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5. 11. 30. 08:40

 

<살짝 넘어갔다 얻어맞았다>

 

일시 : 2015.11.05. ~ 2016.11.18.

장소 : LG 아트센터

원작 : 츠치다 히데오 

번역 : 이홍이

각색 : 김은성

연출 : 김광보

출연 : 유연수, 김영민, 유병훈, 이석준, 유성주, 한동규, 이승주, 임철수

제작 : LG아트센터

 

작년<사회적 기둥>에 이어 올해 11월에도 김광보 연출과 LG 아트센터가 만났다.

그것도 드림팀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김광보 연출의 몹시도 아름다운 8명의 남자배우들과 함께.

(이 8명의 배우를 교차 캐스팅이 아니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것도 신비였다)

작품은,

재미있고 유쾌했지만

단지 유쾌함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횔림과 쏠림이라는 인간의 본성과 그 이면을 유머러스하지만 정확하게 끄집어냈다.

누구 한 명 정상적인 인간도 없지만

누구 한 명 똑똑하지 않은 인간이 없다.

"편가르기"라는 인류의 위대한 대립구조는

모든 이유를 불문하는 막강하고 치열한 "파워게임"이다.

나는 그 사생결단이 순간순간 진저리치게 끔직하고 무서웠다.

단지 가상의 "선" 하나가 생겼을뿐인데

자연스럽게 이 편 저 편이 갈리고,

편이 갈리니 없던 분열도 생기고.

분열이 생기니 희생을 부르는 싸움이 벌어진다.

확실히 "쏠림"은 일종의 "광기"가 맞긴 맞더라.

 

개인적으론 스토리보다는

fade in, fade out 이 명확한 8명의 배우들이 보여준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8명의 배우들 중 배역이 정해졌던 사람은 간수였던 유연수와 한동규 두 사람 뿐이었고

나머지 배역은 모든 배우들이 모든 역할을 리딩하면서 역할을 정했단다.

김영민은 내 안의 치졸함을 최대한 끌어냈다고 말했는데

그 뿐만 아니라 8명의 배우들이 뿜어내는 치졸함은 누구 한 명 우열을 가르기가 힘들 정도였다.

(참 들 못났네, 못났어.... 그랬더랬다....)

김광보 연출의 전작 <나는 형제다>처럼 영화적인 뉘앙스가 풍긴것도 재미있었

무대와 조명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빨갛게 점등되는 좌우 출입 문 위의 불빛과

공중에 매달린 9개의 전등이 위태롭게 보였던건 비단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을거다.

균형감이 묘하게 기웃둥하던 무대도 극의 느낌과 잘 맞아떨어지더라.

 

권력의 줄다리기란 참 무섭다.

그게 교도소든, 직장이든, 학교든, 가정이든.

그리고 그 크기가 크든, 작든 간에.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구허의 마지막 대사가 아직도 메아리처럼 들린다.

......선은 분명히 있었어. 내 마음 속에 있었어.

      지금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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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5. 4. 13. 08:29


<M.Butterfly>


일시 : 2015.03.11. ~ 2015.06.07.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극본 : 데이비드 헨리 황(David Henry Hwang)

무대미술 : 이태섭 

연출 : 김광보

출연 : 김영민, 이석준, 이승주 (르네 갈리마르) 

        김다현, 정동화, 전성우 (송 릴링) / 빈혜경, 김보정 (르네)

       손진환, 유연수 (똘룽) /  유성주, 한동규 (마크) 

        정수영, 이소희

제작 : 연극열전

 

<M.Butterfly>가 돌아왔다.

그것도 초연, 재연 배우들이 전부 다!

삼연의 첫공연, 김영민 르네와 김다현 송을 예매해놓고 얼마나 설래이던지...

무엇보다 오랫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한 김영민을 볼 수 있다는게 가장 행복했다.

그동안 얼마나 무대가 그리웠을지 눈에 선했다.

작년 연말 김광보 연출의 <사회의 기둥들>에서 마주친 김영민 배우와의 아주 짧은 대화가 생각났다.

(일면식도 없는 내가 쑥스럽게 물었는데 특유의 웃음을 보이며 대답해주더라...)

"객석이 아니라 무대에서 뵙고 싶은데...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마세요..."

"네. 곧 좋은 작품으로 찾아뵐께요. 꼭 보러 와주세요"

김영민 배우가 LG 아트센터에서 잠깐 스친 관객과의 짧은 대화를 기억할리 없겠지만

어쨌든 우린 서로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는 무대로, 그것도 <M. Butterfly>로 돌아왔고,

나는 꼭 보러 와달라는 말에 답하듯 그의 첫공연을 보려고 연강홀을 찾았다.

혼자만의 감회이긴 했지만 나는 꽤나 고무된 상태였다.

왜냐하면 그의 복귀작이 꼭 김광보 연출의 작품이었으면 했으니까...

김영민은 확실히 그렇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보다 무대 위에 있을 때가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그답다.

 

 

<M.Butterfly>

이 작품은 어째서 볼 때마다 점점 더 아플까?

특히 폭격처럼 몰아치는 후반부를 견디는건 정말이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나를 속인건 나의 욕망"이라고...

하지만 스스로를 속이고 환상 속으로 자신을 유폐시켜야만 했을 만큼 르네의 사랑은 완벽하고 절박했다..

그래서 그 환상이 깨지는걸 견디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게 완벽한 한 여자를 지켜내는 완벽한 방법이며

그게 모든걸 다 알면서도 비밀을 묵인한 이유라고...

이건... 완벽한 사랑이다.

다른 어떤 것도 감히 끼어들 수 없는 사랑.

기만으로 버텨내는 사랑.

그 절박한 환상을 무너뜨리는 현실 속 송의 모습이 나는 너무나 밉고 원망스럽다.

나는 전적으로 르네를 지지할 수밖에 없기에...

