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8. 26. 08:21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Chiesa di Santa Maria Novella).

고현정 때문에 한때 이 성당의 부속 약국에서 파는 화장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여행자들은 성당은 스킵하고 바로 약국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그 유명한 고현정크림을 빨리, 더 많이 구입하기 위해서...

피렌체를 떠나야 하는 날,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꼼꼼하게 둘러보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만약 시간이 조금이라도 허락된다면 산타 크로체 성당까지 둘러보고 싶은 욕심에... 

SMN역에서 12시 38분에 출발하는 로마행 기차를 타려면

마지막 날까지도 발바닥이 불이 나게 움직여야만 한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 지하보도를 따라 나오면 만나게 되는 산타 마리아 성당의 뒷모습.

정면의 화려한 대리석 파사드와 대비되는 소박한 모습이 오히려 신선했다.

그리고 이른 아침의 텅 빈 광장.

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광장의 활기도 사랑하지만

텅 빈 풍요로 가득찬 이른 아침의 광장을 더 사랑한다.

새벽형 인간이라는게 무지 감사한 순간.

덕분에 스페인과 이탈리아 여행에서 나는 자주 광장의 주인이 됐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어쩌면 그런 기분에 흠뻑 빠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성당의 안뜰.

종탑과 키를 견주는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의 위용에 몸이 움츠려든다.

마치 두 손을 꼿꼿히 세우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수도사를 보는 느낌이다.

사이프러스를 신의 나무라 부르는 이유,

충분히 알겠다.

 

 

 

성당 안 작은 예배당 "카펠라".

처음 유럽의 성당을 들어갔을때 나는 카펠라의 구조에 당황했다.

주제단이 있긴 하지만 동시에 여러 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형태들이 낯설었다.

독립된 예배당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각각의 카펠라도 다 다르게 장식되어 있어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관조하는 입장이 됐다.

끈질긴 의문보다는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종교와 예술은 이해나 탐구의 영역은 아닌것 같다.

느낌으로써 그대로 온 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그래서 종교도 예술도 위대하고 위험하다.

 

 

카펠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성화와 성물 그리고 벽화들.

이 성당을 꼭 가고 싶었던 이유는

27세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 마사초(Masaccio)의 "삼위일체(La Triniti)" 때문이었다.

브루넬레스키가 고안한 일점 투시 원근법으로 그려진 최초의 작품.

"삼위일체"가 모셔진 카펠라 그 고요한 공간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그림 상단과 하단의 모든 선들이 십자가 아래 부분의 한 점으로 모여진다.

그림 속 인물들의 위치에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벽감 저 멀리 들어간 듯한 그림.

평면의 그림이 뿜어내는 입체감은 600여 년의 시간과 공간을 뚫고 신비함으로 빛이 났다.

그림의 하단 석관에 누워 있는 해골의 형상.

그 위에 적혀있는 글귀가 적혀있어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이런 내용이었다.

"나도 한때 그대와 같았노라.

 그대도 지금의 나와 같아지리라."

느닷없이 만난 잠언에 그대로 발걸음이 멈춰졌다.

메멘토 모리...

 

회랑에 도열되어 있는 벽화와 피렌체 가문의 문장들을 지나 스페인 예배당으로 향했다.

이곳은 안드레아 보나이후토가 피렌체의 구원과 저주를 주제로 그린 대형 프레스코화 "교회의 승리"가 있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선 순간 사방 벽을 가득 채운 프레스코화의 위용에 순간 움찔했다.

사진기 셔터 소리마저도 민망하게 느껴졌던 곳.

1350년에 그려졌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 선명한 색감과 세밀한 묘사에 기가 죽었다.

섣불리 들어갔다가 제대로 코가 납짝해져서 나온 곳.

 

미켈란젤로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보고 "나의 신부"라며 감탄했고

누군가는 이곳을 "천재들의 집합소"라고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엔 마사초의 "삼위일체"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스승인 르네상스의 거장 도메니코 키를란다요의 유명한 프레스코화 두 점이 있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과 "성 세례 요한의 일생)

그리고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의 첫무대가 시작되는 곳도 바로 이곳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이다.

중앙에 있는 십자가상은 1290년 조토의 작품이고,

곤디 예배당에 있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이다.

그리고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그린 보티첼리의 제단화까지

한 번 보고 지나치기에 아까운 르네상스 보물들이 가득하다.

특히 이곳의 프레스코화는 시간의 개념을 무력화시킨다.

과거의 시간부터 앞으로의 시간까지 모두.

시간만 허락된다면 하루종일 머물면서 그림과 프레스코화 속에

완전히 넋을 놓고 싶었던 곳.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