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2. 6. 06:15

<The Vagina Monologues>

일시 : 2011.12.02. ~ 2012.02.10.
장소 :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출연 : 김여진, 정애연, 정영주, 이지하
원작 : 이브 엔슬러 (Eve Enster)
연출 : 이유리
프로듀서 : 이지나


1998년 뉴옥 초연 이후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는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어느새 한국 초연 11주년이 됐다.
2001년 초연 당시엔 파격적인 소재와 대사로 특정 단어를 블라인드로 처리해서 보도하고 일부 관객은 음란물과 다를 바 없다며 항의하기도 했단다.
지금 이런 이력을 들으면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만 초연될 당시엔 공연계에 꽤나 큰 이슈가 됐었다.
지금같이 음난물의 홍수 속에서야 이런 내용쯤은 그저 코웃음거리에 불과하겠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어 제목을 아무렇지 않게 발음하기엔 솔직히 난감함이 있다.

연극이 유명해지기 전에 책으로 먼저 읽었었다.
솔직히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연극으로는 어떨지 궁금했는데 11년이 지나서야 겨우 보게 됐다.
처음 공연했을 때는 출연하는 배우가 한 명이었다는데
지금은 세 명의 배우가 나온다.
(마치 공개방송 토크쇼같은 느낌이다.)
정애연, 정영주, 이지하.
배우 정애연이 다른 두 명의 출연자에 비하면 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상당히 좋았다.
딕션과 감정표현, 말의 톤과 속도도 잘 조정하는 것 같다.
20년 가까이 뮤지컬만 했다는 정영주가 선택한 첫번째 연극 작품!
역시나 작품의 액센트 역할을 여기서도 여지없이 해낸다.
(정영주가 없었다면 다분히 밋밋하고 심각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극단적인 감정 연기가 필요한 부분은 배테랑 연극배우 이지하가 꼼꼼히 채워준다.



신비한 우주, 보지 - 산부인과 의사가 들려주는 이야기
음모 - 30~40대 중산층 여성의 이야기
그가 그것을 보고싶어했기 때문에 - 20대 커리어우먼과 그녀를 사랑한 남자친구 이야기
작은 짬지 - 동성애자 이야기
홍수 -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70대 할머니 이야기
보지 워크샾 - 처음으로 경이로운 오르가즘을 경험한 40대 여성 이야기
긴 머리 남자 -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아내 이야기
말하라 -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My angry Vagina

9개의 모놀로그 중 개인적으론 이지하 부분이 제일 맘에 들었다.
이 사람 참 연기 잘하는구나 다시 한 번 절감하면서...
핀 조명 하나를 받으면서 
덤덤하게 책을 읽어가다가
점점 격양된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솔직히 나는 조금 더 적나라하고 솔직한 작품이길 기대했다.
11년의 내공이 쌓인 작품이니 조금 더 그랬어도 돼지 않았을까?
의도적으로 연출된 몇몇 장면들은 기름과 물처럼 이질감이 느껴진다.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 분명한데 절대 안 짰다고 우기는 그런 구성들.
그리고 작품의 클라이막스에 해당되는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말하라"는 
너무 교육적(?)이라 오히려 불편했다.
너는 왜 이런 진실을 다 잊고 사니!
너 참 나쁜 사람이구나! 
꼭 손가락질하면서 책망하는 것 같아서...
(당신들도 그렇게 살았쟎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기대가 너무 컸었나?
어쩌면 이날 느닷없이 펑펑 내린 흰 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창가에 앉아서 한참을 바라봤다.
순간 땅으로 떨어지는 하얀 눈이 글처럼 읽혔다.
또박또박, 그 행간의 여백들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기형도가 떠올랐다.
그걸로 어쩌면 모든 건 이미 끝난 건지도 모르겠다.
눈 속에서 나는 나만의 모놀로그를 읊고 있었다.
총.총.총.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3. 11. 06:02


<거미여인의 키스>

일시 : 2011.02.11. ~ 2011.04.24.
장소 :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 1관
출연 : 정성화, 박은태 (몰리나) 
         최재웅, 김승대 (발렌틴)
연출 : 이지나
원작 : 마누엘 푸익


"무대가 좋다"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 <거미여인의 키스>가 드디어 무대위에 올랐다.
지난해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영웅>으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정성화의 연극 데뷔작이기도 하다.
정성화가 게이 역을?
미안하지만 솔직히 비쥬얼상으로는 좀 많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반면 몰리나 역에 더블 캐스팅된 박은태 역시도 연극 데뷔작이긴한데 그의 게이 역은 괜찮아 보인다.
가녀리고 야리야리한 이미지가 강한 편이라서...

