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6. 7. 05:42




솔직히 이건 좀 된장할 일이긴 했지만
성스러운(?) 지방선거일에 오전 근무를 해야했다.
그 와중에 "못살겠다! 갈아보자"며 6시에 집에서 나와
새벽잠 없으신 동네 어르신들과 나란히 2열 종대로 서서 
부지런한 젊은이 소리를 들으며 성스러운(?) 투표권을 행사했다.
아마도 하늘이 감동하셨나보다.
내 선거 인생 최초로 심히 은혜롭고도 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이런 게 정말 기적이지! ^^)
선거날 오전 근무라는 씁쓸함을 달래기 위해 예매한 <몬테크리스토>
그것도 30%라는 몹시도 은혜로운 할인율까지...
사실 5월 4일 엄기준 몬테크리스토로 인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상처를 받았기에
나름의 정화(淨化)가 간절히 필요하기도 했었다.
류정한 몬테크리스토, 차지연 메르세데스, 조휘 몬데고 라는 캐스팅이 
망설임을 현실화 시키기에 충분하기도 했고...



류.정.한.
이 사람에 대해 이제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이 사람의 무대 위 삶이 시작되면,
나는 그대로 반푼이가 되어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게 된다.
(솔직히 이 순간만큼은 누가 뭐래도 그가 빛이요, 길이요, 생명이다...)
첫공연을 봤을 때 공연장 때문에 나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그의 몬테크리스토 때문에 꾹꾹 참아낼 수 있었다.
(결코 그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나는 유니버설아트센터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찾지 않았을 것이다)
한 달 보름이 지난 지금,
류정한의 몬테크리스토는 끔찍하고 잔인스럽게 사람을 이리저리 쥐고 흔들어댔다.
결국 나는 또 다시 이 사람에게 완벽하게 놀아나고 말았다.
"이런 악마같은 배우, 세상에 또 있을까?"
특히나 1막 마지막 노래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을 부를 때 느꼈던 전율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생생하고 끔찍스러울 뿐이다
류몬테가 그러라고 말한다면
몬데고도, 당글라스도, 빌포트도 단칼에 내가 다 처리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은 야쿠자스런 마음까지 생길 판이다.
(너희 셋, 다 주~~~거~~~~써~~~!) 



"류정한 미친 거 아냐?"
함께 관람한 사람이 혀를 내두르며 쏟아낸 감탄사.
그 순간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게 인간 맞아?"
(원초적 표현에 민망하긴 하지만 솔직히 내 심정이 딱 그랬다. 암! 인간일리가 없지! 절대로!
 또 모르지, 등딱지를 열면 에너자이저한 밧데리가 우수수 쏟아질지도...)
선거의 뒷끝이라 그랬겠지만
이 사람이 대통령에 출마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찍어야지... 이런 생각까지도 했으니 제대로 홀리긴 한 모양이다.
"문화 대통령 류정한"
그래도 일단 눈은 짝짝이 아니니까 뽀대는 제법 난다. 
(뭐 그 정도면 비쥬얼도 상당히 건전하고...) 
명확한 딕션과 감정의 변화를 그대로 표현하는 그의 목소리는 역시나 황홀경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비록 먼 곳에서 본다고 해도 목소리만으로도 표정까지 읽어내는 게 가능하다.
들음으로써 볼 수도 있게 만드는 배우 류정한의 놀라운 능력!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중독처럼 찾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때는 그가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강력하고 끔찍한 마약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극심한 금단현상을 겪고 있는 몹쓸 약쟁이들은 상당히, 꽤, 무지, 엄청나게 많다.
어쨌든 그는 무대 위에서 그 날 역시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충분히 찬란했고
그리고 충분히 빛이 났다.
(그래, 그는 확실히 난 놈이다...)



차지연의 메르세데스.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자였노라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솔로 곡은 참 아름답게 부르더라.
(단지 온 몸을 흐느적 거리며 부르는 게 영 어색해서...)
단테스와의 듀엣 곡들은 차지연의 목소리가 좀 강해서인지
옥주현 메르세데스처럼 간절하고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대사 톤이 이상하게 약간 신파조로 느껴지기도...
개인적으로는 옥주현 메르세데스가 이 뮤지컬에는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결론을...
대신 차지연이 "지킬 & 하이드"의 루시를 하면 정말 딱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차지연 메르세데스가 너무 자신만만한 여장부처럼 보여서였을까?
그녀는 몬테크리스토도 몬데고도 결국은 선택하지 않고
혼자 꿋꿋하게 잘 살아낼 여자처럼 보였다. (원작처럼...)
<영웅> 이후로 오랫만에 무대에서 본 조휘의 모습 역시도 반가웠다.
조휘의 몬데고는 참 처량하고 절절하더라.
그는 메르세데스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구하는 여린 남자였고
그 절망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거칠고 강한 사람으로 보여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최민철 몬데고에게서 느끼지 못한 "연민"을
나는 조휘의 몬데고에서 느꼈다.



