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09. 4. 20. 23:37
 


게 눈 속의 연꽃(문학과지성시인선 97)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 지 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지국은 

내 가슴에 서성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설레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 .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서성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오랜만에 시 한 편 소개하려고 합니다.

기형도, 황지우, 이성복....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 트로이카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두 분의 시도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황지우님의 시 중에서 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 3편을 꼽으라면...(누가 꼽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 신난 것 같습니다)

<뼈아픈 후회>, <너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늙어가는 아내에게>

이렇게 세 편입니다.

<뼈아픈 후회>는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시고, <늙어가는 아내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보는 느낌의 시입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란 시는 연시(戀詩)이면서 동시에 절망 속 희망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시인 황지우님은 1952년 생으로 1980년 광주항쟁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은 이력이 있는 시인이자 번역가이자 그리고 조각가에 대학총재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다니.... 역시 천재가 확실한 듯...
(저 10년도 훨씬 전에 인사동에서 있었던 이분 조각전에도 갔더랬습니다. 조각전 이름이 “뼈아픈 후회”였고 브론즈 작업이 대부분이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야말로 똘망똘망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버렸네요...^^).

이 시는 그의 네 번째 시집 <게 눈 속의 연꽃>이란 시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가 만들어지게 된 에피소드도 재미있습니다.

1986년 시인이 지명수배 되어 도피생활을 할 때 가장 많이 있었던 곳이 신문사 도서관이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아이러니 아닙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네 말이 정말 딱 진실이네요....)
그러다 그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하이틴 잡지에 근무하는 선배를 만났다고 하네요. 그 선배의 부탁으로 5분 만에 탄생한 시가 바로 이 시라고 합니다,
그 뒤에 적작 본인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시를 당시 성우 김세원 씨가 어느 FM 방송에서 낭송한 뒤로 여러 사람이 찾는 시가 됐다고 하네요.

그런 경험 다들 있지 않나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던” 경험....

그러다 “오지 않을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내가 너에게로 갔”던 경험....

혹 가슴 설레며 지금 누군가에게 서성이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렇다면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해서, 그리고 아주 먼 데서라도 천천히 그 사람에게로 계속 가라고 꼭 전해드리고 싶네요.

시인의 말을 빌려 봅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힘든 하루였습니다.

비까지 와서 그런지 약간의 울증 상태로 넘어왔네요.
햇살 좋은 남산이 생각났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햇빛 아래서 한 세 시간 정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마음이 치료되겠구나 하는 생각...

내가 지금 뭘 기다리고 있나???

희망? 아니면 절망?
그리고는,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어디서 누군가 열리는 문을 바라보며 나일 것이다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를거란 느낌...
분명한 건,
이 시가 확실히 위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4. 19. 23:00
 
<책 읽어주는 남자 > - 베른하르트 슐링크


오늘도 역시 특별한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자극적이고, 관능적이며 모호하고, 몽환적인 책, 심지어 무기력하기까지 한 책.
먼저,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법대 교수이자 판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네요.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이력이 참 재미있습니다.
판사가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
논리적이고 너무나 현실적인 직업의 판사, 그리고 비현실과 상상 세계의 탐험자인 작가... (우리나라에도 어느 날 이런 조합이 한 번 나타나주면 참 좋겠습니다)
올 2월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가 바로 이 책을 가지고 만든 영화죠.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은 책 표지가 “케이트 윈슬렛”의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예전에 출판된 책의 표지는 지금과는 많이 다릅니다.
빨간 배경 한 켠에 그림이 보이네요. 한 남자의 손. 여자의 벗은 몸에 손을 올리고 있는 성장한 남자의 손. 책의 뒷면으로 가면 그림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꽤 오래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표지가 좀 더 강렬한 빨간색이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림은... 약간 카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책의 내용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여서요.
그 손은,
그러니까 한 여자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막 그녀의 첫 페이지를 넘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왠지 떨리네요. 마치 주인공의 간절함처럼...


한 남자가 있습니다.
세 번, 이 남자는 “한나”라는 이름의 한 여자와 일생동안 세 번 관계됩니다. 그것도 아주 깊게 그리고 은밀하게 마지막엔 지배적으로 말이죠.
첫 번째는 15살 어린 소년이었을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귀가하는 길에 소년은 느닷없는 구토 증상을 경험하죠. (이 부분, 참 재미있습니다. 예전 책엔 “황달”이라는 병명으로 나오는데 지금 책은 “간염”이라고 나오네요. 해석의 오류였을까요?)
오물로 더럽혀진 소년을 데리고 들어가 깨끗이 씻겨 집까지 데려다 준 사람이 바로 36살의 그녀, “한나 슈미츠” 입니다.
도덕성에 대한 비판의 여지가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처럼 이야기되고 있지만,
어쨌든 15살 소년은 36살 한나를 통해 육체적인 성에 눈 뜨게 됩니다.
결과는 뻔하죠, 꼬마(그녀가 그를 그렇게 부릅니다)는 도무지 그녀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급기야 학교 공부도 소홀하게 되죠.
그런 소년에게 한나는 말합니다.
“공부를 하지 않으려면 다시는 찾아오지 마!”...
그들에겐 어떤 의식 같은 절차가 있습니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같이 누워 있기
그녀는 항상 그에게 책을 읽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모든 의식의 시작은 “책 읽어주기”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죠.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소년을 본 그녀는 다음날, 사라져 버립니다. 살고 있던 집을 비우고 승진시켜주겠다는 전차 회사도 그만둔 체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녀의 실루엣은 그대로 소년에게 남겨집니다.

