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1. 8. 09:05

<레드>

일시 : 2013.12.21. ~ 2014.01.26.

장소 :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극본 : 존 로건 (John Logan)

무대 : 여신동

연출 : 김태훈

출연 : 강신일 (마크 로스코) / 강필석, 한지상 (캔)

주최 : 신시컴퍼니, 예술의 전당

 

<레드>는 어떻게 매번 내 가슴을 이렇게까지 살아 숨쉬게 만들까!

이건 감동과 경탄을 넘어 저절로 두 무릎을 꿇게 만들어 버린다.

설명이 불가할 존경심.

아주 잔혹할 정도다.

2년 전에 느꼈던 무시무시한 떨림도 다 무시하고

지금 또 다시 철저하게 매혹당했다.

엄청 센 놈을 제대로 만났다.

마크 로스코를 연기한 강신일 배우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텍스트였고 클라세였다.

<광부화가들>때도 완벽하게 나를 사로잡더니

<레드>의 마크 로스코는 숨통까지 쥐고 흔든다.

도대체 그 누가 무대 위에서 마크 로스코를 연기한 강신일보다 더 젊고 강렬할 수 있을까?

한참 어린 한지상조차도 그의 젊음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인다.

단언컨데 한지상은,

이 작품이 끝내고 나면 분명히 달라져있을거다.

초연부터 함께 하지 못한게 질투가 날 정도었다는 한지상은

마크 로스코의 캔이기도 했고,

강신일의 캔이기도 했다.

 

- 뭐가 보여?

- 레드요!

 

작품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 로스코와 캔의 대사.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대답.

그러나 작품을 보고 나면 알게 된다.

이건 결코 똑같은 질문일 수도

똑같은 대답일 수도 없다는 걸!

 

실제로 마크 로스코는

1958년에 뉴욕 맨허튼에 위치한 시그램 빌딩에 들어설 포시즌 레스토랑의 벽화를 의뢰 받았다.

그런데 그림을 다 완성시켜놓고 갑자기 계약을 파기해버렸다.

그 당시 화가의 변심(?)은 "시그램 사건"이라고 불리며 꽤 이슈가 됐었던 모양이다.

마크 로스코는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렸던걸까?

이 작품의 이렇게 의도도 시작도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레드"란 도대체 뭘까?

작품 속에서 배틀처럼 두 사람이 레드에 연상되는 이미지들 나열 속에 답이 있을까?

삶, 생명, 열정, 근원. 움직임, 에너지.레드 와인, 헤돋이, 드레스텐의 야간 폭격, 루소의 태양, 엘 그레코의 망토...

그러나 이 작품이 진짜로 내게 묻어왔던 건 "너 자신만의 레드"가 무엇인가 였다.

생각이라는 걸 해봤다.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인간이 되어 보라는 로스코의 충고대로.

나 자신만의 레드!

그건 바로 "관계(rapport)"다.

그것도 아주 정직하고 순수한 집중을 필요로 하는 관계!

생명도, 예술도, 사랑도 모두 관계의 문제다.

어떤 관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랑도, 삶도, 예술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 관계에 집중할 수 있다면 인간은 무서울 정도로 치열해진다.

"관능"은 바로 그곳에 있다.

시간과 공간, 성별과 섹슈얼리즘을 뛰어넘는 "관능"

난 <레드>를 통해서 그걸 읽었고, 그걸 봤고, 그걸 느꼈다.

이 느낌들... 이 감정들... 이 전율들...

글로 표현한다는게 가능은 할까?

침묵밖에는 도무지 답이 없다.

그리고 로스코의 말처럼 침묵은 언제나 정확하다.

 

2011년 오경택 연출의 초연과 비교하면,

김태훈 연출의 <레드> BGM처럼 깔렸던 음악이 조금 더 부각됐고

대사들도 일부 친절해졌다.

그래도 역시나 치열함과 아름다움엔 변함이 없다.

여신동의 무대는 군더더기가 없이 작품의 필요를 충족시켰고

자유소극장도 초연의 이해랑예술극장보다 작업실 느낌이 더 강해서 좋았다

장소를 만들어낸다는게 그림에만 해당되는게 아님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공연 장소도, 무대도, 배우도, 연출도 더없이 극적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rapport를 목격했다.

 

커튼콜에서 한지상의 모습은

배우로서 아주 말갛고 깨끗한 맨얼굴 그대로였다.

자신이 지금 너무나 벅차고 행복한 시간을 지내고 있다는걸 그대로 보여줬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걸 지켜보는 느낌.

강신일은 한지상을 최대한 끌어내줬고

한지상은 그걸 놓치지 않고 또 다시 자신을 끌어올리더라.

솔직히 나는 한지상이 이 작품을 하기에는 연극적으로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필석 캔을 예매해놓고 망설였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 이상을 보여줘서 놀랐다.

멋졌다.

두 배우 모두!

 

이 작품...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너무나 뜨겁고 치열하다.

이 맹렬한 질투를,

나는 내내 어떻게 감당할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