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5. 5. 8. 07:52

 

<푸르른 날에>

 

일시 : 2014.04.26.~ 2014.06.08.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극작 : 정경진

각색, 연출 : 고선웅

출연 : 김학선, 정재은, 정승길, 이영석, 호 산, 이명행, 조윤미, 조영규,

        채윤서, 유병훈 이정훈, 김명기, 견민성, 김성현, 손고명, 남슬기,

        홍의준, 김영노, 강대진, 김민서

제작 : 남산예술센터, 신시컴퍼니

 

5월이다.

송착식의 노래처럼 정말 눈이 부시게 푸르른 5월이다.

그리고 그 5월보다 더 푸르고 피보다 더 붉은 연극 <푸르른 날에>가 돌아왔다.

매번 이 작품을 보고 난 뒤엔 가슴을 치며 후회하면서 왜 또 다시 이곳에 왔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또 뭘 그리 견뎌보겠다고...

그래도 한 번은 봐야겠다고. 한 번은 더 견뎌보겠며 더듬더듬 자리를 찾아 앉았다.

2011년 남산예술센터 초연 당시 사전예매 120석으로 시작한 작은 연극 <푸르른 날에>는

2012. 2013, 2014년 전석 매진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2015년 지금,

5년 동안 이 작품을 함꼐 해 온 초연 배우 19명의 마지막 고별 무대가 시작됐다.

이 작품은,

소위 말하는 회전문이 불가능한 작품이다.

한 번 보는 것만으로 이미 강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서기 때문에

한 시즌에 두 번을 관람하는게 내 경우엔 도저히 불가능하다.

 

"명랑하게 과장된 통속극"

혹자는 이 작품이 5.18 민주화항쟁은 너무 가볍게 다뤘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명량만화 같은 한없는 가벼움 속에

뼈를 바수고 살점을 뜯어내는 처절함을 느낀다.

농담을 하려는게 아니라 진담을 표현하기 위해 말을 틀어 변화를 줬다는 고선웅 연출의 변이

그래서 나는 충분이 이해된다.

 

"농담을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본질이라는 거예요. 연극의 본질은 농담이에요. 농담을 통해서 그 진실을 보여주는 거죠. 자기가 직접 겪은 것이라도 무대에서 정확한 에너지를 갖지 못하면 그건 경험한 게 아니에요. 연극은 철저하게 허구화되어 있지만, 그것을 보면서 그 누구도 '그건 허구잖아' 이런 얘기를 할 수 없게 만들죠. 단원들에게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정말 가슴 아픈 얘기지만 우린 행복하게 연극을 하자고요. 가슴 아파하면서는 연극을 할 수가 없어요. 거기서 어떻게 말을 해요. 가슴이 아프고 뼈가 저린데... 그것을 뛰어넘는 연극적 접근이 필요해요. 그렇게 슬픈 연극일지라도 연습하다가 재미없으면 말아야죠. 슬퍼도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작품을 보는 내내 너무 많이 아프고 아팠다.

심지어 한바탕 실껏 웃는 장면에서조차 혼자 주책맞게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내가 신경쓰였는지 옆자리 모르는 분께서 내 손에 휴지를 쥐어줬다.

민망했지만 눈물이 유난히 멈추지가 않더라.

처음 본 작품도 아닌데 이날 관람은 유난히 몸과 마음이 송두리째 아팠다.

미치지 않으면 미친척이라도 해야 살 수 있는 시대,

살아 남기 위해 자신을 다 버려고 부정해야만 했던 시대.

그걸 지나온 사람들의 삶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무서워서 그랬다는 오민호의 말도

누가 우리를 알아나 줄까? 라는 말도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도...

다 통곡이었다.

 

 

예전에 이명행 배우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푸르른 날에> 또 하신다면서요?"

"네!"

"왜요? 힘들고 아프쟎아요, 하지 마세요..."

반어와 역설로 가득한 짧은 대화에 이명행 배우도 나도 웃었다.

그렇게 웃는것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기도 했다.

이번 초연 배우들의 고별무대를 보면서

젊은 날의 오민호를 해보겠노라 나설 배우가 과연 있을까 걱정됐다.

배우니까 할 수 있다...

적어도 이 역할에서만큼은 그 원칙이 적용되지가 쉽지 않을것 같다.

그래서 이명행이라는 배우에게 너무 많이 고마웠고,

그 고마움보다 더 많이 그가 안스러웠다.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세상.

여전히 한 사람 한 사람을 죽이고, 가족을 죽이고, 지역공동체를 죽여

마침내 사회를, 시대를, 인간을 죽여버리는 세상.

작품의 엔딩처럼 꽃비 날리는 날,

그 시대의 사람들과 지금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꿈처럼 한바탕 웃으며 사진을 찍는 날은

영원히 환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인 모양이다.

 

산다는건,

뭐 대단한 걸 이루기 위해서가 아닌데...

그저 좋은 날을 위해,

좋은 한시절을 위해 사는 것 뿐인데...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