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1. 10. 24. 00:21

<에릭 사티>

일시 : 2011.09.30 ~2011.10.02. 
장소 :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1관(구 이다 1관)
출연 : 박호산(박정환), 이주광, 한성식, 이태린, 김용호 외


음악극 <에릭 사티>
공교롭게도 이 작품을 볼 때 나는 항창 고흐와 태오의 편지를 읽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절망적으로 아름답고 비참할만큼 가련하게...
고흐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림이 자신을 완전히 지배해 결국 자살로 이끌것이라는 걸.
고흐는 자신의 편지글처럼 격렬했다. 더 이상 격렬할 수 없을만큼.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그리고 고흐는 실제로 그랬다.
고흐는 그림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고흐의 이성은 처음엔 반쯤 망가졌고 종국엔 온전히 망가졌다.
고통스럽게 그러나 기꺼이...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한 눈 파는 것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고흐처럼 시대를 앞서갔던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
"짐노페디"와 "그로시엔" 등의 작품을 남긴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는
클래식 음악의 아카데미즘에 반발해서 선율과 리듬이 단순한 곳을 만들어 "서양 고전음악의 기인"으로 불렸다.
"낡은 시대에 너무 일찍 세상에 온 사람...“
축복과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안산문화예술의 전당 자체 창작극.
안산에서 짧은 공연을 하고 다시 서울 대학로에 넘어와 역시 짧게 공연됐다.
제작진도 탄탄하고 출연진도 탄탄한 작품.
물론 창작에 초연이라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보이긴 하지만
꽤나 용감하고 신선한 도전이고 출발이다.
에릭 사티 역의 박호산(박정환)은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역할을 맡았고
인물설정도 무난하게 잘 한 것 같다.
특히나 목소리톤과 불안한 시선, 손짓 발짓의 움직임은
다시 한 번 박호산 배우의 섬세함을 절감하게 한다.
극도의 섬세함이 아닌 감정을 아우르는 묘한 섬세함.
박호산의 장점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다만 극의 말미의 정신 착란류의 연기가 더 강렬했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 유약하게 표현된 것 같아 아쉽다.
1인 다역의 한성식은 다소 무겁고 어려울 수 있는 작품을 유머러스하게 만들어준다.
위대한 조연의 활약이 극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느끼게 한다.
토미역의 이주광.
감정표현이 어느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과하게 나타난다.
예술가의 광기를 표현한 것이겠지만 정당해보이지 않고 오히려 어리광처럼 보여졌다.
노래도 몇 군데 흔들렸고...

 

천재 작곡가 에릭 사티!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그를 이렇게 살려냈다는 게 참 대단하다.
전혀 몰랐던 인물을 만나는 행운!
이것 자체가 inspiration은 아닐까?
영화감독을 꿈꾸는 토미의 예기치 않는 시간여행!
100년 전 사티를 만나서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찾아가는 여정은
현실성 운운을 떠나서 흥미롭고 신선했다.
"시간여행"아리는 테마 속에 인물과 의도한 내용이 묻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쁘지 않은 작품이 탄생됐다.
달의 저편(dark side of the moon).
새로운 걸 원한다면,
남들이 보지 못한 다른 곳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달의 저편을 봤다면 확신을 가져야 한다.
에펠탑이 무너지고 몽마르트 언덕에 화산이 폭발한다해도 부정하지 못할 확신!
에릭 사티!
용감한 작품을 보면서
나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그러나 너무나 편안한 한 인물을 봤다.
고흐가 말이 오버랩된다.
"내 전 생애가 그림 그리는 노력으로 일관되어야 하고
 생의 마지막에는 진정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고통은 ...
광기보다 강하다.



터키여행 후 1달만에 본 공연.
살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8. 24. 06:06

 


연극 <우먼 인 블랙>
원  작: 수잔 힐
연  출: 이현규
기  간: 2011.07.09 ~ 2011.09.10
장  소: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출  연: 홍성덕, 이동수, 박정환(박호산)


요즘은 연극을 좀 챙겨보려고 노력중이다.
그닥 보고싶은 뮤지컬이 없기도 하지만 연극을 보는 재미는 확실히 뮤지컬의 그것과는 다른다.
그리고 솔직히 요즘 공연되는 뮤지컬들이 점점 가벼운 쪽으로 가는 것 같아 개인적으론 안타깝다.
초연 이후에 다시 공연되는 작품도 조금씩 코믹한 부분들을 부각시키는 것 같고......
그게 붐이고 그래야 소위 장사가 되기 때문이겠지만 첫기억이 좋아 다시 찾았는데 의아스러울만큼 코믹해져서 놀란 경험이 많다.
게다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뮤지컬 가격은 솔직히 정말 무섭다.
준비 안 된 아이돌이 질려대는 정체불명의 딕션과 괴성은 거의 불쾌한 공해 수준이고...

