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5. 13:32

햇빛 좋은 Oia는 의외로 사진을 찍기가 버거운 곳이다.

햇빛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도, 뒤로 세우기도 어딘지 어쩡쩡하고

실제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면 내가 본 색감과 달라 보여 당황하게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없이 찍어대는 나 같은 초보자에게도

기꺼이 훌륭한 피사체가 되어줄만큼 Oia는 넉넉하다.

사진은 skill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렌즈 속 Oia를 보면서 다시 느꼈다.

 

Oia를 처음 찾아 갔을 땐,

낯선 시선을 기꺼이 받아주고 웃어주는 모습이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꾸며진 친절과 소위 말하는 영혼없는 미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아마 그 햇빛이 나를 녹여버렸나보다.

그 햇빛은 아주 농염하고, 아주 은밀하고, 아주 끈질겼으며

심지어 아주 해맑고 경쾌하기까지 했다.

그래선지 두번째 Oia를 찾아갔을 때 나는 좀 달라져 있엇따. 

나도 모르게 Oia의 구석구석 골목이 보여주는 속살을 즐겼고

상인들의 거품기 가득한 미소에 손을 흔들며 미소지었다.

그렇게 풀어지니 참 편안했다.

시선과 마음을 놓아버리니 찬란함이 보이더라.

바다 속의 햇빛이,

햇빛 속의 바다가 보이더라.

바람의 흔적까지도...

 

햇빛과 정면 대결하고 있는 Oia의 바다는

온통 먹빛이다.

극과 극이 보여주는 대비.

아마도 그 대비를 보기 위해 나는 다시 산토리니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산토리니를 다시 갈 일이 있을까 내내 생각했는데

이게 아마도 다시 갈 수 있는 이유가 충분히 되줄 것 같다.

단지 바라는 게 있다면,

산토리니를 두번째 찾을 때는 꼭 혼자이길...

 

외로움!

그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더 위험하고 위태로운 게 있다면.

그리움! 

언제나 항상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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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 08:21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는 Oia의 굴라스 성채는

로마시대 때는 망루로 쓰였던 곳이란다.

멀리서 봤을 때는 살짝 초라한 느낌도 들었지만

굴라스 성채 쪽으로 가서 바라본 Oia의 바다는 그대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굴라스 성채에 도착한 시간이 아마도 오후 5시 경이었을거다.

sun set을 보기 위해선 일찍부터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이른 시간에도 사람들이 꽤 많이 있어 괜히 조바심이 났다.

이곳에 자리잡고 바다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남은건,

"기다림"의 시간뿐이다.

기.다.려.

 

아주 못된 이기심인데.

오래 품고 있는 소망 중 하나가

"혼자서 sun set을 독점하기'다.

순간적으로 "다 비켜~~~!"라고 소치치고 싶은 욕망.

(소리를 지른들 알아들을 사람도 별로 없었겠지만...)

산토리니에 머무는 동안 3번의 sun set을 목격했지만

이날 굴라스 성채에서의 sun set은 일종의 축제였다.

해가 바다로 완전히 넘어가는 순간,

약속처럼 쏟아지던 사람들의 박수와 휘파람 소리들.

나도 모르게 그 소리에 휩쓸려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아팠다.

너무 제대로 넘어져서...

그 와중에도 카메라가 멀쩡한지가 제일 걱정이 됐고!

카메라는... 한쪽 모서리가 좀 패였다.

속이 살짝 상하긴 했지만 어쩌라...이것 역시도 이 여행의 흔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카메라의 흠집을 볼때마다

이날의 축제같은 sun set이 생각나겠지!

 

 

하늘을 향한

그리고 바다를 그리는 해의 강렬한 욕망!

주위는 온통 핏빛 전쟁터다.

아! 참...

강렬하구나...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31. 08:17

Oia의 아틀란티스 서점(Atlantis Books).

2002년 산토리니에 놀러온 올리버(Oliver)와 크래이그(Craig)가 즉흥적으로 구상해서 만들어진 서점이

지금은 Oia의 또 하나의 land mark가 됐다.

그런데 지금 이곳이 아무래도 재정난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든, 다른 나라든

책방을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어설픈 활자중독자인 나는 이 이쁜 서점이 겪고 있는 현실이 참 아프고 슬펐다.