다시 그녀를 보게 된 건,
나치 강제 수용소와 관련된 법정에서였죠.
그녀는 가스실행 인원 선별 작업을 수행하던 여자감시원 중 한명으로 기소되어 있습니다.
다른 모든 피고인들이 문서와 보고서는 한나가 썼다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심지어 스스로 시인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죠.
그러나 그는 알게 됩니다.
그녀가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른다는 걸...
그는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자, 이제 그도 더 이상 자유로울 순 없게 된 셈이네요.
법정에서 한나는 판사에게 되묻습니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라고...
어쩌면 그는 판사를 향한 질문을 자신에게 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나에게 향하는 손가락질에 개입하지 않고 그 손가락질을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스스로 수치심의 고통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죠.

세 번째 그녀와의 대면,
그는 지난 10년간 한나에게 책을 녹음해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편지를 보내진 않았죠. 심지어 그녀가 편지를 보냈을 때조차도 그는 답장을 쓰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교도소장이 그에게 연락을 합니다.
그녀의 사면을 알리면서 18년 동안 갇혀 지낸 한나의 사회적응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죠.
한나에게 우편물을 보낸 유일한 사람이 바로 그였으까요.
마침내 사면되는 날 아침, 한나는 스스로 목을 매 자살을 합니다. 그녀가 남긴 유품들을 정리하던 그는 오래된 신문 기사를 발견합니다.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 실린 신문 기사를 말이죠.
교도소장이 말합니다.
“그녀는 당신과 함께 글 읽기를 배웠어요....”

문맹은 미성년 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한나는 그를 통해 읽고 쓰기를 배움으로써 드디어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성장한 셈이죠.
그가 한나를 통해 비로소 성년이 된 것처럼...
그렇다면 이 책,
사랑에 대한 책일까요?
전 사랑 보다는 지독한 그리움에 대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관통한 강렬한 그리움. 그 날카로운 대한 기록이라구요.
때론, 누군가에겐 패배가 승리가 될 때가 있습니다.
평생 한나의 실루엣에 휘감겨있던 그.
이제 그는 고향에 돌아온 셈이네요.
약간의 위장도 이젠 필요하지 않을 테죠.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자유를 손에 쥐었으니까요. 그녀의 자유 그리고 그의 자유 모두를 말입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선택했다”
그의 고백입니다.
이쯤 되면, 당신의 표정 또한 궁금해지네요....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케이트 윈슬렛에게 2009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겨줬습니다.

그런데 이 배역에 많은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 아세요?

원작자는 처음부터 케이트를 주연으로 원했는데 당시 한창 촬영중인 영화가 있어 그녀 스스로 캐스팅을 고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티븐 달드리 감독과 <디 아더스>에서 함께 작업했던 니콜 키드먼에게 그 역이 돌아갔고 촬영이 시작됐다고 하네요. 그러나 그녀의 임신으로 촬영은 중단되고 말죠.

그 사이 전작의 촬영을 다 마치고 쉬고 있던 케이트 윈슬렛에게 다시 한나 역이 돌아가게 된 거라고 합니다. 결국 그녀는 이 역으로 아카데미의 꽃이 됐구요.

소년을 연기한 데이비드 크로스 역시도 사연이 있네요.

촬영 시작 당시 그는 미성년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작진들은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닥칠 후폭풍을 염려해서(의외로 미국이란 나라 보수적이쟎아요...) 영화에 등장하는 베드신은 그의 18세 생일에 급히 촬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화 시사회 후 몇몇 장면들에 대해 윤리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원작을 보면, 처음엔 강한 거부감이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처음 생각과는 분명 달라져 있을 거예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대체 어떤 내용이 기다리고 있길래 달라지게 되는지.....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9. 4. 18. 22:59

파랗고 진하고
그리고 맑다.



포근포근한 구름.
품에 안에 보듬고도 싶어..


물이었으면...
발 아래 물이었으면...
두 발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늘...
잔인하게 파란
쪽빛의 유...혹...

서늘한 도..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