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11. 8. 08:37

<번지점프를 하다>

일시 : 2013.09.27. ~ 2013.11.17.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대본 : 이문원

작사 : 박천휴

작곡 : 월 애런슨 (Will Aronson)

무대 : 여신동

연출 : 이재준

출연 : 강필석, 성두섭 (인우) / 전미도, 김지현 (태희)

        이재균, 윤소호 (현빈), 임기홍 (대근), 진상현 (기석)

        박란주 (해주),  이지호 (재일) 외

제작 : (주)뮤지컬해븐, CJE&M

 

<번지점프를 하다> 세번째 관람.

이번 관람을 자체 막공이라고 작정했다.

계속 보게 되면 정말이지 감당히 안 될 것 같다.

공연이 중반 이후를 넘어가서인지 배우들의 감성이 더 많이 깊어졌다.

특히나 강필석 인우는 이 작품을 하면서 심정적으로 참 많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스럽다.

잊으려고 했던 태희의 기억이, 아니 태희라는 존재 자체가

인우의 몸 속에서 사태지듯 들어와 점유해버렸으니...

머리는 잊어도 심장이 기억하는 사랑이 있다.

인우와 태희의 사랑이 그렇다.

그걸 다시 감지하는 순간,

시간은 정지되버리고 그들은 시간의 바깥에서 숨을 쉬게 된다.

사랑은...

질기고 독한 몽유다.

 

이날 가장 인상깊었던 배우는 이재균 현빈.

드디어 이재균이 윤소호 현빈을 완벽하게 뒤집었다.

두번째 관람때 나는 이재균 현빈이 흘린 실없고 바보스러운 웃음이 참 싫었었다.

그런데 이날 보면서 알았다.

이재균 현빈이 인우의 웃음을 기억해서 보여준 거였다는 걸...

확실히 두 사람의 웃음은 묘하게 닮아있었다.

학교에서 쫒겨난 인우를 향해 독선을 뱉어내며 울먹이는 현빈을 보면서 나는 또 봐버렸다.

그 대사의 끝을 꽉 붙잡고 있는 태희의 마음을...

그러니까 라이터의 불이 켜지기 전부터 태희가 현빈 속에 깨어나 있었던 거다.

그래서 현빈은 그 장면에서 그렇게 아플 수밖에 없었던 거였고.

그걸 감지했든 감지하지 못했든...  

스물 다섯의 배우에겐 녹녹치 않은 장면이었을텐데 보면서 솔직히 놀랐다.

드디어 만나는 무대 위 하얀 선처럼

이재균의 모든 감각도 현빈과 태희 모두에게 연결됐다.

 

이 작품의 무대와 조명, 음악은

정말이지 너무나 좋다.

여관방 장면에서 간판을 깜박임을 표현한 조명도 너무 애뜻했고

왼편은 태희를 오른편은 인우를 떠올리게 만든 전체적인 무대도 아련했다.

연강홀의 좁은 무대를 복층으로 만들어 시간과 공간을 확대한 것도 현명했고

현과 건반 중심의 음악도 아주 감성적이고 따뜻했다.

확실히 이 작품은,

기교가 아닌 진심과 감성으로 빈틈없이 채워진 작품이다.

연출도, 무대도, 조명도, 음악도, 배우들도...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정말 그런 것 같다.

사랑하지 않으면 멸종될 것 같은 그런 느낌.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단다.

자신의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과

미움을 간직하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는 사람.

이 작품이 내게 계속 말을 건다.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그대도 된다면,

인우의 마지막 나레이션으로 이 물음에 답하련다.

내 선택은 이러하다고...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거라고 당신은 말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0. 12. 07:57

<번지점프를 하다>

일시 : 2013.09.27. ~ 2013.11.17.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대본 : 이문원

작사 : 박천휴

작곡 : 월 애런슨 (Will Aronson)

무대 : 여신동

연출 : 이재준

출연 : 강필석, 성두섭 (인우) / 전미도, 김지현 (태희)

        이재균, 윤소호 (현빈), 임기홍 (대근), 진상현 (기석)

        박란주 (해주),  이지호 (재일) 외

제작 : (주)뮤지컬해븐, CJE&M

 

다시 본 <번지점프를 하다>의 무대는 정말 훌륭했다.

여신동 무대감독은 어떻게 이런 무대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프롤로그 왈츠에 맞춰 천천히 돌아가는 무대와 점점 위로 올라가던 상들리에는 마치 시간의 테옆이 아주 조심스럽게 과거의 한때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시간처럼 공간을 완전히 가로지르는 기다란 칠판.

그 칠판 위에 백묵으로 하얀 선을 그리며 지나가는 인우.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도, 가슴속에 담겨진 오랜 인연의 시작도 이제부터다.

길고 낡은 파이프를 관통한 망치 소리처럼 둔탁하고 끈질기게 귓가를 파고 드는 기억 속의 그날.

단단한 걸음인 척 과거를 지나서 앞으로 걸어가는 인우.