(르네의 환상 속에, 르네의 현실 속에 내가 있다) 

 

김영민 르네는 폭풍같았다.

초반에는 살짝 격양된듯도 보였지만 이내 자신의 호흡과 속도로 끌고가더라.

(그 격양된 찌질함이 초연때와 또 다른 느낌을 줘서 개인적으로 좋았다.)

김영민 르네와 김다현 송의 후반부는

서로 깊게 찌르고, 빠르게 빼는 전쟁터였다.

르네에게 동의하면서 한편으로는 송에게 연민을 느끼는 나를 보면서

<M.Betterfly>의 M은

마담(Madam)도 무슈(Mousieur)도 아닌 나(Me)라는걸 깨달았다.

 

환상 속에서만 살아지는 사랑.

나는 그걸 안다.

M. 버터 플​​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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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4. 4. 4. 08:06

<EQUUS>

 

일시 : 2014.03.14. ~ 2014.05.17.

장소 :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

극본 : 피터쉐퍼

번역 : 신정옥 

연출 : 이한승

출연 : 안석환, 김태훈 (다이사트) / 지현준, 전박찬 (알런)

        이은주, 김지은 (질) / 유정기, 김상규 (프랑크)

        차유경, 이양숙, 노상원, 은경균 외

제작 : 극단 실험극장

 

창단 45주년이 된 극단 실험 극단의 대표 레파토리 연극 <에쿠우스>

2005년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처음 봤던 <에쿠우스>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알런의 김영민과  다이사트 남명렬에 그야말로 꽃히게 된 게.

그리고 연출 김광보 작푸을 챙겨보게 된 게.

그래서 알런을 했던 조재연이 연출과 다이사트로 출연했던 2009년 공연도 챙겨봤다.

(그때 내가 본 캐스팅은 알런은 류덕환, 다이사트는 송승환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은 매번 내게 충격을 준다.

2005년에는 완벽한 매혹이었고,

2009년에는 남창(男娼)같던 말들때문에 충격적이었고

공연이 끝난 후 말들 연기했던 배우들이 그 복장 그대로 벽에 줄지어 서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저급할 수가 없더라.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기획인지를 놓고 정말 엄청나게 씹었었다.

그리고 2014년 세번째 본 <에쿠우스>는 아쉽게도 많이 부산하고 산만했다.

심지어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 장면들도 있어 많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나 이 작품 정말 좋아하는데...)

에매할때부터 성인인증 절차가 있어서 노출 수위가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공연 전에 경고성 멘트도 하더라.

무대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몰래 촬영을 할 경우 조치가  취해질거라고.

 

지현준 알런.

본인이 배우로서 할 수 있는 모든걸 총동원해서 정말 미친듯이 연기한다.

그러데 나는 정말 미안하게도 37세의 지현준이 17세의 알런으로는 도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더라.

일단 보여지는 모습이 소년의 느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숙을 넘어 조로(早老)했고

목소리도 일부러 소년스럽게 내려고 애쓰다보니 부자연스러워서

정신 이상이 아니라 정신지체처럼 보였다.

놀라운건 2005년 김영민 알런을 볼 땐 분명 소년의 이미지를 강하게 느꼈었다.

영화 <은교>에서 박해일 이적요에게 감정이입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의 알런도 딱 그렇다.

필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어쩔 수 없는 이질감때문에 낯설었다.

 

다이사트 김태훈.

나쁘지는 않았지만  다소 과하게 흥분하는 장면들은 의외였다.

알런의 격렬한 정열을 부러워하다못해 불같은 질투에 빠진 사람 같다.

그래서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한 장면들이 오히려 약하게 느껴진다. 

2005년 남명렬이 보여줬던 다이사트.

아마도 내겐 그 모습이 가장 정답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에쿠우스>를 보면서 한없이 심각해지는 가라앉는 것도 싫지만

코믹하게 웃는 것 더 싫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너무 많다.

알렌의 아버지 역이던 김상규는 사투리톤이 너무 많아서 객석이 큭큭 웃었고

알런이 바닷가에서 처음 말을 보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기수는...

개그콘서트의 한 장 면 같아 절망적스러웠다.

알런이 최면상태에서 말을 타는 걸 재연 장면은 너무나 어수선하고 산만하다.

(2005년에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충격적이라 할 말이 없었는데...)

중간에 인터미션 때문에 이야기가 댕강 잘리는 것도 너무나 싫다.

어딘지 치열함은 줄어들고 원시성만 강조된 듯한 느낌.

 

아쉽다. 아쉽다. 너무 아쉽다.

워낙 애정이 깊은 작품이라 더 많이 아쉽다.

다이사트 박사가 세상과 단절된 알런의 자아를 되찾아 주려고 노력했듯

나의 <에쿠우스>도 본래의 자기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고통과 싸워 자신의 세계를 찾았으면 좋겠다.

 

* 온몸을 던져 열연을 보인 배우들에게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왜냐하면 그들은 충분히 아름다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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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3. 5. 20. 08:25

<칼집 속의 아버지>

일시 : 2013.04.26. ~ 2013.05.12.

장소 : 국립극장 백성희장민호극장

대본 : 고연옥

연출 : 강량원

출연 : 김영민, 김정호, 윤상화, 박완규, 박윤정 외.

주최 : (재)국립극단

 

쉽지 않은 작품일거라고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아 작품을 꼭 보겠다 작정한 이유는 국립극단에 대한 믿음과 출연배우에 대한 믿음이 막강했다.

김영민, 김정호, 윤상화, 박완규.

이들을 한 무대 위에서  만날수 있다는 건 거의 전율에 가까운 기쁨이다.

이해력을 총동원해서 몇날 며칠을 소처럼 꾸역꾸역 되새기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러다 결국 두 손을 들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이 작품을 꼭 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작품은 훨씬 어려웠지만

다행히 이해불가까지는 아니었다.

