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초연 이후에 굳건한 마니아층을 형성된 뮤지컬 <헤드윅>이 벌써 올 해 공연이 여덟 번째 시즌란다.
8번 공연 중 2005년, 2009년, 2011년, 2012년, 2013년의 <헤드윅>을 봤다.
심지어는 초연을 기다리면서 존 카메론 미첼의 영화까지도 찾아봤었다.
첫인상은 엄청나게 그로테스크하다는 것!
그런데 그 기묘하고 기괴한 분장의 <헤드윅>에 묘한 연민의 정이 생기면서
점점 깊은 일체감 비슷한 동류의식까지 느껴게 된다.
(뭐 내 성적취향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이젠 취향 따위도 없는 단계에 이르러서...)
지난번 시즌과 이번 시즌의 텀은 유난히 짧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조승우의 파워가 아닌가 생각된다.
원래 <헤드윅>을 할 예정이었는데 드라마 "마의" 때문에 엎어지게 된 게 결정적 계기!
조승우가 <헤드윅>을 하고 싶어한다는데 어느 제작자가 그걸 마다하겠는가!
텀이 길든 짧든 일단 추진하고 볼 일이다.
조승우가 출연한다기에 사실 티켓팅을 완전히 포기했었다.
그러다 이 녀석의 인터뷰를 보게됐는데,
그걸 읽고 나니까 이게 또 막 궁금해지기 시작하는거다.
“무대 위에서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정말 놀아보고 싶어서 <헤드윅>을 선택했다. 나를 불사를 수 있는 힘이 있는 작품으로, 본질은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걸 항상 유념하고 있다. 작품의 주제, 메시지 모두를 관객들에게 맡기는 프리스타일 공연을 하고 있다. 대본 수정 후 한번도 대본을 보지 않았을 정도로 일부러 외우려고 하지 않고, 헤드윅이라는 사람이 펼치는 쇼, 그 공연 안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좀 놀아보겠단다!
그것도 본질은 놓치지 않고서!
도대체 뭘 어떻게 놀겠다는건지 궁금해서 예매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지?
의외로 아주 쉽게 괜찮은 자리를 한 번에 예매했다.
(스탠딩 압박이 없는 구석 자리 하나 잡겠다 생각하고 예매처에 들어갔던건데....)
조승우 헤드윅!
결론만 말하자.
정말 미치게 잘 논다.
자유자재로 대사를 치고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 애드리브을 연출하는데 가히 물만난 고기같다.
텍스트(대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헤드윅!
물론 기본 구성과 스토리를 파괴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헤드윅>이라는 기본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면 그 안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뭐랄까!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one man band를 보는 느낌!
끝나고 나서 알았다.
완전히 그에 의해서 놀아났다는 걸.
누가? ......... 내가!
나, 스탠딩 정말 싫어한다.
근데 저절로 일어나게 되더라.
이 녀석 정말 그동안 무대가 이렇게까지 그리웠구나 싶어 주책없이 연민의 정도 생겼다.
(그동안 도대체 어떻게 참아냈던 걸까?)
목소리도 일부러 여성스럽게 내려고 애쓰지 않으면서도
여자처럼 감정에 빠질 때는 한없이 깊게
그러면서도 치고 나올 곳에서는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뛰쳐 나온다.
솔직히 무림고수의 현란한 칼솜씨를 보는 느낌이었다.
특히 이번 헤드윅은
(송창의와 손승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츠학의 비중이 많이 줄었다.
Sugar Daddy도 그렇고 청혼 장면도 그렇게 헤드윅에 의한 1인극처럼 진행된다.
개인적으론 이렇게 바뀐 구성이 아주 좋았다.
개인적으로 이츠학이란 인물은 공연 내내 존재감이 없이 소품과 다름없이 있다가
헤드윅에게 가발을 건네받는 장면에서부터 존재감이 커졌으면 하고 바랬었다.
핸드폰 운운 하던 장면이 없어진 것도 개인적으로 너무 좋다.