찾을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을 봉인한채 살아가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고통.

그 고통을 우리는 과연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인우의 울음을 나는 이해한다.

때론 어른도 아이처럼 울어야만 살 수 있다는 걸...

 

성두섭의 인우는,

과거의 모습보다 현재의 모습이 훨씬 더 좋았다.

1막에서는 배우의 감정이 너무 깊어 오히려 그걸 밖으로 꺼내놓지 못했다.

그게 음정까지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래도 2막에서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 깊은 감성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목소리톤도 좋았고...

(그래도 인우는 역시 강필석이다.)

재미있었던 건 성두섭 인우는 전미도 태희보다는 이재균 현빈과의 장면이 더 애뜻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그게 나의 전부란 걸" 을 부르면서

두 손을 잡고 천천히 뒤돌아서는 장면은 실루엣도 참 예쁘고 여운도 깊었다.

이재균 현빈은 전체적으로 좀 가볍고 실없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인우의 바보스런 웃음을 닮은 현빈의 웃음은,

기억 속 인우의 모습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의도였을까?

개인적으로 너무 현빈이 가벼워서 "내 잘못이 아니야?"도 받아들이기가 좀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난 현빈은 윤소호 쪽이 더 괜찮은 것 같다.

귀염성 있는 학생같은 느낌도 들고...

 

시간과 인물, 상황과 대사를 교차시키는 마술같은 연출은 다시 봐도 감탄하게 한다.

라이터가 커지면서 깨어나는 현빈(태희)의 기억.

무대 위에 나란히 서있는 태희와 현빈.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보여주는 교통사고 장면에서

현빈, 태희 - 현빈 - 태희 - 현빈으로 크로스되는 그 순간은

어떤 영화기법으로도, 어떤 CG 기술로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 미안! 내가 너무 늦게 왔지?

- 아니, 늦게라도 와줘서 고마워.

- 약속했잖아!

이 장면에서의 대사,

가슴이 울컥한다.

길고 긴 파이프에 위로 또 다시 둔탁한 망치가 떨어진다.

이 파동을 당분간 견뎌야 한다...


 

현과 피아노가 중심이 되는 연주는

감성적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떠올리게 한다.

이 가을에 감성에 젖기 좋은 곡들로 가득하다.

특히 태희의 "혹시 들은 적 있니?는

전미도의 음성으로 듣는 것도 아주 좋고

연주에 조금 더 집중해서 들는 것도 아주 좋다.

피아노로 조용히 시작되다가 하나씩 악기가 추가되고

허밍 부분에서는 묵직한 베이스의 현이 치고 올라온다.

이 한 곡에 고요한 클라이칵스가 다 들어있다.

평온한 떨림.

이 곡의 느낌이 딱 이랬다.

 

<번지점프를 하다>

피해야 하는 작품임에 확실하지만,

아마도 한 번 쯤은 더 보게 될 것 같다.

가을이니까...

스스로 좀 견뎌내라고 말하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0. 10. 09:39

<번지점프를 하다>

일시 : 2013.09.27. ~ 2013.11.17.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대본 : 이문원

작사 : 박천휴

작곡 : 월 애런슨 (Will Aronson)

무대 : 여신동

연출 : 이재준

출연 : 강필석, 성두섭 (인우) / 전미도, 김지현 (태희)

        이재균, 윤소호 (현빈), 임기홍 (대근), 진상현 (기석)

        박란주 (해주),  이지호 (재일) 외

제작 : (주)뮤지컬해븐, CJE&M

 

이 작품을 관람할 땐 스스로에게 경고한다.

절대로 깊이 빠져서는 안된다고!

누군가의 애뜻함과 절실함은 다른 누군가에겐 무례한 기억이 될 수 있으니까.

인우와 태희의 17년.

왜 하필이면 17년인가!

이 작품은 나를 데자뷰와 싸우게 한다.

그래서 피해야만 한다.

빠지지 않게... 공감하지 않게... 인정하지 않게...

빠지게 되면 나는,

위험해진다.

지금도 충분히 위험한데!

 

작년 초연때보다 무대가 많이 정리됐고 2층까지 아기자기하게 더 정성을 들였다.

무대를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추억을 떠올리게 할 만큼 그렇게.

초연때는 파스텔톤의 조명이 은은함과 함께 여백의 미를 느끼게 했다면

이번 여신동이 만든 무대는 추억을 쫒는 "시간여행" 을 체감케한다.

주렁주렁 매달려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던 1막 초반의 우산과 2층에 동동 떠있던 2막 침대 장면이 없어진 건 아주 현명했다.

장면 전환도 초연보다 훨씬 좋았고

2막에서 태희와 현빈이 서로 교차되는 순간의 연출은 정말 압권이다.

이재준의 감각적인 연출이 그야말로 빛을 발하는 순간!