신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꿈과 현실을 오가는 전개로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유머 또한 잃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김영민"을 갈매를 탁월한 선택이다.

배우 김염민은 내겐 "에쿠우스"의 알렌 이미지가 늘 선명하다.

알렌을 할 당시의 그의 나이를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내 눈엔 보여진 그는 확실히 소년의 모습, 알렌의 그것이었다.

김영민의 스펙트럼이란!

참 넓다.

게다가 깊기까지 한다.

소년도 중년도 혹은 노년까지 다 아우르면서 거기에 깊이까지도 품고 있다.

때로는 이지적이고 고집스러우면서도 때로는 어리숙하면서 뭔가 의뭉스런 느낌도 갖게 한다.

솔직히 정체를 잘 모르겠다.

40을 훌쩍 넘긴 사람이 무사의 몸이 되기 위해 저렇게 멋진 몸을 만들었다는 것도 실로 놀랍다.,

확실히 그는 누가 뭐래도 천상 배우다.

이 작품을 쓴 작가 고연옥은

길 떠나는 무사 갈매 역을 애초부터 김영민을 생각하면서 썼단다.

배우와 캐릭터가 자석처럼 서로 끌어 당겼다고.

(배우로서 이런 말을 한 번이라도 듣게 된다면 정말 황홀하지 않을까!) 

 

김영민의 갈매는 역시 좋았다.

꿈 속의 꿈, 현실 위의 현실.

아비를 죽인 원수를 찾아 7년 간 길을 헤매는 지상의 마지막 무사 갈매.

그러나 칼이 무섭고,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게 너무나 싫은 갈매.

세상의 모든 아들은 늘 자신의 아비를 뛰어넘아야만 한다.

갈매에게도 이 원형의 화두가 던져진다.

신화의 세계는, 아비의 세계는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한 세계이며 동시에 신이 신이길 포기한 세계다.

그 세계 속에서 갈매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

"눈앞의 적을 치는 것으로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인가?"

스스로의 질문 앞에 갈매는 답을 선택한다.

자신을 죽임으로서 그 꿈에서, 그 아비에게서, 그 인간들에게서 벗어난다.

멋진 선택이다.

갈매의 선택을 보면서 어쩌면 정말 그가 예언된 지상의 마지막 무사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길에 대한 고민과 질문, 그리고 선택의 이야기.

나는 이 작품을 그렇게 이해했다.

인트로처럼 보여줬던 무대 위 새의 날개짓,

점점 넓어지던 그 원의 흐름을 떠올리며 그 새가 갈매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또 다시 멋지다!

이런 상징적인 의미들.

 

배우들의 연기는 표현이 불가할만큼 엄청났다.

딕션과 연기, 동작들을 보고 있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검은등과 아비의 역할을 했던 배우 김정호의 연기는 신내림의 그것과 흡사했다.

그 많은 대사들을 어떻게 그렇게 완벽한 딕션과 호흡과 타이밍으로 연기할 수 있을까?

그건 일종의 전율이었고 신비였다.

독특한 필모그라피를 가진 참 대단한 배우.

지금껏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다섯편 정도 본 것 같은데

매번 감탄하게 된다.

특유의 톤과 말투를 작품 속에 매번 다르게 잘 녹여낸다.

이 작품 속에서도 한 인물을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표정과 말투로 연기해서

마치 여러 명의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윤상화의 능청스런 연기도,

박완규의 허풍스런 액팅과 연기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작품의 힘보다 배우들의 힘과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던 작품이다.

이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이 작품을 지금만큼 이해하진 도저히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진심으로 이 배우들이 고맙고 또 고마웠다.

나의 해설자들이여!

그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5. 21. 06:00

<M.Butterfly>

 

일시 : 2012.04.24. ~ 2012.06.06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극본 : 데이비드 헨리 황

연출 : 김광보

출연 : 김영민(르네 갈리마르), 김다현, 정동화(송 릴링)

        손진환, 정수영, 한동규, 이소희, 김보정

제작 : 연극열전

 

개인적으로 김광보 연출을 무지 좋아해서 그가 만드는 작품은 꼭 챙겨보는 편이다.

게다가 그가 연출하는 작품에 김광보의 뮤즈(?)라고 할 수 있는 김영민까지 출현한다면 그 작품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must see" 해야 할 필수 항목이 된다.

실제로 이 작품을 연출하기로 결정한 후 김광보 연출도 "르네 갈리마르" 역에 김영민을 가장 먼저 떠올렸단다.

김광보, 김영민.

역시 환상의 콤비다.

<내 심장을 쏴라> 이후 2년만에 네번째 연극열전이 선택한 두번째 작품에서 이 콤비가 다시  만났다!

작품을 보기 전부터 솔직히 나는 충분히 매혹당했다.

 

연극 <M.Butterfly>는 프랑스 외교관과 중국 경극 배우 사이에 벌어졌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86년 전직 프랑스 영사 버나드 브루시코는 자국의 법정에 서게 된다.

죄명은 그가 사랑한 중국 경극 여배우에게  국가 기밀을 유출한 협의다.

그런데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그가 사랑한 여자가 사실은 중국의 스파이었고 남자였다는 사실이...

작품이 공연될거란 소식을 들었을때

과연 스파이 송 릴링 역을 누가 하게 될까 궁금했었다.

꽃다현으로 불릴만큼 이쁜 배우 김다현의 캐스팅은 예상했었지만

배우 정동화는 개인적으로 좀 의외의 캐스팅이었다.

그래서 그 의외의 캐스팅을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해설자이자 작품의 중심 인물은 르네 길마르.

자칫하면 어수선하고 산만하게 느껴질 인물은 김영민은 역시 멋진 집중력으로 감당해냈다.

