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8.11.08 13:45

바람이 엄청났다.

가만히 서있어도 몸이 이리저리 떠밀릴 정도다.

사정없이 휘청이는 몸.

물건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고정하지 않은 화분들이 쉽게 내동댕이쳐졌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기세다.

잔득 흐리고, 잔득 낮고...

그래도 일단은 버텨본다.

피란의 파도를 다시 볼 순 없을테니까. 

 

 

 

바람소리.

파도 소리.

파도가 제법 높다.

쉽게 제방을 넘나든다.

두어걸음 떨어졌는데도 물이 채찍처럼 날아든다.

하지만 그 날카로움조차도 마냥 좋다.

왜냐하면.

떠나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니까.

남아있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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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11.07 09:07

어쩌면...

나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돌아오더라도

여기 아닌 다른 곳으로 갔어야 했다.

 

 

프라다 칼로도 그랬던걸까?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일기장에 이 글을 쓰는 프라다 칼로의 마음이...

읽힌다.

 

 

그래,

나는 그날 저기 골목 어디쯤에서

그대로 숨어버려야했다.

왜 그렇게 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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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11.05 10:45

개와 늑대의 시간.

아마 그쯤이었을것 같다.

어둠이 찾아오기 바로 전의 하늘.

파란빛도, 푸른빛도, 청록빛도 아닌

전후좌우 위와 아래,

모든 방향의 색이 조금씩 달라지는게

다 보이는 그 찰나의 순간.

이 순간만큼은

공간도 시간속에 먹힌다.

그것도 아주 완벽히!

 

 

이 날의 기억 하나 ...

오래 걸어 갈증이 심했다.

물이 간절했다.

주변엔 마켓도, 슈퍼도 없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가야 한다는게 망설여졌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뭔가를 먹거나 마시고 있었고

나는 완벽하게 혼자였다.

혼자 고립된 느낌.

외로움은 아니었고 무서움의 일종이었다.

여기서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하는.

 

 

어두워진 타르티니 광장에 

한참동안 머물렀다.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난고 점점 비어가는 광장,

비로소 이곳이 광장이라는게 실감됐다.

사람이 모이는 광장과

사람이 없어야 비로소 전부가 보이는 광장.

그러나 그 둘은 결코 다르지 않다.

그 둘의 간극에 내가 있다는게...

나는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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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10.26 14:18

조용했던 성벽에...

중국인 가족이 올라왔다.

엄청 멋을 낸 엄마와 배가 불룩한 아빠, 그리고 불만이 가득한 아들.

순식간에 고요가 깨졌다.

중국어의 4성 성조는 정말이지 타의추조을 불허할만큼 파괴적이다.

고민이 됐다.

이대로 깔끔하게 포기하고 종탑을 내려갈까, 그대도 좀 버텨볼까...

난사에 가까운 핸드폰 카메라 셔터 소리에 조금 더 버티기로 했다.

경험상,

셔터소리가 요란하면 대부분 금방 끝이 나더라.

그리고 예상 적중.

무지 전투적으로 속전속결을 선보인 가족들에게 깊은 감사를...  

 

 

이곳은 완벽한 곳이다.

일생을 혼자 살대도 이곳에서는 외롭지 않을 같다.

크지 않아 속속들이 다 알 것 같지만

결코 다는 보여주지 않는 곳.

친근하면서도 낯설게 하루하루를 살 수 있을 것 같은...

먼 바다를 보고,

가까운 광장을 보고,

끊긴 성벽을 보고,

주황색 지붕들 보고...

이 좁고 작은 종탑 위에서 나는 1시간 넘게 있었다.

숨고 싶었지만 숨을 곳이 전혀 없었다.

 

 

종탑을 내려오니 관리자가 묻는다.

위에 누가 또 있느냐고...

아무도 없다고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뭐지?

아직 close time은 아닌데...

짧은 영어실력이 탈로날까봐 궁금증을 그대로 남겨두고 돌어섰다.

아무도 없는 성 죠지 성당의 나무의자에 감동했

그림같은 파란 하늘 밑엔 거짓말처럼 서있는 하얀 성당의 파사드에 동요됐다.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그 앞서 서있었던건

그 시간, 그 곳 있던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하늘빛 때문이었다.

 

저 하늘빛은...

사는 내내 계속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그때처럼 지금도,

지금처럼 그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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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10.17 08:43

어느 도시를 가든,

내가 그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높은 곳을 올라가거나,

아니면 광장을 찾아가거나...

피란의 시작은

마땅히 광장이어야 한다.

"타르니티 광장(Tartinijev Trg)"

 

 

타르티니 광장은...

참 재미있는 곳이다.

관공서로 짐작되는 고풍스런 건물을 중삼으로

주변 3/2 가량이 건물로 둘러쌓여 있다.

그리고 눈 앞에는 푸른 바다,

머리 위에는 파란 하늘과 하얀 비행운.

작은 광장이지만

지금껏 내가 본 광장 중 가장 완벽한 광장이다.