(이렇게 바뀐게 이지나의 생각인지, 조승우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런 발언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겠지만
2005년에 비하면 조승우도 확실히 나이를 먹었다.
그때는 펄떡펄떡 튀어오르는 날 것의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산전수전을 겪은 헤드윅의 완숙미가 느껴진다.
그래선가?
이 작품을 조승우가 마흔이 넘어서 하게 되면 또 다른 느낌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기획도 괜찮지 않나!
20대, 30대, 40대 헤드윅을 한 시즌에서 만나보는 그런 기획!
이덕화의 "하이모" 카피나
첫공연에만 하고 안 할 예정이었다는
JCS의 "I only want to say"는 일종의 팬서비였던 것 같은데 재미와 놀라움, 두가지 전부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경기도 공연 첫 날에 마지막 장면을 자체 수정했던 걸로 알고 있다.
(아마도 예수의 부활을 표현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러다 RUG의 반발로 다시 원상복귀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2004년도에 이 작품을 여섯 번 정도 관람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앙상블의 파워에 엄청난 감동을 느껴었다.
서울시뮤지컬단이 만들어낸 "The Temple"과 "Make Us Well"은 엄청났다.
특히나 "Make Us Well"은 바닥에서 병자들이 예수를 향해 한 명씩 기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었다.
(아직까지도 그 장면이 주는 공포는 생생하다)
이 작품은 나에게 참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모든 장면들이, 심지어는 김문정 지휘자의 손끝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될 정도다.
가야바 최병광의 땅을 파고드는 엄청난 저음도,
안나스 주성중의 찌르는듯한 날 선 고음도,
이연경과 유미의 조심스럽던 마리아도,
빌라도 김법래의 묵직한 저음과 조상원의 천진난만한 헤롯도 다 기억난다.
락커 박완규의 엄청난 허리꺽기와 JK 김동욱의 웅웅거리던 불분명한 딕션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뒤인 2007년에 다시 공연됐을 때 관람하지 않았던 건,
캐스팅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
그래선지 이번 공연이 개인적으론 너무 반가웠다.
게다가 마이클리와 박은태, 윤도현, 한지상, 정선아가 캐스팅됐단다.
두말할 필요없이 "Must See!"하기에 충분했다.
박은태 지저스는,
얼굴과 표정, 액팅이 참 비장하고 거룩하고, 좋은 의미로 고집스러웠다.
워낙에 고음이 좋은 배우라 개인적으로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이상하게 고음으로 갈수록 목소리톤이 더 가늘어져서 오히려 여성스런 느낌이 강했다.
특히 예수의 대표곡" 겟세마네" 는 그런 느낌이 더 강해져서 좀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마지막 부분" 죽이소서! 지금 내 맘 변하지 전" 이 부분의 표현은 좋았다.
원망섞인 체념과 누구도 꺽을 수 없는 확고한 신념이 느껴져서...
그리고 이 부분부터 박은태의 지저스가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39번의 채찍질과 십자가 처형 장면은 본인도 연기하면서 많이 힘들겠지만
보는 나도 너무 많이 힘겨웠고 섬득했다.
(이 작품을 하루에 2회 공연한다는 건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뮤지컬배우 박은태.
정말 기이하다!
매번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때마다 정말 잘할 것 같은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기대만큼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그가 못한다는 건 아닌데 여전히 인물보다는 박은태가 더 많이 보인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엘리자벳>의 "루케니"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이건 박은태가 뮤지컬배우로서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하겠다.)
다시 한 번 유다로 돌아온 윤도현은 이날 공연의 진정한 갑이었다.
개인적으론 역대 최고의 유다라고 말하고 싶다.
딕션과 연기, 표정도 너무 좋았고 넘버 소화력도 정말 엄청났다.
아마도 정재일 음악감독의 편곡을 완벽히 이해하고 공감한 유다가 아닐까 싶다.