철없이 떼쓰는 소년의 이미지와 지적인 청년의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지는 아우라를 지닌 배우 김영민.

특히 후반부 르네 갈리마르가 감옥에서 깨진 거울을 보면서 얼굴에 화장을 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 대사들, 그 감정들.

스스로 자신이 사랑한 버터플라이가 되는 모습이 눈물이 날만큼 처연했다.

나는 정말이지 무대 위에서 빛나는 김영민 특유의 선량한 눈빛과

무심한듯 감정을 담는 말투가 너무나 좋다.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느 틈에 빈틈없이 작품 속을 꽉 채우는 그 엄청난 존재감이 믿어지지 않는다.

르네 갈리마르가 송 릴링에게 치명적으로 매혹당한 그 이상의 매혹이다.

김영민의 몰입과 집중을 보면서 나는 갈리마르가 이해됐다.

그에게 송 릴링은 그저 자신이 사랑한 한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송 릴링 정동화.

솔직히 그의 여장 모습은 그가 인터뷰에서 말 한 것처럼 다분히 트렌스젠더적이었다.

때론 미안하지만 섬득할만틈 괴기스럽기도 했다.

(외모로 따지자면 김영민이 훨씬 더 이쁘고 얼굴 선도 더 고혹적이다)

일부러 여성스럽게 내는 목소리는 어색하고 몸짓은 작위적이었다.

사실 조금 실망하려는 중이었다.

역시 김다현 송 릴링으로 볼 걸 그랬나 싶었다.

그런데 2분 간의 변신 후 정동화의 모습은 너무나 압도적이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의 복근도 한 몫 했을테지만

솔직히 정동화의 송 릴링은 황홀했다.

그런 작품이 있다.

앞부분에 비해 뒷부분이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이야기가 느슨해지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처음엔 그저 밍밍하고무난하다 후반부에 극적으로 강렬해지는 작품이 있다.

김영민, 정동화의 <M.Butterfly>이는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었다.

(두 사람 참 잘 만났다.)

정동화의 마지막은 여자의 맨얼굴을 처음 보는 것 같은 낯섬과 신비감이 있었다.

역시 멋지다, 이 녀석!

그리고 두 배우의 조합은 내겐 묘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서로 신뢰하는 눈빛을 보면서 관객 입장에서 진심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두 배우뿐만 아니라 정수영, 손진한, 한동규, 이소희, 김보정의 열연도 감동적이었다.

처음보다 보면서 점점 괜찮았던 작품.

그리고 보면서보다 보고 난 후가 더 괜찮았던 작품.

가볍지만 진중한 작품.

우수꽝스럽지만 심오한 작품.

<M.Butterfly>는 내게 그랬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0. 21. 05:52


일 시 : 2010.10.07 ~ 2010.10.24.
장 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원 작 : 정유정
극 본 : 고연욱
연 출 : 김광보
출 연 : 김영민, 이승주, 이남희, 윤영걸, 손진환, 이용근, 
         문욱일, 박노식, 강   일, 윤다경, 정승길, 권택기, 
         백지원, 최현숙, 김송일, 김순애, 최하영

제 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었던 정유정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인데 연극으로 만든다는 소리를 들어 기대하고 있었다.
내년 개봉 예정으로 영화로도 만들고 있다는데...
특별한 느낌을 갖게 했던 건 공연하는 장소 때문이기도 하다.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드라마센터에서 다른과랑 연합으로 철학 수업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졸업하고 거의 10년이 지난 후에 드라마센터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연극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전무송, 전양자, 박상원이 출연했던 <세일즈맨의 죽음>이었다..
그때도 학교는 이미 용인으로 이전했지만 드라마센터 여전한 모습이라 놀랐었다.
그런데 이번에 찾은 드라마센터도 여전히 똑같더라.
로비는 리모델링을 해서 깔끔해보이긴 했는데
극장 내부는 의자가 교체된 것 말고는 별로 바뀐 게 없다.
특히나 로비에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쌀쌀한 날씨에 밖에서 기다리느라 많이 추웠다.
연극도 기대됐지만 오랫만에 모교를 찾은 마음에 구석구석 돌아다녀봤다.
참 많이 변했다.
창작 수업을 듣기 위해 숱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던 계단들과
축제때마다 각과의 천막으로 안 그래도 좁았던 뒷뜰(?)이 빽빽해졌던 모습.
또 거기서 전을 부치고 골뱅이를 무치돈 어설픈 모습들이 떠올라 웃었다.
(그때 나 하트 모양 전 부쳐서 팔았는데...)
매점이 있던 자리는 황량해졌고...
하긴 내 추억과 기억도 황량해지긴 했다.
뭐 벌써 20여 년이 다 되가고 있으니...