Oia의 상가 골목들 초입에 있는 이 서점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면?

사람을은 서운해할까?

이곳도 전설처럼 기억되는 기억 속 섬이 되버릴까?

노란 서점의 외벽을 보면서

올리버와 크래이그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길 나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적어도 나는,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곳을 "꿈"처럼 떠올렸다.

이 멋진 서점을 꼭 들러보리라 혼자 작정을 했었다.

책이 없은 세상을...

나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기에..

산토리니에서 돌아온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나는 꿈이 제발 사라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Oia의 해상 박물관 (Martitime Musem of Thera).

이아는 1900년대까지 9000명의 넘는 주민 모두가 어부였단다.

당시에는 선박 회사만도 164개였고 조선소는 7개나 있었는데

1956년에 지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면서 고작 500여 명만이 이곳에 남아 삶을 지켜나갔다.

이아의 불운한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 남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을까?

잊혀져가는 이아의 선박 역사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을까?

선장이었던 안토니스 다코로니아(Antonis Dakoronia)라는 사람이 산토리니 전통 가옥을 개조해서 이 박물관을 만들었단다.

2층으로 된 이곳은 아주 소박하고 그리고 고적한 박물관이었다.

살짝 시간을 되짚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

"보존"의 흔적들은 지켜온 자들의 마음때문인지 정갈하고 다정했다.

화려함과 대단한 보물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곳엔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충분히 귀기울여도 좋을만큼.

 

사이렌을 떠올리게 하는 뱃머리 조각상을 보면서

엔진의 가속 정도를 알리는 표시판을 보면서,

배를 정박했을 때 쓰였음직한 밧줄과 닻을 보면서

튼튼하게 묶인 여러 종류의 메듭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 나른하고 몽롱했다.

마치 오래고 긴 항해를 이제 막 마치고 이제 막 땅에 발을 디딘 사람처럼.

균형감과 현실감이 살짝 흔들렸다.

 

아틀란티스 서점의 "꿈"과

해상 박물관의 "이야기"

아마도 이 둘이 Oia를 지키는 무언의 파수꾼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많이 든든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30. 09:10

산토리니의 이아(Oia)

이온음료 포카리스웨트 CF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한때 로망처럼 여겨졌던 곳.

나도 역시나 그랬다.

산토리니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곳을 직접 본다는 생각을 하니 설랬다.

TV를 통해 본 Oia는 그 자체가 완벽한 파라다이스였으니까.

Fira에서 로컬버스를 타고 도착한 Oia의 첫인상은 "눈부심"이었다.

어쩐지 그곳에 서있기가 민망한 정도의 찬란함 앞에서 나는 잠깐 망설였던 것도 같다.

그 찬란함속을 더 찬란하고 발랄게 뛰어내려 좋아했던 조카녀석이 없었다면

나는 도로 차를 타고 Fira로 되돌아왔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랬지.

햇빛 속에 서 있으면 저절로 살의(殺意)가 느껴진다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Oia의 햇빛 속에서 나는 그 뜻을 완벽히 이해하고 인정했다.

 

참 이상하지!

여행을 가면 모든 골목길을 기웃거리게 된다.

Oia가 좋았던건 기웃거릴 수 있는 골목들이 아주 많았다는 거.

작은 골목길 하나하나가 내겐 전부 다 하나의 세계다.

꿈 꿀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

그림같은 풍경보다 나는 골목이 숨긴 풍격에 자꾸만 눈이 갔다.

그 곳엔 누군가에게 발갈되길 바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Oia를 그렇게 맘 속에 숨겨두고 싶었나보다.

 

정교회 센터 광장 종탑앞에 앉아 있는 햇빛을 올려다 보면서

Oia의 골목길을 서성이면서

나는 폭력같은 햇빛의 습격 속에서 밀려오는 "그리움" 때문에 손발이 저렸다.

그리움 없는 외로움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건 그냥 지나게 버리는 허상일 뿐이다.

하지만,

외로움에 그리움이 쌓이기 시작하면...

그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온 몸을 뚫고 나간다.

제대로 관통당해 또 다시 너덜해지는 마음.

 

눈부신 건 햇빛 때문이 아니다.

관통당한 마음,

그것 때문이다.

 

Oia는 참 잔인한 햇빛을 품고 있구나...!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18. 08:55

새벽에 눈이 떠졌다.

