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8. 11. 6. 16:28

새벽 5시쯤에 일어났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살펴보니

하늘은 잔득 흐렸고 바람 심상치 않다.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퍼부을것 같은 날씨라

아침산책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라지만 이곳까지 와서 방에만 있는건 아닌것 같다.

비를 만나든, 바람을 만나든, 둘을 다 만나든,

일단 나가기로 결정했다.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은.

아직 깨지 않은 꿈같다.

아주 작은 꿈.

조그마한 소리에도 소스라치며 눈을 뜰 것만 같은 그런...

그렇게 깨어질 얋고 선한 적막이

나는 참 좋다.

 

바람이 불어도,

하늘이 잔득 흐려도,

이곳은,

이곳에 있는 나는 거짓말처럼 고요하다.

믿겨지지 않을 만큼...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0. 31. 11:07

피란에서...

어쩌면 나는 유령이었는지도 모른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그런...

익명이 주는 평온함,

그게 참 좋았다.

나를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아는 사람도 없는

그런...

 

 

잠깐잠깐씩,

벽에 붙은 이정표를 보며

이곳과 저곳을 놓고 저울질하다 피식 웃금이 났다.

이곳이든 저곳이든

어차피 내겐 다 낯선 곳일 뿐인데...

그런 낯선 곳이 이렇게 친밀면

또 어쩌라는건지... 

 

 

잠시 걸음을 멈췄다.

sorry dear!

I spend all my money in beers.

I bought you just a bit of Piran's air.

작은 병에 적혀있는 문구에 빵 터졌다.

심지어 8ml라고 용량까지 적혀있다.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귀여운 센스에 감동했다.

숙소로 들어와 소박한 저녁을 먹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Piran의 석양,

 처음과 끝을 보기 위해서...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0. 23. 08:54

피란 성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파란 바다와 하늘아 맞닿은 수평선,

그리고 우뚝 솟은 피란 종탑.

다음 목적지는 자연스럽게 피란 종탑이 됐다.

이 종탑이 성 죠지 성당의 부속건물인지,

독립된 건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늘빛은 예술이다.

미카엘 대천사님도 저 위에서 내려다보면 참 보람차시겠다.

 

 

바로 옆에 있는 다각형 건물이 보이길래 잠깐 들여다봤다.

"Battistero"

셰레당이란다.

그러니까 가운데 있는 우물(?)이 세례식을 올리는 메인 장소.

건물 외부만큼이나 내부도 깨끗하고 소박하다.

순결한 신앙의 고백을 의미하는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작고 소박한 이곳이 난 퍽 마음에 들었다.

뒤돌아서 바라본 피란의 윤곽도 너무 아름다웠고.

 

 

종탑 매표소에서 나 혼자뿐이다.

피란 성벽에 이어 두번째 만나는 2유로의 행복.

이쯤되면 독점투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종탑을 올르는 계단은 최근에 다시 만들어진게 같은데

특이하게도 나무로 되어있다.

나무에서 풍기는 냄새도 특별했고,

중간중간 계단과 난간에 나타나는 천사를 보는 것도 좋았다.

작은 창을 통해 보는 피란은 액자 속 그림같았고

그대로 드러나있는 시계체(體) 시계추도 신기했다.

제일 마지막 계단은 저렇게 예쁜 어슷계단.

왼쪽, 오른쪽 한 칸씩 총총총.

 

 

다 올라오면,

이런 모습이...

"끝"이란 말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거다.

The End.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0. 22. 08:29

처음 피란(Piran)이란 도시의 이름을 들었을때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피란(避亂)이란 단어가 떠올라서였을거다.

避亂 : 난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겨가다.

그렇다면,

현재 나는 어떤 "난리" 속에 있을까?

그게 뭐든,

이곳이 그 모든 난리를 피할 수 있게 해주면 참 좋겠다...

여행 시작 전부터 나혼자 몰래 바랬었다.

아주 짧은 순간의 피란이 될지라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없다.

그래서 좋았다.

오래오래 내려다봤고,

오래오래 올려다봤고,

오래오래 바라봤다.

파란 바다를 옆꾸리에 끼고 있는 축구장에 반했고,

혹시라도 축구공이 경기장을 넘어가

공을 되찾으려고 전속력으로 달려갈까?

아니면 깔끔하게 포기할까?

오래 지켜봤지만 결국 알 순 없었다.

