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4. 4. 8. 08:12

세상에서 가장 안타깝고 아픈건,

호기심을 잃은 아이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눈을 보고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함에 서러워진다.

그 뒤로 성킁성큼 다가오는 절망.

지금 내가 딱 그런 그렇다.

죽었다 깨어나도 아이의 반짝이는 호기심을 갖을 수도 없고

별로 치열하지 않았던 20대로 굳이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요즘 나는...

너무 앞서 노년의 시간을 지나가는 것 같다.

일종의 역린(逆鱗)

오래 살아갈 자도

오래 살아온 자도 아닌 딱 애매한 나이.

움직임과 행동 사이에 그림자가 많다.

무엇과도, 누구와도 친숙해지고 싶지 않다.

친숙해지는 순간,

복.잡.해.진.다.

"관계"라는 단어는 물에서 거둬지는 그물망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찔하다.

풍경과 나 사이에 여백이 전혀 없으니

아무 것도 지나가지 못한다.

건조하다 못해 쩍쩍 갈라졌다.

바짝 마른 빨래라면 해가 지나간 냄새라도 날텐데...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 이정하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치고 싶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잎보다 먼저 꽃이 만발하는 목련처럼

사랑보다 먼저 아픔을 할게 했던,

현실이 갈라놓은 선 이쪽 저쪽에서

들킬세라 서둘러 자리를 비켜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고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지만

애당초 가까이 가지도 못했기에 잡을 수도 없었던,

외려 한 걸음 더 떨어져서 지켜보아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무슨 일을 하든간에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

눈을 감을수록 더욱 선명한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랑한다는말은 기어이 접어두고

가슴 저리게 환히 웃던, 잊을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빛은 그게 아니었던,

너무도 긴 그림자에 쓸쓸히 무너지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겠지만

내가 지칠 때까지 끊임없이 추억하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는 마지막이란 말을

절대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르다 부르다 끝내 눈물 떨구고야 말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정하의 이 시도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있습니다"와 "있었습니다"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과거라는 시간 속에서 꺼낸 기억은 이미 몇 번의 미화(美化)를 거듭하면서

최초의 모습과 달라졌다.

어쩌면"미화"의 진짜 뜻은 "왜곡"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강렬했고 간절했던 사람도

과거에서 현재로 건너올 수 없다.

"있었던"이 죽었다 깨어나도 "있는"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그건 이쪽과 저쪽만큼이나 닿을 수 없는 먼 거리다.

 

감정과 시간이

거리감으로 대체됐다.

멀다와 가깝다.

단지 그 두 가지 뿐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