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9. 23. 07:47

<The Pride>

일시 : 2014.08.16. ~ 2014.11.02.

장소 : 아트원씨어터 2관

극작 : 알렉시 켐벨 (Alexi Kaye Campgell)

연출 : 김동연

출연 : 이명행, 정상윤 (필립) / 박은석, 오종혁 (올리버)

        김소진, 김지현 (실비아) / 최대훈, 김종구 (멀티)

기획 : 연극열전

 

연극 <The Pride> 세번째 관람.

역시나 따뜻한 위로와 힘을 주는구나. 이 작품은...

올리버와 필립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되는 첫장면부터 

김경욱 작곡가와 지이선 작가가 만든 엔딩곡이 흐르는 마지막 암전까지

세 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완전히 꽁꽁 묶여놓는 작품.

"Will be alright, Now. I can see it in your eyes..."

엔딩곡의 가사는... 정말이지 진심으로 진심이다.

존엄성,

자신의 목소리가 타인에게 닿길 바라는 노력과 의지,

거기에서 나오는 용기,

그리고 용기있는 목소리만이 갖는 프라이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용기를, 프라이드를 가진 사람이다.

1958년의 올리버처럼.

2014년의 필립처럼.

 

부디 이 작품을 동성애 코드를 내세운 연극으로만 바라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이 작품이 주는 의미와 진심은 크고, 크며, 크다.

작품 속 2014년 올리버의 대사처럼

우리가 무언가 희망을 걸고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건 사랑이 있어서다.

그게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힘이다.

그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 마음, 존중, 인정, 그리고 격려와 이해.

그게 내 목소리를, 네 목소리를 서로에게 닿게 만드는 유일한 진심이다.

그때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되고, 역사가 시작된다.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역사다.

그 관계에 선과 악은 없다.

옳고 그름도 없다.

그걸 규정하는 건 오로지 타인의 잣대일 뿐.

(그러니.. 그대들이여! 무슨 일이 있어도 쫄지 말자!)

 

 

"부디 침묵하세요. 침묵만이 당신을 살아남게 할겁니다.

올리버, 우리 제발 우리 사이에 있었던 그 일들을 묻어둡시다.

그게 최선이예요. 약속하죠. 최선이라고.

언젠가는 나를 이해하는 날이 올 겁니다.

나에게 고마워하는 날이 올거예요.

이것이 당신을 보호하는 길이었다는걸,

나만의 방식으로 당신에게 한 선물이었다는걸!"

필립의 말에 올리버가 묻는다.

"진실하게 살지 않을거면, 이 멍청하고 고통스러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순간, 가슴속이...

와르르 무너졌다.

진실하게 살지 않을거면... 진실하게... 진실하게...

진실하게 산다는거,

세상 속에서 나를 속이지 않은채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

그 누구보다 내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pride"

 

그렇구나...

이 작품은 순전히 나를 위한 연극이었구나.

착각이라도 상관없다.

올리버처럼,

나도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야 들었다.

 

* 오종혁의 첫연극 대한 짧은 스케치!

   2014년의 올리버는 자연스러웠지만, 1958년의 올리버는 연극적이었다.

   그냥 똑 같은 톤으로 연기해도 좋았을텐데

   시대적인 차이를 보여주려던 의도가 오히려 작위적인 뉘앙스를 풍기더라.

   연기는 투박했고, 표정은 심하게 밋밋했다.

   첫작품부터 너무 쎈 작품을 만난건가???

   하지만 이 작품의 모든 것이 그에게 충분한 약이 됐을 것 같다.

   그 약발을 제대로 받았다면,

   앞으로 뮤지컬 뿐만 아니라 연극 무대에서도 오종혁을 계속 보게 되겠다.

   

   진심으로 환영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8. 25. 08:34

<Pride>

일시 : 2014.08.16. ~ 2014.11.02.

장소 : 아트원씨어터 2관

극작 : 알렉시 켐벨 (Alexi Kaye Campgell)

연출 : 김동연

출연 : 이명행, 정상윤 (필립) / 박은석, 오종혁 (올리버)

        김소진, 김지현 (실비아) / 최대훈, 김종구 (멀티)

기획 : 연극열전

 

정말 정말 정말 좋은 연극을 만났다.