2층 발코니석에서의 관람은 나에게 잊지 못할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선사했지만
공연 자체는 전체적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무대 스크린과 조명에 감탄케하는 의외의 성과까지 있었다.
확실히 1층 앞좌석에서 보는 스크린과 조명은
전체적인 조망이 가능한 2층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평가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니버설아트센터 발코니석 관람은 
절대로 절대로 다시 감행하고 싶지는 않다.
(허리 제대로 작살난다...)
 


프랑크 와일드혼의 작품도 그렇지만 배우 류정한의 무대는 내겐 그렇다.
꼭 뒷심을 발휘하게 만든다.
프랑크 와일드 혼이 만드는 작품들은 일단 드라마틱하면서도 격정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OST도 "must listen" 필수 아이템으로 등극하고...
거기에 괴물스럽게 완벽히 배역을 진화시키는 "류정한"이라는 배우가 가세한다면?
이겐 정말 끝장인거다.
솔직히 노래를 너무, 제대로, 끔찍히 아릅답게 부른다.
작품 속 인물에 대한 해석도 너무 탁월하고,
회가 거듭될수록 인물과 배우가 갖는 일체감이라는 게 진화 혹은 성숙의 단계 그 이상이다.

포인트를 똑똑 찍어서 말하는 대사 톤과 호흡 조절은 가히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한 번도 그가 무대 위에서 헉헉대며 숨차 하는 모습을 본 적도, 들은 적도,  느껴본 적도 없습니다.
과감한 액션 히어로가 되어 과거엔 하지 않았던 엄청난 몸쓰기를 보여주는 현재까지도 말이다.
(진심으로 묻고 싶다. 숨을 쉬긴 쉬느냐고...)
부러우면 지는 건데...
차라리 부러운 걸로 끝나면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부러움이 파산으로 직결되는 게 이 몹쓸 약쟁이들의 현실인지라...
내가 당글라스도 아닌데
류몬테는 자꾸 나를 파산을 선물한다.
그리고 이건 정말이지 너무나
"공정치 못한 일" 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8. 06:00
 <위저드 베이커리> -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오늘은 질문으로 시작해볼까요?

당신에겐 세상 모든 아니 특정한 몇 명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완벽한 혹은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데로 쓸만한 은신처가 있나요?

없다면, 이런 상황이 온다면 당신은 어디로 뛰어가 숨어야 할까요?

또 다른 질문 하나!

다음과 같은 빵을 판매하는 제과점이 있습니다.


악마의 시나몬 쿠키 : 반드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먹이세요. 평균 2시간 동안 뇌신경세포를 교란시켜 그가 무슨 일을 해도 실수를 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포만 상태라면 괄약근을 조절하지 못하고 옷에 실례를 할 수도 있답니다. 공복 상태에서는 지속적인 구역질을 일으킬 것입니다.

메이킹 피스 건포도 스콘 : 사과하고 싶은 사람에게 주세요. 100% 화해합니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마음보다 어쩔 수 없이 사과한다는 마음이 앞서면 효력을 내지 못할 것입니다.

도플갱어 피낭씨에 : 주문에 따라 이걸 먹고 잠들면 다음 날 내가 가기 싫었던 학교나 회사에 또 하나의 내가 대신 가줍니다. 맘 편히 집에 있거나 땡땡이를 치세요. 단 정말로 도플갱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보면 절대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둘을 동시에 발견하거나 둘의 눈이 마주치면 둘 중 하나가 영원히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겠어요?

체인 월넛 프레첼 :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먹이세요. 체질에 따라 유효 시간이 다르지만 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끌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사용함으로써 맺어진 인연은 함부로 끊을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하시고, 상대가 정말로 자기에게 맞는 사람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다음 선택해주세요. 한번 묶인 사슬을 억지로 끊으려 하다가는 그것이 자신의 목을 감아 죄어버린다는 걸 잊지 마세요.

노 땡큐 샤브레 쇼꼴라 : 정말로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고백 받았다면? 이걸 대답으로 주세요. 한마디로 ‘먹고 떨어질 겁니다.’

마지팬 부두인형 : 싫어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부릴 수 있는 인형. (단, 그 사람의 신체 일부를 확보해서 부두인형 안에 넣어야 함)


이것 말고도 많은 제품(?)이 있지만 혹시 구미가 당기는 게 있나요?

