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여행은 walking and walking이다.
그리고 그걸 실현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곳이 바로 터키다.
요즘 "꽃보다 누나" 덕분에 9월에 다녀온 turkey를 생생하게 떠올리는 중이다.
내가 머물렀던 곳, 내가 지나왔던 곳이 화면에 보일때마다
깊어지고 깊어지는 향수.
두번이나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화면 속 그들에게 불같은 질투를 할까?
여행이란 마을을 떠나 마을에 이르는 과정이라는데
나는 그곳에 마음까지 다 두고 와버린 모양이다.
마을과 마음이 겁도 없이 만나버려 지금 이렇게 끝없이 그리워하는 중이다.
미적거리다 아직 끝내지 못한 여행 리뷰가 이렇게 다행스러울수가...
톱카프 궁전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정궁으로 사용돼서인지 규모가 엄청나다.
3개의 문(황제의 문, 경의의 문, 행복의 문)과 4개의 정원 모두 볼거리들로 가득하지만
개인적으로 이곳은 4개의 정원을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걷는 활홀함에 빠지게 하는 곳이다.
키 큰 사이프러스 사이로 길게 뻗어있는 길을 걷는 것도
움직이는 햇빛의 명암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보스포러스 해협 위를 지나는 배에게 시선을 던지는 것도
사실은 내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오로지 발의 움직임에 따라 그대로 걸기만 해도 행복했던 곳.
2년 전 방문 때는 제1문인 "황제의 문" 위에 문구가 쓰여여있다는 걸 몰랐었다.
돌아와서도 한 참이 지난 후에 알게 됐는데
적여 있는 글은 "메흐메트 2세가 147년 이 궁전을 완공했다"는 뜻의 이슬람어란다.
이번엔 일부러 찾아봤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방인의 눈에는 글자인지 그림인지조차도 구분이 안된다.
(러시아어와 이슬람어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다!)
제 1문을 지나면 이레네 성당이 조금은 고적한 모습으로 햇빛 속에 서있다.
소피아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이곳이 정교외 역할을 담당했다는데
지금은 잊혀진 역사의 한 페이지처럼 고요히 서있다.
그런데 무심한듯 웅크린 모습이 그렇게 거룩하고 웅장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귈히네 공원에서 박물관을 지나서 톰카프 궁전으로 가게 되면
제2문으로 연결되버려 제1문과 아레네 성당은 그냥 지나치게 된다.
나오면서 봐도 되긴 한데 생각없이 다시 궐히네로 나가버리면 그냥 못보게 되니
아예 처음부터 조금 내려와서 제1문을 시작으로 들어가길 권한다.
그리고 다시 제1문으로 나오면서 대면하게 되는 아야소피아도 절대 놓치지 않았으면...
술탄아흐멧 광장과 반대방향이라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더라.
솔직히 고백하면 다른 건물인줄 착각했었다.
단지 바라보는 방향만 바뀐 것 뿐인데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까?
신비한 터키의 일면을 또 하나 목격했다.
하렘엔 일부러 조카와 동생만 들여보내고 혼자 남아 정원을 걸어다녔다.
2년 전 하렘의 기억을 떠올리면...
막혀있는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야만 했던 여인들의 갑갑함과 막막함이 내 눈까지도 시리게 했었다.
walking and walking.
눈 대신 발에 길을 물어선지 2년 전에 못봤던 곳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황금지붕의 아프탈리에와 보스포러스 해협에 눈이 멀어
제 4 정원에 sofa camii가 있다는 것도 몰랐었고
(게다가 남자들이 아잔시간에 맞춰 이곳에서 절을 하더라.)
외진 구석에 elephant park란 곳도 이제서야 봤다.
물론 지금 그곳에 꼬끼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오스만 제국때는 황실에서 꼬끼리를 길렀던 모양이다.
관상용이든, 이동수단이었든.
혼자 이곳을 발견하고 얼마나 좋아했던지!
톱카프 궁전에서 하렘이나 도자기방, 보석방은 줄을 서서라도 들어가지만
자미와 코끼리 정원을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제 4 정원은 술탄과 그의 가족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는데
역시나 구석구석 보물같은 장소들이 많이 숨어있었다.
그 흔적을 야금야금 쫒아가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이곳에서 나는 잠시 앨리스가 된 것 같았다.
톱카프 궁전에 떨어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톱카프의 앨리스는 그곳이 너무나 좋아서
결코 떠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결말이 이랬다면 더 좋았을텐데...
시름시름..
그리움이 점점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