내 영혼의 soul mate 같은 연극 <Pride>

깊은 위로같고, 포근한 다독임 같은 그런 보석보다 더 빛나고 찬란한 연극.

180 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끝이 났다는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만큼 완벽히 스며들었다.

이 작품...

아주 진심이고, 아주 진실하다.

많이 슬펐고, 많이 아팠고, 그래서 많이 행복했다.

아주 말갛게 행궈지는 기분이었고, 뭔가 하나의 껍질이 벗겨나가는 느낌이었다.

이 작품을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있었다.

이 대사들...

이 진심의 대사들을 나는 최대한 오래 마음에 담고,

최대한 오래 기억하게 되리라. 아니 그렇게 될 수밖에는 도저히 없으리라.

진심으로 다행이다.

이 연극을 만나서.

이 연극을 봐서,

이 연극이 내 마음에 진심으로 닿아서...

그리고 필립과 올리버를 이명행과 박은석이 연기해줘서 정말 다행이다.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는건,

그 사람의 실체를, 그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는 의미일까?

하지만 그건 아주 일부다.

우리가 느끼고 싶은건, 간직하고 싶은건, 간절히 원하는건,

그 이상이다. 아니 그 이하다.

필립의 말처럼 내가 누군가를 불렀을때 언제든지 나를 위해 돌아볼 준비가 되어있는 한 사람.

간절한건 그 한 사람의 목소리다.

그 사람이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바이든, 스트레이트든 아무 상관없다.

그게 그리운 이유,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다.

 

..... 꿈에서 막 깨거나 막 잠들려고 할 때

갑자기 사는게 무지 시시해지면서 그냥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럴때 있쟎아

사는 이유보다 덮고 있는 이불이 더 포근하게 느껴질 때,

난 그때 누군가를 부를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봐.

내가 누군가를 부르거나, 날 불러줄 목소리

그 목소리가 닿으면서 시작되는 변화,

그게 사는 이유가 아닐까? ......

 

...... 괜찮아, 모든 것이 괜찮아질거야.

기나긴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 대해, 자신에 대해

그 어렵고 불안했던 순간들을 이해할 것이고

그리고 지금의 잠 못 이루는 밤들도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오십, 아니 오백 년 후에도 이 시절을 사는 사람들은

그 시간들로 인해 더 행복해지고 더 현명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아, 모든 것이 괜찮아질거야.

마치 먼 미래에 이미 모든 것을 거친 내가 나를 다시 위로하듯 다정한 속삭임.

그 위안처럼 목소리가 그렇게 .......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

그건 꼭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거다.

내 진짜 이름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지금 나를 부르고 있다면...

나는 1958년의 올리버처럼 모든 걸 던지고 그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2014년의 필립처럼 다시 또 돌아갈 수 있을까?

1958년, 2014년 실비아처럼 그 둘을 지켜보고 이해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진심으로 한 번쯤은...

나는 꼭 필립이고 싶다.

올리버이고 싶다.

실비아이고 싶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

남자든, 여자든, 혹은 아무것도 아니든...

나는... 단지 이야기를 갖고 싶다.

그 이야기가 만드는 역사를 가지고 싶다.

필립과 올리버처럼.

그리고 그들을 지켜내는 실비아처럼...

 

이 연극이...

나를 살게 하리라.

나를 숨쉴 수 있게 하리라.

나를 그대로 나로서 존재하게 하리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5. 8. 07:58

<푸르른 날에>

일시 : 2014.04.26.~ 2014.06.08.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극작 : 정경진

각색, 연출 : 고선웅

출연 : 김학선, 정재은, 정승길, 이영석, 호산, 이명행, 조윤미 외

제작 : 남산예술센터, 신시컴퍼니

 

5월이다.

푸르러서 더 서러운 1980년 핏빛 광주의 5월.

