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21. 05:29
왕복 비행 시간을 빼면 터키에 머물렀던 시간은 고작 9일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고작"이란 단어는 그리움과 아쉬움, 되돌아가고픈 열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 처음엔 순전히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 때문이었다.
(아직도 처음으로 읽었던 그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을 선명히 기억한다.)
터키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도 전혀 모르면서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 한 사람 때문에 그곳을 꼭 가리라 소망했고 계획했다.
9월로 일정을 잡고 비행기 티켓을 구입한 게 6월 말.
마치 전혀 여행갈 계획이 없는 사람처럼 아무 준비없이 일상에 허덕였다.
주변의 질문이 시작됐다.
"가긴 거는 거야?"
"페키지 여행으로 다시 알아봐!"
"아무것도 안 알아보는 거야?" ...
그닥 사교성이 풍부한 인간도 아니고 외국어에 능통한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본능적인 길찾기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닌 나를 사람들은 점점 더 불안해하며 바라봤다.
"한국에서도 여행 잘 안 다녀본 사람이..."
결정적인 말에 조금씩 마음이 뜨끔한 것도 사실이다.
철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데로 만족할만큼의 준비!
하고 싶었다.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배낭을 사면서 뭘 믿고 내가 이러냐 싶어 웃음도 났다.
인터넷 터키 배낭여행 동호회에 가입하고(그것도 달랑 한 군데만)
<프렌즈 터키> 한 권 보면서 대략의 루트만 잡았다.
터키 배낭여행 설명회에서 왠만한 책 한 권의 계획서를 가지고 온 사람들을 보면서 
거기서 나눠준 프린트 한 장만 들고 있던 나는 심하게 무안하기까기 했다.
아는 게 없어 질문도 못하는 내게 사람들이 말했다.
"배낭여행 많이 다녀보셨나봐요..."
차마 "아니요"라는 대답도 못하겠더라.
그 순간 생각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터키는 배낭여행 초보자들에게 넉넉하고 따뜻한 나라였다.
동양 여자에 대한 과도한 치근댐이 있기 하지만
(피에르로티 올라가는 길에 계속 추근대며 쫒아오는 남자를 향해 급기야 버럭 화를 냈다)
대체적으로 따뜻했고 다정했다.
손가락으로 책 속의 지명을 짚어주는 어설프고 서툰 여행자에게
그들은 매번 친절하게 길을 알려줬고
심지어는 가던 길을 멈추고 정류장까지 동행해주기도 했다.
터키의 길 속에 빠져버린 이유가
사실은 이런 사람들의 도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길 위에서 어쩌지 못하고 헤매고 있으면 거침없이 누군가가 다가와 도와줬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라도 알려줬다.
한국에 돌아와서 내내 그들의 도움이 고맙고 그립다.
지금도 눈 감으면 내가 걸었던 그 길들이 선연하다.
터키는 내겐 "길"이었다.
참 많이 행복하게 걸었고, 걸으면서 행복한 길이 보여주는 풍경들에 전율했고
그 길의 마디마디를 가슴에 담았다.
그 길 위에서 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었는지...
터키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얻은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놔버리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어쩌면 이 결론을 위해 오랜기간동안 여행을 되새김질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확실히 그랬다.
이제 난 좀 편해지련다.
그리고 나 혼자 단단해지리라.
 



초롱초롱한 별빛 같은 아이들의 눈빛에 눈부셨고
내내 빠져 있던 길 위에 주인처럼 떠있던 달을 보면서 황홀했다.
터키에 도착했을 땐 아주 작은 손톱달에 불과했는데 
어느새 떠나는 날 배웅하는 달은 만월에 가까워있었다.
달의 이지러짐과 가득참을 눈으로 매일 쫒으면서
나는 비워서 채워지기로 다짐했다.
그래, 이제 다 비우자!
앞으로 절대 다시는 채워질 수 없다고해도
비어있음으로 나는 고요하고 평온해지리라!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5시에 기상해서 책을 읽고 여행기를 쓰고
6시 40분에 출근해서 하루종일 이쁘고 사랑스런 태아들을 검사하며 웃는다.
여전히 퇴근후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10시쯤에 집에 돌아오면 다시 책을 보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12시가 넘으면 그때서야 겨우 침대로 향한다.
그래도 내겐 이제 희망이 있다.
터키에 다시 가겠다는...
그래, 다시 돌아가리라!
그리고 그때는 아주아주 오래 그곳에 있으리라.
그래도 된다면,
그곳에서 오래오래
뿌리내리고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20. 00:23
내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놀고 먹어도 잘한다 소리 듣는 사람이거나,
아니라면 잭 웰치처럼 세계 금융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탁월해 잭팟을 터뜨렸거나 했다면
술탄아흐멧의 그 유명한 포시즌즈 호텔(four seasons hotel) 급으로만 숙소를 정했겠지만,
현실은 언제나 알량하고 치열하다.
게다가 터키에서 묵었던 숙소는 달랑 두 곳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달랑 두 곳의 숙소가 나쁘지 않았던 건,
적어도 내겐 다른 의미의 편안함과 소박함이 느껴져서였다.
여행자숙소로만 묵는다면
1달 정도 터키여행을 한대도 그렇게 큰 돈이 들지는 않을 것 같다.
(가장 큰 지출은 역시 비행기 티켓!)



