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5. 26. 06:38
베른하르트 슐링크.
이 멋진 독일 작가의 글때문에 나는 오랫만에 충만했고 환상적으로 행복했다.
<더 리더 - 책읽어 주는 남자>를 읽으면서
전율에 가깝게 느꼈던 모든 감정들이
<귀향>을 읽으면서 또 다시 고스란히 찾아왔다.
그러나 그 느낌은 한 단계 위의 감정이었고 감동이었다.
법대 교수이자 판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베른하르트 슐링크.
(이런 조합이 믿어지는가? 소설을 쓰는 판사라는 조합이...)
1944년 7월 6일 독일 빌레펠트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와 만하임에서 자랐다.
1981년 관공서 간의 공무 협조에 관해 쓴 교수 자격 논문이 통과되었고,
본,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거쳐 현재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욕 예시바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헌법 재판소 재판관도 겸임하고 있다.
그의 이력과 비슷한 이 책 <귀향>은 어쩌면 그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단지 주인공이 판사가 아니라 출판사 일을 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그의 글에는 시간과 아픔과 신비와 현실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읽고 있으면 소설이 아니라 너무나 분명하고 선명한 역사를 겪고 있는 느낌이다.
단 두 권 뿐이었는데도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뼈마다가 아리고 저렸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와 함께 독일에 거주하는 주인공 페터.
(모자 사이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일종의 "금기"였다)
그는 방학 때면 스위스에 거주하는 할아버지 댁에서 매년 시간을 보냈다.
<기쁨과 재미를 주는 소설> 총서를 편집하는 일을 하는 조부모는
잘못 인쇄된 종이들을 모아 손자에게 연습장으로 쓰라며 주곤 했다.
그러면서 당부한다.
뒷 장의 소설은 읽지 말라고...
금기가 허물어지는 순간 페터의 앞에 나타나는 카를의 귀향 이야기.
잠시 잊고 있다가 성인이 된 후 우연히 이삿짐에서 다시 보게 된 이야기의 배경이
어디선가 실제 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종의 기시감이랄까?)
페터는 직접 결말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페터는 또 다른 금기였던 아버지의 행적까지 찾아 나서게 된다. 
"오디세이아 모티브"
탈출, 방랑, 귀향...
책 속에 등장한 모든 이야기는 오디세이아 모티브로 점철된다.
급기야는 페터 자신의 인생까지도...
결국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귀향"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던가!



잃어버린 소설의 결말 찾기와 부재하는 아버지 찾기.
전쟁과 전후 세대의 이야기.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절묘한 신화의 모티브.
집을 떠나기 전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을 찾으라며 흔적을 남겼을까?
거울의 반쪽을 서로 맞춰보면서 부자 지간을 확인하고
신화 속 비범한 인물이 된 아들은 온갖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결국 아버지를 만나 적자의 정통성을 인정받게 될까?
소설의 중간 중간 나오는 귀향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신비하면서도 불안하고 불편하다.
그건 아마도 독일의 역사와 비슷하리라.
"루시퍼 이펙트"를 보는 듯한 세미나를 가장한 실험 장면은 섬득하다.
......대학원생들과  미래의 정치인, 판사, 사업가, 그리고 다른 유력가들은 극단적인 조건에서 어떤 행동을 보일까? 얼마큼 협력적이고, 얼마큼 이기적일까? 얼마나 원칙을 견지하고, 얼마나 적에게 동조할까? 서로를 배신하게 만들고 서로를 적으로 돌리는 데는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 얼마큼의 추위와 굶주림, 압력, 공포가 있어야 문명의 가면을 벗길 수 있을까? ......
역사와 정의의 문제, 악의 본질에 관한 예리하고 비열한 현실을
읽는 사람은 각오하고 똑똑히 목격해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또 다른 이야기들까지도...



페터는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해답은 혹은 결말은 여기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권하고 싶다.
꼭 읽어보고 느껴보라고...
가슴 속에 굵은 금이 생길만큼 이 책은 특별하다.
나는 지금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또 다른 책 <다른 남자>를 꿈꾸고 있다.
이 사람을 다 읽어내고 싶다.
그의 단편 <사랑의 도피>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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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하면서도 사랑받지 않을 수 있고, 그것을 불공정한 것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응답받지 못한 사랑의 공정함도 있는 법이죠.