그리고 마치 그 5월을 내내 기다리고 있엇다는듯 다시 찾아온 <푸르른 날에>

이상무의 유난스런 동작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초반부터 어쩌자고 객석의 박장대소를 끌어낸다.

계속되는 배우들의 과장된 대사와 액션들.

아마도 사전 정보없이 극장을 찾은 사람은 이 작품을 코믹물로 이해하면서 중반까지 볼 수도 있겠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땐 몰랐었다.

의도된 연출이라는 걸.

무방비상태로 마음을 풀어버리며 웃고 있는데

느닷없이 들이닥쳐 온몸을 후려치던 김남주의 시 "학살 2"

이후로 이 작품은

뼈아픈 고통이 되어 무심히 앉아있던 관객의 살갗을 저며낸다.

고개를 돌리고 싶을만큼 처참하다.

그러나 감히 티를 낼 수조차 없다.

작품으로 느끼는 고통과 현실로 겪은 사람들이 느꼈을 고통 사이에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숨소리를 듣는게 미안해 숨조차 죽였다.

핑크플로이드, 비틀즈, 송창식까지...

음악은 또 왜 이렇게 지랄맞게 아름다운지!

 

너무나 아름다운 배우 이명행.

그는 어쩌자고 오민호라는 역을 네번이나 허락했을까?

왠만한 배우래도 한번이면 나가 떨어져버릴 역을 도대체 왜?

이 작품을 하는 동안은  아무리 강건하고 내공이 쌓인 배우라도

몸과 마음이 자유로울 순 없을텐데...

이쯤되면 오민호를 하겠다며 선듯 나서는 젊은 배우가 과연 있을까도 의심스럽다.

젊은 날의 오민호가 물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극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너무 끔직하고 처절해서 차마 못보겠더라.

그런데 이 장면을 이명행 배우는 어떻게 매공연마다....

(이건 자기학대다! 도대체 왜!)

파괴된 육체와 정신으로 김남주의 시 "진혼가"를 읊는 오민호.

단지 앉아서 보는 것뿐인데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명행 배우를 이 작품때문에 처음 알게 됏지만

진심으로 말리고 싶다.

오민호 이제 그만 하라고!

이렇게 계속 하다가는 당신이 결국 남아나질 않을 거라고! 

 

사실은... 사실은...

내내 외면하고 싶은 작품이다.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히 괴롭고 아파서

그 처음이 마지막이며 다짐했던 작품이다.

그런데 또 다시 봤다.

보는 내내 왜 그랬을까 스스로 자학할만큼 이번에도 여지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알았다.

외면하면 안 된다는 걸.

아마도 나는 이 작품이 내년 5월에 올라오면

또 다시 자학과 고통 속에서 관람하고 있을거다.

어쩌면... 어쩌면...

이명행 배우에게 왜 또 오민호냐며 무례한 삿대질과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럴지라도,

이 작품은 꼭 봐야겠다.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우리의 "푸르른 날"이 그렇게 잊혀졌고

우리의 "푸르른 날"이 그렇게 되살아났다고!

다 잊고 살다가도

1년에 한 번 떠올리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기꺼이 그 자학 속에 아프게 빠지겠다.

비록 잠깐뿐일지라도

잊지 않고 그렇게라도 아프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3. 19. 08:42

<히스토리 보이즈>

일시 : 2014.03.14. ~ 2014.04.20.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원작 : 앨런 베넷

연출 : 김태형

무대 : 여신동 

출연 : 최용민(헥터), 어명행(어윈), 오대석(교장), 추정화(린톳)

        이재균, 윤나무 (포스너) / 김찬호, 박은석 (데이킨)

        안재형(스크림스), 임준식(럿지), 황호진(팀스)

        이형훈(크라우더), 오정택(락우드), 손성민(악타)

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2013년 3월 이 작품이 초연됐을때 관람을 놓쳐서 많이 아쉬워었다.

솔직히 말하면, 관람 여부를 두고 고민하다 어영부영 공연이 끝나버렸고 그 뒤까지도 솔솔 들리는 입소문에 은근히 속이 쓰렸던 작품이다.