내가 보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을 다 갖추고 있는

광장의 종합선물셋트.

 

 

피란은 3세기부터 18세기까지 베네치아공국의 일부였단다.

그래선지 곳곳에 베니스의 흔적과 느낌이 남아있다.

광장 한가운데 바이올린을 들고 서있는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크 시대 활동한 피란 출신 음악가 "쥬세페 타르티니".

피란에 머무르는 동안

이 분 앞을 수십번은 지나다니게 될테니

정식으로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쨍한 햇빛 속을 뚫고 동상 앞에 섰다.

두 손 곱게 모아서 공손한 배꼽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쥬세페 타르티니님!

 전 이곳을 찾아온 낯선 사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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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10.16 11:14

Piran의 첫 시작이...

이번 여행 최고의 난코스가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피란에서는 호텔이 아닌 Hostel Piran이란 곳을 예약했는데

이곳을 찾는게 역대급 난이도였다.

얼키고 설킨 피란의 골목들...

또 다시 구글맵은 무용지물이 되버렸다.

돌바닥에 캐리어를 끌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현지인에게 물어 겨우겨우 찾아갔는데

호스텔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check in 시간인 2시에 오겠다는 메모와 함께!

 

 

호스텔 오픈 시간까지는 40분이나 남았지만

캐리어를 끌고 돌바닥으로 나설 자신이 없어 대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1...

좁은 골목이라 무섭기도 했고

술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다가오니 무서움이 왈칵 일더라.

전속력으로 캐리어를 끌고 광장으로 나가 시간을 보냈다.

2시 시간에 맞춰 다시 호스텔로 입성.

그런데 2...

그 무서운 오버부킹 선고를 받았다.

출력된 예약증을 들이밀었더니 미안하다며 다른 곳으로 연결시켜준단다.

한참을 여기 저기 전화 통화를 하더니 나를 부른다.

지도를 주면서 Hostel Pirano란 곳으로 가란다.

다행히 옮기는 곳 위치는 큰 길 쪽이다.

Hostel Piran의 위치가 골목 깊숙한 곳이라 걱정됏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찾아간 Hostel Pirano의 위치는 환상적이었고,

심지어 얼마 전에 리모델링을 했는지 아주 깨끗했다.

게다가 빈 방이 3인실뿐이라 추가요금 없이 혼자 1박을 했으니

화(貨)가 복(福)이 된 샘.

그런데 3...

저 방 문 정말 열기 힘들다.

열쇠를 넣고 두번 돌려야 하는데 아무리 열심히 돌려도 문이 안 열린다.

이런 나 때문에 호스트가 여러번 올라왔다.

이상하게 호스트 앞에선 잘 열리는 문이

나 혼자 열려고 하면 먹통이 되버린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숙소에서 나오면 눈 앞에 펼쳐지는

피란의 흔한 풍경.

하지만

이건 시작의 시작도 아니라는거.

아마도 나는...

이 도시를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10.15 13:53

류블라냐에서 피란(Piran) 가는 10시 10분 버스는

10시 25분 출발했다.

승강장은 12번.

캐리어를 싣고 버스에 앉아 있으면

기사님이 직접 요금을 받으러 다닌다.

피란까지 요금은 11.10유로,

 

 

아침에 산 체리를 먹으며

창문에 딱정벌레처럼 들러붙러 붙었다.

새콤달콤한 여정.

피란 도착때까지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아

내내 편하게 갈 수 있었던 것도 행운 ^^

하지만 가는 동안 날씨가 많이 버라이어티했다.

흐렸다, 맑았다, 흐렸다. 맑았다의 연속.

정오쯤에는 비가 엄청 굵게, 엄청 많이 내려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러다 피란에서 숙소 붙박이가 되는건 아닌지,

심지어 그렇게 아름답다는 석양보는건 아닌지 걱정됐다.

어쩔 수 없다.

또 다시 운을 믿어보는 수빆에!

 

 

급기야 코페르에서는 나무가 휘청일 정도로 바람까지 거쎄졌다.

이졸라에서도 빗방울은 가늘어질 기미가 없고...

비에 바람까지 이렇게 거쎄면 우산으론 안될것 같고

그냥 우비입고 다녀야겠다 작정했다.

1박 일정이라 석양도 못보면 어쩔 수 없고...

피란이 나에게 허락하는 모습만 본대도 충분히 황송할테니까.

피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2시 30분쯤.

다행히 비도 멈췄고 하늘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저 멀리 등대 2개가 눈 앞에 보인다.

초록색, 빨간색 등대를 보는 순간,

내가 피란까지 왔다는게 실감됐다.

처음엔 블레드때문에 슬로베니아 여행을 계획했던건데

나중엔 블레드보다 피란에 더 끌려 이곳을 제일 마지막 일정으로 정하게 됐다.

아마도 나는,

"피란"을 이 여행의 클라이막스로 점찍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였을까?

도착하는 순간부터 많이 설렜다.

그 설레임으로

숙소 찾기부터 시~~~~작!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