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31. 08:17

Oia의 아틀란티스 서점(Atlantis Books).

2002년 산토리니에 놀러온 올리버(Oliver)와 크래이그(Craig)가 즉흥적으로 구상해서 만들어진 서점이

지금은 Oia의 또 하나의 land mark가 됐다.

그런데 지금 이곳이 아무래도 재정난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든, 다른 나라든

책방을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어설픈 활자중독자인 나는 이 이쁜 서점이 겪고 있는 현실이 참 아프고 슬펐다.

Oia의 상가 골목들 초입에 있는 이 서점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면?

사람을은 서운해할까?

이곳도 전설처럼 기억되는 기억 속 섬이 되버릴까?

노란 서점의 외벽을 보면서

올리버와 크래이그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길 나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적어도 나는,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곳을 "꿈"처럼 떠올렸다.

이 멋진 서점을 꼭 들러보리라 혼자 작정을 했었다.

책이 없은 세상을...

나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기에..

산토리니에서 돌아온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나는 꿈이 제발 사라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Oia의 해상 박물관 (Martitime Musem of Thera).

이아는 1900년대까지 9000명의 넘는 주민 모두가 어부였단다.

당시에는 선박 회사만도 164개였고 조선소는 7개나 있었는데

1956년에 지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면서 고작 500여 명만이 이곳에 남아 삶을 지켜나갔다.

이아의 불운한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 남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을까?

잊혀져가는 이아의 선박 역사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을까?

선장이었던 안토니스 다코로니아(Antonis Dakoronia)라는 사람이 산토리니 전통 가옥을 개조해서 이 박물관을 만들었단다.

2층으로 된 이곳은 아주 소박하고 그리고 고적한 박물관이었다.

살짝 시간을 되짚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

"보존"의 흔적들은 지켜온 자들의 마음때문인지 정갈하고 다정했다.

화려함과 대단한 보물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곳엔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충분히 귀기울여도 좋을만큼.

 

사이렌을 떠올리게 하는 뱃머리 조각상을 보면서

엔진의 가속 정도를 알리는 표시판을 보면서,

배를 정박했을 때 쓰였음직한 밧줄과 닻을 보면서

튼튼하게 묶인 여러 종류의 메듭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 나른하고 몽롱했다.

마치 오래고 긴 항해를 이제 막 마치고 이제 막 땅에 발을 디딘 사람처럼.

균형감과 현실감이 살짝 흔들렸다.

 

아틀란티스 서점의 "꿈"과

해상 박물관의 "이야기"

아마도 이 둘이 Oia를 지키는 무언의 파수꾼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많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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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30. 09:10

산토리니의 이아(Oia)

이온음료 포카리스웨트 CF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한때 로망처럼 여겨졌던 곳.

나도 역시나 그랬다.

산토리니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곳을 직접 본다는 생각을 하니 설랬다.

TV를 통해 본 Oia는 그 자체가 완벽한 파라다이스였으니까.

Fira에서 로컬버스를 타고 도착한 Oia의 첫인상은 "눈부심"이었다.

어쩐지 그곳에 서있기가 민망한 정도의 찬란함 앞에서 나는 잠깐 망설였던 것도 같다.

그 찬란함속을 더 찬란하고 발랄게 뛰어내려 좋아했던 조카녀석이 없었다면

나는 도로 차를 타고 Fira로 되돌아왔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랬지.

햇빛 속에 서 있으면 저절로 살의(殺意)가 느껴진다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Oia의 햇빛 속에서 나는 그 뜻을 완벽히 이해하고 인정했다.

 

참 이상하지!

여행을 가면 모든 골목길을 기웃거리게 된다.

Oia가 좋았던건 기웃거릴 수 있는 골목들이 아주 많았다는 거.

작은 골목길 하나하나가 내겐 전부 다 하나의 세계다.

꿈 꿀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

그림같은 풍경보다 나는 골목이 숨긴 풍격에 자꾸만 눈이 갔다.

그 곳엔 누군가에게 발갈되길 바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Oia를 그렇게 맘 속에 숨겨두고 싶었나보다.

 

정교회 센터 광장 종탑앞에 앉아 있는 햇빛을 올려다 보면서

Oia의 골목길을 서성이면서

나는 폭력같은 햇빛의 습격 속에서 밀려오는 "그리움" 때문에 손발이 저렸다.

그리움 없는 외로움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건 그냥 지나게 버리는 허상일 뿐이다.

하지만,

외로움에 그리움이 쌓이기 시작하면...

그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온 몸을 뚫고 나간다.

제대로 관통당해 또 다시 너덜해지는 마음.

 

눈부신 건 햇빛 때문이 아니다.

관통당한 마음,

그것 때문이다.

