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09. 8. 13. 09:32
총 맞은 것처럼....
연인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14살 조카에게서 느끼고 있다.
정말 가슴 안으로 총알이 뚫고 지나간 것처럼
마음 한 복판이 휑하다.
그리고 가만가만 아리다.



퇴근하고 들어갔더니
일본으로 다시 떠난 조카의 편지들이
내 방 안에 가득하다.
병속의 캡슐 편지들, 냅킨 편지, 그리고 카드까지...
혼자 앉아
조그만 병 안
작은 알약을 하나 하나 열어본다.
다독...다독....
한 알 한 알 약을 먹는 것처럼 맘이 점점 따뜻해진다.

한국말은 말하고 읽는 건 잘하는데
아무래도 맞춤법이 어려운 모양이다.
일본에서 인터네셔날 스쿨을 다니는 조카는
이미 글로벌한 아이가 되었다.
오히려 영어, 일어가 훨씬 더 수월한 아이...
(외국인이 한글 배우기 어렵다고 하는 걸 이 녀석은 완전히 이해하고 동감한다.)



"이모는 고름보다 이쁘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앙상하게 나오는 내 모습에
"이모 꼭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 같다"고 했더니
골룸 (<-- 고름)보다 이쁘다고 정색했던 조카.
주위 사람들이 모두 웃었었다.
"정말 이모는 고름보다 이뻐요...."



아주 사소한 일에도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사는 조카
그리고 귀염성 있는 웃음과 포옹까지...
한동안 이 녀석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많이 힘들 것 같다.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이미 아득해진다.
그리고 이 녀석이 무지 보고싶다.
언제까지 이 이쁘고 사랑스런 조카에게
"채고" "체고"의 이모가 될 수 있을까?
걱정스런 마음도 어쩔 수 없다.



"의사는 아니지만 병원에서 일하는 채고에 이모"
내가 가져본 타이틀 중
단연 최고가 될 타이틀
아직은 조카에거 "채고"의 이모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집을 나서기전 급하게 냅킨에 남긴 또 다른 편지
우습게도 읽는 순간
그만 뭉클했다.
"서럽"도 열어보세요.....
그럼! 그럼! "서럽" 그것도 열어봐야지!





옷장 서랍을 열었더니 카드가 한장 들어있다.
누군가 한 이야기를 잘 못 듣고
9월 1일이 이모 생일이라고 생각하고 카드를 남겨 놓은 조카
(난 12월 7일인데..... 그것도 음력으로... ^^)



"셍일추카" 카드
이모가 좋아하는 꽃이 그려진 카드
(전등사에서 같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조카)
알까? 이 녀석
내 모든 날들을 이 녀석이 눈부신 "셍일"로 만들어줬다는 걸.
남들은 갖고 있지 않는 "셍일"을
본의아니게 이모에게 선사한 조카.

보고싶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그 생각 끝이 아리다.
총 맞은 것처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