술탄아흐멧에 위치한 여행자 숙소 "Yakamoz guesthouse".
남자, 여자 도미토리가 따로 있고 비용은 조식 포함해서 15 TL.
샤워시설은 mix 라서 그게 좀 불편하단다.
그게 싫으면 싱글이나 트윈, 더블 룸에서 들어가면 되는데
비용은 도미토리에 비해면 비싸다 .
(그래도 한국보다는 저렴한 편이긴 하지만)
터키도 한국인 여행자가 상당히 많은 편이라
왠만한 숙소는 한국어로 된 싸이트를 따로 운영하고 있어서 예약이 어렵지는 않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대부분 도미토리는 터키 리라로 표시되어 있고,
싱글, 더블, 트윈룸은 유로로 표시되어 있다.
(아마도 터키 리라로 표시할 경우 비싸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야소피아와 블루 모스크가 바로 코 앞이고
대부분의 구시가지 볼거리는 트램길을 따라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초행길에 공항에서 찾아오는 게 부담스럽다면 셔틀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비용은 1인당 10 URO 정도.
아카모즈 호텔은 의외로 찾기가 어렵다.
(천부적인 길치라고 나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잘 모르겠으면 포시즌즈 호텔을 물어봐서 고개만 살짝 돌리면 간판이 보일거다.
룸은 비교적 깨끗한 편이고 주인(오르한)도 친절하다.
조식이 좀 섭섭한 것 같은데 의외로 먹으면 꽤 든든하다.
그리고 차이 맛이 끝내준다.
빈 속에 여러 잔 마셨는데도 속이 안 아팠다.



괴레메에서 묵었던 "Ishtar cave pansion"
주인 할아버지(papa)가 워낙 친절하고 막 퍼주는 스타일이시다.
여행자들끼리 옥상이나 거실에 모여있으면 차랑 과일같은 걸 그냥 막 주신다.
눈만 마주쳐도 "차 마실래?" 물어보신다.
이 집 애플티는 여행자들에게 꽤나 유명하다 못해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존재다.
시고 단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내 입맛도 완전히 사로잡아 개인적으로 "must have"를 외쳤던 
so hot item 되시겠다.
덕분에 바자르에서 무게때문에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사서 서울까지 모셔왔다. 
(그런데 맑은 애플티가 아니라 검은 애플티다. 그리고 맛도 이쉬타르 것보다 덜하다)
시설적인 면에서 썩 좋은 숙소는 아니지만
인간적인 다정함이나 여행객과의 소통면에서는 꽤 괜찮은 곳이다.
주인 할아버지 덕분에 외갓집에 와 있는 생각도 든다.
괴레메의 숙소들이 다 가업(家業)의 개념이기 때문에
종업원의 사무적인 친절보다는 가족적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가라 넘쳐 개인적으론 상당히 맘에 들었던 숙소다.
더군다가 아침에 체크아웃을 한 뒤에도 짐을 맡겨둘수도 있고
투어를 마치고 들어와 샤워도 무료로 할 수 있다.
(체크아웃후 샤워하려면 extra charge를 내야만 하는 곳도 꽤 있다)
가끔 papa도, 약간 무뚝뚝하던 아들도, 한국식 이름이 원빈이라는 손주도 궁금하다.
출산이 임박했던 집체만한 개는 새끼들 잘 낳았는지...
그리고 완전 푸짐했던 아침 식사도 그립다.
(그러고 보니 이쉬타르 팬션은 사진을 거의 안 찍었다.)



숙소까지는 아니지만 이동하면서 하룻밤을 보냈던 숙소 아닌 숙소 두 곳!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과 파묵칼레에 가기 위해 무려 9시간을 탔던 데니즐리행 야간 버스.
에미레이트 항공은 일단 무지 친절하고 서비스도 좋다.
탑승해서 조금 기다리면 감사하게도 따뜻한 물수건을 준다.
(이런 서비스 우리나라도 했으면 싶다~~)
좌석이 좀 좁긴 하지만 내가 비지니스석을 예약한 건 아니니까 통과!
냄새로 사람 진을 빼놨던 기내식만 아니면 대체적으로 만족!
그래도 메인 메뉴 이외에 나오는 빵이나 치즈, 과자들은 괜찮다.
차와 커피도 맛이 상당히 좋았다.
터키라는 나라는 워낙에 영토가 광대해서 일단 버스를 타면 이동시간이 거의 8시간 내외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주로 야간버스를 이용하게 되는데
남자와 여자를 분리해서 자리 배치해주는 것도 센스있고
(단 남녀가 함께 다니는 여행자는 같이 앉을수 있도록 해준다)
좌석 넓이도, 서비스도 괜찮다.
중간중간에 청결한 도우미(?) 안내군께서 간식도 챙겨주시고...
한창 더울 때 먹은 초코아이스크림 서비스는 충격적일만큼 감사했다.
(또 다시 우리나라도 이런 서비스 좀 해주면 안 되나?)
길지 않은 일정이여서 머물렀던 숙소가 적었던 게 개인적으론 아쉽다.
다시 터키에 가게 된다면 다양한 숙소를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그리고 이동은 국내선 말고 야간버스로 하는 게 더 현명할 것 같다.
숙소에서 공항에 오가는 시간도 그렇고 비행기가 연착되는 시간도 그렇고 그냥 흘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물론 숙면에 목숨 거는 사람이라면 부담스럽겠지만
나처럼 토막잠을 자는 사람에겐 야간버스가 오히려 눈 감고 있는 시간상으로는 더 길다.
하긴 잠을 안 잔들 내가 과연 터키에서 피곤했을까?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라고 했어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요즘은 환상같은 되새김만이,
내 유일한 낙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9. 05:23
터키여행에서 길과 함께 내 눈을 많이 사로잡았던 건
이슬람 사원인 "자미(Cammi)"였다.
유명하고 큰 규모의 자미부터 어디를 가든 보였던 이름 모르는 동네의 조그마한 자미들까지
그 독특한 모양과 건물을 보고 있으면 묘한 아우라가 느껴지기도 했다.
터키어로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자미(Camii)
둥근 천장의 돔과 뽀족하고 긴 첨탑의 미나레.
모든 걸 감싸안는 대지같은 둥금과 뭔가를 향해 매섭게 찌르는 날카로운 예리함.
건물을 보고 있으면 포용과 통찰,
지성과 이성의 조합이란 생각이 든다.