연극은 출연 배우만으로도 탐이 났다.
무대는 정신병원인 수리 희망 병원 502호
오랫만에 무대에서 보는 김영민이 주인공 이수명으로
신인 이승주가 또 다른 주인공 류승민으로 나온다.
거기다 연극 이(爾)의 연산군 이남희가 최간호사로
"향숙이 이뻤다"라는 대사 하나로 존재감을 드러낸 배우 박노식,
개인적으로는 연극 <짬뽕> 이후에 정말 오랫만에 본 윤영걸,
그리고 손진환, 이용근까지...
어디서 이런 배우들을 다 모았나 싶게 출연진이 좋다.
아마도 김광보 연출의 힘이 컸으리라.
그의 섬세한 연출은 연극계에 이미 정평이 나있다.
거기다가 최상의 콤비라고 불리는 고연욱 극본과의 세 번째 작품.
김광보의 연출은 항상 그렇듯 나쁘지 않다.
애매한 극장때문에 공간을 이용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게 솔직히 치명적이다..
그걸 스크린으로 어찌어찌 대처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조잡한 스크린 때문에 오히려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자주 고민하게 한다.
비전문가적인 소견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벽 전체를 스크린처럼 이용하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다.
페러그라이딩 장면은 극에서 아주 상징적이고 의미있는 부분인데
스크린에 무더기로 날아가다 점점히 사라지는 모습은 너무 작위적이라 보기가 불편했다.
그래도 스크린이 요트 장면에 비하면 이건 양반이다.
솔직히 이 장면은 대략 난감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열악한 무대 상황을 감안한다면 나쁘지 않았다.
이 연극.
참 극과 극의 평가가 엇갈리는 작품이겠다 싶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극 자체가 산만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남희가 연기한 최간호사의 어투가 거슬렸을지도.
그런데 나는 최간호사 캐릭터가 너무 맘에 들었고 극에 딱 맞는 어투였다고 생각한다.
사무적이고 변화가 전혀 없는, 시종일관 같은 톤을 유지하는 대사들,
어떻게 보면 첫무대를 선 초보 배우같은 어투기도 하다.
그런데 극의 중간 중간 이 어투들이 아주 살짝 무너질 때가 있다.
대비되는 그 순간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배우 이남희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정말 너무 심하다 싶게 어려 보이는 배우 김영민.
불혹의 나이에 외형적으로 25살의 공황장애 역할이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본인도 이런 얼굴이 한방에 간다고 걱정하던데
나도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도대체 배우 김영민이 언제쯤에 나이가 들어보일지가...
<추적>에 이어 두번재 연극 무대였던 탈렌트 이승주의 연기도 놀라웠다.
기라성같은 연극 배우들 앞에서 제 몫을 너무 잘해내더라.
자칫하면 코믹하고 우습게 보일 것 같은 엔딩의 패러그라이딩 장면도
본인이 워낙 진지하게 연기해서인지 몰라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딕션과 톤이 좋다.
드라마로 돌아간다면 두 편의 연극이 확실히 그에게 좋은 자산이 되주겠다 싶다.


전부 21명의 배우들이 출연한다.
이 중에 제대로 된 대사조차 없는 배우들이 상당수다.
대사없이도 2시간 동안 계속 정신병자 연기를 해야했던 배우들.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만큼 그 모습 자체가 감동적이었다.
연극은 기대했던 것 만큼 잘 나오진 않았다.
결말은 다소 신파적이이고 매우 교훈적(?)이다.
절규하듯 소리지르는 수명의 대사!
"날 쓰러뜨리고 싶다면 내 심장을 쏴라. 그렇지 않으면 난 절대로 안 죽어!"
그래도 이 소설 자체를 연극으로 만든 것 자체가는 정말 장하다.
영화는 모르겠지만 연극적으로 풀어내기가 참 난해했을텐데...
아마도 연출의 힘, 배우의 힘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이 연극에 김영민이나 이남희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객석이 휑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왠지 씁쓸하다.
아무래도 내게도 "트위스트 어게인"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심장이 뛰는 소리!
나도 정말이지 미치게 듣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2. 19. 00:09


일시 : 2010.02.05 ~2010.02.21
장소 : 아크코 예술극장 소극장
원작 : 데이비드 해어
연출 : 최용훈
출연 : 윤소정(에스메), 서은경(에이미), 김영민(도미닉), 
        백수련(이블린), 이호재(프랭크), 김병희(토비)


이 매력적인 연극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할까?
윤소정, 김영민의 캐스팅만으로도 나는 탐이 났었다.
오랫만에 온 몸이 제대로 호사를 누리겠구나 기대하며 기다렸고 그리고 확실히 그랬다.
연극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성껏 꾸며 놓은 무대를 보면서 나는 혼자 "이쁘다!"를 연발했다.
확실한 뭔가가 있으리라는 떨리는 예감까지....


연극 <에이미>는 전부 4 막으로 되어 있다.
짧은 피아노 연주로 시작되는 각각의 막은
시간의 변화를, 세대의 변화를 그리고 논쟁과 원초적인 다툼을 담고 있다.
제목만으로는 참 순한 연극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참 치열하고 아프고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연극이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 연극은 모녀간의 논쟁, 그리고 사위와 장모간의 논쟁이다.
원만한 관계가 펼쳐지지 않으리란 건 상황만으로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표면상의 치열함보다 극의 내면이 담고 있는 치열함이 훨씬 더 치명적이고 날카롭다.
폭로와 논쟁, 그리고 결별.
예술가의 용기와 평론가의 질투.
장모님(에스메)을 연극에 빗대 고상하고 우아하게게 포장하지 말라며
연극의 종말은 운운하는 평론가 사위 도미닉.
천박하고 비열한 성공과 권력을 혐오하는 예술가 장모.
선입견과 편견으로 이루어진 대화는 피가 튀는 전쟁터보다 오히려 더 살벌하다.

 

뭐랄까?
처음엔 분명 연극으로 바라봤었다.
그런데 연극이 다 끝난 후엔 도저히 연극으로만 보여지지가 않았다.
연극 안에서 도미닉은 비난한다.
"연극이라는 자폐적인 작은 예술세계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철저히 유리되어 있다"고.
연극으로 대변되는 고전적 예술 매체를 통해 자신을 은근이 경멸하는 어머니를 비난하는 말이었지만
이 말은 지금의 공연예술을 향한 일침인 동시에
공연물 속에 빠져 살고 있는 마니아를 자처하는 자폐적인 관객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를 향한 말이란 뜻이다. 나 역시도 자폐적 성향이 너무 다분하기에...)
에스메와 도미닉의 관계는 극이 진행됨에 따라 여러 차례 뒤집힌다.
(그 둘 사이에서 에이미만 정말 죽어라고 죽어난다. 급기야는 실제로도...)
은근히 치명적으로...
그러나 그 역전은 또 아니러니하게도 도저히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고 믿었던
두 사람의 관계 회복을 위한 하나의 열쇠이기도 하다.