 

Oia는 참 잔인한 햇빛을 품고 있구나...!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29. 08:33

산토리니에 머무는 동안 조카들에게 물놀이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숱한 beach 중에서 심사숙고 끝에 결정했던 Red Beach.

관광객들이 제일 많이 가는 곳이 Perissa와 Kamari beach라서 이곳을 갈까 하다가

Fira에서 가깝기도 하고 아담하고 소박한 beach라서 조카들과 놀기에 좋을 것 같아 이곳을 선택했다.

(그때까지는 정말 몰랐었다... 이게 개인적인 재앙이 될 줄을...)

Fira 버스 정류장에서 아크로티리(Akrotiri)행 버스를 타고 20여분을 달려 정류장에 내렸다.

이정표를 따라 10여분 걸어서 도착한 Red beach.

그런데 얼마전에 태풍이 지나갔는지 입구가 폐쇄되어 있었다.

비치 파라솔도 전혀 안 보이고...

산길을 따라 beach까지 내려갈 수는 있을 것 같고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그렇게 하던데

조카들 신발이 슬러퍼라 포기하기로 했다.

여기서 동생과 약간의(?) 의견 충돌이!

욱하는 마음에 혼자서 사진을 찍고 가겠노라 주장했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채!

 

혼자 사진을 찍으면서 두어시간 머물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아크로티라 유적지를 가려고 일어섰다.

입장료를 내려고 가방을 찾으니 아뿔싸!

지갑이 없는거다.

생각해보니 레드 비치 초입에서 조카들 음료수를 사주면서

동생 가방에 지갑을 넣었던 게 생각났다.

그러니까 내 수중에 단 1 Uro도 없다는 뜻이 되는 거다!

낯선 이국에서,

숙소와 한참 떨어진 곳에서,

달랑 혼자서,

그것도 완벽한 빈털털이가 된거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버스 정류장에서 동양인으로 보이는 여자분께 사정을 이야기했다.

"I'm lost my poket ! give me 2 Uro, Please!"

아무래도 남자에게 구걸(?)하면 오해의 여지가 있을것 같아서...

(그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한 걸 보니 아마 정신이 완전히 나간 건 아니었나보다.)

다행히 그 여자분께서 "Oh my God!"을 연발하며 지갑에서 2Uro를 흥쾌히 꺼내줬다.

"You save me! thank you so much, so~~ so~~~"

정말 수도 없이 so~~~so~~~를 연발하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Fira행 버스에 무사히 올라타니 그제서야 웃음도 나더라.

개인적으론 참 난감하고 민망한 상황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사건이 그래도 개인적으로 제일 큰 기억이 된 것 같다.

레드비치에서 수상택시가 들어와서 "화이트비치"를 외치며 호객할 때마다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만약 돈없이 수상택시를 탔었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그때 망설였던 거 정말 잘한거다!. 다행이다!)

 

붉은 자갈과 모래로 가득했던 비치는 낯선 모습때문에 더 신비로웠다.

물도 깨끗하고 수심도 깊지 않아 쬐그만 꼬마들도 꽤 멀리까지 나가 수영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

더불에 1달 다니다 결국 깨끗하게 포기힌 수영 생각도 간절했고...

내겐 여전히 그렇다.

수영과 운전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내 기준에서 제일 미스터리한 건 이정표 보고 길 찾아가는 거랑 사람이 물에 뜨는 거!) 

비록 물 속에 발도 못 담그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혼자 레드 비치에 남았던건  잘한 일 같다.

멋진 (?) 구걸의 추억도 생기고!

 

싱거운 일탈과 위기 탈출로 끝난

나의 Red beach 표류기!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28. 08:16

산토리니에서 두번째로 높은 피르고스(Pyrgos) 언덕.

그 언덕 위에 세워진 13세기 비잔틴 성채를 둘러봤다.

피라(Fira)에서 페리샤(Perissa)행 로컬버스로 20분정도 걸리는 피르고스는

아주 한적하고 고적했다.

OIA나 Fira에 비하면 관광객들도 적어서  

골목골목을 통째로 차지하며 걸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정말 산토리니에 왔음을 실감케하던 눈부시게 하얀 건물과 파란 지붕들

그리고 찬란하다 못해 눈을 찌를듯 느닷없이 달려들던 햇빛들.

아마도 나는 그 햇빛 속에서 "통증"을 느꼈던 것 같다.

뭉근하게 전신으로 퍼져오는 알싸하고 묵직한 느낌.

햇빛속에 이렇게 깊은 무게가 있구나... 알아챘을 땐

너무 멀리, 그리고 너무 구체적으로 피르고스 햇빛속에 들어가 있었다.