영화속 대사가 더 많이 들어간 것도 아주 좋았고...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인우의 독백 전에 인우와 태희의 나누는 대화가 초연때는 빠졌었는데

지금은 다행히 제위치를 찾아서 그것도 좋았다.

(이 대화를 듣고 있으면 이은주의 개구진 목소리까지도 겹쳐서 떠오른다. 참 좋아했던 여배우였는데...) 

대부분 재연공연보다 초연공연이 더 좋았었는데

(그래서 초연으로 올라왔을 때 꼭 챙겨보는 편이다) 

이 작품은 초연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좋아졌다.

산만했던 부분들도 과감하게 삭제했고

태희와 현빈의 연결고리 표현은 초연때보다 훨신 더 잘 살려냈다.

개인적으로 초연을 보면서는 영화거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영화보다 뮤지컬이 훨씬 좋다.

윌 애런슨의 곡도, 박천휴의 가사도 여전히 좋았고

강필석의 섬세한 인우, 전미도의 사랑스런 태희도 참 좋았다.

특히 강필석은 배우로서 이 작품과 정말 사랑에 빠져버렸버렸다는게 그대로 보여진다.

(이병헌의 인우보다 강필석의 인우가 나는 훨씬 더 좋다. 비교가 불가할만큼...)

강필석, 전미도, 윤소호.

초연배우들의 연기는 아련했고 더 짙고 깊어졌다.

프롤로그 왈츠만으로도

가슴을 이미 울컥하게 만드는

아주 아름답고, 그리고 아주 위험한 작품.

 

커튼콜이 끝나고 마술처럼 나타난 오케스트라.

무대 안쪽 사이드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2층 객석보다 훨씬 더 높은 왼쪽편에서 정말 생각치도 못했던 오케스트라가 꿈처럼 아주 조용히 나타났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러면 안되는데 

이 작품은 나를 자꾸 끌어당긴다.

위험해지기전에 피해야 하는데...

 

인우가 내 귀에 대고 말한다.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야!"

정말일까?

정말 그런걸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0. 24. 08:03

<벚꽃동산>

일시 : 20.12.10.12. ~ 2012.10.28.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작가 : 안톤 체홉 (Anton Pavlovich Chekhov)

연출 : 오경택

출연 : 이석준, 박호산 (로파힌) / 우현주 (라네프스카야)

        김태훈 (가예프) / 정수영 (바랴) / 전미도 (아냐)

        정동환, 최용민, 정승길, 권지숙, 이재인, 신용진, 박채원

주최 : 극단 맨씨어터

 

안톤체흡의 작품들은,

솔직히 어렵고 힘들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톤 체홉의 작품이 올라오면 꼭 챙겨보는 이유는 너무나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서다.

이야기와 인물들 속에 빠져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황홀해진다.

맨씨어터는 작년에도 지금까지와 약간 다르게 해석한 안톤 체흡의 <갈매기>를 올렸었다.

보고 싶었던 작품인데  예매를 해놓고도 보지 못해서 이번 <벚꽃동산>은 놓치지 말자 생각했었다.

안톤 체홉의 마지막 작품 <벚꽃동산>

안톤 체홉의 작품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작품을 체홉은 스스로 "코미디"라고 정의했고,

1904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을 올린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는 "비극"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이 작품을 화사하고 찬란한 비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원작을 읽고 봤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원작을 꼭 챙겨보는 편인데 이상하게 안톤 체홉의 작품은 무대뽀 정신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출연배우들!

도대체 이 대단한 배우들을 어떻게 이 한 작품에 전부 섭외할 수 있었을까?

분명히 이 작품엔 뭔가가 확실히 있으리란 기대감.

솔직히 출연진에 기가 팍 죽었었다.

 

20세기 초 러시아.

농노제 폐지로 시작된 러시아의 변혁은 러시아의 모든 것들을 빠른 속도로 바꿔놨다.

과거 부유한 영주의 자손이었던 라네프스카야(우현주)와 가예프(김태훈)의 벚꽃동산도

급기야 경매에 넘어갈 처지가 되버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직 평온하다.

그런데 어쩌지!

난 이 오누이의 평온과 순수가 너무나 눈물겹게 아름답고 예뻤다.

벚꽃동산을 별장지로 임대해서 돈을 벌라고 권유하는 로파힌(박호산).

두 오누이의 환상을 현실에 끌어오기 위해 끝없고 집요한 설득을 거듭하지만

오누이는 너무나 태평해서 심지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마지 꽃비 내리는 따사로운 봄날 벚꽃동산에 피크닉이라도 와있는 느낌이다.

오히려 절박하고 간절한 건 로파힌이다.

오누이와 로파힌의 대비되는 모습이 연극을 보는 내내 참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주변의 사람들.

뭔가 깊숙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그냥 지나가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 잠깐 시선을 주고 곧 제 갈 길 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오직 로파힌만이 절박할 뿐이다.

실제로 이 "벚꽃동산"을 지키고 싶은 사람은 사실 로파힌 한 사람 뿐인 것 같다.

