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1. 8. 24. 06:06

 


연극 <우먼 인 블랙>
원  작: 수잔 힐
연  출: 이현규
기  간: 2011.07.09 ~ 2011.09.10
장  소: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출  연: 홍성덕, 이동수, 박정환(박호산)


요즘은 연극을 좀 챙겨보려고 노력중이다.
그닥 보고싶은 뮤지컬이 없기도 하지만 연극을 보는 재미는 확실히 뮤지컬의 그것과는 다른다.
그리고 솔직히 요즘 공연되는 뮤지컬들이 점점 가벼운 쪽으로 가는 것 같아 개인적으론 안타깝다.
초연 이후에 다시 공연되는 작품도 조금씩 코믹한 부분들을 부각시키는 것 같고......
그게 붐이고 그래야 소위 장사가 되기 때문이겠지만 첫기억이 좋아 다시 찾았는데 의아스러울만큼 코믹해져서 놀란 경험이 많다.
게다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뮤지컬 가격은 솔직히 정말 무섭다.
준비 안 된 아이돌이 질려대는 정체불명의 딕션과 괴성은 거의 불쾌한 공해 수준이고...

연극의 매력은...
배우의 몰입, 그리고 관객과 배우의 몰입이 일치할 때 생기는 집중력에 있는 것 같다.
그게 딱 맞아 떨어졌을 땐 정말 극 속으로 빨려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연극이 그랬다.
<우먼 인 블랙>
1989년 영국 웨스트엔드에 입성한 후
현제까지 22년째 쉬지 않고 공연되는 작품이란다.
게다가 얼마전엔 해리포터 "다니엘 레드클리브" 주연으로 영화도 촬영됐다.
우리나라엔 2012년 개봉예정이란다. 
궁금하긴 하다.
해리포터의 이미지를 이 공포물로 벗어버리고 성인연기자가 될 수 있을지...
 



박호산으로 이름을 개명한(아직 공식적인 건 아니라지만...) 박정환과 이동수가 배우 역으로
2004년 초연때부터 변호사 '아서 킵스' 역을 맡았던 홍성덕 배우와 함께 출연한다.
이 날 캐스팅은 박정환과 홍성덕.
두 사람의 호흡은 완벽하고 절묘했다.
개인적으로 배우 홍성덕의 무대를 처음 봤는데 대단하다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만큼 멋졌다.
손가락으로 꼽아보니 스파이더라는 강아지까지 혼자서 8가지 배역을 하더라.
게다가 그 배역들은 하나같이 다 명확한 특징과 성격을 가진다.
극중극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더라도,
배우 홍성덕의 모습은 대단했다.

무대 위에서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서 있는 아서 킵스.
그는 평온을 얻고 싶었다.
자신이 겪었던, 차마 말로 할 수 없던 끔찍한 경험에서 이제 자유롭고 싶어서...
그는 한 명의 배우를 고용한다.
자신의 과거 모습을 연기하는 배우 앞에서
그는 당시 만났던 사람들, 상황들을 상대편 입장에서 연기하면서 과거의 시간 속으로 걸어간다.
어색해하는 아서 킵스를 향해 배우는 말한다.

"믿어야 보이고 보여야 느낄 수 있다"


배우 역의 박정환(박호산)!
늘 느끼는거지만 참 묘한 배우다.
잘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기를 아주 미칠 듯이 잘하는 것도 아닌데
확실히 사람을 집중시키는 포커싱이 있다.
아마도 그건 그 배우가 보여주는 시선과 손끝, 발끝의 섬세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짧은 단(短)의 순간에서 느껴지는 단(亶)은
보는 사람이 모든 것들을 등지고 오로지 몰입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일부러 제일 앞자리를 선택한다.
그가 보는 시선의 끝을, 그가 가리키는 방향의 끝을 굳이 꼭 목격하고 싶어서...
비음이 약간 있는 그의 목소리는,
답답한듯 아득하기도 하지만 뭔가 은밀한 비밀을 곧 말해줄 것 같은 폭로의 기대감을 주기도 한다.
장난스럽기도 하고, 때론 과도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사람의 단발마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특징은 정확히 이 작품과 맞아떨어졌다.
이 날도 무대 위에서 자유로운 그의 모습을 보면서
셈이 날 만큼 질투가 났다.
잘 하는 것과, 잘 하고 싶은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그는 잘 하는 배우다.
그리고 잘 한다는 의미는 매 작품마다 다른 느낌으로 나타난다.
친근함과 신비감을 묘하게 뒤섞어서 함께 쥐고 있는 배우인 것 같다.
(솔직히 그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하겟다.)

작품은,
스토리가 무섭다기 보다는
극의 흐름, 분위기, 그리고 소리가 주는 공포가 더 크다.
이인극이 주는 집중력과 배우들의 연극적 재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90여 분의 시간은 아주 순식간에 지나간다.
무대 셋트와 효과음도 괜찮고 조명도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봐도 후회되지 않을 작품 ^^

* 사족이긴 한데...
  홍보 사진은 공포스릴러라기 보다는 코믹에 가까워 놀랐다.
  이건 아닌 것 같다.
  이게 내겐 또 하나의 공포였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