동화속 주인공처럼 발랄하게 뛰어다니는 조카의 보는 내 눈이 시리다.

지금도 피르고스를 햇빛을 생각하면,

가슴 한 켠에서 시작한 묵직한 통증이 전신을 휘돈다.

여전히 아프다.

 

피르고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오른편으로 바로 보이는 친절한 CASTELLI 화살표.

그 길을 따라 쭉 올르다보면 만나게 되는 작은 개인 공방들.

소박한 작은 공예품들도 피르고스에선 그대로 풍경이 된다.

사람의 흔적보다 진열된 공예품들이 더 많았던 곳.

그 골목과 골목들...

골목을 하나 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설래고 또 설랬다.

눈 앞에 보여질 그 다음 풍경들 때문에...

"천국" 혹은 "평화"

어쩌면 나는 피르고스에서 개구진 아이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피르고스의 하얀 벽들과 파란 지붕, 원색의 문들이 손에 잡힐듯 가깝다

잠깐 스치고 지나갔던 바람의 물기까지..

머리와 심장에 각인된 풍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을 뜨기가 힘겹다.

혼자 놀던 바람이 종을 치고 지나간다.

이제 그만 깨어나라고!

 

땡그랑~~~! 땡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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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3. 10. 26. 15:43

<노트르담 드 파리>

일시 : 2013.09.27. ~ 2013.11.17.

장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원작 : 빅토르 위고

대본 : 뤽 플라몽동

작곡 : 리카르토 코치인테

연출 : 질 마으

출연 : 홍광호, 윤형렬 (콰지모도) / 바다, 윤공주 (에스메랄다)

        마이클리, 정동하, 전동석 (그랭그와르) / 문종원, 조휘 (클로팽)

        민영기, 최민철 (프롤로) / 김성민, 박은석 (페뷔스)

        이정화, 안솔지 (폴뢰르 드 리스)

주최 : (주)마스트엔터네인먼트

 

사실 당일까지도 관람 여부를 많이 고민했었다.

결국 반전처럼 관람을 선택한 건 OP석이라는 마력(?) 때문이었다.

배우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기대감보다는

어마무지한 댄서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겠다는 설레임에...

그랬더랬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OP석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무대와는 제일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다섯번의 관람 중 이번 관람이 가장 집중이 안 됐다.

(심지어 3층보다 더!)

아무래도 너무 가까웠던 모양이다.

적당한 거리...

그게 왜 필요한 건지 확실히 알겠다.

특히나 <NDP>는 더욱 더.

이 작품의 조명이 얼마나 확실하고 정확한지 OP석에서 절실하게 느꼈다.

체감할 수 없음에 내내 그리워하면서...

화려함도 정확함을 도저히 이길 수는 없는거구나 생각하면서!

 

홍광호 콰지모드.

여전히너무 쎄고 강하다.

깨끗하고 힘있는 고음이 홍광호의 강력한 장점이긴한데

다른 배우들과의 발란스를 무너뜨린다는 건 이 역할에선 큰 단점이다.

홍광호의 의도가 아니라는걸 아는데도 "Bell"을 들을때마다

균형잡힌 삼각형의 구도가 삐걱거리는게 너무나 아쉽고 아쉽다.

무대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개구장이 꼬마 같아서

세상에 마냥 신기해하는 소꼽장난하는 아이의 모습같다.

그래선지 "불공평한 세상"도 여간해선 불공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홍광호 콰지모도는 "동화"의 세계처럼 한없이 맑고 깨끗하고 순수하기만 하다..

윤공주 에스메랄다.

바다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날 윤공주는 호흡도, 음정도, 연기도 너무 과장스러웠다.

그리고 제발 얼굴 좀 가만 뒀으면 좋겠다.

과도한 시술로 표정이 점점 한가지로 통일되려고 한다.

가까이에서 본 그녀의 얼굴은... 많이 무서웠다.

(윤공주의 초창기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요즘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게 솔직히 감당이 안된다.)

 

댄서들의 모습은 확실히 거리를 두고 보는 게 훨씬 더 아름답다.

그래도 "Dechire"에서의 남자 댄서 5명의 움직임은 가까이에서 봐도 환상적이다.

이 댄서들 공연 끝나면 아마도 링거병을 꽂고 있지 않을까?

"발다무르 카바레"는 지금껏 몰랐는데 여자 댄서들 옷이 정말 야하더라.

게다가 얇기까지...

그런 얇은 살색 스타킹(?)만 입고 춤을 출수도 있는거구나...

 

어쨌든 이번 관람으로 더 확실해졌다.

윤형렬 콰지모도와 바다 에스메랄다에 내가 훨씬 더 몰입하게 된다는 걸.