이 아름다움 벚꽃동산의 벚꽃들이 잘려나가든,

품위없는 별장지가 되어 사람들의 소란 속에 묻혀버리든 상관없다.

어쨌든 지켜낼 수는 있으니까.

 

박호산의 로파힌은 참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이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석준은 로파힌을 어떤 인물로 해석했을지 궁금하다.)

사실은 작품 속 인물 들 중에서

벚꽃동산을 제일 지키고 싶어한 사람, 너무나 벚꽃동산을 원했던 사람은 로파힌이 아니었을까?

변화를 보는 시선에 옳고 그름을 정의하긴 어렵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지금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잊혀진고 없어진다.

그리고 인간은 그 잊혀진 것들을 또 서럽고 아프게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정말 바보같이...

  

벚꽃동산에 있던 모든 사람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 피르스(정동환)의 독백,

그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그리고 별 비중없어 보이는 피브스에 왜 정동환이라는 배우가 필요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툭툭 베이지는 벚나무와 생의 마지막 안식을 향해 걸어가는 피르스의 발자욱 소리.

 "떠나셨어! 날 잊어버리셨어!

  괜찮아!, 그래!

  ...... 산 것 같지도 않은 게 한평생이 다갔군.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아무것도. 에이... 이런 바보"

피르스의 마지막 대사가 주는 무게감은

누워있는 피르스 위로 관뚜껑처럼 닫히는 무대 장치와 함께 가슴 속에 턱 얹힌다.

희극과 비극을 오고 간 <벚꽃동산>을 결국

이렇게 깊은 무게잠과 존재감으로 맘 속 깊이 파고 들었다.

파괴와 변화 뒤엔 그 폐허를 딛고 새로운 희망과 미래가 태어난다.

어쩌면 벚꽃동산에 춤추던 그 무수한 꽃잎들은 일종의 팡파레였을지도 모르겠다.

눈물나게 아름답고 서럽게 찬란한 결말을 보면서 나는 눈이 부셨다.

 

무대는 아름다웠고

배우들의 딕션은 정확했으며,

연기는 진중하고 섬세했다.

작품과 무대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느껴졌다.

(정말 진심으로 멋있었다. 이 배우들...)

커틑콜에서 정동환 배우를 향해 출연 배우 모두가 박수치며 존경의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뭉클할만큼 감동적이었다. 

이 작품...

아마도 오래동안 간직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5. 9. 05:51

주지훈의 하차로 위기에 빠진 <닥터 지바고>를 티켓 파워있는 소문난 잔치로 만든 건

누가 뭐래도 순전히 배우 조승우의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지훈의 하차는 OD 신춘수의 입장에서는 악재가 호재로 변한 셈이다.

그리고 확실히 배우 조승우의 유리 지바고는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가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의 한계는 과연 있을까?

나는 지금 인물에 대한 완벽 빙의에 감탄하는 게 아니다.

솔직히 조승우가 무대에 서면 작품 속 배역보다 그 배역을 연기하는 조승우가 훨씬 더 빛난다.

그렇다면 이 정체모를 괴물을 보는 듯한 기묘한 느낌은 도대체 뭘까?

조승우라는 배우는 기본적으로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 배역에 대한 애정을 점점 심화시키고 진보시키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키워낼 줄 아는 배우란 의미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생각해도 <닥터 지바고>란 작품은 절대 재미있는 작품은 아니다.

눈에 띄는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샤롯데라는 대극장 대관이 민망할 만큼 무대는 황량하고 조악하다.

뭐 시대상황이 격변하는 세계대전이고보면 무대가 화려해도 그게 더 이상하겠지만

무대 제작비는 저렴쪽에 가까우리라 짐작된다.

(좀 큰 레고블록 기차와 뜬금없는 스크린 영상은 역시나 다시 봐도 재앙이다) 

솔직히 배우 조승우의 연기와 집중도는

이 모든 재앙을 재앙보다 무시무시한 감각으로 가차없이 날려버린다.

아마도 OD 신춘수 대표는 침몰해서 유령선이 될 뻔한 이 작품을 기사회생시킨 조승우에게

고액의 개런티외에 감사의 보상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지난번 관람한 홍광호, 전미도 페어의 공연과는 확연히 다른 감동이 있다.

특히 노래와 연기가 불안했던 전미도조차도 훨씬 깊어지고 편안해졌다.

조승우의 서포트였을까?

조승우는 예전만큼 노래에 임펙트가 살아있는 건 아니지만 역시 명불허전의 명성은 여전하다.

그래도 가끔은 추억처럼 떠오른다.

<지킬 앤 하이드> 초연 때 조승우의 그 당당하고 패기넘치던 노래를...

이제 그때같은 노래실력을 듣기는 좀처럼 어렵지만 그래도 그의 노래는 여전히 아름답고

그의 연기는 극도의 세심함과 섬세함으로 숨이 막힌다.

여전히 순간순간 그는 보는 사람을 미칠듯이 숨죽이게 했다.