이집션 바자르 바로 옆에 있는 예니 자미(Yeni Camii)는
이스탄불의 자미 중 가장 오랜 공사시간이 걸렸단다.
메흐메트 3세의 어머니이자 술탄 셀림 2세의 부인이었던 사피예의 명으로 짓기 시작했는데
건립 도중 술탄이 세상을 떠나면서 재정적 문제가 겹쳐지면서 공사가 중단되는 비운을 겪었다.
중단된 기간만도 무려 56년!
그러다 메흐메트 4세에 의해 1663년에 비로소 완공되었다.
완공기념 개막 기도회 때는 술탄과 술탄의 어머니, 재상, 많은 학자들이 참석했는데
축하의 의미로 금으로 된 동전을 시민들에게 뿌렸다고 한다.
묘하게도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블루 모스크)를 떠올리게 한다.
월요일의 자미는 한산했고 세족을 위한 수돗가의 빈자리는 문득 평화로웠다.
자미 내부는 쏟아지는 햇빛으로 보석처럼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조용하고 고요한 자미 내부의 이방인도 그 움직임이 조심스럽고 잔잔해진다.
평화로웠고 그리고 따뜻했다.




이집션 바자르 입구 오른편에 위치한 뤼스템 파샤 자미(Rustem Pasa Camii)
자미 아래가 전부 상점이라 입구를 찾기위해 조금 헤맸다.
상점들 사이로 조그만 통로가 보여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거짓말처럼 자미 마당이 나왔다.
(1층의 상가 임대료로 자미 유지비믈 충당하고 있다니 상점들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뤼스템 파샤 자미는 쉴레이만 대제 당시의 재상 뤼스템을 기리기위해 1561년 미마르 시난이 건립했다.
술탄이 뭐 재상까지 친히 기념할까 싶었는데 이 사람이 쉴레이만 대제의 사위란다.
사위가 도대체 얼마나 이뼜길래 장인어른이 이런 엄청난 자미를 지었을까???
'파샤'란 단어도 오스만 제국의 고관을 지칭하는 뜻이란다.
사윗님께서도 장인어른에게 무지 감격해서 처갓집 말뚝에 골백번 절을 했겠다 싶다.
(이런 단순 무식하고 아주 관념적인 상상이라니...)
뤼스템 파샤 자미는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타일이 유명하다.
정원의 외벽과 내부 기둥, 벽에 사용된 꽃모양의 타일은
타일의 명산지 이즈닉에서도 최고급으로 치는 제품이었다고 한다.
특히 사원의 남동쪽에 있는 '토마토 레드'라 불리는 붉은색 타일은
현대의 기술로도 만들기 힘든 당대의 명품이었라고...
복장규정이 엄격하다는 에윕 자미도 반바지 입고 들어갔었는데
이곳은 입구에서 아저씨 한 분이 치마를 건네주셨다.
왠지 발걸음을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은 느낌!
자미에 대한(정확히 말하면 종교에 대한) 터키인들의 경건함과 신성함을 보노라면
꿇어 엎드려 동그래진 돔같은 몸피에서 깊은 신뢰감마저 느껴진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일정에서까지 굳이 자미를 찾았던 건,
아마도 자미가 주는 신뢰감과 아우라를 기억에 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화(精化)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었는지도...
터키는 내겐 길의 나라다.
그리고 동시에 신성한 자미의 나라다.
그래서 터키는 내겐 두 개의 신성(信性)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8. 05:31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그랜드 바자르와 이집션 바자르를 들러본 후
이집션 바자르에서 가까운 자미 몇 군데를 보고
트램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서 그랜드 바자르까지 걷기로 했다.
가는 길에 국제공중전화 카드도 샀다.
그러나 몇 번의 도전 끝에 결국 give up을 선언했다.
(카드는 결국 그대로 한국까지 친히 따라왔다. 지금도 가끔 공중전화 카드 쳐다보면서 혼자 웃는다.)
터키 현지인들이 여러번 도와줬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매번 못 걸던지...
도저히 미안해서 나중에 하겠다고 하고 도망쳤다.
이렇게 심한 길치에 엄청난 기계치임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무사히 터키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음을 감사하면서...



