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7. 2. 06:01
전작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래서 이 책도 선듯 손에 잡혔는지도...
넬레 노이하우스.
평범한 아줌마에서 일약 독일의 스타 작가가 된 그녀는,
아마 지금 무지 행복에 겹겠다.
한 우물을 이렇게 오랫동안 끈질기게 파면 결국 물을 보긴 보는 구나...
(진심으로 부럽다~~)
어쩌다 우리나라에는 순서가 마구잡이로 출판이 되긴 했지만
넬레 노이하우스가 쓴 타우누스 시리즈 4 권 중에 두번째에 이야기다.
<미움 받는 여자>, <너무 친한 친구들>, <깊은 상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4 -> 3 -> 2 ->1 도 아니고 출판순서가 참 개념없다.
다음엔 아마도 <미움 받는 여자>가 출판되는 모양인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책의 장르만큼이나 출판 순서도 미스터리다.


재미있는 건 넬레 노이하우스가 이 책을 자비로 출판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게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린 거다.
독일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보다 더 많은 판매고를 올렸고
더불에 점차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중이다.
더 어이없는 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수사반장 보텐슈타인과 여형사 피아 콤비가
멋지고 잘생긴 선남선녀들도 아니라는 사실!
이 두 사람을 제외하고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 다양함만큼이나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아마도 이 두사람이 잘난 것 없는 이 두 인물에게 쉽게 동화되는 모양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일단 읽기 시작하면 한 번도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추진력도 대단하다.
두 권의 시리즈를 읽고 난 느낌은
넬레 노이하우스란 작가가 상당히 박학다식한 인물이라는 거!
전문적인 지식이 나오는 분량도 상당하고
시대의 이슈 등을 이야기 속에 끌어들이는 능력도 대단하다.
작가라는 건 아무래도 이렇게 제 7의 감각까지도 전부 열려있려야만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인간의 진화는 "욕망과 탐욕"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하나의 사건은 하나의 욕망 때문이 아니라
여러 욕망이 부딛치면서 더 큰 미궁과 비밀 속으로 위장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에게 인정받는 고등학교 교사이자 환경운동가은 "파올라"의 죽음 역시도
타우누스 주민들의 욕망과 탐욕이 그 원인이자 결과다.
누구도 믿어서는 안되고 누구라도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하나를 알고자 한다면,
그보다 몇 배는 더 큰 다른 것들과의 대면을 각오해야 한다.
넬레 노이하우스는 좀처럼 실마리를 쉽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2권쯤 읽고 나서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다음 책이 나왔을 때 덜 흥미로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느낌은 오랫만에 꽤 괜찮는 미스터리 시리즈가 탄생한 것 같다.
멋지다! 이 독일 아줌마!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20. 05:51
SBS 인기 라디오 "두시 탈출 컬투쇼"의 연출자란다.
소설을 쓴 이재익.
그리고 이 책이 벌써 그의 다섯번째 소설책이라고 한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고 "질주", "목포는 항구다"의 시나리오 작업도 했단다.
고교시절에는 록 그룹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이기도 했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장르에 대한 벽이 허물어졌어요. 소설가들은 본인이 쓰고 싶은 걸 정해서 쓰잖아요. 시나리오는 일단 계약을 하고 나면 원래 장르가 무엇이었든지와 상관없이 멜로, 호러, 논픽션, 자유자재로 각색이 돼요. 소설을 쓰며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벽들이 허물어지고 나니까 장르에 대한 두려움이나 선호도 사라지더라고요. 이번 소설집에도 판타지, 호러, 멜로 등 다양한 장르가 담겨 있습니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에요."
한마디로 전방위적인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의 글은?
역시나 전방위적이고(?) 우주적이고(??) 다채롭다.




모두 다섯편의 소설을 담았다.
<카시오페아 공주>, <섬집 아기>, <레몬>, <중독자의 키스>, <좋은 사람>
판타지에 호러, 맬로도 있고 적당한 로맨스도 나온다.
금방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내게는 일종의 killing time 소설이었다.
작가 자신도 본인은 문학적인 평가를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는다고 했다.
쓰고 싶은 걸을 쓸 뿐이라고...
어쩌면 꽤나 거창해야만 문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전 체하는 마음에 한마디를 해준건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소설은 아니다.
단지 손에 잡혀서 읽기 시작했고
시작했으니 끝까지 읽은 소설이다.
첵의 뒷표지의 말처럼 몽환적이거나 환상적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오히려 내겐 오르한 파묵이나 주제 사라마구의 글들이 환상적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익이라는 작가의 전방위적인 상상력은 인정하고 싶다.



일종의 영화 시놉 같은 느낌이랄까?
영화 시나리오도 다수 썼다니까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감각적인 소재들을 식상하기 않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만들어가긴 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장면 어디 영화에서 본 것 같다는 데자뷰를 자주 겪게 된다.
어쩌면 선입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소일삼아 설렁설렁 두어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책.
그렇지만 이 사람의 다른 책은 미안하지만 다시 찾아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만원의 책으로 10만원의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는데
솔직히 나는 본전치기도 못한 것 같아서...
돈주고 산 책으면 좀 억울했을 같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10. 5. 05:24