 

 

타르티니 광장도 한 주먹 크기고

성 죠지 성당 종탑의 미카엘 천사도 눈 아래 선명하다.

또 다시 전지적 시점의 출현이다.

산과 바다, 광장과 종탑. 그리고 바다와 하늘.

이 모든걸 2유로로 볼 수 있다는건,

더없는 축복이다.

물론 두브로브니크의 성벽과는 비교가 불가하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뷰는 이곳도 만만치 않다.

아기자기한 규모가 주는 아름다움.

그게 참 좋았다.

만약 파괴된 성벽을 제대로 보수한다면

두브로브니크 성벽과 쌍벽을 이루수 있을 것 같다.

슬로베니아가, 피란이,

그럴 마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면,

보수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작은 도시가 관광객으로 미어터져 변하는건 결코 보고 싶지 않으니까.

避亂할 수 있는 Piran으로

내내 남아줬으면 좋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0. 17. 08:43

어느 도시를 가든,

내가 그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높은 곳을 올라가거나,

아니면 광장을 찾아가거나...

피란의 시작은

마땅히 광장이어야 한다.

"타르니티 광장(Tartinijev Trg)"

 

 

타르티니 광장은...

참 재미있는 곳이다.

관공서로 짐작되는 고풍스런 건물을 중삼으로

주변 3/2 가량이 건물로 둘러쌓여 있다.

그리고 눈 앞에는 푸른 바다,

머리 위에는 파란 하늘과 하얀 비행운.

작은 광장이지만

지금껏 내가 본 광장 중 가장 완벽한 광장이다.

내가 보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을 다 갖추고 있는

광장의 종합선물셋트.

 

 

피란은 3세기부터 18세기까지 베네치아공국의 일부였단다.

그래선지 곳곳에 베니스의 흔적과 느낌이 남아있다.

광장 한가운데 바이올린을 들고 서있는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크 시대 활동한 피란 출신 음악가 "쥬세페 타르티니".

피란에 머무르는 동안

이 분 앞을 수십번은 지나다니게 될테니

정식으로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쨍한 햇빛 속을 뚫고 동상 앞에 섰다.

두 손 곱게 모아서 공손한 배꼽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쥬세페 타르티니님!

 전 이곳을 찾아온 낯선 사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 10. 16. 11:14

Piran의 첫 시작이...

이번 여행 최고의 난코스가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피란에서는 호텔이 아닌 Hostel Piran이란 곳을 예약했는데

이곳을 찾는게 역대급 난이도였다.

얼키고 설킨 피란의 골목들...

또 다시 구글맵은 무용지물이 되버렸다.

돌바닥에 캐리어를 끌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현지인에게 물어 겨우겨우 찾아갔는데

호스텔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check in 시간인 2시에 오겠다는 메모와 함께!

 

 

호스텔 오픈 시간까지는 40분이나 남았지만

캐리어를 끌고 돌바닥으로 나설 자신이 없어 대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1...

좁은 골목이라 무섭기도 했고

술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다가오니 무서움이 왈칵 일더라.

전속력으로 캐리어를 끌고 광장으로 나가 시간을 보냈다.

2시 시간에 맞춰 다시 호스텔로 입성.

그런데 2...

그 무서운 오버부킹 선고를 받았다.

출력된 예약증을 들이밀었더니 미안하다며 다른 곳으로 연결시켜준단다.

한참을 여기 저기 전화 통화를 하더니 나를 부른다.

지도를 주면서 Hostel Pirano란 곳으로 가란다.

다행히 옮기는 곳 위치는 큰 길 쪽이다.

Hostel Piran의 위치가 골목 깊숙한 곳이라 걱정됏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찾아간 Hostel Pirano의 위치는 환상적이었고,

심지어 얼마 전에 리모델링을 했는지 아주 깨끗했다.

게다가 빈 방이 3인실뿐이라 추가요금 없이 혼자 1박을 했으니

화(貨)가 복(福)이 된 샘.

그런데 3...

저 방 문 정말 열기 힘들다.

열쇠를 넣고 두번 돌려야 하는데 아무리 열심히 돌려도 문이 안 열린다.

이런 나 때문에 호스트가 여러번 올라왔다.

이상하게 호스트 앞에선 잘 열리는 문이

나 혼자 열려고 하면 먹통이 되버린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숙소에서 나오면 눈 앞에 펼쳐지는

피란의 흔한 풍경.

하지만

이건 시작의 시작도 아니라는거.

아마도 나는...

이 도시를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