술탄아흐멧에서 트램을 타고 이동한 곳은 이집션 바자르(Misir Carsi).
입구가 시장처럼 보이지 않아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뻔 했다.
열심히 헤매다 바로 앞에서 또 현지인에게 물어봤다.
정말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서...
그랜드 바자르보다 규모는 작지만 보다 서민적이이라 오히려 정겨운 느낌이다.
이집션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옛날 이집트에서 온 물품의 집산지가 이곳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이곳은 과거에 실크로드를 따라 동방에서 온 향신료가 주로 거래된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 역사가 고스란이 남겨져 여전히 향신료 시장이 유명하다.
그래서 스파이스 바자르(Spice Bazar)라고 불리기도.
예전에는 향신료만 전문적으로 파는 상점만도 무려 100여 개가 넘었다는데
지금은 몇몇 가게만이 명백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향신료 말고도 견과류, 씨앗, 꿀 등 주로 먹거리와 관련된 품목들이 많았다.
특히 이곳에서 파는 파스차티오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단다.
향신료나 파스타치오를 못 사서 아쉬웠지만
기념품으로 선물할 악마의 눈 열쇠고리와 악세사리, 올리브 비누를 샀다.
그리고 애플티도!
가끔 여행사진 보면서 애플티 마시면 정말 당장이라고 날아가고 싶을 만큼 그립다.



구시가지에 위치한 터키 최대의 재래시장인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r)!
1461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조성됐다니 그 역사만도 엄청나다..
(술탄 메흐메트 2세란 인물, 터키 이곳 저곳에 참 많은 역사와 건물들를 남긴것 같다.)
터키어로는 '카팔르 차르쉬(Kapali Carsi)'로 '지붕이 있는 시장'이란 뜻이란다.
이곳은 유럽과 아시아의 온갖 물산이 넘나들던 교역의 메카였다.
이곳을 통해 유럽의 부가 아시아에 전해졌고
실크로드를 따라온 아시아의 물품 역시 그랜드 바자르를 통해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
지금까지 12번의 지진과 9번의 화재를 겪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더 큰 규모로 복구돼서 지금과 같은 어마어마한 도시같은 시장이 됐다.
남쪽은 베야즛, 서쪽은 이스탄불 대학교, 동쪽은 술탄아흐메트와 접해 있는데
한 번 들어가면 같은 출입구로 나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출입구만도 20개가 넘는단다.
그래서 일단 기준이 되는 통로를 정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이동하는게 그나마 덜 헤맨다고...
확실히 이집션 바자르보다 물량도 엄청났고, 품목도 엄청났고, 사람도 엄청나서 조금 몽롱했다.
미로같은 길을 걷는 것도 보통이 아니고...
귀금속부터 카펫, 가죽, 도자기, 옷감, 골동품 상점,
그리고 매나아샾같은 장난감 자동차 가계까지.
이곳을 제대로 보려면 하루 온종일이 걸려도 모자라겠다 싶다. 
그래도 역시 시장은 시장이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두 분이 장기(?) 같은 걸 두시는 모습은 우리네 풍경이랑 똑같다.
(두 분은 물담배 내기를 하셨을까? 아니면 차이 한 잔? ^^)
그렇게 서로 비슷하게 통하고 연결되는 게 사람 사는 모습인지도 모르겟다.
먹고 사는 생존의 분주함과 노력이
문득 거룩하고 신성한 종교처럼 다가온다.
아! 밥벌이의 위대함이여!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7. 08:16
전날 시간이 늦어서 갈라타 탑 전망대에 올라가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피에르로티 찻집의 석양을 포기하고 다시 갈라타 탑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꼭 그곳에서 석양과 야경을 보겠다 다짐하면서...
예전에는 입장료 없이 올라갔었다는데 지금은 11TL의 관람료를 받는다.
6시 넘어서 도착했을 땐 이미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탑 주변을 뺑 둘러싸고 있었다.
이러다 또 못보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빠르다.
입장료를 사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까지 올라갔다.
다시 좁은 원추형 계단을 꽤 올라가니 드디어 탑 전망대다.
이곳은 저녁 8시까지 관람객을 받는다.
그 시간 이후부터 엘리베이터는 나이트클럽과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들로 바빠진단다.
특히 갈라타 탑에서 밤마다 공연되는 벨리댄스가 유명해서
아예 여행상품으로 나와 있는 것도 많다.
춤은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잼뱅이인 관계로 pass!
(내 입장에서 벨리댄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현실적은 몸놀림이다!)