허스키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윤형렬의 콰지모도에게는 웅장함과 비장미가 있다.

게다가 그렇게 큰 체격의 콰지모도가 사랑때문에 어쩔 줄 몰라하며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 간절하고 안스럽다.

바다 에스메랄다는 가끔 가수의 기교가 나오긴 하지만 감정에 정말 충실하다.

아무래도 이 두 사람의 조합으로 한 번쯤 더 보게 될 것 같다.

특히나 윤형렬의 "불공평한 이 세상"이 주는 전율과 슬픔은

꼭 다시 한 번 보고, 듣고, 느끼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0. 25. 11:39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일시 : 2013.10.09. ~ 2013.10.20.

장소 : LG아트센터

원작 : 소포클레스

대본,작사 : 한아름

작곡 : 최우정

연출 : 서재형

출연 : 박해수(오이디푸스), 박인배(코러스장), 임강희(이오카스테),

        이갑선, 임철수, 오찬우, 김선표, 김중오, 박지희, 김정윤, 이천영,

        김재형, 인진우, 지석민, 김혜인

주최, 제작 : LG 아트센터 

 

이 대단한 작품에 대해 도대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더 코러스;오이디푸스>

이 작품은 내게 2013년 최고의 작품으로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거다.

솔직히 말하면 대사 한 줄 한 줄을 내 살과 뼈 마디마디에 새기고 싶은 심정이다.

모든 장면들과 모든 대사들을 날 것들처럼 그대로 살아서 내 속에서 춤을 춘다.

이 작품...

충격과 감탄, 경악과 흥분이란 단어로는 이 작품의 발끝조차도 표현할 수 없다.

마치 내가 그대로 매장되는 느낌이었다.

죽은 아오카스테의 황금브로치로 스스로 눈을 찔러 검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다름아닌 나같다.

그런데 어쩌면 좋나!

뽀족한 죽창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

이 뻐근하고 잔인한 아픔을 도대체 어떻해야 감당해야 할까?

어떤 방법으로든 결코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

아니! 빠져나오지 않으련다!

 

결정과 선택은 피할 수없는 인간의 숙명!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매순간마다

나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오는 그 운명을 향해

나는 과연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운명은 화살과 같아서 자신이 쏜 방향으로 날아간다는데...

내가 운명지어진 신탁(神託)이 나는 두렵다.

 

태어나서는 안 될 운명이 태어나

죽여서는 안되는 사람을 죽이고

결혼해서는 안되는 사람과 결혼을 해

낳아서는 안될 자식들을

낳고 알아서는 안될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구나 

부은 발 "오이디푸스"의 내려진 신탁은 얼마나 가혹하고 잔인하고 극악무도한가!

이 모는 것들,

결코 그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그가 알고 행한 일도 아닌데...

아니 오히려 그 비극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는데...

정해진 운명의 수레바퀴에 갈갈이 찢겨 결국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른채 지팡이에 의지에 테베를 떠난 오이디푸스.

그의 마지막 대사를 나는 통곡처럼 삼켰다.

 

"나는 살았고, 그들을 사랑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더 코러스'오이디푸스>

이 작품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다.

완전히 미친 작품이다.

1000여석의 LG아트 객석을 텅텅 비우고 무대 위에 360석 규모의 객석을 만든 것도 미친 짓이고

고대의 그것처럼 코러스를 이렇게까지 살려낸 서재형 연출도 미쳤고

이 어려운 작품에 이런 가사를 붙인 한아름도 미쳤고

이 느낌을 멜로디로 만든 최우정도 미쳤고

피아노와 사람의 소리로만 이렇게 가차없이 몰아부치는 배우들도 미쳤다.

고통스럽지만 행복했겠다.

이 모든 미친 사람들은!

심지어 이 사람들은 소리를 아주 선명히 보이게, 잡히게 만들었다.

그건 두 가지 감각이 공존하는 공감각의 영역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탄생이었다.

광기(狂氣) 그 이상의 작품.

 

열린 문을 통과해 어두운 객석을 따라 들어가면서도

검은 장막이 내려진 무대로 올라가면서도

마치 무언가에 홀리고 있다는 느낌때문에 한걸음 한걸음이 난처하고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아주 제의적이고 주술적인 아우라가 무대를 넘어 비어있는 객석까지도 가득하다.

자리에 찾아 앉기조차도 어딘지모르게 망설여졌다.

뇌쇄적이라는 말.

이 작품은 내 뇌 전체를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녹여버렸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 시선과 심장과 머리와 온몸을 다 움켜쥐고 조여온다.

처음이다.

배우도 아니면서 이 작품의 대사 전채를 통째로 외워버리고 싶다는 생각!