그래서 프리뷰를 예매했다.

고백컨데 요근래 관람 도중에 극도의 피곤이 몰려오는 경우가 꽤 많았다.

보통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번째는 작품 자체가 개인의 취향에 맞지 않은 경우,

두번째는 작품은 좋은데 관람 다시 내 몸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그리고 마지막엔 작품도 몸상태도 나쁘지 않은데 의아할 정도로 집중이 안되는 경우.

그래서 이 작품을 보기 전

제발 이 세 가지 경우 중 하나에 해당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이 작품!

3시간 동안 나를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아주 정직하게 유혹적이고 매혹적이더라.

그러니까 페러독스의 관능에 제대로 빠져버린거다.

어떻게 이런 괴물같은 작품이 있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랫만에 불같은 질투에 빠지게 만들었다.

만약에... 만약에...

나도 학창시절에 어위같은 교사를, 혹은 헥터같은 교사를.

그것도 아니면 포스너나 데이킨, 스크림스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면,

혹은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내 인생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후회는 환상과 함께 모든 시간들을 휩쓸어버린다.

폭.풍.같.다.

 

그리고 무대 위 배우들.

어쩌자고 그렇게 모든 순간이 다 진심일까?

프리뷰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배역과 완벽히 몰입하고 있엇다.

배우들간의 신뢰와 결속력은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다.

세상 종말이 와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신뢰감이 느껴졌다면 이해가 될까?

기본적으로 한 명 한 명 다 좋은 배우이긴 하지만

무대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는 삼승, 사승의 법칙으로도 계산 불가다.

이재균만큼 소년의 이미지가 명확한 배우도 흔치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이런 이미지가 이재균 배우의 한계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이건 그저 이재균이 갖는 필모그라피의 장점 하나일 뿐.) 

특히 박은석 배우는 이 작품으로 처음 알게 됐는데

노련함과 신선함이 함께 느껴져 정말 놀랐다.

작품과 배역에 대한 망설임이 전혀 없다.

중간중간 해설자같은 역할을 했던 스크림스 안재형의 타이밍도 정말 기가 막혔고...

솔직히 이 작품에 출현하는 배우들 연기에 대해 운운하는 거...

참 면목없고 염치없는 짓이긴 하다.

매 순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매 순간 각각의 인물들에게 더 깊이 몰입하고 빠져들었다는 고백이 진실일 뿐!

클라세같았던 영화, 시, 문학작품들.

이 작품 속에는 모든 게 다 있다.

연극도, 연극 아닌 것도 모두 다.

 

가치있는 가르침이 남긴 깊은 울림.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가 내게 붉고 진한 화인(化印) 하나 남겼다.

진심으로 가치 있는 작품이고,

진심으로 가치 있는 배우들이다.

 

 

넘겨주어라.

때로는 할 수 있는게 그것 밖에 없다.

받아서 느껴보고 넘겨주는 것.

날 위해서도 아니고

너희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어느 곳 누군가에게 어느날 넘겨주는 것.

난 너희가 바로 그 게임을 배우기를 바란다.

넘겨주어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3. 5. 08:13

<은밀한 기쁨>

일시 : 2014.02.07. ~ 2014.03.02.

장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극본 : 데이빗 해어 (David Hare)

연출 : 김광보

출연 : 추상미 (이사벨), 이명행 (어윈), 우현주 (마리온)

        유연수 (톰), 서정연 (캐서린), 조한나 (론다)

제작 : 맨씨어터

 

추상미의 출산 후 첫복귀작이라는 홍보성 문구는 사실 관람 여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추상미보다는 이명행과 우현주, 유연수가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감이 내내 관람일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이명행은 전작에서는 이석준과 연기하더니만 이번엔 추상미다.)

데이빗 해어의 탄탄한 원작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

게다가 김광보 연출까지!

이조합은 어찌됐든 무조건 봐줄 필요가 있다.

예상하고 기대했던 그대로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아주 제대로 황홀했다.

안타깝게도 추상미가 제일 약하고 부자연스럽더라.