갈라타 탑 전망대는 360도 돌면서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것도 아나로그적인 방식인 두 발로 직접 걸아서 돌아야 한다.
폭이 좁고 관람객은 많아 좌우, 앞뒤 간격 모두 촘촘하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다른 여행객에게 길을 잘 내줘야 한다.
자리잡고 비키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있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대략 난감해지므로...
갈라타 탑에서 보는 이스탄불의 정경은 아름답고 시원하고 경쾌하다.
중간중간에 view point에 주변을 설명해주는 안내판도 있다.
우뚝우뚝 솟은 자미의 미나레의 갯수를 세면서 혼자 이름을 맞춰보기도 했다.
(혼자 놀기의 진수를 즐기는 중 ^^)
오스만 제국 최고의 술탄 쉴레이만 대제에게 봉헌된 쉴레이마니예 자미!
골든혼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지어진 자미의 미나레를 세본다.
모두 4개의 미나레.
쉴레이만 대제가 이스탄불을 수도로 삼은 네 번째 술탄임을 뜻한다.
그리고 10개의 발코니는 자신이 오스만 제국의 10번째 술탄임을 상징하는 의미고...
이런 숨은 그림같은 이력을 알아가는 것 역시 이스탄불의 매력이고 즐거움이다.
마치 소풍날 보물찾기 하는 느낌이다.



천천히 한 바퀴를 돌자니 해가 진다.
점점 어둑해지면 갈라타 탑 아래 또 다른 이스탄불의 모습이 태어난다.
하나 둘 불빛이 밝혀지는 자미와 거리의 상점들.
그리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물들이는 석양의 붉은 빛깔.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신비감보다는 친근함에 가깝다.
손에 잡힐듯한 풍경과 빛깔이 꼭 내게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내 시선이, 내 생각이, 내 느낌이
이 모든 것들을 창조했구나!
어쩌면 풍경의 진실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터키는 내게,
참 거칩없이 아름다웠다.
그리움 그 이상의 마음때문에 나는 지금 버겁다.
내가 보지 못한 뭔가가 아직 그곳에서 나를 잡아 끌고 있다.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4. 05:42
카리예 박물관을 나와서 예윕 자미를 가기 위해서
또 다시 열심히 헤맸다.
역시나 적재적소에 나타나서 도움을 주는 터키 현지인 덕분에
1.25 TL 로컬 버스(동네 마을 버스?)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안내 책자에도 노선이 자세히 나와있지 않아 어떻게 가야하나 혼자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제 헤매고 걷는데 재미를 넘어 쾌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런 길치도, 이런 저질 체력도 너끈히 받아주는 도시, 터키~~)

 



에윕 술탄 자미(Eyup Sultan Camii)!
이슬람의 예언자 무하마드의 애제자 에부 에윕 엔사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단다.
(당연히 누군지 모른다. ^^)
에윕이라는 인물은  674~678 년에 성전의 기수로 활약했고
콘스탄티노플 공략 때 전사했다고 책에 써있다.
그가 죽은 뒤 8세기나 지나 그의 무덤이 발견됐고
메흐메트 2세가 그 자리에 자미를 지을 것을 명령해서 지금의 에윕 술탄 자미가 탄생됐다.
그 이후 이곳은 새로운 술탄이 즉위할 때 성검 수여식이 거행되는 국가적인 장소로 사용됐다.
지금도 에윕의 무덤에는 참배를 위한 발길이 계속되고 있단다.
이런 성스러운 이력때문인지
다른 자미보다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고 코란을 독경하는 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특히나 복장규정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여자는 스카프를, 남자는 긴바지를 꼭 입고 가야 한다는데
그날 복장이 반바지에 티셔츠라서 쫒겨나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자미 가운데와 벽 주위에는 발을 씻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이슬람 자미의 특징 중 하나는 꼭 발을 씻고 들어가간다는 거!)



내가 찾은 날이 일요일이었는데 아마도 결혼식이 있었는지
여러 쌍의 신랑, 신부와 가족들로 자미 마당이 북적였다.
그 틈을 이용해서(?) 자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행히 쫒겨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자니
왠지 나까지도 숙연해지고 간절해진다.
코란을 읊는 사람들의 눈빛은 아이처럼 맑고 깨끗했다.
1층 마나렙 근처는 오직 남자들만 기도할 수 있는 곳인지 여자들이 한 명도 없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에 올라가야 에삽을 쓴 여자들이 기도하는 곳이 보인다.
(터키의 남존여비 사상은 우리나라보다 은근한듯 하지만 오히려 더 심한 것 같다)
창을 통해 비치는 햇빛 속에서
자미의 밝은 곳은 찬란했고, 어두운 곳은 고요했다.
왠지 더 오래 있기에는 복장이 너무 미안해서 서둘러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혼났다.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님(랍비?)이 반바지 입은 나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하신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몇 번씩 숙였는데 이해를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에윕 술탄 자미를 오른편에 바짝 두고 피에르로티 찻집을 향해 산언덕을 올라갔다.
피에르로티 찻집(Pierre Loti Kahvesi)!
프랑스 작가 피에르로티가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을 너무나 좋아해서
이곳에서 차를 마시면서 작품을 썼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찻집까지 케이블카로 쉽게 올라갈 수 있지만
가능하면 꼭 걸어서 올라가길 권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골든혼과 주변 경치는 안내서의 말과 피에르로티의 고백이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한다.
촉각까지 살아 있는 풍경이랄까!
바라보고 있으면 시선에 따라 몸의 일부가 톡톡 말을 건다.
바람도 그려질 것 같고, 햇빛도 만져질 것 같은 풍경들.
길 양편에 있는 공동묘지를 따라 걸어서 올라가고 걸어서 내려오다보면
죽음이 일상의 공간처럼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터키 여행 중에 의외의 곳에서 느닷없이 공동묘지가 나타나고는 했는데 
그걸 바라보는 시선은 두려움이나 꺼림직한 고개 돌림이 아니라
오히려 친근함과 평온한 고요였다.
이곳도 그랬다.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무덤임에도 나는 그네들이 다정했다.
그리고 여기에, 다정한 그네들 옆에 내 자리도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도 품었다.
이곳에서라면 결코 깰 수 없는 잠도 기꺼이 달게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얗게 비어 있는 묘비명에 슬쩍 내 이름을 써두고 싶었다.

