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4. 7. 10. 08:03

센조지키와 함께 시라하마의 명승지로 알려진 삼단벽동굴(三段壁洞窟).

지하 36미터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가면

커다란 해식동굴이 있는데 이곳이 천황시대 해적단의 본거지였단다.

동굴의 정체를 몰랐던 당시의 사람들은

배가 갑자기 나타나고 갑자기 사라지는 걸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고...

동굴은 요즘의 눈으로 보면 그리 크지는 않지만

과거의 왜선이라는 두서너척은 너끈히 들어갔을 공간이다.

사실은 동굴의 크기보다는 동굴끝을 부딪쳐서 울리는 물살의 소리가 거대해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마치 성능 좋은 스피커를 최대 출력으로 맞춰놓은 것 같다.

공간에 비해 소리가 너무 크다보니 오히려 공갈빵 같은 느낌이 들더라.

 

동굴 안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거대란 십상암(十狀岩)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기암이라고.

10가지 형상이 열심히 찾는 사람들도 있던데

알뜰하게 찾아볼 의욕따위 없어서 그냥 쉬엄쉬엄 보기만 했다.

단지 이름이든, 형상이든 기억하고 싶은걸 바위에 담드는 소박한 소망이 더 크게 보였다.

쉼없는 물살에 이 또한 흘러갈테지만...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다시 되새겼다.

빛만이 명암(明暗)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

물살도, 소리도 하나의 완벽한 명암을 만들기에 충분하더라.

거친 물살이 바위에 새긴 명암은 빛으로는 도저히 만들어지지 못하고

벽을 치며 공명하는 소리가 새긴 명암 역시도 빛이 어쩌지 못한다.

그리고 그 깊이감은 물살과 소리쪽이 빛보다 더 크다.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다.

the other side

 

그런데 사실,

삼단벽동굴보다 내 눈에 담겼던건 "삼단벽"이었다.

제주도의 주상절리보다 신비감과 고적한 위용은 훨씬 덜하지만

병풍처럼 늘어서있는 절벽은 예리하고 단단했다.

어딘지 물색을 닮은 듯한 절벽.

그대로 물 속으로 풀어질 기세다.

바위라고 녹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굳게 입을 다물고 바다를 향해 침묵하는 거대절벽 앞에서

나는 오래 함께 침묵했다.

 

참...

고.요.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