아버지에 대해 알고 나서부터 그래. 마치 아버지에게 터뜨리지 못한 분노가 다른 분출구를 찾아 헤매는 것 같아.... 그동안 난 항상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살아왔고, 설령 잠시 세상에 발을 담근다 해도 저항이 있으면 언제라도 후퇴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악의 선한 면이란 악이 선을 위해 쓰일 수 있다는 겁니다.
가난과 고통이 진보와 문화를 가능케 하고, 폭력이 평화를 보장하고,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정의로운 혁명과 정의로운 전쟁을 성공으로 이끕니다.
나는 그가 이것을 일부러 연출하고 즐겼다고 확신했다. 그는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연구하고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려 했고, 더 나아가 학생들을 바꾸려고 했다. 어떻게 바꾸려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사과해야 하는 자기비판의 모든 형식이 결국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붕괴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항상 진실과 거짓을 행하고 있다. 다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에 대한 결정은 개인이 내려야 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그리고 악이 자유롭게 떠돌아 다녀도 되는지 아니면 선을 위해 이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도 개인 소관이다. 이는 우리 개인이 올곧게 결정을 내린다는 것과는 다를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는 남은 사람들에 대한 희생자의 값어치에 비례해서 살인을 처벌했다. 예를 들어 아버지에게 있어서 아들이나 딸의 값어치, 주인에게 노예의 값어치가 그것이다. 오랫동안 흑인을 살해한 백인이 백인을 살해한 흑인보다 경미한 처벌을 받은 것도 그래서이다. 살인자로서의 행위가 더 관대한 처분을 받은 것이 아니라 희생자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종 청소의 경우는 별 양심의 가책 없이 편하게 살인을 저지를 때가 많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들을 아예 하나도 남겨 놓지 않기 때문이다. 인종 청소의 전제는 이렇다. 청소할 민족을 고립시키고, 그들을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이루는 세계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지 않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그들의 뿌리까지 뽑아버려야 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4. 26. 05:44


일    시: 2010.04.21. ~2010.06.13.
장    소 : 유니버설아트센터
작    곡 : 프랭크 와일드혼 /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casting : 몬테크리스토 백작(류정한, 엄기준, 신성록)
             메르세데스(옥주현, 차지현)
             아베 파리아(조원희, 이원근),
             몬데고(최민철, 조휘),
             빌포트(조순창), 당글라르(장대웅), 
             알버트(김승대, 전동석) 그 외...


<2010.04.21. casting>

몬테크리스토 : 류정한 / 메르세데스 : 옥주현
아베 파리아   : 조원희 / 몬데고       : 최민철 
알버트          : 김승대

첫공을 아무 망설임 없이 선택한 건
오로지 이 사람,
뮤지컬 배우 "류정한" 때문이었다.
조금 쉬고 싶었는데 뮤지컬 넘버가 너무 좋아  휴식기를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는 작품.
그리고 무엇보다 <지킬 &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작품이니
그로서도 역시 탐나지 않을 수 없었겠다.
<영웅>에 이어 <라만차> 서울 공연과 지방 공연을 다니느라 참 지쳤을텐데...
그를 또 다시 불러들이는 무대 때문에
그의 매니아들 역시 또 다시 기꺼이 좌석쟁탈전을 준비한다.
(클릭이 빠른 자, 가까이서 그를 보리니...)



개인적으로는 옥주현의 뮤지컬 무대를 처음 봤다.
감정연기도 나쁘지 않고 노래도 잘 하는 건 정말이지 충분히 알겠다.
그런데 이상하지?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약간 들떠있고 그리고 숨소리가 너무 크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의 어머니를 보는 것 내겐 좀 당황스러운 모습이다.
(그냥 내내 여자이기로 선택한 거라면 할 말이 없지만...)
오랫만에 본 최민철의 무대는 아직 중심을 잡지 못하겠다.
캐릭터 설정을 그렇게 한건지,
아니면 그가 현재 좀 방황(?)하는 중인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가 올려진다고 했을 때
일부러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완역본 5권을 찾아 읽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성이 갸륵하다)
그런데 원작을 괜히 본건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원작과는 느낌이 참 많이 다르다.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3인의 몬테크리스토 (류정한, 엄기준, 신성록) 
                                                 그런데 이 사진들 다들 좀 심하시다... ^^


알렉상드르 뒤마의 결말은 메르세데스와 에드몽 당테스의 헤피엔딩이 아니다.
당테스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다시 배 위에서 길을 떠난다.
그의 곁에는 메르세데스가 아닌 다른 여자가 있다.
지조없는 남자라고?
아니! 원작을 읽으면서 나는 그 결말이 몹시도 좋았다.
그리고 그가 모렐 선주의 아들 막시밀리앙에게 남긴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
결국 이 이야기의 모든 걸 대변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뮤지컬에서는 몬테크리스토의 아들같은 존재인 막시밀리앙이 등장하지 않는다)

"...... 인간의 지혜는 오직 다음 두 마디 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서는 이 문장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냈다.
극의 내용에 맞게 조금 더 극적인 문장으로 말이다.