죽음은 때론 불같은 질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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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3. 05:24
1시간 30분 소요된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에서 내려
갈라타 다리 아래에서 유명하다는 고등에 케밥(5TL)을 하나 샀다.
흔들리는 작은 배 위에서 열심히 고등어를 구워 빵에 끼우는 모습도 신기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걸 사기위해 줄을 선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너무 비리면 어쩌나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짝 구워진 고등어는 비린맛보다 고소한 맛이 더 많다.
홍합밥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길거리에서 그걸 하나하나 까먹고 있을 자신은 없어서
이번 여행에서는 아쉽게도 못 먹어봤다
(맛있다는데...쩝!)
고등어 케밥은 양이 상당히 많아서 그냘 하루종일 가방에 넣어두고 허기지면 꺼내서 한 입씩 먹으면서 다녔다.
오래 두고 먹어도 별로 비리진 않았고
대신 지느러미하고 가시를 발라내는 게 좀 귀찮은 정도 ^^
에미뇌뉘 버스 정류장에서 카리에 박물관을 찾아가기 위해 책(프렌즈 터키)에 나와 있는 버스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근데 이건 버스 정류장이 너무 커서 또 다시 헤매기 시작했다.
결국 책에 적힌 노선을 포기하고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봤다.
친절한 아저씨 한 분이 직접 데려다가 버스에 태워줬다.
안타깝게도 막 출발하려는 버스에 올라탄거라 몇 번 버스인지는 모르겠다.
내리면서 봐야지 했는데 내릴 때가 되니까 사람들이 다들 빨리 내리라고 해서 허겁지겁 내리느라 또 못 봤다.
버스 창문으로 목까지 내밀고 저쪽으로 가라며 손짓을 해준다.
그 사람들 눈에도 내가 영 미덥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해한다! 그 심정!)


터키인들의 친절과 호의 속에 도착한 카리예 박물관(Kariye MUzesi, 15TL)
11세기에 지어진 카리예 박물관은 처음 이름은"코라 수도원" 이었다.
"코라"는 그리스어로 "교외(郊外)"를 뜻한단다.
아마도 구시가지 서쪽 외곽에 위치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 터키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고 황홀했던 곳 중에 한 곳이다.
우선 건물이 주는 묘한 아우라에 입구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햇빛을 정면으로 받고 있어서 마치 건물 전체가 빛을 품어내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론 건물과 햇빛이 정면대치하고 있는 팽팽한 긴강감도 느껴졌다.
카리예 박물관은 비잔틴 시대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란다.
원래는 기독교 수도원이었는데 아야소피아와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때 이슬람 사원인 카리예 자미로 바뀌게 된다.
그때 미나레와 미흐랍도 만들어졌단다.
종교적인 이유로 지금껏 본 프레스코화들은 얼굴 부위가 심하게 훼손됐었는데
이곳은 이슬람시대때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를 석고로 덮거나 원판으로만 가려놔서
비교적 손상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평화와 사랑의 대명사인 종교가 극단적인 배타성과 유일성만을 강조할 때
항상 몰살(歿殺)과 괴멸(壞滅)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낳는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박물관 본관 정중앙에는 황금색 성경을 든 예수 그리스도 프레스코화가 있다.
그리스어로 쓰여진 문장의 뜻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 외쪽에는 천국의 열쇠를 손에 들고 있는 사도 베드로가,
오른쪽에는 로마까지 3차 선교여행을 했던 사도 바울의 초상화가 있다.
동쪽 홀 끝에는 부활한 예수와 24원로들,
맞은편에 아담과 하와를 죽음에서 살리는 예수의 성화가 그려져있다.
실제로 눈 앞에 보고 있으면서 저 높은 곳까지 어떻게 그림을 그렸을까 그자 놀라울 뿐이다.
색채의 조화와 성화의 선명도는 마치 실제의 인물을 눈 앞에서 보는 느낌이다.
높은 곳에 그려진 저 아름답고 거룩한 성화들은 지극한 간절함이자 소망이며 진실한 기도다.
그렇다.
종교에는 간절함과 소망이 전부여야 한다.
권력과 지배가 전부여서는 안된다.
터키의 자미를 보면서 자주 생각했던 어쩔 수 없는 화두(話頭).
어쨌든 바라는 건,
한 종교의 문화가 다른 종교에게 더이상 불결한 이물질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몰살과 괴멸의 역사를 또 다시 갖지는 말자는 간절한 바람도.
빼앗고 말살함으로 권위가 유지되는 믿음이라면
더이상 믿음도 종교도 아니다!
카리예 박물관의 훼손되지 않은 성화를 보면서
낯선 이방인은 인고(忍苦)와 책임(策任)으로서의 상생(相生)의 믿음을 생각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2. 05:14
오르한 파묵과 보스포러스 해협이 있는 나라 터키!
내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터키에 대한 로망 두 가지.
오르한 파묵이 교수로 있던 이스탄불 대학은 아쉽게도 못 갔지만
(월요일에만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단다)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만은 꼭 타보고 싶었다.
박물관에서 나와서 트램을 타고 에미뇌뉘 선착장에 도착.
왕복 1시간 30분 소요되는 Turyol Cruise 매표소를 찾아 또 헤매다녔다.
왼편 제일 끝에 매표소가 보이길래 표를 끊으려고 했더니
판매원 아저씨가 이곳은 페리 매표소라며 크루즈는 오른쪽으로 가란다.
(사진은 페리 매표소!)
이스탄불은 페리가 일상적인 교통 수단 중의 하나다.
그래서 춮퇴근 시간이면 몰려드는 사람들로 제법 혼잡하고 복잡하다.
다행히 오후 1시 정도라 출퇴근하는 현지인이 많지는 않았지만
크루즈를 타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만으로도 북적북적하다.
생각보다 크루즈 매표소가 작고 허름해서 놀라기도. ^^




