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5. 28. 14:10

<헤다 가불러>

 

일시 : 2012.05.02. ~ 2012.05.28.

장소 : 명동예술극장

출연 : 이혜영, 강애심, 김수현, 김성미, 김정호, 호산, 임성미

극작 : 헨리크 입센

연출 : 박정희

제작 : 명동예술극장

 

<햄릿 1999> 이후 12년만에 배우 이혜영이 연극 무대에 선다!

그것도 '현대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크 입센의 작품으로.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입센의 <헤다 가불러>는 세계 초연 이후 120년 만에 우리나라에 초연무대를 갖게 됐다.

그만큼 함부러 도전하기에 어려운 작품이란 의미일까?

세계적으로 이 작품이 공연될 때는 누가 헤다 역을 하느냐가 매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데 우리나라가 선택한 첫번째 헤다는 배우 "이혜영"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작품의 카리스마가 어느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솔직히 이혜영 한 명만 봐도 손해날 것 없는 작품이겠구나 생각하면서 일찌감치 예매를 했었다.

명동예술극장은 개관한 이래 나름대로 주관과 곤조(?)를 가지고 좋은 작품을 성실하게 제작해왔다.

개인적으로 처음 명동예술극장을 찾았는데

뭐랄까 어떤 독보적인 자존감 같은 게 느껴졌다.

살짝 독립군 같다고나 할까?

 

연극은 어렵다는 표현보다는 너무나 성실하고 극적이었다.

"헤다 가불러"라는 인물이 가지는 삶에 대한 욕망과 주도권에 대한 집착이 섬득하면서도 사실적이다.

고전적이면서도 섬세한 심리묘사나 대사들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한 인간, 한 여성의 마지막 이틀!

그 이틀의 시간이 평생의 시간보다 길고 강렬하다.

이 여자의 마지막은 또 얼마나 정당하고 당당한가!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모든 걸 던져버리겠다.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성이 아닌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고집할만큼 헤다는 자신의 삶에 주도적이었던 헤다.

그녀는 일종의 개척자였고 기획자였다.

"욕망"이라는 건 또 얼마나 치밀하고 관능적인가!

그리고 또 배우 이혜영은 얼마나 아름답고 관능적이고 화려하던가!

솔직히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 이혜영에게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헤다야 늘 아름답지 않니!"

테스만 고모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다.

아니 솔직히 "이혜영이야 늘 아름답지 않니!"가 정확한 표현이다.

대사와 동작이 너무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장되거나 힘이 들어간 게 아니라 정말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

50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그녀는 젊은 헤다 역에 완벽히 동화됐고 충실했다.

무대에 서있는 자세와 눈빛, 동작 하나하나가 어찌나 당당하던지...

보는 내내 완벽히 압도당했다.

특히 커튼콜때 이혜영의 모습은 연극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뭐랄까?

무대와 관객에 대한 깊은 존경과 경외심이 담긴 인사였다.

범접할 수 없는 여신같은 신비감과 아우라에 숨이 막혔다.

 

헤다와 후반부에 심리대결을 펼치는 판사 역의 김정호의 연기도 압권이다.

서로 아닌 척 하면서 팽팽하게 당기는 그 긴강감이라니...

설정인지 아니면 실제 목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상대를 얕잡아보는 듯하면서 느물거리는 독특한 김정호의 목소리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표정도 너무 좋았고... 

이혜영뿐만 아니라 호산, 김수현, 강애심의 열연도 훌륭했다.

특히 이 모든 배우들의 목소리톤과 딕션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좋았다.

아! 그리고 신비감을 주던 곱추 하녀 임성미에게도 박수를...

(이층에서 고개만 내밀던 하녀때문에 극 중간중간 정말 많이 놀랐다.)

마지막 헤다의 자살 장면.

마치 헤다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확실하고 독보적인 보석이 된 것만 같다.

아주 극도로 아름다웠다노라 말한다면 내가 이상한걸까?

 

헤다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배우 이혜영의 헤다는 백만 배쯤 더 아름다웠다.

그 어떤 젊은 여배우도 이햬영의 젊음과 관능을 결코 따라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두루두루 끔찍한 작품이었고 꿈같은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

오래오래 황홀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