"......정의는 갖는 자의 것, 사랑은 주는 자의 것...."

그러니까 이 뮤지컬의 주제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연하지!
정의로 사랑을 통합하긴 힘들겠지만
사랑으로 정의를 통합하긴 훨씬 더 드라마틱 할테니까...


                    연출가 : 로버트 요한슨                         메르세데스 옥주현, 몬테크리스토 류정한

뜬금없는 배역과 내용에 원작을 읽은 나로서는 처음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너무 과하게 코믹한 설정으로 나오는 파리아 신부,
(원작에선 이 사람은 현자, 석학자의 이미지였는데.... 쩝!)
이프 감옥에서 탈출에 성공한 당테스를 구출하는 배가 해적선이라는 설정,
거기다가 그 해적선의 선장인 루이스 밤파가 여자로 나오는 장면
그리고 원작에 없는 이름 "발렌타인"까지...
(이건 너무 달콤하쟎아~~~)
참 많은 창조적 과정으로 거쳐서 뮤지컬이 탄생된 셈이다.
여기에 당테스와 몬테고가 뮤지컬에서처럼 친구 사이가 아니라
몬테고가 메르세데스의 사촌오빠로 원작엔 나온다면 좀 놀라울까???
(뭐, 18세기엔 근친의 성행했으니까...)
그리고 알버트는 몬테크리스토의 아들이 아니라
몬데고의 아들이 맞다고 말한다면...
(에이. 그만 할란다~~)


                                                                               2장의 사진 출처 : 건승정한 ^^
뭐 어쨌든 좌우지간,
작품 자체는 확실히 나쁘지 않다.
문제는 공연장이 아주 확실하게, 너무도 완벽하게 나쁘다는 거다.
왜 하필 "유니버설아트"냐고 고개를 저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공연장의 열악한 조건이 공연의 감동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반감시킬 수 있는지
절실히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나, <삼총사>와 <살인마 잭>을 모두 넘겼다. 유니버설아트라서...)
내 귓 속에는 아직도 삐그덕거리며 완전 100% 수동으로 설치되던 
무대셋트들의 소음으로 가득하다.
(열심히 무대 설치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발소리 무지 크다고 말한다면 내가 죽일년인가?
 암튼 출연료는 제일 많이 주어야 할 것 같아. 어쨌든 제일 많이 무대에 등장하니까...)
이 공연장의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난국이
빠른 시간 안에 해결되길 나는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몬테크리스토가 고향으로 돌아와 처음 연회를 여는 장면에서
(정확히 말해서 빨간색 망토를 휘날리며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장면)
살짝 미스코리아 Feel이 느껴지는 건 나 혼자만이었을까?
(여러분! 아름다운 밤이예요~~~)
아무튼 이 작품을 위해서
마흔이 넘은 몸을 이끌고 멋지게 힘준(?) 복근을 보여준 류정한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잘하면 머지 않아 화려한 "액션 히어로"로 등극하지 않을까???
결투 장면은 정말 실감나더라.
(그것도 매번... 이 뮤지컬, 칼싸움 정말 여러번 나온다)
배우들이 하나하나 정확하게 동작을 맞추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을까를 생각하니 대단하다 싶다.
저러다 다치는 건 아닌가 솔직히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만큼 실감이 난다는 뜻 ^^
이 상태로 가다간 조만간 배우 류정한 배에도 멋진 리얼 초코릿 복근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

 
                                                       류정한, 차지연 <언제나 그대 곁에>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7. 13. 05:56
 <내 심장을 쏴라> -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오랜만에 유쾌, 상쾌, 통쾌한 소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 뒷맛은 좀 씁쓸하네요.

김별아의 <미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신경진의 <슬롯>, 백영옥의 <스타일>에 이어 제 5회 세계문학상을 거머쥔 소설입니다.

