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4. 13:26

예레바탄 지하 저수지.

처음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땐 이곳을 아침 일찍 찾아갔었다.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이 거의 없어 혼자 이곳을 독차지하며 다녔었다.

그러다 지하를 가득 채우던 내 발소리에 내가 섬득했고

솔직히 말하면 혼자서 메두사의 머리를 대면하는데 귀기(鬼氣)가 느껴저 눈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두번째 대면은,

다행이 늦은 오후라 관광객도 제법 많았다.

게다가 신기한 눈초리로 쫒아다니는 조카들 때문에

심지어 메두사의 머리도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가 않더라.

아이의 순수를 이길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는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이번 여행에서

정말 엄청난 무기를 양쪽에 대동하면서 다녔던거다.

이곳도 두번째 방문이라고 조금 익숙해졌다.

여행을 가기 전에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를 읽어산지 소설 속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지하궁전 물 속에 들어가 뭔가를 찾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

내가 로버트 랭던도 아니면서...

예레바탄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신비감과 오묘함은 2년의 시간이 흘러도 에전했다.

어두운 지하에 각지에서 가지고온 기둥들을 세우느라 노예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곳을 채우고 있는 물이사실은 죽음같은 노역을 견뎌낸 노예들의 눈물같아 바라보는게 뻐근하다.

공간이 주는 울림보다

역사가 남긴 흔적의 울림이 더 웅장하고 깊다.

정면으로 마주보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린다는 전설 속의 메두사의 머리가

그토록 오랜 세월 진흙 속에 묻혀있었던 이유도 사실은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차마 머리를 바르게 세우고 있을 수 없었던 메두사.

인간의 눈물은 신화의 힘을 뛰어 넘는다.

물에 잠긴 도시 "예레바탄"을 나오니

공교롭게도 이스탄불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이 흐려있었다.

초겨울같은 쌀쌀한 날씨.

계속 날씨가 이러면 어쩌나 걱정이 될만큼 차가운 바람에 당황했다.

꼭 메두사의 저주 같았다.

예레바탄에서는 도저히 힘을 쓸수 없어 낯선 이방인의 틈을 노렸던건지도...

이 도시에서 돌로 변해버린다면!\나는 기꺼이 그곳에 오래 오래 서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메두사여!

그대 노여움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길...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