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2. 10. 17. 08:36

어제 점심시간에 근무처 근처의 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 초본과 인감증명서를 땠다.

별 생각없이 갔었는데 서류를 떼려고 오른쪽 엄지 손가락 지문인식을 했더니 자꾸 인식이 안되는 거다.

기계 오류인가 싶어서 다른 민원인을 먼저 처리하고 다시 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주민센터 직원은 난감해하면서 내 엄지손가락을 여기저기 인식기에 붙였다 뗐다는 반복했다.

그 사이 내 지문이 고된 육체노동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내가 뭘 잘못 한 것도 아닌데 오류가 반복될수록 점점 나도 민망해지고 뻘쭘해진다.

 

전자주민등록증이 만들어진게 2000년이니까 자그만치 13년 전이 되는거다.

나도 그때 우루루 만들었던 걸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13년 전 사진과 지금 내 모습이 많이 다르다는 거다.

동사무소(그때는 그렇게 불렀다) 컴퓨터에 붙은 카메라로 대충 사진을 찍은 탓도 있긴 하지만

13년이라면 적은 세월은 아니다.

주민센터 직원이 13년 전 사진과 지금의 얼굴을 여러번 반복해서 확인하더니 질문을 던진다.

"혹시 얼굴 좀 달라지셨어요?"

아마도 그 직원은 이렇게 묻고 싶은 걸 완곡하게 표현했을테다.

"혹시 성형하지 않으셨어요?"

내 처음 반응은,

"....... "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대답한다.

"아니요. 고치거나 그런거 없는데요"

급기야 양 옆에 앉아 있는 직원들을 불러 모은다.

"이 분(컴퓨터 속 사진)과 이 분(뻘쭘하게 서 있는 나)이 같은 사람처럼 보여요?"

옆에 분이 또 다시 물어온다.

"쌍커풀 수술 같은 거 안 하셨어요?"

쌍커풀 수술 같은 거???

소위 말하는 맨붕이 온다.

내 손에 있는 주민증을 쳐다본다

그러나 주민증의 사진은 바랠대로 바래서 희미한 형체만 남아있다.

도대체 저 직원들이 보고 있는 컴퓨터 안에 있는 내 모습이 어떻길래...

민망해하는 표정이 보였던지 직원은 한마디 덧붙인다.

"초본만 떼는 거면 그냥 드릴텐데 인감증명은 중요한 서류라서요...."

"아...네...." (나는 더욱 더 뻘쭘해진다.)

결국은 신용카드와 다른 개인정보로 본인이 확인돼서 무사히 인감증명과 초본을 떼기는 했지만,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 상황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요즘은 그 추세가 더 빨라졌다고 하지만

1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타인의 눈에 영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게 아무래도 난감했다.

뜻밖의 상황 덕분에 오랫만에 나는 "나"라는 객체에 대해 생각해봤다.

"변화"라는게 늘 나를 비켜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겉모습도 이렇게 다르다고 하는데 보여지지 않는 내면은 또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

묵묵하게 스스로를 들여다본다는 건,

달의 저편을 보는 것만큼 아득하고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겹다.

나의 무엇이, 얼마나, 왜, 어떻게, 언제 변화됐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육하원칙의 여섯 자리는 빈칸으로 남겨질 뿐이다.

 

그러나 이 "변화"가 끝이 아닐 거라는 건 안다.

내가 여전히 살아 있는 동안은

내가 감지하든 감지하지 못하든 여전히 나는 어떻게든 변할테다.

다만 바라는 건,

이제 더이상은  나이와 싸우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는 거다.

최근까지 "죽음"이란 단어는 내겐 일종의 공포였고 두려움이었다.

그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black out"이 되버렸다.

내가 더이상 없다는 거...

공포 보다 더 깊은 공포고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역시 책이 나에게 작은 답을 줬다.

건강하고 성실하게 늙어간 어르신들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아픔과도 친구가 되고 죽음과도 친구가 된다고...

때로는 천진하게 기다리기도 한다고...

그래서 나도 좀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나이먹음에 대한 공포와 싸우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살아내자는 걸로.

그날 하루를 온전히 방치하거나 내던져버리지 않기로.

사실은 10년, 20년은 커녕 1년이나 6개월 앞을 바라보는 것도 내겐 너무 힘겹다.

더 솔직히 말하면 하루를 채우는 것도 때로는 온 세상을 어깨어 짊어지는 것만큼 버거울 때도 있다.

하루하루만 보고 산다는 게 어쩌면 참 무책임하고 무계획적인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단 하루라도 목숨을 걸고 열심히 살았구나 자신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얼마나 될까?

김난도 교수는 인생시계라는 걸 말하면서 80년이란 평균수명을 하루로 봤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정오를 지나온 셈이다.

째깍이는 시계.

그러나 이제는 시계보는 걸 그만두려고 한다..

나는 오직 하루뿐인 사람이라는 것.

그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1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이만큼 달라졌다.

이게 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