괴물같은 그가 데뷔13년만에 드디어 드라마 진출은 한단다.

사극의 거장 이병훈 PD의 신작인 <마의(馬醫)>로.

(개인적으로 이병훈 PD의 사극을 무지 좋아한다)

꽤 오래된 이야기긴 하지만 조승우가 한 인터뷰에서 그랬다.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환경은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구조인 것 같다고...

그런 그가 드라마를 한단다.

그만큼 작품과 연출가에 대한 믿음이 컸겠지만 우려와 걱정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조승우와 드라마라니...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얼마전 <러브어페어>로 드라마에 입성(?)한 배우 류정한이 떠오른다.

미안한 말이지만 류정한은 드라마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류정한이 내가 제일 좋아하고 믿는 뮤지컬 배우라고 하더라도 아닌 건 역시 아니다.

애써 찾아보지는 않았지만우연히  케이블 재방송을 봤는데 그의 연기는 너무 심하게 어색했고 단조로웠다.

(잠깐동안, 그것도 혼자 보면서도 손발 제대로 오그라졌다)

차라리 그가 시트콤 연기를 통해 과감하게 망가지기라도 했다면 기꺼이 박수을 보냈으리라.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다.

누가 뭐래도 그의 첫 데뷔작은 초보연기자의 어설픈 불륜연기일 뿐이다.

그는 20여년간의 뮤지컬을 했다는 자존감과 고집을 품위있게 계속 유지했어야 했다.

한동안 이걸 만회하려면 20년 들인 공보다 더 노력해야 할텐데 걱정이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이 드라마가 공영방송에서 방영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새로운 분야의 도전이라고 자위하기엔 참 막막한 드라마고 어이없는 캐릭터고 답이 없는 연기다.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조승우에게도 드라마 출연 결정은 신중하고 위험한 도전이다.

그러나 배우 조승우는 드라마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할테고

세간의 이목을 단 한 번만에 집중시킬게 분명하다.

역시 현명하고 영리하다.

배우 조승우의 작품 선택은!

(뮤지컬 <닥터 지바고> 이야기하다 삼천포로 제대로 빠졌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는 예전보다 훨씬 더 몰입되어있다.

특히 강필석, 서영주, 최현주는 역시나 깊고 확실하다.

예전에는 지루하고 겉도는 느낌도 받았는데 이번 관람은 재관람을 생각케할만큼 좋았다.

그래도 불필요한 스크린 영상 남발과

멀티맨 수준에 가깝게  한 배우를 1인 다역으로 겸치게 출연시킨 건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출현하는 배우가 적은 것도 아닌데

(일부러 세봤다. 25명이 넘더라)

배우 한 명에게 너무 많은 배역이 맡겨져 실제보다 출연배우가 훨씬 더 적게 느껴지는 기현상을 경험케하니

이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그래서 전체 스케일도 초라하게 느껴진다.

가득이나 무대로 빈약한데...

홍광호 지바고를 보고 난 후에

조승우라는 배우 하나로 작품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의심했는데

배우 한 명이 작품을 이렇게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다.

그러나 이건 결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참 비참한 발언이긴 하지만 오직 조승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승우가 괴물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4주 연습 뒤 바로 투입!

어거 정말 극도의 공포와 맞먹는 무시무시한 이력이아닐 수 없다.

 

문득 궁금해졌다.

조승우!

도대체 정체가 뭐지?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2. 27. 06:27
군을 제대한 주지훈의 복귀작으로 한때 화제가 됐던 뮤지컬이다.
기자회견장에서 주지훈은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해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본인의 강한 의지와 남다른 각오와는 다르게 갑작스런 성대 결절로 결국 하차하는 비운(?)을 겪었다.
덕분에 오디컴퍼니는 초비상사태에 직면했다.
공연 개막일은 점점 다가오고
홍광호 원톱으로 작품을 끌고 가기엔 티켓파워도 불안하고 공연기간도 너무 길다.
일단 몇몇 공연을 취소하면서 홍광호 단독으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오로지 신춘수이기에 가능한 일어었겠지만
주지훈의 하차를 조승우라는 핵폭탄으로 땜방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신춘수가 새 작품을 올리면서 조승우에게 프로포즈를 안 했을리 없었겠지만 조승우는 첫 프로포즈에서 <닥터 지바고> 대본을 읽고 전혀 끌리지 않은 작품이었다고 했다.
주지훈 하차가 결정되고 다시 프로포즈가 왔을 때는 심지어 기분이 상했노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결국 출연을 결정했다.
홍광호가 핸드폰 문자로 보낸 성경 구절 하나 때문에...
나도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종교의 힘은, 아니 기독교의 힘은!
너무 무섭다.
(오디는 당분간 고마운 홍광호에게 잘해야 겠다!)
 