<환상의 책> - 폴 오스터

 환상의 책

폴 오스터...
참 매력적이고 그리고 신비감 가득한 미국 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와 터키의 국민 작가 “오르한 파묵”을 자꾸 비교하게 되는데요, 두 사람 모두 신비적 탐미주의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오르한 파묵”은 환상 속에서 현실을 이야기한다면 “폴 오스터”는 정확히 그 반대의 방법을 택하죠. 현실 속에서 환상을 이야기하는...
그러면서도 두 작가의 이야기 방식은 참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오르한 파묵”이 지적이고 명석한 백과사전적인 글을 치열하고 아름답게 쓴다면, “폴 오스터”는 가십거리스러운 사건을 잡아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현실감을 갖게 만듭니다.
둘 다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낸 작가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두 사람의 책을 우리나라에 번역하는 번역가도 멋진 한 쌍의 페어를 연출합니다.
“오프한 파묵”에게는 번역가 “정영목”이, “폴 오스터”에게는 번역가 “황보석”이...
아마도 두 이국의 작가가 다른 번역가들을 만났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느낌을 전달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 감히 단정합니다.

폴 오스터의 소설들...
참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읽기를 쉽게 포기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죠.
소위 말하는 고비를 넘어야만 폴 오스터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 고비를 넘기면 손에서 놓기가 싫어질 정도죠. 그런데 그 고비라는 게 좀처럼 넘기가 힘들다는 게 문젭니다.
읽지 않고 포기하는 자에게는 결코 비밀의 문이 열리지 않으리라는 묵시록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현재 그의 소설은 전부 14권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정확히 8권의 소설을 읽었네요.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의 화두(話頭)는 실종과 풍자, 그리고 미스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폴 오스터의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결국은 실종을 선택하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숱한 미스터리와 세상을 향한 풍자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고 긴 실종의 과정은 동양의 선(仙) 사상과 묘하게 닮아있기도 합니다.
2002년 쓰여진 이 책의 원제는 “Book of illusion"입니다.
2008년 우리나라에 발표된 “환상의 책”이라는 제목보다는 “Book if illusion"이라는 원제가 확실히 더 폴 오스터스럽네요.
"illusion"이라는 뜻에는 왠지 은밀하고 비밀스런 느낌이 있는데, "환상"이라는 단어는 허황된 눈속임과 노골적인 드러냄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Book of illusion"의 첫 장은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샤토브리앙”의 짧은 글로 시작됩니다.
......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끝에서 끝까지 이르는 여러 다른 삶을 살며 그것이 바로 비극의 원인이다 .....

그러니까 이 책은 두 사람이지만 동시에 같은 사람이기도 했던 누군가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의 같지만 다른 삶 이야기, 그리고 추적과 멈춤, 끌어당김과 거부가 잔잔하지만 집요하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인간의 모습, 그것이기도 하죠.

오래 전에 실종된, 그래서 죽었다고 믿어지는 무성 코미디 배우 “헥터 만”, 그리고 얼마 전 비행기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를 잃고 스스로를 불행의 삶 속으로 밀어 넣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학교수 “데이비드 짐머”.
어느 날, 데이비드는 TV를 통해 헥터 만이 출연한 오래된 무성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헥터의 콧수염과 양복은 그에게 깊은 아우라를 남기죠.
절망 속에 살던 대학교수 짐머는 세상에 남겨진 헥터의 무성영화 12편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 몇 개월 동안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는 다시 9개월 동안 칩거하듯 세상과 단절한 체 헥터 만에 대한 집필을 시작하고 드디어 <헥터 만의 무성 세계>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편함에 배달된 한 통의 편지.
헥터 만의 부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쓴 편지의 내용은 "그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데이비드는 처음에는 이 편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가 진짜 헥터 만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답장에 그녀는 다시 편지를 보냅니다.
“제 말이 진실임을 아시는 유일한 방법은 초청을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편지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 사람이 1929년 할리우드를 떠난 뒤 여러 편의 장편 특작 영화들을 쓰고 감독했다는 말씀을 드린다면 오시겠다는 마음이 드실는지요? 헥터는 이미 아흔이고 나날이 건강을 잃어 가고 있어요. 그 사람은 제게 남긴 유언장에다 자신이 세상을 뜨고 나서 24시간 내에 그 필름들과 원본을 모두 파기하라고 했는데, 저로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편지 내용대로라면 헥터 만은 스스로 자발적인 실종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네요.
이 대목에서 주인공보다 오히려 제가 더 헥터 만의 진실을 추적하고 싶어지는 열망이 가득합니다.
다행히 그를 데리고 가기 위해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헥터 만의 전기를 쓰고 있다는, 헥터 만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던 카메라맨의 딸 엘머가.
함께 뉴멕시코 블루스톤 농장을 향하면서 데이비드는 헥터 만의 모든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됩니다.
그야말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다니엘 호손의 <모반>처럼 그를 산 채로 먹어치워 버렸습니다.
영화배우로서의 헥터 만의 삶, 그리고 스스로 실종을 선택하고 콧수염을 자르고 양복을 벗고 허먼 레서로의 삶,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라이브 포르노 공연배우로 살았던 삶.
그는 그 삶들이 자신에 대한 보복 내지는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보다 단순하고 파멸보다 더 나은 방법, 끝장을 보지 않고서도 자신을 계속 죽여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그는 타락을 선택했던 거죠.
... 만약 내 삶을 구할 생각이라면 그 삶을 파멸시키기 일보 직전까지 가야 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고 재미있는 건,
헥터 만의 삶이 바로 데이비드의 삶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분명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어쩌면 두 사람의 삶이 이렇게까지 동일할 수 가 있을까요?
“도플갱어” 혹은 “평행이론”이었을까요?