연극의 매력은...
배우의 몰입, 그리고 관객과 배우의 몰입이 일치할 때 생기는 집중력에 있는 것 같다.
그게 딱 맞아 떨어졌을 땐 정말 극 속으로 빨려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연극이 그랬다.
<우먼 인 블랙>
1989년 영국 웨스트엔드에 입성한 후
현제까지 22년째 쉬지 않고 공연되는 작품이란다.
게다가 얼마전엔 해리포터 "다니엘 레드클리브" 주연으로 영화도 촬영됐다.
우리나라엔 2012년 개봉예정이란다. 
궁금하긴 하다.
해리포터의 이미지를 이 공포물로 벗어버리고 성인연기자가 될 수 있을지...
 



박호산으로 이름을 개명한(아직 공식적인 건 아니라지만...) 박정환과 이동수가 배우 역으로
2004년 초연때부터 변호사 '아서 킵스' 역을 맡았던 홍성덕 배우와 함께 출연한다.
이 날 캐스팅은 박정환과 홍성덕.
두 사람의 호흡은 완벽하고 절묘했다.
개인적으로 배우 홍성덕의 무대를 처음 봤는데 대단하다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만큼 멋졌다.
손가락으로 꼽아보니 스파이더라는 강아지까지 혼자서 8가지 배역을 하더라.
게다가 그 배역들은 하나같이 다 명확한 특징과 성격을 가진다.
극중극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더라도,
배우 홍성덕의 모습은 대단했다.

무대 위에서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서 있는 아서 킵스.
그는 평온을 얻고 싶었다.
자신이 겪었던, 차마 말로 할 수 없던 끔찍한 경험에서 이제 자유롭고 싶어서...
그는 한 명의 배우를 고용한다.
자신의 과거 모습을 연기하는 배우 앞에서
그는 당시 만났던 사람들, 상황들을 상대편 입장에서 연기하면서 과거의 시간 속으로 걸어간다.
어색해하는 아서 킵스를 향해 배우는 말한다.

"믿어야 보이고 보여야 느낄 수 있다"


배우 역의 박정환(박호산)!
늘 느끼는거지만 참 묘한 배우다.
잘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기를 아주 미칠 듯이 잘하는 것도 아닌데
확실히 사람을 집중시키는 포커싱이 있다.
아마도 그건 그 배우가 보여주는 시선과 손끝, 발끝의 섬세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짧은 단(短)의 순간에서 느껴지는 단(亶)은
보는 사람이 모든 것들을 등지고 오로지 몰입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일부러 제일 앞자리를 선택한다.
그가 보는 시선의 끝을, 그가 가리키는 방향의 끝을 굳이 꼭 목격하고 싶어서...
비음이 약간 있는 그의 목소리는,
답답한듯 아득하기도 하지만 뭔가 은밀한 비밀을 곧 말해줄 것 같은 폭로의 기대감을 주기도 한다.
장난스럽기도 하고, 때론 과도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사람의 단발마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특징은 정확히 이 작품과 맞아떨어졌다.
이 날도 무대 위에서 자유로운 그의 모습을 보면서
셈이 날 만큼 질투가 났다.
잘 하는 것과, 잘 하고 싶은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그는 잘 하는 배우다.
그리고 잘 한다는 의미는 매 작품마다 다른 느낌으로 나타난다.
친근함과 신비감을 묘하게 뒤섞어서 함께 쥐고 있는 배우인 것 같다.
(솔직히 그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하겟다.)

작품은,
스토리가 무섭다기 보다는
극의 흐름, 분위기, 그리고 소리가 주는 공포가 더 크다.
이인극이 주는 집중력과 배우들의 연극적 재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90여 분의 시간은 아주 순식간에 지나간다.
무대 셋트와 효과음도 괜찮고 조명도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봐도 후회되지 않을 작품 ^^

* 사족이긴 한데...
  홍보 사진은 공포스릴러라기 보다는 코믹에 가까워 놀랐다.
  이건 아닌 것 같다.
  이게 내겐 또 하나의 공포였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