든 것이 될수 있다는 걸,

그 시가 또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아프게 아프게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았다.

"시(詩)"라는 단어가 이렇게 서럽고 아프고 눈물나게 참혹한 아름다움이라는 걸

예전엔 몰랐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내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윤동주의 시를 완전히 다시 새롭게 알았다.

서시도.

비 오는 날의 인사도.

참회록도,

별 헤는 밤도...

다 아프고 아프고 아픈 시다.

 

뮤지컬 넘버들이 주는 감동은 정말 엄청난다.

윤동주의 솔로곡 "내가 잊었던 것들"과

이선화와의 듀엣곡 "얼마나 좋을까?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부르던 노래 "시는 무엇인가"

형무소에서 송몽규와의 듀엣 "먹고 버텨야 한다"

혼몽한 정신으로 마지막 절규처럼 부르는 마지막 넘버 "달을 쏘다"까지

모든 넘버들이 하나같이 깊은 울림과 떨림이 있다.

이런 작품.

다시 또 만날 수 있을까?

윤동주가 후쿠오마 형무소에서 생채실험 주사를 맞는 장면은

차마 바라볼 수가 없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흑인영가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사이에 몽규와 동주가 나누던 짧은 대사는

무딘 칼로 살을 저며내는 아픔이었다.

오늘은 언제고, 내일은 언제지?

고통스러운 건 오늘이고, 평온한 건 내일이 아닐까?

내일도 고통스런 태양이 뜨면 어쩌지?

서서히 의식을 잃는 윤동주를 보면서

눈물흘리는 것도 죄스러워 나는 참고 참고 또 참았다.

윤동주를 연기한 박영수는

도대체 이 장면들을 어떻게 견뎌낼까?

아무래도 이 작품 끝내고 나면 이 녀석 참 많이 힘들어지겠구나...

안스럽고 안스럽다.

박영수라는 녀석!

탄탄한 기본기를 가진 엄청난  배우가 될 것 같다.

표정도, 연기도, 노래도, 딕션도, 목소리 톤도 배역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20대 청년 안중근의 풋풋함과 젊은 고뇌, 그리고 비탄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

(이 역할을 노련하게 표현했다면 과연 지금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까?)

묘한 필모그라피를 갖고 있는 배우다.

연기할 땐 김재범과 정상윤의 섬세함을 떠올리게 하고

노래부를 때는 임태경의 부드러움과 깊이를 떠올리게 한다.

ㅅ발음이 살짝 부정확한 것까지도 임태경과 유사하다.

그러나 연기나 감정표현 면에서는 확실히 임태경보다 훨씬 좋다.

아직 어린 배우라는 걸 생각하면 그의  미래가 무서울 정도로 기대된다.

또 다시 반복해야만 하겠다.

이 녀석을 주시하자!

 

오랜시간 함께 작업을 한 서울예술단원들이 만들어내는 합(合)은 아름답워서 황홀했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어쩜 그렇게 정성껏 연기를 하던지!

한 사람 한 사람 전부 정성껏 곱게곱게 씀다듬고 보듬어 주고 싶었다.

무대도, 영상도, 음향과 효과도 너무나 좋았다.

일주일이라는 공연 기간이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원망스러울수가 없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곁에 있어주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더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게.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무사의 마음으로

시리고 차가운 저 달을 쏠 수 있게...

 

좀 더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

무사의 마음으로

무사의 맘으로 달을 쏜다.

통쾌하다

부서지는 저 달빛이

우습구나

쪼개지는 저 그림자

오늘도 내일도 나는 무사의 마음으로

너를 쏜다

시를 쓴다

삶이 쓰다

달을 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