이 이야기는 일종의 “미궁”입니다.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희망을 주는 결말.
어쩌면 “믿거나 말거나”류의 황당한 결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말이죠. 이런 생각을 심각하게 하게 됩니다.
“이게 정말 허구일까?”
폴 오스터의 이야기의 끝은 항상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이 책을 읽고 있을 때면 이 책을 쓴 사람이 벌써 오래전에 죽었다고 믿어도 좋다.”
이런 신비주의가 무책임의 한 형태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의 삶은 어쨌든 모두 익명성의 보장이고, 실종이고 그리고 은밀함의 추구임에는 분명하죠.
“나는 빌려다 쓰는 삶을 살고 있었다.”
폴 오스터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매번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당신의 지금 삶은 어떠며 은밀한 질문을 던지죠.
만약에 빌려다 쓰는 삶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단지 잠시 동안의 실종이라고 말합니다.
조만간 누군가에 의해 진실이 담긴 삶의 문이 열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야기는 맨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잘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고 충고하는 셈이죠.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느낌.
그러데 그 이야기는 앞으로도 결코 끝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있고 알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알고난 전과 후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죠.
저는 말이죠. 책을 읽으면 매번 그 책 속으로의 실종을 간절히 꿈꿉니다.
내 책이라는 소유욕보다 내 이야기라는 소유욕이 백배는 더 강하죠.
그래서 늘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폴 오스터의 <환상의 책>
그 속에서 제 맘 같은 구절이 있어 에필로그로 남겨봅니다.

...... 여기까지 온 당신들은 실로 위대하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7. 1. 06:35

온다 리쿠.
일본에서는 미스터리, 환타지 작가로 유명한 사람이란다.
이 사람의 책은 몇 년 전에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특이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해리포터의 마법학교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흥미진진한 기숙학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학교로 전학온 학생이 만나게 되는 수수께끼 사건들과 불길한 전설들.
말도 안돼는 비현실의 세계였지만 흥미진진했었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그녀의 첫번째 책이 <밤이 피크닉>이다.
고등학교 전 학년의 학생들이 하얀 운동복을 입고
1박 2일 동안 80킬로미터를 걸아야 하는 보행제.
천 이백 여명이 넘는 사람이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고 생각해보라.
이것 또한 진풍경이 되긴 하겠다
이책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아주 일본적인)
온다 리쿠 특유의 환타지성을 만날 수는 없어도
단순한 사건(24시간 보행) 속에 보여지는 묘한 관계들을 쫒는 재미가 있다.



아버지가 같은 이복남매가 한 학년의 같은 반이 된다.
(사건의 원인 제공자에 해당하는 아버지는 몇 년 전 위암으로 사망했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부인하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못하면서
대화 한 마디 안하는 어쩡쩡한 관계로 지낸다.
이게 오히려 또래의 친구들 눈에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처럼 느껴질 수도 충분히 있으리라. 
묘하게 비슷하다는 말에 흠찍 놀라하는 두 사람.
어쩌면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싶고 다가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타인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구다 싶다.
결말은 결국 두 사람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친구들에게 자신들이 이복남매인 것을 밝히면서 더 편안해진 관계로의 조짐을 보이면서...
...... 앞으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건 세월.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버린 지금부터, 두 사람의 새로운 관계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 이제는 도망칠 수 없다. 평생 끊을 수 없는 앞으로의 관계야말로 진짜 세계인 것이다.
그것이 결코 감미로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두 사람은 예감하고 있다.
이 관계를 짜증스럽게 생각하고, 밉게 생각하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상관하고 싶지 않다고 생가가하는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두 사람은 알고 있다. 그래도 또 서로의 존재에 상처받고, 동시에 위로받으면서 살아가게 되리라는 것도.....




무언가가의 끝은 언제가 무언가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의 앞으로의 관계가 사뭇 궁금해지기도 한다.
함께 골인함으로써 보행제를 마감하면서 이들의 청춘이라는 것도
어쩌면 한 단계 더 성숙해지게 됐는지도...
그러나 책의 구절처럼 
"현실은 이제부터다"
좀 뜬금없는 감상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마냥 부럽다.
그들의 "청춘"이...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5. 24. 05:55

기간 : 2010.05.19 ~ 2010.05.23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극본 : 지경화
연출 : 채승훈
극단 : 창파
출연 : 남명렬, 김호정, 민경진, 이명호



제 31회 2010 서울연극제 참가작 8편 중에 
피날레을 장식하는(?) 작품이었던 연극 <옥수수밭에 누워있는 연인>
극본과 연출자는 낯설었지만
든든한 출연진만으로도 "must see" 목록에 포함시켰던 작품이다.
그런데 연극을 보고 난 후의 이 복잡하고 심란하고 불편한 감정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공연장을 나서면서 "이제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저절로 숨이 깊어진다.
참 막막하고 어려운 작품이구나...
그래도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공연장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던 찌질이가
결코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아주 큰 위로가 된다.




안개가 짙게 깔린 듯 운명적이며, 미스터리 하며, 원초적이며,
잔혹하며, 그로테스크하다!!

현실보다 잔혹한 환상, 환상보다 짜릿한 상상...