다른 배우들은 배우라는 생각이 잊게 만들만큼 자연스럽고 치열했는데

이사벨 추상미는 지금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보였다.

대사톤도 신파조 비슷하면서 좀 작위적이었고 딕션도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떨지는 편이다.

장밀 너무나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어서 오히려 좀 민망했다.

그리고 이명행 배우!

후반부로 갈수록 <푸르른 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의 보여준 어윈은 아주 섬득했고 소름끼쳤고 그리고 아주 정직했다.

감정표현과 딕션, 연기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척.척.척.

<은밀한 기쁨>은 "~~척"에 대한 삼엄하고 경고이자 심판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주위 모든 사람이 착한 이사벨에게 착한 선택을 강요한다.

그것도 매번 일방적으로.

"넌 착하니까..."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사건과 결말은 순전히 이사벨의 무한 이기심과 환상이 만들어낸 참혹함이다.

아주 무책임하고, 아주 잔인하고, 아주 교묘하게....

모든 분란의 중심은,

그러니까 아버지의 젊은 미방인 캐서린이 아니라 착한 둘째딸 이사벨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사벨의 모습에서 나는 결코 구원될 수 없는 "악마"를 봤다.

나쁜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받지만

착한 사람은 주변 사람을 욕먹게 한다.

 

극의 후반부 이사벨을 던진 통곡같던 어윈의 외침.

"당신은 지금 악마를 상대하고 있어!"

그런데 어윈은 알고 있었을까?

악마를 상대하는 이사벨 그녀가 사실은 더 큰 악마, 악의 근원이었다는 걸.

강요된 살인자가 되버린 어윈의 절규.

그게 나는 내내 살려달라는 마지막 조난신호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분노와 욕망 그리고 더 깊은 본능적인 추잡함까지도 다 끄집어 발가벗겨버렸던 이사벨.

아무렇지 않은듯, 등을 떠밀려 이렇게 밖에는 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든 표정들이

나는 참아내기가 참 힘들었다.

 

"은밀한 기쁨"이란 단어는

수녀가 죽을 때 신을 만나는 희열을 뜻한단다.

그렇다면 타살처럼 보이는 자살을 실현한 이사벨도

은밀한 기쁨을 지나왔을까?

그리고 마침내 신을 만났을까?

악마를 상대하는 건,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천사인척하는 악마를 상대하는 것에 비한다면

오히려 쉽다.

 

그녀는 모든 걸 망쳐놨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1. 28. 08:21

<A Steady Rain>

일시 : 2013.12.21. ~ 2014.01.29.

장소 :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대본 : 키스 허프 (Keith Huff)

연출 : 김광보

출연 : 이석준, 문종원 (대니) / 이명행, 지현준 (조이)

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스테디 레인>

기본적으로 김광보 연출의 힘도 믿었고,

이석준과 이명행 배우의 힘도 믿었지만

이 정도까지 강렬한 작품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규모(?)를 떠나서 이 작품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대작이다!

솔직히 매혹, 그 이상이다.

2시간 동안 어두운 무대 위에서 대니와 조이가 쏟아내는 진술에 가까운 대사들을 듣고 보면서 온 몸의 숨톤이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석준과 이명행은 이 작품을 어떻게 감당하면서 매번 저 무대 위에 서있는걸까?

정말이지 이석준, 이명행 두 배우가 보여주는 신의 한수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두 배우의 놀라운 타이밍과 명확한 템포는 정말이지 황홀하다못해 일종의 성찬이었다.

솔직히 경건함마저 느껴지더라.

욕설과 과격한 행동이 난무하는 이 작품에 "경건함"까지 운운하다니...

그런데 어쩌랴! 이게 전부 다 진실인걸!

대니와 조이의 그 엄청난 분량의 대사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 버겁고 힘들더라.

말의 힘이 극대화된 작품.

시간과 공간의 개념마저 은근히 허물어져버리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관건은

개인적으로 "흐름"인것 같다.

대니와 조이의 관계에 대한 흐름.

두 사람의 감정이 변화되는 그 흐름,

그리고 두 사람의 지금 겪고 당하고 있는 사건들의 연속에 대한 흐름.