아마도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나는 이 작품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홀로 길을 떠나야했던 오이디푸스의 뒷모습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이 작품은...

원죄처럼 영원히 내 가슴이 남겠다.

 

...... 그는 누군가? 오이디푸스

       자식들을 위해 , 형재를 위해 스스로 길을 떠났다.

       오이디푸스를 보라!

       저 뒷모습을 본 자라면 명심하라.

       누구든 삶의 끝에 이르기 전에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사람으로 태어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지 말라 ......

 

어차피 다가올 멸망이라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가차없이 다가와주면

좋.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0. 24. 07:54

봄과 가을, 일년에 딱 두 차례 열리는 간송미술관 정기전시회.

올해 봄에 "표암과 조선남종화파전"을 놓치고 나서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어찌어찌 시간을 내서 마지막날 가긴 갔었다.

그런데 줄이 너무 길어서 도록만 사고 관람을 포기했다.

5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해서...

그래서 이참에는 아예 작정을 하고 개관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그런데 이럴 수 있는건가?

일요일이라 관람객이 많을거란 예상은 했지만

이미 성북파출소까지 줄이 이어져있었다.

솔직히 한시간 정도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무려 3시간이나 기다렸다가 입장했다.

작정하고 나선 길이라 가방 안에 기다리면서 읽을 책과 물을 챙겨가긴 했지만

정말 오랫만에 가을 햇빛에 노릇노릇 성실하게 익었다.

(다행이다. 잘 벼른 칼처럼 날카로운 햇빛이 아니어서...)

그대도 다 괜찮다.

끝이 분명히 있다면, 그 끝에 목적과 의미가 기다리고 있다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간송미술관을 들어서면 늘 마음이 편해진다.

사람의 손으로 일부러 가꾼게 아니라

나무가 가진 품성대로 제멋대로 자란 가지들을 지나오는 것도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열매와 작을 꽃들과 눈맞추는 것도

눈과 비, 바람을 그대로 받으며 서있는 부조물을 보는 것도

나는 늘 정겹고 포근하다.

간송미술관의 소나무는 보고 있으면

품격과 기품보다는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뚝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앞으로 긴 세월을 더 오래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생존의 책임과 의무까지도...

간송 전형필 선생의 마음이 이러지 않았을까?

6.25 피난길에서까지 훈민정음 해례본을 품 안에 품고 길을 떠났던 그 애뜻함이,

일부러 일본까지 건너가 빼앗긴 문화재를 자비로 사왔던 그 견고하고 확고한 고집이

아직도 간송미술관 주변에 아우라로 살아있는 것 같다.

고인의 뜻이었다지만 봄가을 두 차례씩 무료로 전시회가 열릴때마다

보물급의 귀한 미술품을 이렇게 입장료없이 봐도 되나 싶어 늘 민망하다.

그래선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불만없이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진경시대화원전"에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보물같은 그림들이 정말 원없이 볼 수 있다.

김홍도의 그림은 웅장하면서도 단단한 직립의 수직 구도가 심지처럼 박힌다.

그 수직의 구도 끝에는 떨어지는 폭포를 받아내는 웅덩이가 있거나

한그루의 나무가 주위 풍경에 무관하듯 담담히 서있다.

뭐랄까?

견재함으로 버텨내는 고집스러움이 느껴진다.

신윤복의 그림들은 색채보다는 오히려 표정에 더 눈길이 간다.

남자들의 얼굴은 눈썹과 눈꼬리가 올라가 어딘지 심통맞고 의뭉스럽게 보이고

여자들의 표정은 꼭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래, 어디 늬들 깜냥껏 해봐라...!"

너희 남자들 하는 모양을 내가 다 안다는 듯한 표정.

확실히 신윤복의 그림 속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두어수쯤 위다.

이의양의 데생같은 그림들도 눈에 들어왔고

신한평의 "자모육아(慈母育兒)"는 엄마 미소가

김희겸의 "연호대란"은 그 귀염성에 개구장이 미소가 절로 생겼다.

(정말 대란이긴 대란이다.) 

전시된 그림에 제목과 작가명만 써있어서 좀 서운했는데

다행히 도록에는 크기와 연도, 지본수묵(紙本水墨)이나 지본담채(紙本淡彩) 라는 설명이 써있었다

그림 옆에 있는글귀들도 따로 적혀있고...

(솔직히 그림 속에 있는 한자들은 흘림체가 많아 암호처럼 느껴져서...)

전시장 유리가 그림을 왜곡돼 보이게 하는 건 많이 아쉬웠지만

오랫만에 긴 기다림 속에서 달콤한 오수(午睡)같은 시간을 보내서 행복했다.