연극의 메인 헤드라잇은 이렇게 거하고 완강했다.
뒷북이긴 했지만 뒤늦게 시놉시스를 찾아봤다.
(시놉시스... 대략 참 난감하게 줄거리를 전해준다
 이것은 말을 한 것도, 말을 안 한 것도 아니여~~)

<시놉시스>
시와 도시의 경계에 선 어느 허름한 집. 여명이 어슴푸레한 새벽 그 집엔 이선(김호정)과 한보(남명렬)가 있다. 그들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친 듯 불안하고 초조하다. 지금 그들은 일종의 모의를 하고 있다. 이선의 아버지(한영:남명렬)로부터 거액의 돈을 타내기 위한 모략. 과연 그들은 아침을 맞아 그들의 계산대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그들은 걱정된다. 현실의 고통과 존재하지 않는 이상이 억울하다. 마치 거인의 걸음과도 같은 파열음이 들리고 한보는 이선을 집에 남겨둔 채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얼마 뒤 낯선 부자(父子)가 집에 들어선다. 이들 부자 역시 평범한 일상의 인물들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마음과 육체의 고통들이 당장의 그것들을 넘어 형이상학적인 쾌락이 된 듯하다. 그리고 아버지(민경진)는 죽는다. 이선과 아들(이명호)만 남았다. 그들은 다르지만 또 닮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때 한영이 찾아오고 한영은 총을 쏴 아들을 맞힌다. 마치 사냥꾼의 행동과도 같이. 그 사냥꾼은 바로 이선의 아버지다. 이선과 한영은 그러나 너무나 먼 거리에 있어 볼 수 없는 것처럼 서로에게 외롭다. 오늘로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려는 듯 집에 남은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비극적 통로로 자신을 몰아넣기 시작한다.



처음에 나는 맨발로 등장하는 이선(김호정)과 아들(이명호)은
이미 죽은 사람들, 즉 "귀신들"이라고 생각했다.
한보(남명렬)가 느끼는 추위와 두려움을 이선은 전혀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편안해 보이고 심지어는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모든 상황를 스스로 만들어낸 창조자가 
자신의 뜻데로 모든 게 이루어지는 걸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묘한 관음의 시선같아 보였다.
(핀셋에 꽃혀있는 아직 살아있는 나비 표본을 바라보는 수집가의 섬뜩함이랄까?)
창백한 얼굴에 베낭을 메고 등장하는 아들은,
늙은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투정과 떼를 쓰는 비정상적으로 유아적인 인물이다.
불안한 시선과 페티즘을 떠올리게 하는 베낭에 가득한 여자 신발들.
그러니까  여자의 아버지 한영(남명렬)과 남자의 아버지(민경진)은
이 두 귀신들에 의해 상징적으로 죽은 존재들이며
이미 죽은  두 사람의 환상 속에만 살아있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은 그 환상 속 인물들과의 관계마저도
끝장을 내고 끊어버리게 되는 그런...



지금 가만히 되집어 생각해도 극의 내용은 집요하게 어렵고 표현은 찬란하게 수사적이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숙명과의 갈등을
나비와 사막이라는 단어 속에 마구마구 구겨넣고
참을성있게 앉아있는 관객에게 일방통행적인 이해와 공감을 끊임없이 
그것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 같다.
그 강요는 심지어 거의 무차별적으로 쏟아붓는 폭력처럼 어이없이 일방적이다.
이쯤되면,
작품의 이해 여부를 떠나서
그대로 수건을 던지고 링위에 뻗어버리는 편이 어쩌면 훨씬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무차별 폭력의 뒤끝은 아직까지도 불편하고 내내 찜찜하다.

"도대체 나는 왜,
 일방적으로 그렇게 얻어터지고 있어야만 했는가?"
(혹시 나 지금 K-1 본거니???)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1. 18. 06:14
 <다산1, 2> - 한승원


 다산. 1


“나는 왜 영·정조 시대에 몰입하는가?”

늘 궁금한 부분이긴 한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미친 듯이 그 시대의 인물들과 그 시대의 역사가 좋습니다.

다산 정약용만 해도 그래요.

영조, 정조, 순조, 헌종까지 모두 4대의 왕을 두루 거친 인물이고 그 4대에 걸쳐 벼슬을 했던 사람입니다.

18년간의 강진 유배시절 동안 엄청난 분량의 책을 집필했던 사람.

그리고 조선시대 진정한 의미의 지식 아카데미를 형성했던 사람이기도 한 다산 정약용.

그에 관한 책을 69세의 노구의 작가 한승원이 펴낸다고 했을 때 솔깃했습니다.(물론 저는 또 다시 살짝 흥분모드 됐겠죠!)


먼저 이 책은,

팩션이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2%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쉽게 읽혀지는 소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다가오는 글은 절대로 아닙니다.

전 개인적으로 정약용의 정보력, 박학다식함, 여러 사람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르쳤던 엄청난 지도력, 그리고 쉼 없는 활동력 등이 늘 불가사의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 75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이뤘던 일들의 양이 참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지금처럼 클릭 한번에 온갖 정보가 주루룩 나왔던 시대도 아니고...

다산 정약용은 말합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책이 5천권 이상 들어 있어야 세상을 제대로 뚫어보고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다.”고...

5천권 이상을 읽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5천권 이상이 들어 있어야 한답니다. 그건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쟎아요.

솔직히 일생동안 5천권의 책을 읽는 사람이(이해는 고사하고)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 말의 의미 속에는 내 삶을 부지런하게 이끌라는 또 다른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정약용의 말을 한마디 더 인용해볼까요!