"도대체 상식이라는게 뭐냐?"는 대니의 비야냥같은 질문은

사실 아주 정곡을 찌르는 핵심이었다.

 

처음에 나는 대니와 조이가 한 인물인 줄 알았다.

거의 극의 중반까지도 한 인물의 내면에 있는 두 자아의 싸움이라고 의심없이 믿었었다.

내 안의 적과 적 안의 내가 지금 함께 있는 거라고...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자아의 교체와 합일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대니가 되버린 조이,

조이가 되버린 대니,

changing position!

완벽한 서스펜스에 다시 없을 공포의 최고치였다.

동일화, 내면의 자아...

대니를 연기한 배우 이석준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구나 싶었다.

...... 마지막에 남은 놈은 조이죠. 연출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조이는 치사한 인간이다’고. 조이는 손도 안대고 코를 푼 격이죠.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방치했던 놈입니다. 조이는 자신의 일부였던 대니가 날라가자, 일부를 버리고 일부가 갖고 있던 전부를 취한 거죠. 남은 사람이 나머지를 갖게 됐다고 이해할 수 있죠 ......

 

<스테디 레인>

이제 고작 2회 공연만 남았다는 게 미치게 아쉽다.

두어번은 더 봤어야 했는데...

"피곤하신 날 극장에 오면 주무시거나 딴짓 할 수 잇으니 정신 멀쩡할 때 오세요" 라고.

이석준이 자신의 페이스북과 홈페이지에 이렇게 썼다는데 이 말은 완전히 틀렸다.

도무지 딴짓을 하거나 잠깐이라도 눈을 감을 틈을 주지 않는다.

단언컨데 이 작품 놓친 사람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거다.

한 번만 본 나도 이렇게 후회가 되는데...

 

* 배우 이석준이 김광보 연출의 새로운 뮤즈가 되려는 모양이다.

  <M. Butterfly> 르네 갈리마르네 이석준과 이승주가 출현한단다.

  두 배우다 김광보 연출의 작품을 했던 배우들이라 어떤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0. 26. 08:00

<나의 처용은 밤이면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

부제 : 2012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일시 : 2012.10.13. ~ 2012.10.28.

장소 : 백성희장민호극장

대본 : 최치언

연출 : 이성열

주관 : (재)국립극단

출연 : 이남희(오가리), 유연수 (남두자), 김수현(하구니),

        이명행(맛탱이), 이정수, 박성연, 장희정, 정선철, 유소영,

        유진영, 이아란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그 세번째 작품,

<나의 처용은 밤이면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

정말이지 너무나 불친절하고 너무나 전위적이다.

세기말적인 분위기에 온갖 욕지거리, 성적인 묘사, 비어와 은어가 난무하는 무대를 지켜보는건 거의 시궁창 속을 뒹구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창을 시궁창속을 뒹글다 보면,

이게 또 묘한게 이 불친절한 연극이 마구마구 공감이 되기 시작한다는 거다.

처음엔 분명 이런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걸 이해하라고 만든거야?'

아무리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 최지언 작가라지만 이건 심한 거 아닌가 싶었다.

전위적이어도 너무나 전위적이여서...

"빼앗긴 자의 분노를 처용설화에 빌려 묘사"했다는데 이것도 참 난해했다.

빼앗긴 자? 오가리가? 누구한테? 뭘? 왜?

(뭐 내 이해력이 많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성열 연출의 변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제목 속의 양은 김양, 이양처럼 유흥가의 여성을 지칭할 수도 있고, 희생양이 될 수도 있겠죠. 오가리가 마켓에서 양을 찾는다는 것은 좌절감 속에서 성적 타락이나 범죄행위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르게는 자신의 죄를 벗게 해 줄 희생양을 찾으러 다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구원에 대한 희구가 강한 작품입니다."

교통사고로 죽은 택시기사 오가리(이남희)의 망상 속 세계.

정신찬란의 그 세계가 보고 있는 사람에게도 지독한 환멸과 혼돈을 안긴다.

