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8. 14. 08:18

너무 궁금해서 어제 퇴근길에 CGV에 들러 영화 <해무>를 봤다.

그것도 무료로 ^^

(지금 CGV에서 한국 영화를 보면 스템프를 찍어주는 이벤트를 하는데

 <군도>, <명량>, <해적> 세 편을 다 보게 되면 평일 1인 무료관람권이 생긴다.)

연극 <해무>를 워낙 인상깊게 관람해서

도대체 이 고집스럽고 괴기스러운 광기의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로 풀어낼지 궁금했다.

게다가 JYJ의 박유천이 뱃놈으로 나온다니...

솔직히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연극에서는 이 어리숙하고 숙박한 청년을 송새벽이 했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연극에서는 광식이라는 이름이었고 살짝 돌쇠스런 느낌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이름도 덜 촌스런 동식이고 연극보다는 덜 어리숙하더라.)

 

                        연극 <해무> 포스터                                       영화 <해무> 포스터

이 영화...

정말 잘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4편의 한국영화 중 최고다.

출연배우들 모두 미친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연기와 몰입을 보여준다.

김윤석도, 문성근도, 김상호도, 유승목도, 이희준도, 박유천도, 한예리도 없다.

단지 강선장과, 완호, 호영, 경구, 창욱, 동식, 홍매만 있을 뿐.

인간이란 생존과 맞닺드릴때 이렇게까지 미칠 수 있구나...

광기(狂氣)의 속도는 빠르고 거대했다.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들.

(그 시점이 전부 다르다)

그 찰나의 시간이 날 선 칼끝처럼 내 눈 속으로 가차없이 파고든다.

'격렬하다'는 봉준호의 표현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아니 아주 정확했다.

 

......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또는 역시 인간이라면 저렇게 할 수 밖에 없겠구나
이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우리의 폐부를 파고드는 상황들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애틋한 사랑은 피어난다.
놀라운 배우들과 아름다운 스토리가 합쳐진 이 한편의 격렬한 인간 드라마를
영화로 탄생시키고 싶었다 ......

 

솔직히 처음 이 영화에 박유천이 캐스팅됐을 때 경악했었다.

아이돌 연기자 중에 연기를 잘하는 축에 속하는건 인정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해무>에 다른 역할도 아니고 "동식"을 한다니!

'모 아니면 도'일거란 기대도 없이 이건 '그냥 도'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랬는데...그랬더랬는데...

나 지금 무지하니 반성하는 중이다.

이 녀석은 정말 연기자다.

특히 홍매 한예리와의 베드씬에서 보여준 그 눈빛은 절대 못잊을 것 같다.

무섭고, 두렵고 마음,

그리면서도 홍매를 지키겠다는 한 줄기 빛같은 간절함.

그걸 눈물 가득한 눈빛으로 다 표현해내더라.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연기자 박유천에게 항복했다.

이 녀석은...누가 뭐래도 배우다.

그것도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발전하고 성장할 배우.

(결국 나는 이 녀석의 다음 영화를 주목하기로 했다!)

 


인트로에서 영상과 음악이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서정적이라 깜짝 놀랐는데

일부러 그렇게 연출했다는걸 영화를 보면서 이해했다.

그리고 시작부터 내내 계속 귀에 꽃혔던 익숙한 느낌의 음악.

앤딩크레딧을 보니 역시나 "정재일"이 맞더라.

(이 영화에서 정재일이 만든 음악은 출연배우 못지 않은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전도연과 김고은은 뒤섞은듯한 묘한 아우라를 풍기는 홍매 한예리.

그러면서도 두 배우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순수하면서도 뭔가 비밀스러운 모습.

아무도 밟지 않은 처녀지의 새햐얀 눈도 떠오르고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불안함도 있다.

전작들이 있긴 하지만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연기도 아주 안정적이고 탄탄하다.

작고 가녀린 체구는 정적이면서도 묘한 신비로움까지 느껴진다.

개인적으론 은교의 김고은보다 한예리쪽에 더 큰 가능성을 두고 싶다.

아주 오랫만에 만난 집중력있는 신인 여배우의 탄생 ^^

개인적인 욕심이지만,

당분간은 그녀가 TV 드라마가 아닌 영화에만 출연했으면 좋겠다.

연기적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너무 일찍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녀라면 이런 내 마음,

이해해주지 않을까?

바다에서 만나는 짙은 안개를 해무(海霧)라 한다.
바다에서 바람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안개다.
파도에도 길이 있고
바람에도 길이 있으나
안개에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짙은 해무(海霧)는 어부들의 조각난 마음은 물론
바다와 하늘의 경계조차 허문다.
남는 것은 한없는 무기력과 끝을 알 수 없는 정체(停滯)와 고립(孤立).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한 공포뿐이다.
어둠이 아닌 빛 속에서 길을 잃는 것,
그것이 해무(海霧)가 주는 공포다.
어둠 속에선 불을 밝히면 되지만
빛 속에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