(편곡자 정재일에게 정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정선아 마리아와 조권 해롯도 좋았다.
특히 조권은 등장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정말 짧은데
그 짧은 장면을 완벽하게 자신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헤롯타임이 아니라 완벽한 조권타임!
게다가 자신에게 시선이 쉽게 가지 않는 39번의 채질질 장면에서도
무대 제일 위에서 열심이 연기하는 조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기특하단 생각이 절로 든다.
헤롯처럼 임팩트가 강한 역할을 자신의 첫 뮤지컬로 선택한 조권은,
확실히 영리한 아이돌이다.
개인적으로 2004년과 비교해보면,
무대와 조명, 편곡은 지금이 훨씬 좋았고
번역과 앙상블은 2004년도가 훨씬 좋았다.
가사의 일부를 영어 그대로 사용한 건 나쁘지 않았는데
번역 자체가 좀 투박하고 라임에도 잘 맞지 않는다.
쏭스루 뮤지컬인데 가사가 너무 성급하거나 느리다.
(이 표현이 이해가 될까?)
빌라도 지현준은 딕션이 뭉개져서 잘 들리지 않았고
39번의 채찍장면에서는 예수보다 본인이 훨씬 더 괴로워하면서 바닥을 기어다녀서(?)
시선을 산만하게 분산시킨다.
가야바, 안나스는 사실 좀 참혹한 정도였다.
최병광의 비현실적인 저음과 주성중의 간교한 고음이 참 많이 그리웠다.
2막 첫 장면에서 최후의 만찬 장면이 좀 상징적으로 변한 것도 조금 아쉽다.
2004년도에 예수와 유다가 긴 테이블위에서 서로 대적하는 장면을 꽤 인상적으로 봤었는데...
유다와 앙상블의 "Superstar"도 느낌이 확 달라졌다.
예전엔 쇼걸같은 천사들이 검은 옷과 흰옷을 나눠입고 무더기로 나와 쇼뮤지컬같은 느낌을 줬었는데
지금은 도입부분은 유다와 4명의 뽀글머리 코러스걸이 나와서 약간 코믹하게 변한 것 같다.
2004년도에 이 장면이 주는 파격적인 표현과 느낌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선지 유다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훨씬 늘어난 것 같다.
이번 무대세트는 삭막하고 극도로 건조한 사막을 떠올리게 해서 좋았다.
(2004년도에 웅장한 성곽을 느낌의 무대 셋트도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이지나 연출.
그녀의 작품에서 매번 느끼는 사실이지만
첫장면부터 시작해서 <바람의 나라> 오마주를 여러번 목격했다.
솔직히 이게 이지나가 그렇게 연출을 시도한건지,
아니면 워낙에 수정을 꺼려하는 RUG라 오리지널에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쁘지 않았다는 거다!
올 해 <JCS>가 다시 공연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워낙에 애정하는 작품이라
혹시라도 실망을 하게 될까봐 조금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다!
아주 좋았다.
그리고 기대중인 마이클리 예수로 두 번의 관람이 아직 남아있다.
마이클리가 보여줄 예수!
이번 주말에 드디어 확인할 수 있다.
좀 설랜다.
사실은 아주 많이...
Act I.
1. Overture
2. Heaven On Their Minds (유다)
3. What`s The Buzz (지저스, 마리아, 제자들)
4. Strange Thing, Mystifying (유다, 지저스, 제자들)
5. Everything`s Alright (지저스, 마리아, 유다, 제자들)
6. This Jesus Must Die (가야바, 안나스, 앙상블, 사제들)
7. Hosanna (가야바, 지저스, 제자들, 군중)
8. Simon Zealotes (시몬, 제자들)
9. Poor Jerusalem (지저스)
10. Pilate`s Dream (빌라도)
11. The Temple/Make Us Well (지저스, 상인들, 환자들)
12. Everything`s Alright - Rprise (마리아, 지저스)
13. I Don`t Know How To Love Him (마리아)
14. Damned For All Time / Blood Money (유다, 가야바, 안나스, 사제들, 사자들)
Act II.