마음 같아서는 6시간 걸리는 iDO Cruise를 타고 싶었지만
시간도 그렇고 매멀미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해서 관광객이 많이 타는 Turyol cruise를 탔다.
에미뇌뉘 선착장에 가면 이 두 곳 이외에도 개인이 운영하는 서설 cruise도 많다.
잘못 선택했다가는 돌무쉬처럼 승객이 찰때까지 기다려야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으니
선택은 온전히 본인의 몫!
Turyol curise는 에미뇌뉘 선착장을 출발해서 루멜리 히사르 성채가 있는 보스포러스 제 2 대교(파타흐 대교)까지
왕복 운행되고 요금은 12TL 이다.
갈때는 유럽 쪽으로 가고 올 때는 아시아 쪽으로 오기 때문에 양쪽 지역을 모두 돌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 어느 쪽으로 앉는지가 관건!
크루즈를 타서 오른편으로 앉는 게 더 가까이 볼 수 있다.
처음엔 왼쪽에 앉았었는데 반대편을 보니까 훨씬 가깝길래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루멜리 히사르 성채는 직접 찾아가서 본 것 보다는
크루즈를 타면서 전체적인 조망을 본 게 오히려 훨씬 멋있었다.
바다와 하늘 색깔도 정말 숨막히게 에뼜고
그 속에 숨은 그림처럼 보이는 빨간색 터키 국기는 풍경 속의 포인트 같다.
(터키 여행 내내 터키 국기의 선명한 붉은색이 이 나라 풍경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천만번 공감했다)
에미뇌뉘 선착장쪽 바다는 투기된 쓰레기들로 좀 지저분했지만
조금만 나와도 맑고 투명한 쪽빛 바다가 눈을 사로잡는다.
해협 주변으로 펼쳐진 유럽식 건물들도 주변과 너무 잘 어울렸고...
터키인들은 신이 주신 자연환경 때문에 색채감이 뛰어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잠깐 해봤다.
(무차별 공구리 정신으로 주변풍경을 무시하고 한 길만 파는 우리나라의 꿋꿋한 건축문화가 무지 생각나는 순간이다.)



1865년 건립된 술탄의 여름 별궁 베일레르베이 궁전(Beylerbey Sarayi).
돌마바흐체 궁전과 마찬가지로 유럽식 궁을 본따서 만든 이 궁전의 시계 역시도
아타튀르크 대통령 사망시각인 9시 5분에 멈춰져 있다.
몇 번을 생각해도 대통령에 대한 터키 국민의 경외심과 그리움이 그저 부럽고 놀라울 뿐이다.
또 놀랐던 건,
이 별궁을 지을 때 일꾼들의 화합을 위해 공사기간 내내 오케스트라가 직접 연주를 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아름다운 발상을 했을까?
터키란 나라는 알아갈수록 더 매력적이고 아름답고 신비롭다.
아시아 지역의 중심지 위스퀴다르 앞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건,
일명 처녀의 탑으로 불리는 크즈 클레시(Kiz Kulesi) 탑.  
원래는 12세기 비잔틴 제국의 해양 감시초소였는데
오스만 제국 때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의 통행세를 밪는 곳으로 사용하기도 했단다.
자세히 보면 탑 위에 사람들이 보이는데
탑 내부에  전망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 탑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위스퀴다르 일대를 다스리던 왕에게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16세가 되기 전에 독사에게 물려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왕은 고민끝에 예언으로부터 딸을 구하고자 바다 위의 탑을 만들고 딸을 그곳에 숨겨 놓는다.
시간이 흘러 딸이 16세가 되는 날,
왕은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탑으로 과일바구니를 보냈는데
바구니에 몰래 숨어 있던 뱀이 나와서 결국 예언대로 공주가 그 뱀에 물려 죽어버렸다는 전설. ^^
(이런 전설 어디가나 꼭 있다!)

