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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3.10.02 2013년 9월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2. 08:36

이번 여행 중에 그리스 아테네는 일종의 정거장이었다.

산토리리로 들어가기 전과 터키 이스탄불로 들어가기 전 하루씩 머물렀던 정거장.

5일의 사이를 두고 두 번 올라갔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산티그마에서 아크로폴리스로 이어지는 "플라카" 지역을 걸으면서

곳곳에 그려진 선명한 색채의 귀염성있는 벽화들을 보는 건

에피타이저에 해당하는 감각의 깨움이었다.

플라카지구는 우리나라로 치면 "인사동"같은 거리인데 

그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상업적인 시설의 범람은 같지만 어딘지 한가로움과 여유가 더 많이 느껴졌다.

그건 여행자라는 신분이 주는 이국의 시선 때문이었을까?

그리스에서 참 많이 먹었던 아이스크림.

달콤함은 아주 강하고 질긴 유혹이었다.

번번히 패배하면서도 이게 정말 마지막이야...를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다짐은 도저히 달콤함을 이겨내지 못하더라. 

색채의 유혹도 만만치 않았고!

 

여행의 맨 처음 목적지였던 "아크로폴리스",

그곳에서 내가 대면한 것은 "바람"이었다.

신전의 정상에 몰아치던 바람은 너무나 생생해서

인간의 접근을 저어하는 신의 확고한 손짓처럼 느껴졌다.

한걸음 한걸음 떼기가 두렵고 조심스러운 마음.

세계문화유산 1호라는 파르테논 신전을 눈 앞에서 보면서

대리석 기둥 하나의 거대함에 몸이 떨렸다.

저 거대한 기둥을 어깨에 이고 언덕까지 옮겨왔을 민초들의 죽음같은 노동이 내 어깨를 찍어누른다.

"네 눈엔 이것이 장엄뿐이냐?"

바람 속에는 민초들의 울음이 섞여있다.

그 바람의 무게 속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점점 오르라드는 하나의 몸둥아리가 된다.

무신론자라도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이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신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민초들의 고통까지도...

 

산토리니에서 밤페리를 타고 아테네에 도착해서

두번째 오른 아크로폴리스는 "구름"이었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기압의 차이에 의해 형성된 물질의 형태가 아니라

태고로부터 밀려온 시간의 현신(現身)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을 머리에 이고 웅장하게 서있는 파르테논과 에렉티온 신전은

또 다른 위압감과 신비감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그순간 이곳과 저곳의 세상이 서로 열렸던 것 아닐까?

그야말로 신화의 세계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

그리고 누군가에게로부터 확실하고 강하게 내쳐지고 거부당하고 있다는 느낌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서도 그곳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뜻인가!

그 순간 나는 소속이라는 연대가 주는 안정감을 완벽하게 버리고 싶었다.

신들은 인간들을 그들만의 세계로 쉽게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던데...

나는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감히 제2의 헤라클래스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격(格)의 무게를 격(擊)으로 맞서고 싶었다.

신들의 세계에도 파격은 분명 있었을테니까.

 

신전을 향해 올라가는 돌바닥은

사람들의 숱한 발걸음에 거울처럼 반짝거린다.

조금이라도 한 눈을 팔면 그대로 미끄러질 정도.

인간들에게 적어도 이곳에 올라올때만큼은

걸음 하나하나까지도 "조심"해주길 바라는 신들의 엄중한 가르침일까?

인간과 신의 confrontation!

그 길을 보면서 나는 인성과 신성의 필사적인 버팀을 떠올렀다.

그것과 비교한다면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빛은

차라리 온순함이리라.

 

에렉티온 신전을 떠받치고 있는 여섯명의 여사제처럼

나는 그곳을 내려와 오래 침묵했다.

바람과 구름 속에서 나를 받아낸 "아크로 폴리스"

그곳에서 나는 신의 옷깃, 그 끝을 잠시 만지고 돌아왔다.

 

이제부터 나는 어디를,

그리고 무엇을 바라봐야 하나...

Posted by Book끄-Book끄
카테고리 없음2013. 10. 2. 08:03

01. <모두 다 이쁜 말들> - 코맥 매카시

02. <개들조차도> - 존 맥그리거    

03.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사건 추적> - 표창원

04. <아르헨타나의 옷수선집> - 마리아 세실리아 

05. <조선을 뒤흔든 21가지 재판 사건> - 이수광 

06. <주말> - 베른하르트 슐링크    

07.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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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의 책을 읽고, 7편의 공연을 보고

그리고 12일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안팎으로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 여행은 휴식이 됐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이제 사진을 정리해서 흔적들을 하나하나 올리려고 한다.

이번 여행의 화두를 나는 "단어"로 정했다.

각 장소마다 그때그때 때오른 단어들.

그 단어들을 나는 쫒아가보기로 했다.

어쩐 기록으로 정리될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여행 덕분에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베른하르트 슐링크와 김엉하의 책을 읽은 걸로 큰 위로가 된다.

이 여행의 시작과 마무리가 되어준 두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 두 작품이 아니었다면 내 여행은 아주 무미건조하고 버석한 일상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른다.

김영하 덕분에 "미래거억"이라는 단어에 지금 골몰하는 중이다.

......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고백컨데 나는 한때 조기치매를 꿈꾸기도 했었다.

기억들을 지우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상태로 살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과거의 기억뿐만 아니라 미래에 해야 하는 일까지도 깡그리 잊어버리게 된다는 건!

공포고 비극이고 처절함이다.

어쩌면...

이제부터 나는 기억의 실종을 더이상 꿈꾸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게 다 김영하 때문이다.

그의 소설은...

그정도로 강력했다.

 

그건... 내 이야기였다.

과거의 거억을 추방할 권리가 내게는 더이상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