15. The Last Supper (유다, 지저스, 제자들)
16. Gethsemane- I Only Want To Say (지저스)
17. The Arrest (유다, 지저스, 베드로, 제자들, 가야바, 안나스, 군중)
18. Peter`s Denial (베드로, 마리아)
19. Pilate and Christ (빌라도, 지저스, 안나스, 군중)
20. King Herod`s Song (헤롯)
21. Could We Start Again, Please? (마리아, 베드로, 앙상블)
22. Judas` Death (유다, 가야바, 안나스, 사자들)
23. Trial Before Pilate / 39 Lashes (빌라도, 가야바, 안나스, 지저스, 군중)
24. Superstar (유다, 코러스걸)
25. Crucifixion (지저스, 앙상블)
26. John Nineteen; Forty - One 요한 19장 41절 (오케스트라)
2011년 제5회 뮤지컬어워즈에서 최우수작품상, 연출상, 극본상, 여우주연상, 여우신인상을 휩쓸면서 5관왕이라는 기록을 달성한 작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2011년 초연 당시에 이 작품은 내 취향이 아니라 보지 않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처음엔 초등학생 이상 관람 가능했었는데 안타깝게도 장사가 잘 안 됐던지 나중엔 연령제한이 없어지면서 심지어 모녀할인 50% 이벤트까지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작정만 했다면 솔직히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두산아트센터로 발걸음이 안 된 작품이다.
참 여러모로 파란만장한 작품이다.
심지어는 제작자의 자살이라는 비보를 남기기도 했던 작품이다.
(뭐 꼭 이 작품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그래서 재공연 말이 나왔을 때 솔직히 가능할까 싶었는데 정말 재공연이 성사됐다.
확실히 연출가 이지나의 파워는 아직까지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서범석, 이자람, 차지연, 이영미(동호모에서 송화로 엄청난 회춘하셨다) 등 금지옥엽같은 초연 멤버에
양준모, 정영주, 임병근, 김다현, 한지상까지
배우 프로필 상으로는 여느 공연 못지 않은 출연진이다.
이 날 공연은 이자람 송화, 임병근 동호, 양준모 유봉이었다.
나름대로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역시나 <서편제>는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평일에 유니버설 아트센터를 찾는다는 건 자정 이후에 귀가를 뜻하는건데
여간 노곤하고 피로한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내겐 영화 <서편제>의 김명곤 유봉, 오정해 송화, 김규철 동호가 각인되버린 모양이다.
뮤지컬로 만들어진 <서편제>는 어쩐지 정체불명의 퓨전극이 되버린 것 같다.
냉정과 열정 사이가 아닌,
냉탕과 열탕 사이였다고나 할까?
일단 배우들의 나이대가 너무 비슷해서 불편했다.
아직 30대인 양준모의 유봉 변신은 아무래도 조금 무리수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배우지만 아닌 건 아니다)
성악 전공자답게 역시나 성량도 크고 노래도 잘하긴 하지만 그걸 "소리"라고 명명하기엔 어렵지 않을까?
송화와 동호에게 "소리"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성악"을 가르치는 것 같다.
어쩐지 사투리도 좀 작위적이고...
성마르고 화만 내는 아버지.
그래서 땡깡피우는 철없는 응석쟁이 아이같다.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라는 가사를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민망할 정도로 청춘인 유봉!
한 번도 생각했던 적 없었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양준모가 참 젊은 배우라는 걸 절감했다.
임병근의 동호는,
처음엔 나쁘지 않았는데 연령대를 소화하기에는 너무 곱고 아름답다.
꼭 아이에게 어른 옷을 입힌 것 같은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이자람의 송화.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의 귀가길은 황량함 자체였으리라.
<서편제>에서 소리를 하는 유일한 배우 이자람!