창문 커튼 틈으로 수영장 물빛에 비친 청록색 하늘이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해가 지는 모습은 그렇게 챙겨서 바라봤으면서

해가 뜨는 순간은 놓치고 있었구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눌러쓰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늦은 밤에 야간페리로 다시 아테네로 들어가야 하기에 Fira의 아침을 볼 시간이 지금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아직 어두운 Fira의 거리로 발을 옮기게 했다.

언제 이곳을 또 다시 오게 될까?

어쩌면 이런 센치한 감정도 한 몫 했을거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숙소를 나와 길 위에 발은 얹는 순간 텅 빈 "고요"와 대면했다.

꽤 늦게까지 북적거렸던 Fira가 완벽하게 비어 있었다.

조용하고 적막해서 먼 곳에서 부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선명했다.

덜컥 무섬증이 일었지만 '언제 다시 볼게 될까...' 라는 생각이 나를 앞으로 걷게 했다.

골목길을 만난 깨어있는 불빛들.

낮익은 풍경들에게 짧게 작별을 고했는지도...

산토리니에 3박 4일을 머무르는 동안 이제 고작 Fira만 언급했을 뿐인데

지금 나는 Fira가 참 그립다.

포카리스웨트 광고때문에 로망이 된 Oia보다 나는 Fira가 훨씬 더 좋았다.

아마도 내가 산토리니를 다시 찾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Fira 때문일거다.

아직 어린 조카들이 있어서 그 유명한 와이너리 투어도, 볼케이노 투어도 결국은 못했지만

Fira에는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어서 내내 행복했다.

Fira의 그 길들이...

지금도 나는 사무치고 그립다.

 

이제 막 문을 열기 시작한 빵집에서 풍기는 고소한 빵냄새,

창가에 서서 파티쉐가 아침을 여는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봤다.

고소하고 따뜻하고 부지런한 움직임.

뒤돌아선 파티쉐가 웃으며 윙크와 함께 손키스를 날린다.

나도 따라했다.

그냥 좀 고소해지고 싶어서...

피라 구항구(old port)로 이어지는 588 계단 앞에서는 잠Rks 망설이기도 했다.

내려가볼까? 아님 그냥 지나칠까?

결국...

내려가보기로 했다.

평소같았으면 사람이 없는 길은 궁금해도 가지 않는 편인데

이날 나는 좀 용감하과 과감해지기로 했다.

여행자니까... 그러나 마지막이니까...

 

구 항구로 이어지는 길은

원래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다가 동키택시(Donkey Taxi)라는 당나귀를 타고 올라오는 길이다.

한 낮에는 이렇게 사람과 동키택시로 복잡하고 번잡한 곳이

텅 비어 있으니 완전히 다른 곳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588계단은 내려가는 일은 그다지 운치있고 낭만적인 길이 아니었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당나귀들의 배설물을 피해다녀야했고

지독한 냄새때문에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연신 코를 쥐고 걸어야만했다.

'도대체 여기 왜 온거지?'

혼자 타박도 하면서...

(어떤 냄새를 상상하든 그 이상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결론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무도 없는 구항구에서 혼자 아침바다는 독차지하는 기회가 쉽게 오는 건 아닐테니까.

예전에는 페리가 들어오는 주항구였는데

지금은 페리는 전부 신항구로만 들어오고

이곳은 볼케이노 투어 걑은 로컬 투어를 위한 배들이 주로 정박한다.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지만

배를 손보는 현지인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오르막이라 훨씬 더 힘들었지만

번호가 지워진 계단을 보는 것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bar 중 하나라는 프랑코스 바(Franco's Bar)를 보는 것도 참 좋았다.

(그 전날 이곳에서 차를 마실까 한참을 고민하다 혼자라서 포기했었는데 지금 그게 너무 후회된다)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Fira의 아침은 아주 단백한 수채화 같았다.

 

혼자 흐뭇한 마음으로 숙소에 들어갔더니 조카들이 나를 보너니 깜짝 놀란다.

이유는 하나!

지독한 냄새가 나서...

충분히 이해한다.

내 스스로도 오래 묵힌 두엄더미 위를 구르고 온 게 아닌가 싶었으니까!

후다닥 욕실로 들어가면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피라의 낯과 밤, 그리고 아침을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돼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