사이코패스, 약물중독, 조울증, 공황장애, 정신분열 등 다양한 이력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이곳을 굳이 방문해주신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기는 여러분의 정신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치료하는 수리 희망병원입니다.

네, 꼭 직접적으로 말해달라면 정신병원, 맞습니다.

맨 정신으로 이 미친 세상을 어떻게 제대로 살아가느냐 반문한다면 대략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우리가 사는 세상 모두를 싸잡아 정신병동이라고 하면 멀쩡하다고 우기고 싶은 우리네 신세가 좀 거시기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두 남자를 소개해야겠네요.
부디 함께 건강한 친목을 도모하시길(특히 정신적으로 말입니다...)

문제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25살 동갑네기 두 사람은 바로 류승민과 이수명 되시겠습니다.

일단 6년의 정신분열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 분야에는 그래도 나름 베테랑에 해당되는 이수명, 18살에 가위로 목을 찔러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가위에 대한 극심한 공포로 이발조차 거부하는 일명 장발의 “미쓰리”, 재벌가의 숨겨진 아들로 유산문제에 얽혀 이복형제에 의해 강제로 병원에 수용된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페러글라이딩 조종사 류승민.

뭐 그닥 정이 가는 커플 조합은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이 문제적 인간 둘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입니다.

이수명은 그런데로 수리병원의 환경에 적응하며 소위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에 속합니다. 그런데 501호 동거인 중 한명인 승민이 입원 첫날부터 탈출을 시도합니다.

매번 그렇게 실패를 하면서 지치지도 않고 자꾸 사고를 치네요.

게다가 급기야 수명까지 자꾸 얽혀 경고만 늘어갑니다.

경고 네 번이면,
그 다음은 바로 OUT!  (젠장! 저 인간 미친 거 아냐????)

거듭되는 탈출의 시도, 그 끝은 보호실에서 갇혀 반인반수가 되어 돌아오는 약물폭격입니다. 초점 잃은 눈동자, 부글거리는 하얀 침,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는 두 다리와 함께...

승민은 궁금합니다.

저 또라이는 왜 저렇게 계속 탈출을 시도하는 건지....

그러다 알게 되죠.

승민이 원하는 건 단지 살고 싶다는 소망 그 한가지뿐이라는 걸.

그리고 그에게 산다는 건 자신의 인생에서 그 누구도 아닌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걸요.

승민은 망막세포 변성증으로 조만간 눈이 멀 운명입니다. 그는 자신의 눈이 완전히 멀기 전에  마지막으로 페러글라이딩을 하고 싶다는 소망만 있을 뿐입니다.

볼 수 없다는 두려움보다 다시는 날 수 없다는데 대한 분노가 더 컸던 승민.

자신이 좋아하는 그 하늘에서 눈이 멀고 싶다는 단 하나의 소망!

그것은 승민의 본능이자 의지였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운명을 상대하는 그만의 방식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가 탈출을 시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조용히 적응하며 살려고 하는 수명은 결국 결심을 합니다.

저 또라이를 탈출시켜야 겠다고....

승민을 탈출시키면 자신은 보호실에서 입에 개거품을 물고 깨어나겠지만 그래도 시도하기로 작정합니다.

치밀한 계획까지 세웁니다. 열화와 같은 동료 및 일부 직원의 도움으로....

원래 계획과는 좀 달라지긴 했지만 어쨌든 승민 뿐만 아니라 수명까지도 수리 희망병원에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병원에 들어온 지 딱 100일째 되는 날에 말이죠.

탈출에 성공한 두 사람.

승민은 감춰둔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하늘을 날기 위해 수리산으로 향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헤어집니다.

다음날 승민의 행방은 묘연하고 수명은 수리산 아래에서 그대로 붙잡힙니다.(딱히 도망칠 생각도 없었지만....)

자살방조죄에 폭행감금(탈취한 차의 운전수)의 죄명을 추가로 달고요...


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고 합니다.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자.

갇혀서 미쳐가는 자가 미쳐서 갇힌 자에게 말합니다.

“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라고...

어쩐지 이 질문, 참 섬뜩합니다.

그 질문을 들은 미쳐서 갇힌 자가 생각합니다.

“내가 제대로 들었다면, 저 자식이 ‘존재의 징표’에 대해 물은 거라면, 나는 내놓을 것이 없었다. 내 인생에서 나는 유령이었다.”

오래전 “여기”와 “거기”의 경계를 놓아버린 유령!