정성화의 몰리나?
다른 역할도 아니고 민족의 영웅 "안중근"이었던 사람이 아닌가?
물론 드라마 "개인의 취향"을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런척을 하는거고 이 작품에서 몰리나는 스스로를 완전히 여자라고 생각하는 캐릭터다.
어쩌면 정성화를 캐스팅하면서 이런 반전효과를 일부러 노렸던 건 아닐까?,
거기다기 <헤드윅>과 <쓰릴미>로 동성애 연기 전문배우(?)라고 할 수 있는 최재웅과 페어를 이룬다?
일단 관객을 흡입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충분히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조합은 성공적인 티켓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무대가 좋다" 최고의 흥행작이자 최대의 수입작이 되지 않을까?
다른 시리즈에 비하면 공연기간도 짧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성화 몰리나와 최재웅 발렌틴.
개인적으로 최재웅의 발렌틴에 기대가 많이 됐다.
그의 대사톤과 표정을 나는 심하게 좋아하기에...
특히 작품 속에서 그가 "아니!"라는 대사를 하게되면 그 느낌이 참 묘하다.
단순한 이 단어가 이상하게도 그대로 가슴에 꽃힌다.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반정부혁명가 발렌틴의 대사에도 "아니!" 라는 단어가 적쟎게 등장한다.
솔직히 그걸 누가 알아채기나 하겠는가 말이다만,
아무튼 나는 그가 "아니!" 라는 대사를 할 때가 참 좋다.
(사람들이 그러겠다. 참 이상한 사람이야.... )



공연을 보기 전에 일부러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 원작을 읽었다.
뒷부분의 보고서 부분 약간을 제외하고는 100% 대사로 구성된 작품이다.
원작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솔직히 이 연극이 원작을 따라오기에는 확실히 부족하다.
연극은 "사랑"에 촛점이 맞춰진 것 같은데
원작은 "이해"의 부분에 더 촛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빌라 데보토 감옥 D동 7호실.
동일한 두 곳을 나는 지금 약간은 다른 두 곳으로 이해하는 중이다.
원작을 읽으면서 나 역시도 묘하게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공유했다.
따지고보면 그들은 언제나 위험한 상황에 소위 던져진 사람들인데...
"결코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이제야 알겠어"
연그에서는 없었지만 원작에서 내 눈을 사로잡았던 대사다.
두 주인공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대사라고 생각했었는데...
(연극 대사에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건가???)




몰리나가 끝없이 이야기하는 영화들!
원작에서는 4편의 영화가 등장하고 연극에서는 "표범여인" 영화만 나온다.
이 많은 영화를 어떻게 다 말할까 걱정했는데 역시나 기우였다.
만약에 원작대로 했다면 아마도 산만하지 않았을까 싶다.
최재웅의 연기는...
엔딩부분이 너무 감상적이었던 걸 제외하면 역시나 괜찮았다.
개인적으로 엔딩부분은 참 맘에 안 든다.
뭐랄까. 좀 천박하다는 느낌이랄까?
그림자로 보여지는 두 사람의 성행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발렌틴에 의해 너무 자세하게 설명되는 몰리나의 최후가...
원작에서는 발렌틴이 몰리나의 죽음을 알았을까?
나는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발렌틴에겐 몰리나가 살아있는 거미여인으로 남겨지지 않았을까?
그게 몰리나의 소원이기도 했으니까...
"난 너와 함께 남아 있고 싶어. 지금 내 단 한 가지 소원은 너와 함께 있는 거야"



정성화의 몰리나는 너무 과하게 코믹했던 것 같다.
그가 머리에 두건을 쓰고 나와 털퍼덕 바닥에 주저앉으면
찜질방에 퍼져있는 아줌마 같은 느낌이 들어 자꾸 웃음이 났다.
나름대로 역할에 몰입하고 있고 감정표현도 좋은데 어쩐지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그래서 박은태의 몰리나가 지금 상당히 궁금해졌다.
(4월 3일에 박은태, 김승태 페어를 예매했다.)
개인적으로 박은태, 최재웅이 만나면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
(이 둘의 조합이 있긴 한데 보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자신을 완벽하게 여자라고 생각하는 몰리나를
볼록하고 후덕한 정성화의 모습으로 보는 건 일종의 비극이었다.
외형적인 걸 말하는 게 맞긴 한데 좀 다른 의미로...
아름답고 매력적은 여성의 모습이 아닌 소위 아줌마 몸매의 몰리나.
그래서 정성화 몰리나의 코믹한 모습이 더 비극적으로 보여졌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에 대해서 아직 생각이 다 정리된 건 아니라서
참 두서없는 글이 되고 말았다. (*^^*)

