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4. 16. 06:12

<메피스토>

일시 : 2014.04. ~ 2014.04.

장소 :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

원작 :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대본 : 한아름

무대 : 여신동

작곡 : 황호준

연출 : 서재형

출연 : 정동환(파우스트), 전미도 (메피스토), 이진희(그레첸) 외

주최 : 예술의 전당

 

난 서재형과 한아름 콤비의 작품들을 정말이지 미치도록 좋아한다.

<왕세자 실종사건>, <메디아>, <더 코러스;오이디푸스>,

이 작품들을 보고 받었던 충격은 가히 해비톤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겐 이 둘의 조합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황홀하다.

그런데 거기에 황호준이 음악을, 여신동이 무대까지 가세했으니 " Must see"  해야 할 이유가 더 생겼다.

(사족이긴한데 황호준은 소설가 황석영의 아들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무지 좋아하는 고전 중 한 편인 <파우스트> 원작이라니!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 작품을 여성성이 강한 메피스토펠러스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더 강렬하지 않을까 하고...

그러면 이 "유혹"이라는 부분이 훨씬 더 강렬하고 필사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니...

묘하게 섬득해지는 반가움이 느껴졌다.

 

 

작품은 원작의 깊이를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신선했고 게다가 꽤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특히 삼류건달을 떠올리게 하는 메피스토 전미도에게 놀랐다.

성실하게 꾸준히 성장하는 배우라는 건 매번 느끼고 있었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확신했다.

이제 그녀는 몸과 소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아는 배우가 됐다는 걸!

쇠를 긁어내는 듯한 가공되지 않은 불편한 소리와 백발의 머리,

껄렁껄렁한 자세와 기괴한 표정들, 움직임들을 보면서

그녀가 이 작품을 위해 쏟은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느껴져 뭉클했다.

(검정 배바지 정장과 붉은 블라우스 셔츠는 또 왜 그렇게 작품과, 배역과 잘 어울리던지...)

쉽게 감당하기 힘든 작품이고, 역할이었을텐데...

놀랍다.

감탄스러울만큼 매혹적인 메피스토였다.

능수능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그 악 속에 순진한 선이 보이더라.

그건 아마도 역할과 별개로 전미도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필모그라피 때문이었으리라.

의도되지 않은 그 느낌이

의외로 극의 표현과 꽤 적절하게 어울리더라.

("악"인들 방황하고 주저하지 않을까! 비록 그게 절대악일지라도...)

 

파우스트 정동환.

파격적인 전미도에 의해 오히려 포커스가 덜 맞춰지는 느낌이 있지만 역시나 노련하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정동환 파우스트가 아니었다면 전미도가 이렇게까지 날개를 활짝 펼 수 있었을까?

다음 세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기위해

뒤를 확실하게 서포트를 해주는 노장의 연기를 본다는 건,

관객 입장에선 극진한 감동이다.

(몇 년 전 공연된 <벚꽃동산>까지 오버랩된다. 그 연극에서 정동환의 모습, 참 아득했었는데...)

젊음을 되찾은 파우스트의 모습이 충분히 젊지 않아 당황스럽긴 햇지만

정동환의 연기는 명확했고 확실했다.

 

발푸르기니의 밤은 다소 과하게 표현되긴 했지만

(오히려 더 극단적인 몽환의 느낌이었다면 어땠을까?)

육중한 쇠가 갈리는 소리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느낌이더라.

무참하게 도륙되는 육체 위에 펼쳐지는 악의 향연.

어쩌면 구원받은 파우스트를 보면서 신에게 외친 메피스토의 물음은

자기방어같은 최후변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에게 달라붙었습니까? 아니면 그가 날 불러들였습니까?

 대답해주십시오! 그가 옳은가요? 난 항상 틀린가요?"

우리가 선하다고 믿는 신(神)은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선했던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 신께서도 "메피스토"에게 대답을 해야 할 것 한다.

 

바로 지금이다!

악마가 될 시간.

가장 행복한 시간이 바로 파괴의 시간이다.

그러니 기억하자.

선이란 아직 저지르지 않은 악일 뿐이라는 걸.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