“이불 속의 달콤한 맛을 꿈지락거리며 즐기는 것은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세상을 반만 살게 하는 악귀다.”

정말 이쯤은 돼야 500여권이 넘는 책을 저술할 수 있었겠죠.


이 책은 1801년 신유사옥으로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귀양살이를 하게 된 다산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이겨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회상과 꿈의 형태로 과거의 이야기와 바램들이 여러 개의 액자소설처럼 곳곳에 끼워져 있어 재미를 더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자학을 읽은 다산은, 성년이 된 다음에는 천주학에 심취했지만 나라에서 금하고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천주학을 버리고 정학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시기했던 노론 벽파들은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여 순교한 그의 셋째 형 정약종을 근거 삼아 둘째형 정약전과 그를 태형에 처하고 유배를 보냅니다.

노구의 몸으로 유배를 떠나는 두 사람은 그 길로 다시 만나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죠.

다산에게 둘째형은 멘토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다산은 책을 완성하면 둘째형에게 보내 감수하게 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한 첨삭을 전해 받기도 했을 정도니 그 둘의 애틋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되시나요?

그런 둘째형이 유배 중 사망하게 되고 역시 유배중이라 차마 찾아가지 못하는 정약용은 애끓는 탄식을 하게 됩니다.

형제이면서, 스승이며 아비이기도 했던 형.

그런 형을 잃은 그의 상실감과 절망이 읽는 동안 가슴 아리게 만들었습니다.

애뜻한 혈육의 정은 자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도 다산은 자식들에게 살뜰한 편지를 자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게으르고 나태한 자식들을 호되게 야단치기도 했죠.

닭을 키운다는 아들의 말에 “양계”에 대한 체계적인 책을 만들어 보라며 그와 관련된 자세한 조언까지 하는 걸 보면 그의 박학다식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정약용은 신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종교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그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길을 그야말로 지극한 경지까지 스스로 만들어 간 사람이기에 위대함 그 이상을 느끼게 되는 거죠.

제게 있어 다산 정약용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는 지도 모르겠네요.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닌 말은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닌 말은 입에 담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이 말은 한사코 예를 외면하고 있는 지금의 위정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잠언인 것 같습니다.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임금은 배다. 임금도 잘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정치하고 바꿀 수 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나만은 아닐 것이다....”라고.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러한 나태하고 편협한 이기심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참 다정하다는 느낌입니다.

멀게만 생각되는 역사 속의 인물 정약용을 내 바로 옆에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니까요.

글이 다정할 수 있다는 거...

저처럼 또 다는 누군가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네요. ^^


* 참고로 정민의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과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2> 권이 있습니다.

앞의 책은 분량도 꽤 되고 좀 전문서적의 느낌이라 쉽게 손에 잡히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조목조목 읽다보면 정약용의 신비감에 완전히 매료되게 만듭니다. 심지어 읽는 이를 진정한 정약용 마니아로 환골탈태시키는 매우 위험한(?) 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후자에 소개한 책은 2권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이덕일이라는 작가가 쓴 책들은 개인적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역사를 참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입니다. 역사의 신비감과 아련함이 내 옆의 현실감으로 바짝 다가오는 느낌이죠.
혹 관심이 가신다면 한번 읽어보심이......
(후회는 없을 것임을 확실히 보증하는 바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0. 9. 06:33
사이코 서스펜스, 미스터리나 수사물에 강한 일본
가끔 생각한다.
그들의 뭔가가 우리와 다른지를...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낙원>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점
연쇄살인마의 이야기를 3권, 2권씩 만들어 내는 나라,
그것도 각각의 권수 하나도 상당한 분량을 자랑한다.
온다 라쿠의 약각 신비주의적인 소설들도 그렇고......

오기와라 히토시의 <소문>
우연히 지하철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WOM(Word of Mouth:입소문 마케팅)이 모티브인 소설
"WOM의 규칙"
통상적으로 한사람이 일주일에 2.5명에게 입소문을 내게 되면
한 달이면 10만 명이 그 소문을 듣게 된다는...
몇 년 전에 등장한 새로운 마케팅 이론 (엄밀히 말한다면 결코 새로운 이론은 아니지만...)
기존의 TV나 잡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의 비효율성을 지적한 용어
현대는 WOM 마케팅 시대!



신제품 향수 뮈리엘를 홍보하기 위한 하나의 마케팅 수단으로
제품에 대한 소문을 은근히 슬쩍 퍼뜨린다.
유행에 민감하고 남다를 감각을 가진 특정지역의 여고생이 그 대상자.
"한밤중에 시부야에는 뉴옥에서 온 살인마 레인맨이 나타나서
소녀들을 죽이고 발목을 잘라 간대!
하지만 뮈리엘을 뿌리면 괜찮대!"
소문의 내용을 이렇다.
그런데 실제로 이 소문과 똑같은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10대의 소녀 3명이 차례로 발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를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수사를 진행하는 고구레 형사 주변과
향수 마케팅을 기획한 대기업 광고회사 직원 나시자키 중심으로.