 

참!
무대의 느낌은 참 좋더라.
전형적인 감옥의 모습을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사실 상당히 괜찮더라.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2. 11. 06:22
한때 기형도의 시를 몽땅 외우리라 작정한 때가 있었다.
그때는 나도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인 시절이었고
(그렇다고 지금이 뭐 다채로운 색채를 띄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아무도 나를 들춰보지 않았던 때였을지도 모르겠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그의 시집이 너덜거릴 때까지 읽으면서
마지막 시작노트까지 깡그리 외우자 작정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시작노트는 달달 외우기도 했었다.
그는 한번이라도 생각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가 29의 나이에 신화가 되리라는 것을...
기형도의 시는 참혹할만큼 아름답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누구라도 신병(神病)을 앓게 된다.
그는 우리에게 신내림의 형벌을 남긴채 차가운 삼류극장 그 싸늘한 자리에서 세상과 이별했다.
그가 세간의 말처럼 동성애자였는지 아니면 평소처럼 밤거리를 헤매다 발을 쉬기 위해 잠시 들른 곳이
하필 그곳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죽음 자체도 이미 하나의 원형(原形)이 되버린지 오래다.
한창 기형도에 빠져있을 때 성지순례하듯 종로의 낙원상가 뒤 그 극장을 배회했던 적도 많았다.
생각했었다.
그렇게 축축하고 가엾고 힘들고 아름다운 시를 썼으니 몸이 남아나지 않았을거라고...



"기형도의 삶과 문학"이라는 부재가 달린 이 책은
2009년 3월 기형도의 사망 20주기에 맞춰 발간된 책이다.
성석제, 이광호, 박해현 등 그와 특별한 인연이었던 친구 혹은 후배 문인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헌정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쓸쓸하게 아파서 도대체 이 책을 다 읽을수나 있는건지 의심스러웠다.
겨우겨우 다 읽고 났을때도 또 다시 오랫동안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원래 계획은 바로 이어서 그의 <입 속의 검은 잎>을 다시 읽자는 마음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시집은 3월 그의 22주기쯤에나 시도해야 할 것 같다.
내리 앓을 자신이 너무 없어서...
솔직히 그 시집의 책장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자신이 도저히 없다.



제 1 부,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를 읽는 시간
제 2 부, 기억할 만한 지나침 - 기형도와의 만남
제 3 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기형도 다시 읽기 


제일 읽기가 수월한 부분은 2부였다.
그를 알고 있던 지인들이 추억처럼 들춰낸 이야기.
편안하지만 아프게 읽은 부분.
기형도가 좋은 음성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도
그래서 노래를 잘 불렀었다는 것도
(실제로 동료 문인의 결혼식 축가도 불렀단다)
결벽증에 가까운 글쓰기 습관을 가졌었다는 것도
술을 거의 못마셨었다는 것도...
(이제 그는 모두 과거시제가 됐다)
김훈, 이문재, 임우기, 성석제가 쓴 글 속에는 기형도에 대한 벗으로써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그를 실제로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기형도를 생각하면 아득한데
이들은 얼마나 아득했을까?
이 글을 쓰면서 그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안스럽다.
기형도에 대한 학문적인 평론을 모은 3부는,
상당히 전문적이고 심도있는 글이라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기형도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봤을 글들이다.
그래서 한 곳에 모여있는 이 글들이 나는 다행스럽고 기쁘다.
특히 신화비평에 탁월한 남진우의 글은 다시 읽어도 새롭고 흥미롭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다 읽고 한참 방황(?)하고 있던 때에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고은(32)의 타계소식을 들었다.
요즘 세상에 설마 사람이 아사(餓死) 할 수도 있을까 생각했는데
어쨌든 그녀는 믿기지 않게도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그녀가 문틈에 남겼다는 쪽지...
“창피하지만 며칠 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과 김치가 있다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달라......”
만약 이 쪽지가 일찍 발견됐다면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 있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랬을 수도,
아니면 그렇치 않았을 수도...