나의 첫 <닥터 지바고> 캐스팅은 홍광호, 전미도였다.
"미친 가창력"이란 찬사를 듣는 홍광호가 표현하는 유리 안드레비치 지바고!
홍광호가 노래를 잘 하는 건 나 역시도 인정한다.
선입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쩐지 그가 부르는 노래는 전부 CCM 같다.
그래서 오히려 다양성과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솔로곡은 그나마 괜찮은데
라라와 토냐와 함께 듀엣을 부를 때는 홍광호의 목소리가 너무 강하고 세다.
상대편의 목소리를 악착같이 묻어버리겠다 작정한 듯한 강한 소리.
다른 목소리를 포용해서 조화롭게 아우르는 걸 안타깝게도 그의 노래에서 느껴본 적이 없다.
더불어 연기적인 부분도 많이 아쉽다.
호흡과 대사의 완급 조절을 능수능란하게 하려면 조금 더 연륜이 쌓여야 할까?
그래도 꽤 많은 작품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했었는데 아직 감정 전달이 미숙하다는 건 좀 생각할 부분인 것 같다.
이 작품은 엄청안 크라이막스가 있거나 눈을 확 잡아끄는 충격적인 장면이 있는 게 아니라서
오로지 출연배우들의 연기력과 집중력에 의해 공연의 질이 결정된다.
그러기엔 아직 홍광호는 확실히 미숙하다.
대사와 대사 사이의 틈을 이용하는 영리함도,
톤의 변화로 심경을 담아내는 깊이도 아직은 서툴다.
라라 역의 전미도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기대치에 못 미친다.
때때로 대사 톤이 아무 감정 없이 책을 읽는 것 같았고
노래 역시 불안했다.
너무나 비극적이게도 홍광호의 목소리에 절대적으로 뭍혀 맥을 못춘다.
이상하다.
홍광호, 전미도의 조합은 마치 완성되지 않은 워크샾 공연같다.
이게 단지 연륜과 경험 부족 때문일까?
불안한 두 주인공에 비해
토냐 최현주, 파샤 강필석, 코마로브스키 서영주는 확실히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나는 꽤나 무료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오디의 캐스팅이 늘 <지킬 앤 하이드>의 복기같아 불안하다.
마치 이들이 전속 계약 배우들처럼 느껴진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새로운 작품이 올라와도 어쩐지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 결정적은 약점을 오디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뮤지컬을 보기 전에 일부러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원작을 찾아 읽었다.
어쩌다보니 그닥 성실하지 못한 번역본을 읽고 말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장중하고 그리고 조금은 귀족적이었다.
이 엄청난 세계대전의 혼란스런 시대를 어떻게 무대에서 보여줄까 궁금했는데
황량했다.
전장씬의 군인들은 숫자가 너무 적어 빈약했고
(세계대전이 아니라 동네 싸움 같았다)
대형 레고 블록을 연상시키는 기차가 나올 때면 번번히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그 중에서  제일 당혹스러웠던 스크린에 비친 영상들.
(뭘 말하고 싶었을까???)
필름을 빠르게 감듯 전개되는 몇몇 장면들은 단지 스쳐 지나가기만 해서 허무했고
파샤와 라라의 결혼장면은 너무 길어 지루했다.
전장에서 느닷없이 욕망 운운하며 라라에게 사랑고백하는 지바고의 모습은
뜬금없어 안스러웠다.
그래도 얀코의 주머니에서 나온 편지를 읽으며 지바고와 라라가 부르는 "Now"는 애틋했다.

오디의 신춘수 대표가 여기저기서 욕을 먹으면서 굳이 조승우에게 프로포즈를 한 이유를
미안하지만 홍광호의 지바고를 보면서 알게 됐다.
이 작품은 노래나 무대, 다른 어떤 것보다 
주인공 지바고가  좁은 스펙트럼 안에서 어떻게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표현하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그걸 짧은 기간 안에 최대로 이끌어내 표현할 배우는 확실히 "조승우"가 거의 유일해 보인다.
그리고 실제를 그는 먹을 것 없던 소문난 잔칫상을 열심히 진수성찬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4주라는 짧은 연습기간을 마치고 무대에 선 조승우.
그는 괴물일까?
문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떠오른다.
(이 말을 이해할 사람 아마 많을거다)

궁금하다.
조승우가 표현할 유리 지바고의 모습이.
그래서 나는 다시 샤롯데를 찾게 될 것 같다.
한 번은 내 눈으로 꼭 봐야겠기에...


                                   Love Finds You


                               It Comes as no Surprise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1. 1. 06:10

<왕세자 실종사건>

극본 : 한아름
연출 : 서재형
작곡, 편곡 : 황호준
출연 : 조휘(왕), 김지현(중전), 
        김대현(이구동), 전미도(홍자숙)
        태국희(감찰상궁), 안세호(하내관), 김선표(의관)
        박지희(보모상궁), 오찬우 (자객)
장소 : 두산아트센타 SPACE 111
일시 : 2010.10.19 ~201.3011.07.
제작 : 극단 죽도록 달린다

한아름 작가와 서재형 연출.
두 부부가 자신들의 동명의 연극을 뮤지컬로 만들었다.
그리고 연극 연출가 서재형의 첫번재  뮤지컬 연출작!