희생된 소녀들의 공통된 특징.
그녀들의 방에서는 비슷한 냄새가 감지된다.
향수 뮈리엘의 향.
그녀들의 공통점은
모두 뮈리엘 향수 모니터링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
입소문의 근원지를 따라가는 수사의 과정
그리고 의심의 축이 되는 홍보 기획사 컴싸이트 여사장의 은밀함.
이 소설은,
WOM이 일종의 negaitive approach로 사용되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일부러 제품이 결점을 드러내 눈길을 끌거나
그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 공포심을 조장하는 접근방식
기발한 마케팅 이론의 침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다분히 엽기적이며 때로는 협오감과 불쾌감까지도 남기는 일본의 사이코 서스펜스 소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재미와 충격으로만 읽히지는 소설은 결코 아니다.
사건의 전개와 최후의 기막힌 반전까지
스토리의 짜임새는 마지막 한 장까지 긴장감을 품게 한다.
"죽이고, 추적하고, 찾아내고, 해결하고.... 혹은 반전의 한마디를 남기고..."
일반적인 서스펜스의 구조를 아주 충실히 따라가고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독특한 재미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케팅 이론의 기막힌 적용까지...
어떻게 소설 속에 WOM과 negaive approach를 연결시킬 생각을 했을까?
그 접근이 무척 신선하고 참신하게 느껴진다.
한마디로 "기나오싹" 한 이야기 ^^

* 기나오싹 : 기분 나쁘고 게다가 오싹하다는 뜻으로 이 책에서 형사의 딸 나쓰미가 스스로 만들어서 사용했던 단어.
                 이야기 결말에서 반전의 단어로 쓰이는 결정적 한 마디.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9. 12. 10:18

비 온 뒤 오후,
다시 찾은 Jekyll & Hyde
Brad Little
이 사람의 목소리가 궁금해서 찾은 공연장



안타깝게도 오늘 이 사람의 목소리엔 힘겨움이 느껴진다.
주말의 4회 공연을 해야 한다는 것!
예전 우리 배우들도 말했었다.
4차례의 공연을 연이어 한다는 건
살인적인 동시에 제 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90%가 넘는 무대 등장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잘 해야 한다는 중압감.
그것도 두 사람의 확실히 구분된 목소리와 행동으로...



내가 생각하는 내한공연 <Jekyll & Hyde>의 최고 장면은,
1막에서는 역시 <This is the moment>
<Transformation>, <Alive>도 물론 좋지만
브래드 리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은 역시 <This is the moment>다.
그의 딕션은 참 선명하고 정확하다
무대와의 거리감을 상쇄시킬만큼...
배우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딕션이라고 믿고있는 나에게 그는 확실히 모범적인 배우다.
이사회 장면의 그 숨가쁘고 분노에 찬 모습에서조차도 그의 딕션은 선명하고 또렷하다.
그래서 Jekyll의 분노가 나는 아주 정당하게 느껴진다



2막에서는 <Dangerous Game>
Lucy와 Hyde 둘 사이의 거리감과 정확히 반대되게 느껴지는 긴장감.
여전히 내겐 미스터리다.
그 거리에서 어떻게 나에게까지 이런 감정들이 전달될 수 있는지가...
우리나라 공연의 화려한 리액션에 익숙한 사람들은 좀 실망스럽고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장면에선 숨을 쉬는 것조차 아깝다.
Hyde의 손끝과 발끝이 모든 언어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건 무엇보다도 확실한 dangerous game이다.



아마도 Emma역이 루시 몬더(Lucy Maunder)였다면
<In his eyes>도 포함이 됐을테지만
오늘 공연에서는 under 브리앤 터크(Brianne Turk)가 엠마 역을 했다.
그녀는....너무 떨었다.
그녀 자신의 긴장감 때문이었겠지만 몸이 자꾸 앞으로 기울어진다.
그대로 무대 위로 넘어질까봐 걱정됐다.
그리고 그녀 목소리에서 간간히 느껴지는 탁성
<Once upon a dream>
그 맑고 깨끗한 노래는 역시 Lucy maunder의 목소리가 제격이란 생각.
lucy역의  벨린다 월러스톤(Brelinda Wollaston)은 공연을 볼 때 마다
점점 더 매력적임을 알게 된다.
1막에서의 <Someone like you>, 2막의 <A new life>는
그녀를 내 귓 속으로 그대로 옮겨놓게 한다.



마지막 엔딩인 결혼식 장면
배우들이 무대를 등지고 자리에 앉아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항상 배우들의 앞모습을 보는 게 익숙한 시선이었기에...
(Jekyll이 심험실에서 약물을 주사하지 않고 마신 것도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우리의 원샷 문화(?) 때문에 아마도 더 당황스러웠는지도....
 작은 주사기가 멀리 앉은 관객에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바꾼 것 같다는 나름의 추리를 해 본다.)
지금은....
의도가 어느정도 파악이 된다.
그게 딱 적절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고민의 흔적이 보여 다행스럽다.
익숙함에 대한 반발이 예상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90% 정도 만족한 공연.
그래도 브래드 리틀의 <This is the moment>는 여전히 좋더라.
Hyde로써의 마지막 커튼콜 엔딩도...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22. 13:33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 비키 바이런, 브렛 워티  

듀이


반려 동물!

이제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관계입니다.

예전에 집동물이라고 하면 키워서 먹는다는 보양(?) 개념의 축생이었는데 지금은 동반자 관계를 넘어 부모자식으로까지 발전된(?) 관계도 아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동반의 반려관계는 마음의 독거인(獨居人)인 그네들의 외로움과 고독감을 둘만의 긴밀한 소통으로 치유할 수 있는 묘한 “미스터리”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긴 해도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개나 고양이를 풀어놓고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개어머님”, “개아버님”을 보면 개념도 함께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것 같아 난감한 표정을 짓게 되죠.