작가의 궁핍은...
여전히 맹수처럼 잔인하고
오랜 지병처럼 서럽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2. 27. 14:02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스포츠에 이렇게 온 국민이 몰입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때는 그래도 경기장 안에 뛰는 선수가 많았었는데
20살 작은 요정 김연아는
그 여리고 작은 몸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자 싱글 쇼트 세게 신기록으로 1위 (78.50) - 음악 : 007 시리즈 테마곡
여자 싱글 프리 세게 신기록으로 1위(150.06) - 음악 : 조지 거쉰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
여자 종합 싱글 세게 신기록으로 금에달(228.56)


 

보고 있으면 그냥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생각밖에는 안 든다.
기품있고 격조높은...
신성한 아름다움마저도 느껴지는 모습.
김연아의 피겨는 역동적이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순수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이 오히려 역동과 다이나믹의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압도해버린다.
20살의 나이가 만들어내는 감성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
이렇게 아름다운 괴물이
이렇게 완벽하게 순수한 괴물이 있었던가?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그동안 그녀가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대변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대중들의 관심과 기대.
그게 어찌 그녀인들 두렵고 걱정스럽지 않았을까.
이 작은 여제는 그 모든 순간들을 오로지 차가운 빙판 위에서 견뎌고
그리고 결국은 이겨냈다.
그 승리가 나는 더 아름다워 눈시울이 매워졌다.

 
 
 NBC 해설위원이며 1984년 금메달리스트였던 스캇 헤밀턴이 말했단다.
"그녀의 음악이 시작하는 순간이 하이라이트고
그리고 끝나는 순간도 마찬가지"라고...
아사다 마오의 쇼트가 크린으로 끝이 나고
바로 뒤 이어 이어진 김연아의 쇼트.
스캇은 김연아의 표정을 보고 그 당당함이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저, 나 이제 나가는데 넌 이제 2위가 될거야..."
과거의 금메달리스트 스캇이 읽어낸 김연아의 자신감과 당당함에
내가 다 기분이 밝아진다.

 

2002년 히딩크 만큼이나 유명해를 치루게 된 김연아의 코치 브라이언 오서(Brian Orser)
그는 케나다에서 현역 시절 "미스터 트리플 악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단다.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점쳐졌지만 두번이나 은메달에 머물러야만 했다.
급기야 1988년 동계올림픽 때는 미국의 브라이언 보이타노에게 0.01점이 뒤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단다.
(그리고 이 기록은 역대 최소 점수차로 기록되고 있다)
올림픽의 금메달을 그는 이 이쁘고 성실한 제자를 통해 이룬 셈이다.
사실 그는 처음에 김연아 선수의 코치를 제안받고는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 2005년 김연아가 캐나다로 전지 훈련을 떠났을 때
그녀의 가능성을 보고 코치직을 수락했단다.
브리이언 오서 코치의 첫 제자가 된 
무관의 여제 "김연아"
그 두 사람은 매 경기 시작 전과 후에 찡한 모습을 보여준다.
경기 시작 전에 혹시 김연아 선수가 마음의 동요가 생길까봐
파란 눈으로 고개를 조금씩 끄덕이며 그녀를 평온하게 바라보는 오서 코치.
소위 아빠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을 보면 나조차도 왠지 모를 따뜻함과 위로가 전달된다.
그리고 경기 뒤,
두 사람이 나누는 격려와 감사, 그리고 응원의 포옹까지도...



김연아 선수 스스로도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찰떡 궁합"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두 사람의 "찰떡 궁합"은 
그랑프리 시리즈 5개 대회 연속 우승과 그랑프리 파이널 2년 연속 우승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 동계올림픽까지...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던 오서 코치는
커밍 아웃으로 인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단다.
김연아 선수도, 오서 고치도
참 대단하고 아름다운 인연이다.
이들이 만든 감동 드라마가
내게는 아주 오랫동안 앵콜될 것 같다.
더불어 이들에게 진심을 담은 기립박수를 보낸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2. 20. 05:56
 <이갈리아의 딸들> -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이갈리아의 딸들


기발하고 재미있는 역발상(?)의  소설도 있다는 걸 아시나요?

오늘 소개할 책이 그런 책 중 한 권입니다.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1941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출생. 오랫동안 교사 생활을 했다고 하네요. 1970년대 초반부터는 여성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오슬로 여성의 집>과 <매맞는 아내들을 위한 쉼터>에서 일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쓴 또 다른 책들은 <전세계의 동성애자여, 일어나라>, <그래, 이젠 그만>, <성 크로와에게 바치는 노래>, <페리호를 타고> 등이 있답니다(작가의 성향이 조금 이해되시겠죠?) 이 책은 모국어로 출판됐을 때 보다 영어로 번역되어 나왔을 때 오히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네요.

유럽에선 연극으로 장기 공연되기도 했다고 하고요...

<이갈리아의 딸들>

이 책은 성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나라에 대한 이야깁니다.

먼저 “이갈리아”라는 단어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드릴께요.

이 책에서 나라의 이름으로 나오는 “이갈리아”는 평등주의를 뜻하는 “egalitarian” 단어와 이상국을 뜻하는 “utopia” 두 단어가 합성된 말로 “평등한 유토피아”란 뜻입니다.