더 정직하게 말하면 이 제품 중 하나를 꼭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전 개인적으로 ③번 “도플갱어 피낭씨에”가 상당히 탐이 납니다...)


혹시 작년에 출판됐던 우리의 완소남 <완득이>를 기억하십니까?

제1회 창비소년문학상 수상작이었죠.

오늘 소개하는 <위저드 베이커리>란 이 수상한 제과점이 제2회 창비소년문학상 수상작 되시겠습니다.

제 정신수준이 딱 청소년 수준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두 책 모두 다 재미있습니다.

그렇지만 재미 하나만으로 이야기하기엔 무지 많이 섭섭한 책이죠.

작가 구병모(여자랍니다... 그것도 정유경이라는 상당히 여성스런 이름을 가진...)는 이 책을 보고 “나쁜 성장소설”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 뜻을 그런데로 공감합니다.

이 책은....

<헤리포터 시리즈>와 <헨델과 그레텔>, 그리고 <파랑새>가 잘 섞여 있는 느낌입니다.

뭐 짜깁기 그런 건 아니구요, 독창적이면서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죠. 그래서 좀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16살 소년이 있습니다.

6살 때 친어머니로부터 청량리역에 버려진 기억이 있는 소년은 새어머니(배선생)가 데려온 여동생 무희에게 지목을 당합니다.

자신을 성추행한 사람이 오빠라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몰린 소년이 쫒아오는 배선생을 피해 도망친 곳이 이 수상한 제과점 “위저드 베이커리”의 깊고 큰 오븐 안입니다.

그런데 이 베이커리, 어쩐지 좀 수상하네요.

24시간 영업을 하는 “똘기” 충만한 주인 제빵사는 소년에게 빵에 넣은 이상한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급기야 낮에는 종업원이었다가 밤이 되면 파랑새로 돌아오는 정체불명의 소녀까지...

한마디로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의 세계죠.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더 황당해지는 건,

이걸 그대로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됩니까????)

심지어 읽을수록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이게 현실이라는 걸 정말 아니까요, 현실 속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분명하니까요.


오븐 속에 숨어 있던 소년은 자신의 시간을 통과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는 오븐 속을 나와 집으로 향하죠.

배선생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자신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부두인형과 점장이 준 자신이 원하는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 리와인더 쿠키를 들고서요.

늘 그렇듯 아무도 반겨주지 않은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목격하게 됩니다.

동생 무희를 성추행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결말 부분은 예전에 개그맨 이휘재가 나와서 “그래 결정했어!”를 외치며 두 가지 다른 선택의 결과를 보여줬던 <인생극장> 같아 맘에 살짝 안 들긴 하지만 그 결말 또한 작가의 의도였다고 하네요.

“타임 리와인더”를 먹었을 경우와, 안 먹었을 경우.


“타임 리와인더!”

그 과자를 먹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로 돌아갔을 때,

어쩌면 똑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다시 똑같은 결정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기억이 함께 리와인더 되는 것은 아니기에...)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처음인 것 같은데 어쩐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든다면,

그런 데자뷰 현상을 지금 느끼고 있다면,

어쩌면 당신도 “타임 리와인더”의 복용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작가는 현실은 결코 판타지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 이런 미스터리 코믹 호러 판타지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사는 게 힘들어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 있다 해도 지금을 살아내야 하는 게 삶이라고요.

“단절”을 꿈꾼다면 자신의 삶을 완전히 소유하는 것 역시 힘들어 질 수 있기에 피하고 싶은 순간조차도 최선을 대해 살라는 뜻이겠죠.

자신의 현실을 “판타지”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요.

혹 모르죠.

자신만의 확실한 오븐이 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지도요.

그런데 좀 걱정스러운 건,

그 안에 너무 오래 있으면 정상적인 삶 또한 불가능하겠죠?

그리고 너무 노릇노릇 구워질지도요.... ^^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으면서 옛날에 읽었던 책의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청춘을 완벽히 소유하기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 흘러야 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23. 21:51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페이퍼북)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 매혹적인 작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좀머씨 이야기>, <콘트라베이스>, <비둘기>, <깊이에의 강요>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작품 모두 하나같이 다 문제작이긴 하지만 <향수>라는 책을 읽었을 때의 그 강렬함이라니...

작가가 만든 “신세계”의 미궁에 제대로 빠져버렸다고 한다면 이해가 되실까요?

이 책,

사연도 참 많습니다.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이 책은,

1991년 12월 국내 초판 됐고(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 파란 표지의 그 오래된 초판, 바로 그 거랍니다) 1995년, 2000년 두 차례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영화 개봉과 더불어 다시 신판이 출판되면서 폭발적인 판매 기록을 보였죠. 초스테디셀러에 등극한 이 소설은 지금까지 30쇄 이상 재판됐다고 합니다.