주먹만한 강아지도 무지 무서워하는 저로서는 쉽게 손에 들기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책 표지에 버젓이 등장하고 있는 눈 큰 고양이의 시선이라니......

예전부터 고양이는 영매(靈媒)로 쓰였다는데......

그래도 일단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그래봤자 뭐 책 속의 고양이일 테니까요.


1988년 1월 18일, 가장 추웠던 겨울 날 !

아이오와주 스펜서 마을 공공 도서관 사서 비키는 도서 반납함에서 동상에 걸린 자그마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세상은 매서운 계절보다 더 세차게 몰아치는 경제 위기의 상황이었죠.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동상 걸린 네 발을 가진 버려진 오렌지색 새끼 고양이는 그렇게 해서 "듀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됩니다.

“Dewey Readmore Books"

도서관 고양이로는 아주 적절한 이름이 아닐까요?

우여곡절 끝에 도서관에 새로운 식구가 된 “듀이”는 오랜 경제 위기로 희망을 잃어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활력과 사랑, 위안을 안겨 주며 마을 전체의 친구가 되어 갑니다.

그런 듀이에게도 그만의 관계맺기 방식은 있습니다.

“한 번에 단 한 사람의 마음만을 얻어간다“는.....

한 번에 단 한 사람에게만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의 문을 끝내 진심으로 열고야 마는 작은 고양이 듀이.

인맥 네트워크의 대가라고 소개해드리고 싶을 정돕니다.

그렇게 마음을 얻어낸 듀이는 급기야 도서관을 찾는 사람 각자에게 필요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줍니다.

동물을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도 이해하고, 말벗이 필요한 노인들의 무릎 위로 올라가 기꺼이 체온을 나누며, 장애우 아이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기도 하죠.

그렇게 이 작은 고양이는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갑니다.

단지 마음을 나누는 방식, 그것 하나로 말이죠.

사람을 완전히, 못 말린 정도로 믿어주는 고양이 듀이는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어줌으로써 사람들 한명 한명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비상한 재주꾼이기도 합니다.

실패하는 법이 없고 그리고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죠.

사람의 가치는 이웃들에게 얼마나 존경받느냐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듀이는 이미 고양이로써 사람의 가치 그 이상을 넘어서는 존재가 된 셈이네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만들어낸 큰 기적!

단지 반려 동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는 서양인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누런 피부에 까만 눈을 가진 이국(異國)의 제 눈에도 이 고양이의 특별함은 인지되고도 남습니다.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상처를 숨기는 사람은 어디서든 그 티가 나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이 고양이 듀이는,

상처를 보고 아는 체를 해 주는 고양이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고도 뻔히 모른 체하고 지나쳐버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감한 반기를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설(漏泄)”

우리는 우연한 비밀을 알게 되면 크든 작든 폭로하고픈 누설의 욕망에 부딪칩니다.

그러나 아는 체를 해 달라며 온 몸으로 힘듬을 누설하는 사람을 보면 굳이 철저한 비밀보장을 맹세하며 못 본 척 고개를 돌려줍니다.

사실 그가 원한 건 그런 외면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내가 옳았다 스스로 합리화하는 건지도 모르죠.

“듀이”라는 작은 고양이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건,

도서관에 버려진, 그래서 그곳에서 사람들과 별 탈 없이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는 고양이라서가 아닙니다.

듀이의 역할이 결코 스펜서 도서관의 마스코트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걸 이해했다면 그렇게 숱한 "미투(mee too) 듀이“가 탄생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런 “미투 듀이”의 재생 역시 “동물 학대”의 또 다른 형태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죠.

확실히 도서관이라는 곳은,

고양이가 살 만한 적당한 곳은 아닙니다.

그런 도서관에서의 삶을 선택한 “듀이”

어쩌면 작은 고양이에게도 그 사실은 하나의 큰 도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라. 그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라.

 인생은 물질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랑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어디에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


2006년 위종양으로 안락사하기 전까지 19년간 듀이는 자신이 선택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고양이에게 “신화”라는 단어를 쓰는 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Dewey Readmore Books"는 이제 스펜서의 신화를 넘어 전 세계의 신화로 남겨졌습니다.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상처를 보게 된다면,

듀이처럼 재빠르게, 듀이처럼 적절하게, 그리고 듀이처럼 진심으로 그 상처를 알아봐주고 그리고 기꺼이 소통하는 사람이 되어 달라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처!

참 고약한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기회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아픈 틈이기도 합니다.

“그 틈새로 들어가세요~~!‘

황금빛 커다란 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제 우리도 용기 한번 내 볼까요!!!


*듀이 공식 홈페이지 : www.deweyreadmorebooks.com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8. 06:00
 <위저드 베이커리> -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오늘은 질문으로 시작해볼까요?

당신에겐 세상 모든 아니 특정한 몇 명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완벽한 혹은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데로 쓸만한 은신처가 있나요?

없다면, 이런 상황이 온다면 당신은 어디로 뛰어가 숨어야 할까요?

또 다른 질문 하나!

다음과 같은 빵을 판매하는 제과점이 있습니다.


악마의 시나몬 쿠키 : 반드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먹이세요. 평균 2시간 동안 뇌신경세포를 교란시켜 그가 무슨 일을 해도 실수를 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포만 상태라면 괄약근을 조절하지 못하고 옷에 실례를 할 수도 있답니다. 공복 상태에서는 지속적인 구역질을 일으킬 것입니다.