좀 느낌이 오시나요? 

이 나라에서는 여성을 움(wom)으로 남성은 맨움(manwom)으로 부르고, 아내는 여전히 “wife”, 남편은 “housebound”라고 부릅니다.

여성들은 자신에게 정자를 제공한 아이 아버지에게 '부성보호'를 지명할 수 있고(쉽게 말하면 남자 가정부라는 뜻이죠 ^^), 맨움들은 부성보호를 받기 위해 다달이 행정관서에 가서 피임약을 먹고 사인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이 나라가 지정한 여자에게만 정자를 제공하겠다는 뭐 그런 서약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회를 이끌어가고 정치를 하고, 경제 주체가 되는 사람들이 wom이고 manwom은 그 여자가 벌어오는 돈으로 가정을 꾸미고, 미용실을 가서 본인 자신을 가꾸고, 자녀를 양육하는 뭐 대략 그런 나라입니다.

여성들은 당당히 윗옷을 벗어 가슴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다니고 대신 남성들이 여성처럼 “페호”라는 코르셋 같은 보호기를 착용해야 하는 나라. 댄스파티에서 수줍게 여성의 춤 신청을 받기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나라. 혹 여성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전전긍긍하는 남자들이 사는 나라...

그런 나라가 바로 “이갈리아‘라는 곳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생각하면 코믹한 책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심각하다 못해 공포감마저도 느껴지는 내용입니다.

성의 역할의 기존의 개념과 정확히 정반대인 나라.

남자들이 여성들에게 강간당하고,

여자들에게 구타당한 멍든 얼굴을 진한 화장으로 감추는 남자들이 사는 곳.

정자가 수치의 근원이고 월경은 힘의 원천인 사회.

어찌됐든 내용적인 면에서 이 책은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책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저는 페미니즘 소설로 치부하기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 스스로도 이 책이 조금은 지나치다고 말하고 있지만, 어쨌든 굉장히 재미있고 신선하고. 동시에 생각거리를 만들어 주는 내용임에는 분명합니다.

여성과 남성이 아닌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죠.

갑자기 가수 김건모가 부른 “핑게”라는 가사의 일부가 생각납니다.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인간과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

“역지사지”

이런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바야흐로 "갈등" 구조가 표면화되는 거죠.

어떤 형태이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사이엔 갈등이 생기게 되면 그 구조 자체를 파괴하고자 시도하는 움직임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어떤 특정 개인이든, 상황이든요.

이곳에도 그런 사람이 존재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자아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남자, “페트로니우스”가 바로 그 도화선에 해당하는 인물이죠.

그에게 아버지는 멘토의 역할을 합니다.

강간당한 아들에게(아들을 강간한 그 여자는 임신을 하게 되고 페트로니우스에게 부성보호를 명령하죠) 아비는 말합니다.

"그에게서 부성보호를 받으면 안 된다. 페트로니우스! 삼십년 간, 아니면 네가 버틸 수 있는 한, 하루 스물 네 시간 꼬박, 처음부터 끝까지 고달프고 힘든 일이라구. 그리고 만일 세세한 부분까지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스물 네 시간 내내 일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뿐이야. 페트로니우스! 만일 내가 너라면, 지금...만일 내 입장이라면...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거야. 가정과 아이에 대한 꿈은 집어치우고 내 자신을 찾고 싶어...”


드디어 맨움들에 의한  맨움해방주의가 싹뜹니다.

맨움도 움이 가진 것과 똑같은 권리, 권력, 기회를 가져야 하며, 평등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황이 변해야 한다는 정치적 신념. 이것에 근거한 사회운동을 부르짖게 되죠.

이제 그들의 외침이 순탄치 않으리란 건 예상이 되시겠죠?

언제나 힘든 시작엔 필사적인 억압이 있었으니까요. 어느 시대든, 어떤 상황이든, 그리고 누가 어떻게 시작을 했든...


그렇다면 이 책,

결국 여성해방을 꿈꾸는 내용인건가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양성해방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양성존중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네요.

여성이기에, 남성이기에 보호받아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인간이기에, 사람이기에 하나의 귀중한 객체로 보호받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사실.

더 이상 누군가가 누군가의 인생에 얹혀사는 존재가 아닌, 그래서 팔자 고치는 삶을 꿈꾸는 게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살아가야만 나에 대한 진정한 자존감을 갖게 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쓰고 보니 참 교훈적이네요....^^)

이 책을 읽고 여자란 무엇인가? 혹은 남자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을 해 봅니다.

"혁명"이라는 말...

지금 우리가 꿈꾸고 희망하는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우리에게 <혁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