꿈을 꾸는 게 무서운 사람도, 현실을 사는 게 무서운 사람도 분명 있을 겁니다.

꿈속의 유령이든, 현실 속의 유령이든,

모든 건 “도망침”의 한가지일 뿐이라고 이 두 사람이 말해주고 있는 셈이네요.

그러니까 요는,
어쨌든 삶은 살아내야 하는 거란 사실입니다.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

비록 그 결말이 뻔하더라도, 부딪치고 신나게 깨지고 맞서고 치열하게 살아내라고요.

한 사람에 의해 다른 또 한 사람이 이제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 도망치지 않을 사람,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자신에게서 더더욱 도망치지 않게 될 한 사람.

이 사람... 아무래도 우리가 응원 좀 해줘야겠죠?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서 소설 <내 심장을 쏴라>가 시작됐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작가 정유정!

어떻게 정신병동에 대해 이렇게 리얼하게 쓸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전직 간호사 출신이라는 이력이 있네요. 여러 차례의 정신병동 취재와 자료 조사, 그리고 일주일간 폐쇄병동에서 환자들과 함께 생활한 체험이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이제 글은 머릿속뿐만 아니라 발끝에서도 만들어진다는 게 실감됩니다.

늘 그렇듯 괜찮은 책은 그걸 알아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

이 소설도 <식객>, <미인도>를 만든 전윤수 감독에 의해 지금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고 하네요. 캐스팅이 완료되는 연말쯤부터 촬영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 두 명의 문제적 인간뿐만 아니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범상치 않는 숱한 환자들을 과연 누가 연기하게 될지 개인적으로 무지 궁금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열심히 캐스팅 섭외하고 있습니다.....ㅋㅋ ^^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7. 11. 12:25
2009년 제 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
무지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설
그러나
재미로만 읽을 수는 없는 내용..



초반 도입부만 인내심을 가지고
잘 넘어가면
뒷 부분부터는 술술 잘 읽히는 책
궁금증과 그 다음 이어질 이야기가 책을
계속 손에 잡게 만든다.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끼?"
작가는 이 질문에서 이 소설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끝없이 탈출을 꿈꾸는
정신병동에 갇혀 있는 사람들
그들만의 세상....
무엇에 의해, 혹은 누구에 의해 그들이 그곳에 갇혀있는걸까?

당신은,
세상으로 귀환할 준비가 진정으로 되어 있는가?
스스로 혹은 타인에 의해 갇혔더라도
탈출을 시도할 땐 분명한 의도가 있어야 한다.
실종이든, 복수든, 자유든....
목적없는 탈출은 재수감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

* <식객>, <미인도>를 만든 전윤수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단다. 
  누가 이 특별한 두 주인공의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
  싸이코패스 라이터 류승민. 스키조(정신분열) 이수명
  과연 누가 그들을 연기하게 될까?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09. 6. 6. 21:50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시간이 나면 뭘 하세요?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뭘 하세요?
대답은 이렇다.
"책 읽어요!"

또 누군가는 묻는다.
한달에 책을 몇 권이나 읽어요?
한 30권 읽어요?

꿈이기도 하다.
일을 하면서 하루에 1권씩 책을 읽을 수 있는 내공이 쌓이기를...
그 말은,
적에도 내겐
일에도 책에도 완벽하게 집중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책은 푸른 나무숲과 동의어다.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심지어
세상 모든 것들로 부터
과감한 탈출을 감행하게 도와준다.
The phantom of the opera 에서 phantom의 은신처를 향하는 거울 입구처럼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굴처럼...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고 그리고 확실하게
숨을 곳을 허락한다.



혹,
내가 사라지거나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분명 책의 세계 속에 들어가 있는 중일테다.
그토록 좋아했던 비행기를 몰고
그의 별로 돌아간
생텍쥐페리처럼.

나는 믿는다.
그는 지금  B - 612  별의 어린 왕자가 되어 있을 거라고....
처음부터 그에겐 돌아올 연료 따윈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책"이 됐다.



             <조종사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비행모습 그림 - 람 반 호프>



                     <생텍쥐페리와 어린왕자의 동상>

생텍쥐페리의 고향 리옹에는 어린왕자와 그의 모습을 담은 동상이 있다고 한다.
그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고....

"내가 죽은것처럼 보일꺼야,
 하지만 그게 아니야..."


그가 있는 세계를  믿는다.
B - 612 !
영원한 그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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