메이킹 피스 건포도 스콘 : 사과하고 싶은 사람에게 주세요. 100% 화해합니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마음보다 어쩔 수 없이 사과한다는 마음이 앞서면 효력을 내지 못할 것입니다.

도플갱어 피낭씨에 : 주문에 따라 이걸 먹고 잠들면 다음 날 내가 가기 싫었던 학교나 회사에 또 하나의 내가 대신 가줍니다. 맘 편히 집에 있거나 땡땡이를 치세요. 단 정말로 도플갱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보면 절대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둘을 동시에 발견하거나 둘의 눈이 마주치면 둘 중 하나가 영원히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겠어요?

체인 월넛 프레첼 :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먹이세요. 체질에 따라 유효 시간이 다르지만 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끌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사용함으로써 맺어진 인연은 함부로 끊을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하시고, 상대가 정말로 자기에게 맞는 사람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다음 선택해주세요. 한번 묶인 사슬을 억지로 끊으려 하다가는 그것이 자신의 목을 감아 죄어버린다는 걸 잊지 마세요.

노 땡큐 샤브레 쇼꼴라 : 정말로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고백 받았다면? 이걸 대답으로 주세요. 한마디로 ‘먹고 떨어질 겁니다.’

마지팬 부두인형 : 싫어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부릴 수 있는 인형. (단, 그 사람의 신체 일부를 확보해서 부두인형 안에 넣어야 함)


이것 말고도 많은 제품(?)이 있지만 혹시 구미가 당기는 게 있나요?

더 정직하게 말하면 이 제품 중 하나를 꼭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전 개인적으로 ③번 “도플갱어 피낭씨에”가 상당히 탐이 납니다...)


혹시 작년에 출판됐던 우리의 완소남 <완득이>를 기억하십니까?

제1회 창비소년문학상 수상작이었죠.

오늘 소개하는 <위저드 베이커리>란 이 수상한 제과점이 제2회 창비소년문학상 수상작 되시겠습니다.

제 정신수준이 딱 청소년 수준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두 책 모두 다 재미있습니다.

그렇지만 재미 하나만으로 이야기하기엔 무지 많이 섭섭한 책이죠.

작가 구병모(여자랍니다... 그것도 정유경이라는 상당히 여성스런 이름을 가진...)는 이 책을 보고 “나쁜 성장소설”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 뜻을 그런데로 공감합니다.

이 책은....

<헤리포터 시리즈>와 <헨델과 그레텔>, 그리고 <파랑새>가 잘 섞여 있는 느낌입니다.

뭐 짜깁기 그런 건 아니구요, 독창적이면서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죠. 그래서 좀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16살 소년이 있습니다.

6살 때 친어머니로부터 청량리역에 버려진 기억이 있는 소년은 새어머니(배선생)가 데려온 여동생 무희에게 지목을 당합니다.

자신을 성추행한 사람이 오빠라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몰린 소년이 쫒아오는 배선생을 피해 도망친 곳이 이 수상한 제과점 “위저드 베이커리”의 깊고 큰 오븐 안입니다.

그런데 이 베이커리, 어쩐지 좀 수상하네요.

24시간 영업을 하는 “똘기” 충만한 주인 제빵사는 소년에게 빵에 넣은 이상한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급기야 낮에는 종업원이었다가 밤이 되면 파랑새로 돌아오는 정체불명의 소녀까지...

한마디로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의 세계죠.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더 황당해지는 건,

이걸 그대로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됩니까????)

심지어 읽을수록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이게 현실이라는 걸 정말 아니까요, 현실 속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분명하니까요.


오븐 속에 숨어 있던 소년은 자신의 시간을 통과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는 오븐 속을 나와 집으로 향하죠.

배선생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자신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부두인형과 점장이 준 자신이 원하는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 리와인더 쿠키를 들고서요.

늘 그렇듯 아무도 반겨주지 않은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목격하게 됩니다.

동생 무희를 성추행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결말 부분은 예전에 개그맨 이휘재가 나와서 “그래 결정했어!”를 외치며 두 가지 다른 선택의 결과를 보여줬던 <인생극장> 같아 맘에 살짝 안 들긴 하지만 그 결말 또한 작가의 의도였다고 하네요.

“타임 리와인더”를 먹었을 경우와, 안 먹었을 경우.


“타임 리와인더!”

그 과자를 먹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로 돌아갔을 때,

어쩌면 똑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다시 똑같은 결정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기억이 함께 리와인더 되는 것은 아니기에...)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처음인 것 같은데 어쩐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든다면,

그런 데자뷰 현상을 지금 느끼고 있다면,

어쩌면 당신도 “타임 리와인더”의 복용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작가는 현실은 결코 판타지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 이런 미스터리 코믹 호러 판타지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사는 게 힘들어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 있다 해도 지금을 살아내야 하는 게 삶이라고요.

“단절”을 꿈꾼다면 자신의 삶을 완전히 소유하는 것 역시 힘들어 질 수 있기에 피하고 싶은 순간조차도 최선을 대해 살라는 뜻이겠죠.

자신의 현실을 “판타지”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요.

혹 모르죠.

자신만의 확실한 오븐이 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지도요.

그런데 좀 걱정스러운 건,

그 안에 너무 오래 있으면 정상적인 삶 또한 불가능하겠죠?

그리고 너무 노릇노릇 구워질지도요.... ^^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으면서 옛날에 읽었던 책의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청춘을 완벽히 소유하기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 흘러야 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