급기야 등장인물의 누가 누구인지조차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기본과 질서, 최소한의 예의마저 없는 대한민국의 실상처럼.

이 연극...

아주 의도적이고 철저하게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이 작품,

처용설화를 빌어서 지금의 현실을 폭로하고 싶었나보다.

 

만약에 이 작품에 지금같은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연극을 보면서 내내 이 생각을 했다.

이남희, 유연수, 김수현, 이명행의 연기는 난해하고 불편한 연극을 끝까지 집중하며 깊이있게 볼 수있게 만들었다.

"삼국유사 프로젝트"는 참 어렵고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또 다시 객석에 앉게 되는 건 이런 배우들이 갖는 힘때문이다.

객석에서 보고 있으면 그 집중력있는 연기에 황홀할 지경이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배우들의 눈동자와 동선과 목소리 톤이.

어렵지만 아름다운 작품.

나의 처용은 그랬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5. 25. 08:29

<푸르른 날에>

 

 

부제 : 오월의 꽃바람 다하도록 죽지 않은 사랑...

일시 : 2012.04.21. ~ 2012.05.20.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극본 : 정경진

연출 : 고선웅

제작 : 서울시창작 공간 남산예술센터, 신시컴퍼니

출연 : 김학선(여산), 정재은(정혜), 정승길(오진호), 이명행(오민호),

        조윤미(정혜) 외

 

2009년 제3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 <푸르른 날에>

2011년 초연 공연 당시에도 엄청난 화제작이었던 작품으로 그해 대한민국 연극에 주어지는 모든 상을 휩쓸기도 했다.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 연출상에 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한국 연극 공연 베스트 7위.

남산예술센터와 신시컴퍼니가 2012년 공동제작으로 다시 <푸르른 날에>을 올렸다.

화려한 이력이 오히려 과대포장일 수 있어서 조금 조심스러웠는데

이 작품...

정말이지 말을 잃게 만드는 수작이다.

공연을 보기 전에 반신반의했었다.

지금 이 시대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공연으로 보여주겠다고?

얼마나 처절하게, 얼마나 사실적으로, 얼마나 집요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미 지금 세대들에게 5.18은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보다 더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는데...

연극은...

처음에 너무 과장된 신파가 이어져 솔직히 불편하고 난감했다.

그 과장된 목소리와 그 과장된 행동과 그 과장된 감정들.

보면서 감당하기가 힘겨웠다.

 

희극이 비극보다 어려우며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했던가?

아마도 너무나 비극적인 사실이라 차라리 희극으로 표현해야만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민호의 물고문 장면은 섬뜩해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때까지 몰랐다.

무대 바닥 깊숙히 물을 담아 놓아서 참 인상적인 무대로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공포와 참혹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줄은 몰랐다.

그 장면에서 오민호를 연기한 배우 이명행의 눈빛 속에도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하다.

(이명행 배우에게 깊은 존경심을 보낸다. 이 배역... 힘들었겠다... 피하고 싶었겠다... 무서웠겠다...)

연극이 아니라 르뽀를 직접 목격하는 느낌이다.

본다는 게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버렸다.

비참했고, 미안했고, 구차했다.

마치 내가 그를 고문하는 고문관이라도 된 듯하다.

"무서워서 그랫어. 무서워서!"

죽은 사람들의 환상에 쫒기는 오민호의 외침이 먹먹하다.

나 역시도 너무도 무서웠다.

마치 생명의 위협을 내가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것만 같다.

김지하와 김남주의 시.

송창식과 남진, 핑크플로이드, 비틀즈의 노래조차도 섬뜩하다.

시민군이  김남주의 시 "학살"을 한 대목씩 읊는 장면은 뭐라 말을 할 수도 없다.. 

이 작품 정말 너무나 훌륭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끔찍하다.

다 현실이다.

다 진실이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나라의 역사가 이렇다.

어쩌나...이 작품!

나는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학살 2

                        - 김남주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차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도시로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의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3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의 핏빛은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니 떨지 않는 비이 없었다

밤 12시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고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