한 번 더 둘러보고 싶었는데 유도되는 줄을 따라 그대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미술관을 뒤로 하고 내려오니

늘어선 줄이 아침보다도 훨씬 더 길다.

줄 속에 있는 사람들은 도록을 들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본라.

(나도 아침까지만해도 그랬는데...)

그림만으로도 황송했는데 턱없는 뿌듯함과 우월감까지 안고 돌아왔다.

 

내년 봄,

간송미술관은 내게

또 어떤 그림을 보여줄까?

벌써부터 내년 봄이 꿈처럼 기다려진다.

                                            

                                        신한평 "자모육아(慈母育兒)"

                                                  김홍도 "구룡연"                               

                                                     신윤복 "계변가화"

                                                      신윤복 " 쌍검대무"

                                                        신윤복 "연소답정"

                                                                     김득신 "목동오수" 

                                                       김득신 "송하기승"

               

                                                           김희겸 "연호대란"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0. 23. 09:57

<노트르담 드 파리>

일시 : 2013.09.27. ~ 2013.11.17.

장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원작 : 빅토르 위고

대본 : 뤽 플라몽동

작곡 : 리카르토 코치인테

연출 : 질 마으

출연 : 홍광호, 윤형렬 (콰지모도) / 바다, 윤공주 (에스메랄다)

        마이클리, 정동하, 전동석 (그랭그와르) / 문종원, 조휘 (클로팽)

        민영기, 최민철 (프롤로) / 김성민, 박은석 (페뷔스)

        이정화, 안솔지 (폴뢰르 드 리스)

주최 : (주)마스트엔터네인먼트

 

어느새 <NDP>를 네번이나 보게 됐다.

주저하면서 계속 관람하는 걸 보면 이 작품이 내겐 정말 특별한 모양이다.

문득 그런 생각도 했다.

나는 도대체 이 작품의 누구에게 이렇게까지 깊게 동화가 되버린걸까?

괴물 콰지모도?

그건 참 식상한하고 뻔한 비윤데...

 

프랑스팀 공연만큼 그렇게 깊게 빠지진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날 공연을 보고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한번도 라이센스 공연을 보면서 이 정도까지 뭉클했던 적이 없었는데

이날은 심정적으로 감당이 안 될만큼 아프고 슬펐다.

신의 사제로써 한 여자를 보게 되고

그 여자의 육체를 갖고픈 관능때문에 종말을 맞은 프롤로 신부도 아팠고

추한 모습때문에 간절한 사랑을 가슴에만 담고 있어야 하는 콰지모도도 아팠다.

죽음으로만 함께할 수 있는 사랑.

"사랑"이 위험한 건,

어떻게든 "같이" 하고픈 그 마음 때문인가보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결코 가질 수 없다는 프롤로의 마음도

죽어서 비로소 함께할 수 있게 된 콰지모도의 마음도

모두 "같이"하고픈 그 열망이 시작이고 끝이다.

 

처음으로 조휘 클로팽을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문종원보다 좋았다.

문종원처럼 과도하게 힘을 쓰지 않아선지 보는데 편했다.

그렇다고 평이했다거나 약했다는 의미는 아니고... (설마! 조휘인데!)

"기적의 궁전"은 정말 힘있고 멋졌다.

높은 철근 위에 번쩍하고 뛰는오를 때는 아찔하기까지 하더다.

더듬이 분장만 빼면 정말이지 참 좋았는데...

 

단언컨데 댄서들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마치 자신의 모든 걸 결고 고별공연을 하는 사람들같다.

매 공연을 어떻게 이렇게 해내는지 눈 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14명의 남녀 댄서들 모두가 에스메랄다고 콰지모도다.

그리고 윤형렬의 콰지모도!

정말 가슴을 움켜쥐게 만든다.

도대체 이런 느낌과 감정을 어떻게 끌어낸걸까?

그의 "불공평한 세상"과 "춤춰요 에스메랄다"를 보고 듣고 있으면

내 오감까지도 그대로 오열하게 된다.

이날 윤형렬 콰지모도는 여러 의미로 정말 괴물 같았다.

마이클리로 시작된 <NDP>가 지금 내게 윤형렬을 재발견하게 만든다.

아마도 윤형렬 콰지모도 때문에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이 먹먹하고 아픈 가슴을 위로받기 위해서...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0. 22. 08:51

<인당수 사랑가>

일시 : 2013.09.07. ~ 2013.11.03.

장소 :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대본, 작사 : 박새봄

작곡 : 김아람, 김준범

음악감독 : 신은경

연출 : 최성신

출연 : 임강희, 유리아 (춘향) / 박정표, 이창용, 전성우 (몽룡)

        이석준, 고영빈 (변학도) / 안치욱, 이상은 (심봉사)

        서정금, 정상희 (도창) / 이동재 (방자), 박경옥 (뺑덕)

        최명경, 김광만, 김하나, 이종원

 

예전에 이 작품이 소극장에서 공연됐을 때 두 번 정도 관람을 했었다.

