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어린이날이었다.
어린이날과 상관없는 독거 어른이는 어제 대학로와 신당동을 다녀왔다.
오랫만에 카메라를 챙기면서 좀 기대했었다.
햇살같은 꼬맹이들의 미소를 찍을 수 있겠다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라.
다들 자차로 움직이는지 지하철 안에는 어린이와 함께 이동하는 가족들도 거의 없었고
그리고 의외로 길거리에서 마주친 어린이들의 표정이 그렇게 신나보이지 않아서 놀랐다.
솔직히 고백하면,
아직 덜 자란 어른이의 눈에는 어제의 풍경은 가히 문화충격이라 할 만 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지금의 "어린이 날"을 보며서 흐뭇하실까?
생각해보니,
나는 부모님께 어린이날에 선물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형제가 다섯이나 되기도 했지만
그런걸 챙길만큼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다.
딱 한 번 대공원엘 간 적이 있었는데
놀이기구를 탔던 건 아니고 그냥 풀밭에서 신문지깔고 김밥을 먹고 왔던게 전부였다.
그래도 그게 난생 처음 간 어린이날 소풍이라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김밥도
분홍색 진주햄 소시지에 달걀, 그리고 단무지가 아닌 동치미를 굵게 썰어 넣은게 전부였다...
지금은 세상 흔한게 김밥이 되버렸지만
그땐 그것마저도 나에겐 엄청난 별식이었다.
생각해보니 초라한 내용물을 보완하기 위한 엄마의 비장의 무기가 있긴 했다.
바로 맨 밥 위에 솔솔 뿌린 라면 스프.
그래서 지금도 라면스프를 보면 나는 김밥이 떠오른다.
참 오래된 이야기.
소파 방정환이 어린이날을 만들자고 했을 때는
"어린이"가 "인격"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객이 확실히 전도됐다.
그래선지 지금의 "어린이날"은 내 어릴적 "어린이날"과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어제도 대학로와 신당동에서 간혹 만난 어린이들의 표정이
행복하지도, 밝아 보이지도 않아서 안스러웠다.
그렇다고 부모들 얼굴이 행복해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마흔 다섯 독거인의 눈에는
"어린이"도 사라진것 같고
"가족"도 사라진것 같다.
유일한 피붙이는 "스마트폰" 하나뿐인 것만 같고...
함께 살면서 홀로인것 보다
혼자 살면서 홀로인게
차라리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