눈이 머는 장면에서의 절규과 아비를 보내는 장면에서의 그 처연함과 서글픔은 흡사 종교적이기까지 하더라.
구음과 몸짓이 얼마나 많은 대사를 응축시킬 수 있는지를 절감했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심봉사 눈뜨는 장면을 들으면서
꼭 "심청가"나 "춘향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판소리 완창 무대를 한 번 듣고 싶다는 바람도 생겼다.
유봉이 죽는 장면에서의 정영주의 목소리!
귀기(鬼氣)가 느껴질 만큼 애절하고 평온하고 아득했다.
개인적으로 이지나 연출의 스크린 활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대한 관을 떠올리게 한 무대는 정말 좋았는데
생둥맞은 스크린때문에 느낌이 부서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게다가 경사무대에 서있는 배우들은 왠지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설마 그런 느낌을 원했던걸까?)
오케스트라 피트석을 위로 올린 발상은 매혹적이었다.
때때로 아래 무대와 함께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 나와서 신비했다.
몹시 안재욱스런 클럽 매니저와 유봉의 친구였던 창극단 단장를 보면서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우리의 "소리"와 "락"은 서로 작정한듯 어울리지 않아 물위에 뜬 기름 같았다.
가끔씩 MR로 녹음된 노래가 아닌 척 의뭉스럽게 나오는 것도 흠이라면 흠이다.
깊은 소리의 한(恨)을 알아볼 깜냥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슬프게도 나는 그 한(恨)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뮤지컬 <서편제>가 피천득의 "인연"같은 느낌이길 바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슬프다.
너무 노래를 잘해서 오히려 어울리지 않은 양준모와 임병근을 보는 것도,
혼자 절절한 소리를 하는 이자람을 보는 것도.
내겐 다 슬픔이었다.
참 고되고 힘겹다.
알고 예매한 건 아니었는데
이 날이 작곡가 이영훈의 기일이란다.
그래서 혼자 더 애뜻해졌던가?
세종문화회관 초연 때 노래에 억지로 짜맞춘 스토리가 많이 어색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느낌이 꽤 좋았었다.
아련하고 따뜻하고 그리고 뭔가 그리워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LG아트센터에서 <광화문 연가>가 재공연된다고 했을때 내심 기대했었다.
심지어 하얀 그랜드 피아노와 스크린에 비친 "광화문 연가" 악보를 보면서 오랫만에 가슴이 살짝 설래기도 했다.
(나도 어느새 옛 기억들을 추억하는 나이가 됐구나 싶어 조금 처연해진 것도 사실이다)
윤도현, 송창의, 박정환, 리사 등 초연 멤버들의 재공연도 궁금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캐스팅된 조성모와 최재웅에 대한 기대감도 사뭇 컸었다.
비운(?)의 다리 부상으로 "모차르트"를 김준수에게 내줘야했던 조성모가 드디어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선다!
미안한 말이지만 현재 그는 발라드 황제라는 가수로서의 입지도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작품이 조성모에게 어쩌면 터닝 포인트가 되어 주지 않을까?
그래서 조성모 자신도 최선을 다해 정말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을까 싶어 기대감이 컸었다.
얼마전에 절친 조승우, 조정은과 <조로>를 마친 최재웅도 쉴 짬 없이 바로 <광화문 연가>의 "상훈"을 선택했다.
그래서 최소한 나쁘지는 않을 거라 확신했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결론은 너무 안타까웠다.
초연보다 더 약해지고 어수선한 스토리는
전체적으로 작품을 더 가볍고 코믹하게 만들어버렸다.
노래도 몇 개 추가되고 빠진 것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초연이 훨씬 더 좋았다.
왜 다들 그렇게 재미있는 부분들을 끼워넣느라 혈안이 되어 있을까?
지용도, 상훈도, 현우도 다 코믹해졌다.
심지어 이미 코믹했던 조진국과 안정숙의 코믹의 수준은 거의 정신질환에 가깝다.