처음 봤을 때 정말 깜짝 놀랐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에 여러 형태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그것도 썩 성공적으로 시도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작품을 보기 전에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춘향전>과 <심청전>을 섞는다?

코믹한 마당놀이를 보게 될거라고 생각했더랬는데...

자그마한 극장에서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사랑가"와 "쑥대머리"가 나오니 눈과 귀가 동시에 번쩍했었다.

이야기 구성도 너무나 참신했고

젊은 배우들의 패기와 정성 가득한 연기도 인상깊었고

상식을 뒤짚는 변학도의 캐릭터 반전도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방자 이동재의 맛깔스러운 연기도, 도창 정상희의 구수한 소리도 신선하고 흥겨웠다.

이런 멋진 파격과 도전이라면 우리 고전도 경쟁력이 있겠구나 생각할 정도로

재미와 감동, 친근함과 새로움을 그야말로 적재적소에 질 배치시켜 만든 작품이었다.

내 기억에 이 작품은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출신이 주축이 됐던 걸로 기억한다.

졸업작품이었다는 말도 있고...

"한예종" 출신들이 이렇게 사고를 칠 때마다(?) 나는 아주 흐뭇하고 반갑다.

(그런데 요즘 "한예종"이 너무 조용하다.... 크게 사고 한 번 쳐줬으면 싶은데...) 

 

6년이 훌쩍 지나 다시 보게 된 <인당수 사랑가>는

역시나 참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품에 대한 욕심이 너무 과해서

그 좋은 작품이 오히려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리리 예전처럼 소박하지만 내실있는 작품으로 남아

소극장에서 롱런하는 작품이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좋은 작품이 너무 큰 공연장을 만나 객석의 일부도 온전히 채우고 못하는 걸 목격하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무대도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게 아니라 너무 휑하니 텅 비어 불필요한 공명만 더 생겼다.

오케스트까지 추가돼서 음악이 확실히 풍성해지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소극장에서 도창과 고수 한 명으로 공연됐을 때가 훨씬 좋았다.

그래도 초연때부터 <인당수 사랑가>를 지켜온 방자 이동재를 다시 볼 수 있었던 건 정말 득템이다.

이동재처럼 작품에 깊은 애정을 가진 배우의 무대를 보는 건 언제가 큰 기쁨이다.

 

관람하면서 눈에 담겼던 배우는 춘향역의 유리아와 변학도의 이석준.

<두 도시 이야기> 초연때 눈여겨 봤던 유리아가 재연에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궁금했었는데

이 작품을 준비하느라 그랬나보다.

임강희가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를 하느라 유리아의 회차가 많아졌는데

자기관리를 성실히 했다는 게 무대 위에서 그대로 보여졌다.

아마도 이 작품을 끝내고나면 뮤지컬 배우로서 유리아의 입지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노래도 연기도 목소리 톤도 참 좋았다.

그리고 변학도 이석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꽉꽉 채워지는 이석준은 항상 묘한 "끌림"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배우가 배역 속에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이석준만은 예외다.

그가 만들어 내는 배역은 확실히 "이석준"만의 느낌이 있다.

이 작품 속에서도 휑한 공연장이 민망할 만큼 그의 연기는 좋았다.

독보적이만 결코 함부로 튀지 않으면서 작품 속에 풀어지는 이석준의 연기가 나는 참 좋다.

이석준은 분명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멋진 배우가 될 것 같다.

꽉꽉 차 있으면서 느긋한 여유가 느껴지는 그런 배우.

그래서 나는 지금보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중년을 훌쩍 넘긴 이석준의 모습이 아주 궁금하다.

무대 배우의 복지와 향후에 대해 그만큼 고민하는 배우가 또 있을까!

책임감이라는게 무대 위에 있을 때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석준이 항상 상기시킨다.

나는 그의 확신이 공연계의 화두가 될 날이 꼭 올거라고 확신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배우 이석준이 지금처럼 굳세고 곧은 청춘이길 바라고 또 바란다!)

 

영화배우 조성하를 닮은 멀티맨 최명경의 연기도 아주 맛깔스러웠고

심봉사 이상은의 감쪽같은 연기도 감탄스러웠다.

도창 정상희는 이 작품을 워낙 오래해서 그런지 제대로 한판 노는 재미가 쏠쏠했다.

몽룡 전성우가 오히려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좋았는데

문제는 공연장이 너무 컸다는 거!