원래 <왕세자 실종사건>은
2005년과 2006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젊은연극시리즈로 선정되었던 연극이다.
연극으로 공연될 당시에도 참신함과 특이함으로 집중을 많이 받았었는데
(안타깝게도 연극은 보지 못했다)
뮤지컬로 모습을 바꾼 <왕세자 실종사건> 역시도 특이하고 특별하다.
작, 편곡은 소설가 황석영의 아들 황호준이 참여했다.
국악뿐만 아니라 재즈와 클래식, 타악기들가 적절히 결합된 음악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뮤지컬을 나름대로 정의한다면,
"동선(공간)과 소리의 미학"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서재형 연출은,
"특별한 구조장치 없이 단순해 보이는 무대를
배우들의 음악과 노래, 동선과 연기, 조명과 효과음을 이용해
궁궐 내에 수많은 공간들을 만들어
대극장 뮤지컬의 막전환보다 더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장면 변환을 연출하겠다"고 말했는데
전체적으로 그 의도와는 아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처음엔 많이 낯설었다.
만약 연극을 먼저 봤었다면 달랐을까? 생각할만큼...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건 스토리나 인물에 대한 매력이 아니라
극의 전개와 사건을 풀어가는 특이한 방식이 주는 독특한 매력이다.
바둑판같은 모양의 무대.
그리고 어찌보면 우스광스러운 배우들의 액션과 과장된 톤의 대사들.
영화의 플래쉬 백 기법을 차용했다는 반복적인 사건의 추적.
이런 묘한 입체감이 처음엔 분명히 당혹스러웠다.
그러다 점점 필름을 돌리는 사람이 바로 나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일체감을 느끼게 만든다.



딱히 왕세자의 실종은 이 작품에서 큰 의미가 없다.
그걸 계기로 여기 저기 밝혀지는 인간 군상들의 비밀과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들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왕은 왕대로, 중전은 중전대로,
그리고 상궁이나 내관, 궁녀는 또 그들 나름대로
각자 치열하게 숨기려고 하는 비밀이 있고
한편으로는 그 비밀을 기필코 파헤치려는 의도가 있다.
그러니까 극 속에서 왕세자는 또 다시 완벽하게 실종되는 셈이다.
이런 걸 보고 낚였다고 해야하나???



북소리, 바람소리가 제 2의 화자처럼 등장하면서 극의 긴장감을 더해준다.
거기에 구동의 개짓는 소리에 화답하는 자숙의 새소리는
천진하면서도 어쩌지 구슬프다.
(정말 너무 똑같다. 이런 말 좀 그렇긴 하겠지만 개인지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려울만큼 똑같다...)
노래는 많이 부족하지만 땀을 뚝뚝 흘리며 구동을 연기하는 김대현의 모습은
연기의 완숙과 미숙을 논하기 이전에 감동적이다.
기복이 심했던 자숙 전미도 덕분에 나까지도 기복이 심해지고 말았지만...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이후에 오랫만에 무대에서 본 중전역의 김지현,
<리틀샾 오브 호러스>의 식인풀 오드리 태국희도 오랫만에 무대에서 만나 반가웠다.
(그녀가 첫 곡 "수상해! 수상해!"를 너무 수상하게 불러서 처음엔 못 알아봤다.)
사실 이 뮤지컬을 예매한 건 순전히 배우 "조휘" 때문이었는데
오랫만에 한동안 못봤던 반가운 배우들을 봐서 혼자 추억에 빠지기도 했다.
뮤지컬을 보면서 저 사람이 누구였지? 계속 가물가물했는데
하나씩 떠오르는 것도 신기했고...
천연덕스럽게 대사를 하던 조휘의 모습도 배우로써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 배우 목소리톤 참 좋다.)
가벼우면서도 진중하고, 위엄있으면서도 하찮기까지 했던 왕의 모습.
따지고 보면 그게 다 인간의 모습이다.
"왕이라는 게 힘들구나!' 대사처럼
"인간이라는 게 참 힘들구나!" 싶다.

극과 극의 평가가 엇갈릴 작품인 것 같긴 한데
나는 새로운 시도와 접근이 좋았다.
애매한 부분들도 있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방황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참신하고 새로운 느낌이었다.
음악과 음향은 아마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꼭 연극 ,왕세자 실종사건>도 챙겨봐야 겠다.
또 다른 좋은 느낌을 줄 것 같아서...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 6. 06:36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 되는  
2009년 10월 26일 시작했던 뮤지컬 <영웅>
개인적으로 2009년 공연 관람 마지막을 좋은 작품으로 마감했다. ^^
<영웅>은 2009년 12월 31일 그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고
나는 12월 27일 나의 네 번째 관람이자 마지막 관람을 끝냈다.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왠지 슬프다.
 이 초연 멤버들을 고스란히 다시 모아서 재공연을 할 수는 있을까???)
폭풍같이 몰아치던 눈발을 뚫고 찾아간 LG 아트센타
폭설로 길이 엉망이 됐지만 늘 그렇듯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날씨 탓인지도 모르지만 왠지 무겁게 가라앉은 느낌.
마지막을 향안 작은 준비처럼 느껴졌다.


