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5. 26. 08:57

여행은, 특히 짧은 여행은 준비라는 말이 무색하다.

석가탄신일 황금연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통영"이라는 도시에 많은 사람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그냥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통여에 와있는 느낌.

통영의 도로는 서울의 도로보다 더 많이 막혔고

어디를 가든 길게 늘어선 사람들로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런데 그게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을까?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였다.

 

 

반포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면서도

통영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도

통영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도 살짝 설랬다.

하늘빛이... 딱 내 마음같이 변해 있었다.

아무 의심없이 예쁜 빛이다. 

잠깐이지만,

계획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지만,

이렇게 떠나올 수 있다는게 행복했고 평화로웠다.

(그런데 많고 많은 곳 중에 왜 통영이었을까?)

 

 

2박 3일 동안 내가 머물렀던 통영의 슬로비 게스트하우스.

6인실의 벙커 침대 2층은 의외로 한적하고 소담했다.

여기 2층에서 밤마다 신경숙의 <깊은 슬픔>을 읽었다.

게스트하우스 서가에 꽃혀있는 이 책을 본 순간 많이 망설였다.

그냥 가방에 있는 책을 읽을까 생각하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으니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 첫장을 읽었다.

그런데... 전혀 괜찮지 않더라.

하나도 변하지 않고 예전 그대로 자주 책장을 덮어야 했다.

이 책을 여전히 아프고 저리구나...

아침이면 책 속의 현실에서 빠져나오는게 버거워

그걸 밀쳐내듯 우걱우걱 게스트하우스에 주는 아침을 입 안에 털어넣었다.

조그만 주먹밥 5개와 국, 그리고 반찬 세 가지.

그러고보니 이게 결국 2박 3일 동안 내가 먹은 식사의 전부가 됐다.

떠나오면...

나는 그렇게 밥을, 배고픔을 잊는다.

눈과 발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위장을 삼겨버린다.

 

 

아침마다 진한 투샷의 카페라테를 들고

게스트하우스 앞에 있는 흔들그네를 찾았다.

그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는 아침풍경은 고요해서 예뻤다.

완벽하게 혼자였고,

물 위로 작은 은빛 물고기들이 튀어 오르는 소리가 선명했다.

그럴 때면 새들도 낮게 물 위를 날았고

여기저기 병풍같이 둘러선 산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일제히 새가 울었다.

그 엄청난 불협화음에 나도 모르게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그렇구나...

때로는 이렇게 불현듯 웃게도 되는구나.

 

그 느닷없는 웃음이 너무 좋아

혼자 또  베시시 웃었다.

 

아마도 졸음같은 하루가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까무륵...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