공연을 보면서 조진국의 목에 감긴 머플러를 몇 번씩이나 힘껏 잡아당기고 싶던지...
데모 장면은 현실성이 전혀 없어 민망했고
(방패만 나오던 그 황량한 무대는 또 어쩔 것인지...)
청바지에 흰 티를 애써 맞춰입고 나온 대학생 데모대들은 마치 대학 응원 동아리 신입생 발표회처럼 엉성했다.
리사는 계속되는 작품들 때문인지 목소리에 피로감이 가득하다.
1막 마지막 노래에서는 고음이 많이 불편하고 조마조마했다.
현재의 상훈 최재웅은,
마치 자신이 어디까지 저음을 낼 수 있는지 도전이라도 하는지
시종일관 톤의 변화없이 저음으로만 굳건하게 파더라.
(너무 깊이 파고 들어가 무대 속으로 들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아픈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한 설정이었나?
그랬다면 실패다.
덕분에 최재웅의 연기를 보면서 처음으로 크게 실망하는 개인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현재의 상훈보다 더 문제는 과거의 상훈 조성모다.
솔직히 이 사람이 발라드의 황제 맞나 싶었다.
모든 노래를 어쩜 그렇게 뽕기 흐르게 부르던지...
본인은 강약을 조절해서 부른다고 했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마치 태진아, 송대관 디너쇼에 온 느낌이었다.
발성과 노래, 연기적인 기교와 액션이 너무 심하게 형편없다.
특히 노래 할 때 가사 전달 엉망이다.
("깨끗이"를 "개긋이"이 라고 발음하는데 정말이지 기절하는 줄 알았다)
공연을 보면서 미안한 말이지만 조성모가 모차르트를 못하게된 게 여러모로 참 다행스런 일이지 싶었다.
정말 반성해야한다.
간절함만 가지고 준비안 된 상태에서 무대에 선 배우와,
형편없는 배우를 버젓히 무대에 세운 연출가와 제작자 모두!
이지나 연출이 그랬다.
세종에 비해 스케일은 작아졌지만 디테일에 충실해졌다고...
미안하지만 스케일도, 디테일도 아무것도 건진 게 없다.
현재의 상훈과 과거의 상훈의 잦은 만남도 너무 거슬렸고
시도 때도 없이 현재의 인물이 과거의 인물에 개입하는 걸 보는 건
일종의 강요된 고문이었다.
늬네 동네에서나 잘 하세요~~~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다.
무대 뒤 스크린에 비치는 허접한 신문기사들의 나열도 한심했다.
왜 이렇게 만들어버렸을까?
누가 이렇게 바꿔버렸을까?
이날 공연해서 현우 역의 이율과 지용 역의 정원영만 아니었다면
그냥 박차고 나와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오랫만에 공연 보면서 정말 과하게 피곤해져버렸다.
처음엔 분명 신선했었는데
이제 재미가 붙었는지 1막과 2막 시작 전에 나오는 LG 아트 센터의 자체 안내 방송은
과한 수준을 넘어 생뚱맞은 정체불명의 퍼포먼스가 됐다.
그러다 조만간 개그작가로 스카웃 되시겠다.
하려면 작품의 분위기에 맞는 멘트를 하던가.
(뭐 작품도 그닥 분위기를 갖출 형편은 못되지만)
모든 게 과유불급이다.
박정환, 윤도현의 초연 멤버를 다시 보고싶긴 한데 올 핸 그냥 넘어가련다.
이번 <광화문 연가>를 보면서 한 가지 다짐한 건,
괜찮은 초연 공연들은 놓치지 말고 잘 챙겨서 보자는 거다.
재공연이 될 때 이렇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기도 하니까...
어찌됐든 전체적으로 모든 공연들이 초연 때보다 코믹해지고 가벼워지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는 걸 충분히 경험으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굳이 <광화문 연가>가 그랬어야 했나고!
정체불명으로 변한 작품을 보면서 참 정체불명으로 씁쓸했다.
제발, 그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