에스메와 도미닉으로 대변되는 영화(영상매체)와 연극의 대립과 반목.
그리고 과거와 현대의 충돌은
어딘가에서 결국은 만나게 될 몰입 혹은 화합의 길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모든 예술적 행위는 어쨌든 "몰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까.
그 둘은 어쩌면 에이미의 바람처럼
결국은  다른 시선(Amy's view)를 갖게 될른지도 모른다.
도미닉이 에이미를 배신한 게 인생의 한 장이었고
이제 그 장도 모두 끝났듯이,
다른 세대(매체)의 시작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세상에 이런 화해도, 이런 예고도, 이런 시작도 있을 수 있구나 싶어 눈이 매웠다.



누군가는 이 연극의 네 개 막을 "맛"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1 막은 봄나물로,
2 막은 단단한 육질이 느껴지는 고기로,
3 막은 진한 커피로,
그리고 마지막 4 막은 박하사탕으로...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아주 적절하고 그리고 동시에 아름다운 비유다.



윤소정, 김영민, 이호제, 서은경, 백수련.
그들이 만들어 낸 무대는 아름다웠고 풍성했다.
(나는 소위 젊은이로만 가득한 무대가 싫다. 
 그곳엔 어쩐지 시간도, 사람도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제 나이에 맞는 배우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는 건
 오랜 가업을 이어 받은 솜씨 좋은 장인의 맞춤옷을 소유하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들에게서 정성스런 위로를 받았노라 고백하는 중이다.
극의 마지막 세례의식을 연상시키는 장면.
극중극의 형태였지만 그 차갑고 조심성 가득한 물줄기 속에서
묘한 안도감과 씻김을 느낀다.
에스메의 마지막 대사가 지금도 내 귓가에 멈춰있다.
"시작하는거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2. 4. 06:29
 "저 소년은 오직 너제트라는 말만 포옹합니다.
  저 놈의 말 대가리를 제가 뒤집어쓴 것 같습니다.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연극 <에쿠우스>의 시작은 이렇다.

얼마나 가슴 떨리게 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바라봤던 연극인가...
내가 기억하는 <에쿠우스>는
"중독"과 "탐욕"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대학로 세번째 연극열전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으로 2009년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많이 두근거렸고 그리고 첫사랑을 재회하는 것처럼 마냥 떨렸다.
송승환과 조재현의 다이사트.
젊은 시절 알런으로 무대 위에 올랐던 그들의 감회에
주책없이 동참하기까지 했다.
김태우와 류덕환, 그들의 알런이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2005년 김영민 알런에 남명렬 다이사트를 신화처럼 그리고 아직도 현실처럼 생생하고 기억하고 있는 나...
5년만에 보게 된 <에쿠우스>는
그러나 내겐 황무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피폐한 모습이었다.
코믹버전의 에쿠우스를 보면서 10분의 뜬금없는 인터미션에도 불구하고
지루함과 오랜 싸움을 해야만 했다.
조재현 연출의 <에쿠우스>는
그전까지 봤던 집요하고 끈질기고 그리고 실험적인 공연을
과감하게(?) 시장판으로 내돌리기로 결정한 듯 하다.
연극의 대중화를 위해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열극열전 시리즈는
아마도 조재현이라는 배우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으리라.
그래, 그건 정말 인정한다.
그리고 그의 노력과 열정에는 누가 뭐래도 기립박수를 보낸다.
물론 연극열전의 작품들이 전부 괜찮았던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뮤지컬의 대중화에 밀려 침체기에 놓여 있던 연극의 유료관객 수를 엄청나게 늘려놨다는 건
내게도 대단한 이벤트요 혁신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그래도...
에쿠우스를 시장판으로 내돌린 그의 연출에
나는 너무도 너무도 화가 치민다.



송승환, 류덕환
스크린을 압도한 두 배우의 연기는
알몸에 가까운 근육질의 8마리 말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고 파괴된다.
(2005년에 비해 말 한 마리가 늘었다. 5년 후에는 9마리의 말이 등장하게 되는 건 아닐까???)
"정열을 파괴할 순 있어도 창조할 순 없다"
다이사트의 말이 무색할 만큼 알런의 열정은 그 전에 이미 사라졌고
(그래도 이 연극에서 제일 눈에 띄는 사람이 바로 류덕환이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알런이 어쨌든 담겨있다. 행동은 모호했지만... )
다이사트는 마치 TV 브라운관을 통해 드라마를 시청하듯 알런을 향해 내내 심드렁한 모습이다.
(여차하면 체널을 돌릴 기세다)
공연 시작 전에 송승환 다이사트가 먼저 나와 혼자 보란듯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
뭐랄까, 소문 무성한 무당집에서 바람잡이가 순서표를 나줘주며 손님들을 떠보는 액션 같이 불쾌했다.
그래도 아버지에 비하면 다이사트의 불쾌감은 그나마 봐줄만 하다.
철저한 금욕주의의 알런의 아버지는
"개그콘서트"에 출연해도 단박에 인기를 끌 수 있을 만큼 잔인하게 코믹하다.
코믹한 금욕주의자라니...
때때로 아버지로 인해 웃어대는 관객들.
나는 그런 웃음을 이끌어내는 연극이 너무 못마땅하고 너저분하고 난잡하게 느껴졌다.
알런의 아버지는 결코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의 금욕이 비록 겉모습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그런 이유로 더 철저히 냉소적인 비웃음을 안겨줬어야만 했다.
그래야 극의 후반부 포르노 영화장에서 아들을 마주치는 장면에서 이중적인 인간의 근본과의 대면을 보며
관객들 또한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듯 진저리를 쳐야 했다.
그러나 2009년 에쿠우스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발정난 인간에 불과했다.
그는 아마 꿈에서도 금욕을 생각하지도 못할 인물이다.
그렇다면 알런의 어머니는?
교사출신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는
과연 자신의 아들에 대해 감정을 가지고 있기는 한건가?
2005년도에 나는 어머니에게서 어쩌지 못하는 "애증"을 느꼈다.
지금은 제멋데로 노는 아이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는 피곤에 찌든 부모를 보는 느낌이다.
알런의 부모들은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 걸까?