(영화 예술의 힘! 작년에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베스트셀러 2위에 올려놓는 걸 보면서 또 다시 절감했죠)

그런데 이 사실도 아세요?

이 책이 “19금 이야기”의 선정 도서가 됐었다는 사실도요.

책의 후반부쯤에 나오는 사형집행장에서의 집단 난교 부분과 마지막 충격적인 결말들이 이런 영예(?)를 안겨준 셈이죠.

그것도 출판된 지 한참이 지난 후에 이런 에피소드가 생긴 걸 보면, 책은 정말 살아 있다는 환상을 여전히 품게 합니다.

“환상”이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요,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작가에 대한 극단적인 환상을 심어주는 사람이기도 하죠.

전세계의 집요한 매스컴의 추적을 거의 완벽하게 피하면서 숨어있는 사람.

대인공포가 있다는 소문, 동성연애자라는 소문, 그리고 흉한 장애가 있다는 소문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사람들과의 만남도 싫어해 문학상도 거절하고 인터뷰도 거절하며 철저하고 은둔하고 있는 작가!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한 관리 전체를 형에게 맡긴 채 현재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 잠금장치까지 하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동료 작가도 없고 심지어 자신의 신상에 대해 발설한 사람이면 친구와 부모를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절연해 버릴 정도라고 하니 오래된 사진 한 장으로만 알려진 그를 세상에 불러낸다는 건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네요.

그러나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오두막에서 지금 <향수>보다 더 매혹적인 작품에 몰두하고 있을 거라고...

(사실 그의 새로운 책의 출판을 전 아주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책 <향수>의 줄거리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거예요.

질긴 생명력으로 생선 내장 더미 위, 아무 냄새도 갖지 못하고 버려지듯 태어난 아기 그르누이.

그의 삶의 목적, 그건 사람의 “냄새”를 내 몸에 갖겠다는 강렬한 탐욕이었습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탐욕”이라는 의미는 그러나 그에겐 적절치 않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품은 “탐욕”은 소유에 대한 집착보다 오히려 생명에 대한 무심한듯하지만 강렬한 집착에 가깝기 때문이죠.

“생명”이라는 거,

“향기”를 품지 않는 생명이란 죽음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르누이는 그의 살인 행각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가장 가까운 동반자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하죠.

그를 피해 달아나는 향기가 그에게 무사히 채집되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라는 마음.

향기를 채집하는 그의 섬세한 행동 하나 하나가 성스럽고 예술적으로 느껴지는 그 순간,

이제 그의 옆에 제 2의 그르누이의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25명의 향기가 채집되기까지 저 역시도 그의 동조자가 되어 가만가만 숨을 죽입니다.

어쩌면 결말 혹은 끝장을 보고 싶다는 저의 또 다른 탐욕인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향기에 취해 그를 탐하는 무리에 둘러싸이게 되는 마지막 결말.

악마적인 황홀경에 빠져 그의 향기를 먹어치우는 무리 속에 나 자신이 없다고 과연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함께 한 사람들은 이미 무언의 합의를 끝낸 듯 합니다.

그건 “구원”의 행위였다고......

그의 향은 우리를 구원했고 그리고 우리는 그를 각자의 몸 안에 조각내 피난시킴으로 구원을 해줬다고......

이제 남겨진 사람을 우리는 누구라고 불러야 할까요???.......


서번트 신드롬 (savant syndrome)!

지능은 보통사람들보다 떨어지지만 음악연주나 달력계산, 암기, 암산 등 어떤 특별한 부분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프랑스어로 이 말은 배우지 않고(바보 idiot) 터득한 기술(석학 savant)이라는 뜻이죠. 특히 발달장애나 자폐증 같은 뇌기능 장애를 가진 이들이 그 장애와 대조되는 천재성이나 뛰어난 재능을 보일 때 이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 석학증후군 이란 말을 하게 됩니다.

영화 <레인 맨>에서 톰 크루즈의 형으로 나왔던 더스틴 호프만이 바로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자폐인을 연기했었죠. 

말하자면,

그르누이도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흔히 천재성은 그 “광기”로 인해 인생 전체를 “파괴”하기도 하죠.

“Utopia”가 아닌 “Destopia”의 탄생.

철저하게 파괴함으로써 이상향을 만들겠다는 “Destopia”

<향수>

그 위험한 Destopia의 세계.

그 세계가 섬뜩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매혹적이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네요.


만약, 

당신에게 아직 향기가 있다면....

조심하길 진심으로 당부합니다.

조각난 그르누이가 혹 당신을 탐할 수도 있으니.....


                                                      <유일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사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