일요일 저녁 텅 빈 객석을 보면서 참 쓸쓸했다.

이 작품, 정말 정말 좋은 작품인데...

혹시 다시 예전처럼 소극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아니면 최소한 동숭아트홀이나 연강홀 정도의 규모라도.) 

굳이 규모를 키우고 싶다면 공간을 채우는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으면 정말 좋겠고!

이 좋은 작품이, 이 좋은 배우들이 텅 빈 객석때문에

찬서리를 맞고 있는 것 같아 자꾸 걱정된다.

정말 좋은 작품인데...

정말 좋은 배우들인데...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0. 21. 08:28

<연애시대>

일시 : 2013.10.05. ~ 2013.12.29.

장소 : 대학로 자유극장

원작 : 노자와 하사시

연출 : 김태형

프로듀서 : 김수로

출연 : 조영규, 김재범, 이신성 (리이치로)

        황인영, 심은진, 손지윤 (하루)

        채동현, 이원 (나가토미,기타지마)

        소정화, 이수진 (가스미,다미코)

        윤경호 (가이에다), 황미영 (사유리)

 

2011년 김영필, 주인영 캐스팅으로 이 작품을 봤었다.

두 배우의 연기는,

연극 속 대사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치고 빠지는 호흡이 아주 좋았"었다.

재미도 있으면서 코끝이 찡하기도 했고, 아주 치열하기도 했었다.

그야말로 밀당의 진수를 김영필과 주인영이 보여줬었다.

게다가 정선아(사유리)와 김나미(가스미, 다미코)의 맹활약까지.

이런 캐스팅 아마도 다시 나오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2013년 <연애시대>

김재범과 채동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냥 넘겼을 작품.

(인팍 모닝티켓 덕분에 프리뷰를 만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으로 관람했다.)

2011년 캐스팅이 워낙에 막강해서 어쩔 수 없이 자꾸 비교하게 되더다.

전체적으로 작품이 가벼워졌다.

(도대체 왜 자꾸 공연들이 가벼워질까?)

노자와 하사시의 원작도 읽었는데 이렇게 가볍지는 않았는데...

그래선지 결혼식 장면과 영안실 장면이 교차되는 부분이 좀 붕 떠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재범은 이 장면에 사람 참 뭉클하게 만들더라.)

수정된 부분들도 눈에 띄는데

개인적으론 기타지마 교수 아내가 하루에서 이혼신청서를 맡기는 부분이 사라진 건 아쉽다.

그 부분 대사도 생각난다.

"그게 뭐였다고 생각하세요? 사랑이었어요"

그때 분명 하루의 마음이 움직였었는데...

다음 장면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미코가 리이치로와의 결혼신청서를 하루에게 맡기는 장면이었다.

장면으로 인물의 심리와 미묘한 갈등이 잘 교차시켜서 아주 인상적으로 느꼈던 장면이었는데...

 

듣기 거북할 정도로 소리를 지르던 황미영의 사유리는 과장이 너무 심했고

채동현은 나가토미는 너무 평범했지만 기타지마는 나쁘지 않았다.

하루와 리히치로의 툭툭 거리는 장면을 레슬링 경기처럼 친구들이 중계하는 장면은 참신하고 적절했다.

소정화의 가스미와 다미코는 둘 다 과장이 심했고 두 인물의 구별이 별로 없었다.

2011년에 김나미 배우가 이 두 역할을 정말 환상적으로 표현했었는데...

가즈미일 때는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다미코로 나올 때는 또 그렇게 천상 여자일 수 없더라.

(그때 "아야"가 남자 관객이었다. 남자처럼 생겼지만 딸이야~~라던 김나미 가스미의 멘트에 객석이 완전 빵 터졌었는데...)

소정화는 그냥 소정화 같아서...

 

이 연극은 대사들이 정말 좋은데

2011년 공연 만큼 대사의 묘미와 뉘앙스를 잘 살리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불협화음의 "One summer night"이 철이와 미애의 "너는 왜?"로 바뀐 것도 개인적으론 아쉽다.

노래처럼 이 작품 자체가 하루와 리이치로의 "One summer night" 처럼 느껴졌었는데...

다시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같은 사람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한다면 싸우는 여자와 도망치는 남자는 변할 수 있을까?

연극은 변할 수 있다고 답하지 않는다.

단지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의 새끼손가락에는 보이지 않는 인연의 붉은 실이 묶여 있단다.

어떤 사람들의 붉은 실은 너무나 선명하고 단단해서 누구도 자르거나 엉키게 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게 연애라는 말도.

변하는 게 옳은 건 아니다.

때론 최대한 숨겨야 할 때도 있고, 때론 더 많이 보여줘야 할 때도 있다..

그런게 사랑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