알런을 다이사트 박사에게 부탁하는 판사는.
아무래도 직업이 잘못 표기된 것 같다.
내가 느낀 그녀의 모습은 다이사트 박사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는 여비서에 불과했다.
늘씬한 다리를 보란 듯이 꼬고 앉아서
심각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태도로 알런을 부탁하고 종종 찾아와 경과를 듣는 그녀는
당황스러웠고 깊이감이 없었다.
마치 가십기사를 대하는 여비서의 포즈 그대로였다.
그녀가 구하고 싶었던 건 불쌍한 알런의 영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판사가 유부남 정신과 의사를 상대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조용히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다른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돈많은 재벌 노인네라도 소개시켜줘야만 할 것만 같다.



...... 혼란스러웠다. 연극 《에쿠우스(Equus)는 비극인데 관객은 숭고한 주인공이나 좌절이 아니라 다른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넋을 낚아챈 건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말(馬)들이었다. 절대 다수인 여성 관객은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때 온통 말 이야기뿐이었다.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근육질의 말 같았다. 그렇다면 연극이 변한 것인가, 관객이 달라진 것인가...... 이 연극은 미완성이다. 비극을 사랑한 관객은 실망했을 수도 있다. 말들을 강조한 이번 《에쿠우스》는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서성이는 것 같았다. 대중성을 얻었지만 작품의 정신까지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즐기다가도 서글퍼졌다......

누군가 이런 기사를 썼다.
그리고 나는 전적으로 이 기사에 동의하며
이렇게 동의해야만 하는 게 너무 화가 난다.
"과연 나는 누구를 숭배해 본 적이 있는가?"
알런을 치료하며 스스로 던지는 다이사트의 질문은 공허해지고 말았다.
더불어 알런이 미치게 부럽다고 말하는 그의 고백 또한 정당성을 잃었다.
말의 성전에서 의식을 치르고 널브러진 알런을 부등켜 안으며
내가 널 치료해주겠다고 했을 땐
"너나 잘하세요!"라며 친절한 금자씨가 되어 말해주고 싶었다.
피곤에 찌든 다이사트가 자신의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건 과연 뭘까?



2005년 내가 그토록 정열적으로 봤던 에쿠우스는
성적인 판타지를 주는 애로물도
턱없는 웃음을 주는 코믹물도 아니었다.
내 기억 속 알런과 너제트가 의식을 치루듯 달리는 장면은
성스러웠고 장엄했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떡칠(?)을 하고 나온 건장한 보디빌더들이 취하는 과한 동작들은
경박한 섹스코드를 눈 앞에 들이대는 것 같아 불쾌하고 난감하기까지 했다.
남창처럼 외부에 전시된 썬텐된 그들의 몸을 보며 나는 연극 <에쿠우스>의 비극성을
연극이 끝난 로비에서 느닷없는 느꼈다.
(그나마 그들 얼굴이 두꺼운 분장으로 덮여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맨 얼굴로 그렇게 서있었다면 얼마나 서로 난감했을까?)



2005년 포스터를 찾아 보면서 
같은 작품도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실감하며
나는 심각하게 <에쿠우스>에 대해 현재진행형으로 당황하고 있다.
어쩌면... 어쩌면...
김영민 알런과 남명렬 다이사트가 너무 강렬했기에 내게 <에쿠우스>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결코 그 고정관념을 나는 결코 깨고 싶지 않다.
2005년 <에쿠우스>는 내겐 분명 구원같은 작품이었는데
2009년 <에쿠우스>는 내겐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 연극에 진심으로 칭클창클을 메고 싶다.
너접한 푸줏간을 다녀온 느낌이다.



    -----  only 퍼포먼스 <에쿠우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9. 28. 00:24
뮤지컬계와 영화계의 영원한 블루칩 조승우!
그가 군입대 전 마지막으로 찍은 영화가 개봉됐다.
<불꽃처럼 나비처럼>
명성황후 민자영과 그의 호위무사였던 무명과의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
어린 시절 천주교박해로 눈 앞에서 어미를 잃은 아이는
스스로 이름을 버리고 무명(無名)으로 살아간다.
그에게 나타난 붉은 꽃 자영(紫英)



조승우!
천가지 표정을 가진 배우.
이 영화에서도 그의 천진한 표정과 개구진 장난꾸러기 표정
한 여자를 위한 아픈 그리움과 사랑, 안타까움을 담은 표정까지
모든 절실함을 다 보여준다.
이런 표정과 눈,
어떤 마음으로 표현한거지?



아무래도 그는 배우로써 한 시대를
이 작품으로 마무리하려는 모양이다.
궁금하다.
제대를 하고 난 후
배우로써의 그의 한 시대는 또 어떻게 시작될지...
(그래도 그 칼은 좀 그랬어.
푸주간을 떠올리게 했거든.
긴 칼과 창들을 감당하기에 그 칼은 심하게 짧았는데 비현실적으로 잘도 싸우던 무명 ^^
그리고 왜 무명의 머리카락만 두발자율화가 허용된거지?
궁궐에서도 휘날리던 웨이브진 그의 머리...
너무 특권이다 싶다 ^^)

 

두 가지에 심하게 감탄하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배경
무명의 집이 있던 창녕의 우포늪과 두 사람이 함께 찾아간 바다 신두리 해안 사구
(엔딩 크래딧 마지막에 나온 촬영 장소들...
 부안 내소사, 해남 고산 윤선도 유적지, 파주 소령원, 강골마을, 추원당...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그리고 이선희가 부른 메인 테마 "불꽃처럼 나비처럼"
너무나 오랬만에 들어본 이선희의 목소리
한때 그녀는 나의 우상이었는데...... 