     안중근 : 류정한          이토 : 이희성            설희 : 김선영             링링 : 전미도

류정한의 안중근은 확실히 볼 때 마다 점점 더 강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뮤지컬 배우로서의 류정한의 아우라를 최대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작품.
길고 오랜 시간을 무대 위에 살아온 그에게
첫 창장 뮤지컬 도전은 새로웠고 그리고 성공적이었다.
이희성 이토는 정성화 안중근과 조합이 됐을 땐 너무 강하고 센 느낌에
살짝 거부감이 들었는데 류정한 안중근과 만날 때는
서로 불꽃이 튄다.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체감하다...
김선영...
당신에 대해선 할 말을 잃게 한다.
그녀가 무대 위에 선다면 최소한 실망할 일은 없다.
그녀는 배역에 맞게 아름답고, 그리고 늘 적절하게 빛난다.
간혹 목소리에서 피곤을 느껴졌지만 그것마저도 파란만장한 설희의 한 삶처럼 다가온다.
류정한, 김선영.
더 이상 젊지 않는 그들의 무대는 그러나 항상 그 누구의 무대보다 젊고 신선하다.
그 둘의 조합이 <라만차>에서 다시 이뤄진다니
생각만으로도 흐뭇하고 조급하게 기다려진다.
(개인적으로 오랫만에 보게 될 라만차... ^^)



좋았던 명성황후 시해 장면.
그림자로 표현된 장면의 섬뜩함.
사람의 움직임보다는 조명의 변화가 압권이다.
언어보다 빛이 먼저 그리고 강력하게 말을 걸고
그 뜻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된다.
그래... 그래... 좋은 장면이었어...
(한 켠에서 그 때의 일을 회상하는 설희의 의상은 또 얼마나 곱던지...
 그 고운 한복의 쪽빛이 그대로 눈물처럼 뚝뚝 떨어진다.)



   조도선 : 조휘     우덕순 : 문성혁   유동하 : 임진웅

멋졌던 남자 배우 3인.
세 사람의 목소리는 악기처럼 아름다웠고
하모니는 경쾌하고 즐거웠다.
누군가는 말하더라.
안중근까지 포함해서 이들을 영웅의 F4라고... ^^
17세 유동하를 멋지게 소화했던
73년생 임진웅의 고음은 깨끗하고 높았다.
그가 궁금해 찾아봤더니 "여행스케치" 멤버였다는 이력이 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의 조율과 화합이 귀에 들어왔었구나...



설희보다 더 경국지색이었던 게이샤.
그녀는 존재감이 나는 아직도 신비롭다.
별 대사 없이도 장면마다 눈에 들어오던 그녀.
그리고 라이센스 공연 <돈주앙>에서 돈주앙보다 훨씬 더 멋지고 훌륭했던
까를로스 조휘는 역시 좋은 배우다.
그의 이력도 특이하다.
체육학과 출신의 뮤지컬 배우라...
탄탄한 체격에 멋진 목소리, 그리고 선 굵은 외모까지...
어쩐지 그가 이기적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



뮤지컬 <영웅>에서 끝까지 놓치지 말고 봐야만 하는 장면이 있다면
나는 단연 관람객 기립을 꼽고 싶다.
하얼빈 의거 후 안중근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칠 때의
관객들의 박수는 크고 웅장하다.
그리고 공연 중간중간 이런 현상들이 자주 공유된다.
마치 집단 최면 같다는 생각까지...
그러서인지 일부러라도 나는 커튼콜 때 꼭 기립을 확인하게 된다.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를 치는 관객들의 모습을 꼭 두 눈에 담고 싶어서...
1층 뒷 줄에서 봤을 때도 관객들은 모두 일어서 뜨겁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1층 맨 앞 OP석 관람때도 뒤를 돌아보면
3층 객석까지도 관객들은 전부 일어서 있다.
"빙의의 현장"이었다고 말해두자.
(딱히 적절한 표현을 할 제간이 별로 없기에...)

그리고...
이제는 막이 내렸다.
다만, 그들의 초연 공연이 계속 진화해서 "명성황후"를 누르는 한국의 대표공연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한 나라의 국모도 아닌
일제시대 식민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이야기가
외국에서 "명성황후"같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까?
아직 갈 길은 너무 멀겠구나 싶다...
그래도 시도할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
턱없는 일일지라도 조용히 바램을 품어 본다.



안중근!
당신 이곳에서 잠시였겠지만 온전히 살아있었네요.
당신도 봤으면 참 좋았을텐데....
당신의 부활과 영생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