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5. 8. 25. 08:41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꼭... 봄비 같더라

우산을 펼쳤다.

스페인 세고비아 버스터미널에서 급하게 구입한 와인색 접이식 우산.

그때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추억하기, 생각하기 딱 좋은 때.

요즘은 생각들이 자주 날 풍요롭게 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책과 음악.

요즘은 클래식에 빠져있어 하루종일 베토벤과 바하, 모자르트의 연주음악을 BGM처럼 틀어놓는다.

지금 곁에 흐르는 곡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이른 아침에 듣는 월광 소나타는 고요하게 황홀하다.

세상과의 고립을 원할 때,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거나 책을 펼쳐든다

그러면 그 즉시 이곳이 아닌 그곳에 속한다.

아주 간단하고 손쉬운 도피.

 

책을 한 권 주문했다.

우연히 알게 된 책인데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됐단다.

그래서 중고서점을 뒤졌다.

슈테판 볼만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이 책에는 13세기부터 21세기에 그려진 70여 점의 그림이 들어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여자다. 그리고 책이다.

책을 읽는 여자 혹은 책과 함께 있는 여자는 정물화처럼, 풍경화처럼, 추상화처럼 책 속에 담겨있다.

그림은 그 자체로 이미 꽉 채워져 있고

책의 표제어 그대로 당신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들어올 빈자리가 없다. 

책과 함께 있는 여자들의 얼굴은 이미 그 자체로 충만하고 자유롭다.

혹은 꿈을 꾸고 있던지...

 

제목이 주는 상징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위험하다니... 누가?

책 속의 여자들은 정답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도.

이 책이 또 다시 나를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갈 것 같다.

 

 

어제 아침까지 이어령의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읽었다.

무심코 손에 잡았는데 읽는 중간중간 참 많이 아팠다.

금쪽같은 아들을 돌연사로 잃은 딸, 그리고 그 딸을 암으로 잃은 아비.

글을 읽는 동안 폭풍같은 비탄이 휘몰아쳤다.

누군가 그러다라.

비탄은 시간을 바꿔놓는다고.

시간의 결을, 시간의 기능을, 시간의 공간을 바꿔놓는다고...

처음엔 이 비탄이 족쇄처럼 파고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 읽고 난 지금은 그 족쇄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많이 담담해졌다.

 

항상 멀리까지 가 본 사람을 부러워했는데

아마도 지금 내가  멀리까지 가고 있는 중인가보다.

아직까지는 이 길이 고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