몇 가지에 많이 실망하다.
뇌전과 무명의 결투장면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던 화려하다 못해 황당한 CG의 압박
(김용균 감독은 말했다. 헐리우드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CG라고... 그런데 난 왜 웃겼지???
 무명과 뇌전의 환상의 페어 스케이팅까지... 제발 헐리우드에 내놓지 말았으면....)
경망스러움까지 안겨줬던 나비의 꿈(결국 이것도 CG)은
급기야 칼 끝에 절단되는 비장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중간중간 스토리가 붕 뜬다.
무명과 자영의 멜로에만 너무 집중한 듯.
앞과 뒤만 촘촘한 그물망을 보고 있는 느낌.
그 성긴 그물망 사이로 너무 많은 것들이 빠져 나간다.
그래서 그 틈으로 지루함까지도 마구마구 넘나든다. 
순간순간 코믹물과 에니메이션으로 넘나드는 장르 전환까지...
이건 결코 누구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을텐데...
배우도, 감독도, 관객도......



눈에 담긴 한 사람.
무사 "뇌전" 역의 배우 "최재웅"
조승우와 고등학교때부터 절친이었다는 그의 첫 영화.
대원군의 절대적인 신복 뇌전은 그에게 참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그리고 그의 딕션은 끔찍하게 명확하다.
감정과 표정연기까지 그는 무사로써의 역할을 너무 잘 해냈다.
총을 온 몸으로 막아낸 그가 자신을 일으켜준 무명에게 칼을 건네며 했던 말
"친구! 너의 칼은 즐거웠다."
그 표정,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마지막 모습만큼이나 꼿꼿했다.
연극과 뮤지컬을 이어 그의 모습을 화면을 통해서도 계속 보게 되지 않을까?

고종 역의 "김영민"
그는 참 묘한 얼굴의 배우다.
소년같기도 하고, 능청스럽기도 하고, 비밀스럽기도 하고
때론는 야비한 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의 특유의 눈매와 입매가 영화 속에 잘 스며들어있다.
그의 고종을 상상하지 못했는데...
이런 모습이었구나...



"두려움이 여기까지 전해집니다"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는 명성황후에게 무명이 토해낸 말.
"두려워마시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니... 나만 믿으시오"
정말 그랬었으면 좋겠다.
국모로 일본인에게 비참하게 죽여질 운명인 그녀 앞에 누군가 나타났었다면......
그들에게 말했었다면......
"내가 여기있는 한 더이상 한발자국도 못움직인다"
차마 쓰러질 수 조차 없었던 그의 죽음 앞에
그녀 또한 말했었다면..... 
"나는 너희들이 두렵지 않다.두렵지 않다.
나를 잊지 말라. 나는 조선의 국모 민자영이다"



"아무도 찾지 못할 사람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했던 같은 말.
"후께서 찾지 못하시면 살아 무엇하겠습니까?'"
아무도 찾지 못할 사람...
사실은 지금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다.



일생을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아간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
실제로 명성황후의 호위무사였던 홍계훈 장군
그에게 정말 이런 은밀한 사랑이 있었을까?
어쩌면 그랬을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09. 8. 20. 05:45
2009년 9월 24일 개봉하는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김명민 주연의 <내사랑 내곁에>와 함께
무지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던 작품
<와니와 준하>, <분홍신>을 만든
김용균의 감독의 새 영화
조승우와 김용균 감독의 인연은 2001년 <와니와 준하>가 그 시작이었다. ( ---> 참 좋은 영화였는데....)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조승우의 영화 중 하나.
<후아유>와 <와니와 준하>, <H>, <클래식> ^^

 


연기 정말 잘하는 두 배우가 만났다.
수애와 조승우...
조선의 마지막 황후이자 비운의 여자였던 명성황후
그리고 그녀를 지키는 호위무사의 숨겨진 이야기

 

세상에 존재를 알리지 않은 채 자객으로 살아가던 "무명(조승우)"은
어느 날, 목표물을 제거하기 위해 찾은 곳에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피로 물든 자신의 삶과 너무나 다른 여인 "자영(수애)"
그녀를 보게 된 무명.



하지만 그녀는 이미 황후로 간택되어 궁으로 들어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며칠 후,
고종과 자영의 혼례는 예정대로 치러지고,
무명은 그녀를 가질 수 없다면
그녀를 곁에서 끝가지 지켜주리라 다짐하고 호위무사의 길을 택해 궁으로 들어가는데....



무명과 자영의 삶.
왜곡일지라도, 단지 영화일지라도
정말 역사의 어느 한 때에 
비밀처럼 스친 그런 기억 있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 본다.
비운의 여인에게 잠깐이나마
그런 가슴 뛰는 설렘이 있었기를....



영화 개봉을 기다리며,
쓰러져가는 조선의 마지막 국모 명성황후의 삶보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여인이고팠을 여린 민자영의 삶이 떠올라
왠지 아득해진다....



조승우가 출연하는 영화의 특징 하나!
뮤지컬 배우 혹은 연극배우가 꼭 나온다는 사실!
이번에도 대원군의 일급 무사 역에 뮤지컬 배우 최재웅이
고종역에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천재 지휘자 정명환으로 유명해진 연극배우 김영민이 출연한다.
두 분 다 참 연기 잘하는 배우이자 무대에서 빛이 나는 배우들이라
이 영화가 더 기다려진다.
그리고 대원군 역에는 역시 연기 잘하는 배우 천호진.
추석 개봉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게
어쩐지 억울해지려고 한다....


          대원군 : 천호진                       고종 : 김영민                       무사 : 최재웅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