터키를 여행하는 내내 나는 쨍쨍한 마른 길에 온통 빠져있었다.
두 발로 발도장을 꾹꾹 찍는 곳만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는 생각에 정말 미친듯이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걷는 길이 아닌 "푸른 물길"에 그만 내 발목과 눈이 덜컥 사로잡혔다.
그래, 또 다른 전설이 이제 막 시작됐구나!
푸른 물의 전설 앞에서
풀어지듯 황홀해져 그만 물과 함께 오래오래 흘러버렸다.

터키는...
완벽하게 나를 무장해제시킨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1. 06:32
오늘은 시간 여행이다!
개인적으로 박물관이나 옛 궁궐터를 오래 걸어다니며 보는 걸 정말 무지 좋아한다.
아마도 그게 "길"의 연장선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길을 뚜벅뚜벅 내 두발로 걸으면서 넘나든다는 건,
늘 생각하는거지만 참 뭉클한 축복이고 행복이다.
(그래서 꿈꾸는 여행 중의 하나가 "유럽 박물관 투어"다.)
더더군다가 이스탄불이 너무 이쁜 건,
술탄 아흐멧에서 한 정거장만 걸어가면
(트램따라 걸어가는 이 길도 참 이쁘고 재미있다)
고고학 박물관과 고대 동방 박물관, 도자기 박물관 세 곳을 한꺼번에 볼 수가 있다.
요금은 통합 입장료로 10TL.
일단 들어가면 모두 한 곳에 모여있어 티켓을 다시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고고학 박물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곳.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 석관이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그런데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석관의 주인이 알렉산더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BC 333년 알렉산더가 이수스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뒤 이브달로니모스를 왕으로 만들어줬는데
이 석관이 바로 그 사람의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브달로니모스는 알렉산더의 후견으로 왕이 된 사람이라
자신의 관에도 평생의 은인인 알렉산더의 모습을 새겨넣은 것이라고.
(어느게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분홍빛을 띠는 대리석은 무지 아름답고 조각들의 정교함에 내 손이 다 떨릴 정도다.
조명과 명암, 채도의 배려가 눈에 띈다.
어두운데도 유난스럽지 않게 돋보이는 석관은
조각의 작은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보여지도록 전시되어있다.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반사광때문에 가오리눈이 된 적이 많아서
이런 배려를 보니 참 민망하게 감동적이기까지했다.



이곳은 유난히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들이 많다.
처음엔 신기해하면서 이곳저곳 매혹되서 들여다 봤는데
또 나 혼자라 등골이 서늘해져 버렸다.
급기야는 대리석상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오는 듯한 어처구니 없는 착각까지도...
이 현실적인 비현실감이란!
(어이없겠지만 경험할 당시엔 무지 섬득하더라)



고대 동방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터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각지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벽화들과 청동상, 스핑크스와 미라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
무덤에서 출토된 것들이 대부분인듯.
역시나 좀 무섭긴 했지만 귀염성있는 청동상들이 가끔씩 나타나줘서 다행스러웠다.
아주 오래된 유물인데도 조각의 표정이 다양해서 보면서 많이 놀랐다.
아무래도 고대 사람들이 지금 우리보다 표정이 훨씬 더 풍부하고 밝았던 것 같다.



왼쪽편이 위치한 도자기 박물관은 처음에 입구를 못 찾아 혼자 헤매고 있었다.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손가락으로 바로 옆을 가르킨다.
길치는 또 민망한 표정으로 "thank you!'를 연발할 수밖에...
(하필 그렇게 찾던 입구가 바로 앞에 있을걸 뭔지. 에효~~)
이곳엔 12~20세기까지 셀주크, 오스만 제국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16세기 이즈니크 도자기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전시품이라는데
가사 및 살림에 문외한인 나는 거의 눈뜬 장님 수준이다.
그래도 이쁜 그릇(이게 딱 내 수준이다)을 봐서 나쁘진 않았다.
이 그릇들에 밥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는 무지 원초적인 생각도 잠깐! ^^
전시실이라는 느낌보다는 집을 개조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문턱이랑 창문의 위치도 그렇고...)
술탄의 별관으로 쓰였던 곳이란다.
1472년에 건립됐다는데 그렇다면 보존을 상당히 잘 한 것 같다.

시간을 들여서 보자면 아마 한나절로도 모자라겠지만
여행자의 눈은 가능하면 많은 것을 담고 싶은 욕심이라
고작 반나절로 이 멋진 시간 여행을 마무리했다.
나중에 이스탄불에 다시 가게되면
이번에는 꼭 해지는 오후에 이곳을 찾아보리라!
지는 해를 받은 대리석들이 어떤 빛을 띄는지 꼭 보고 싶어서...
차가운 돌의 따뜻한 끌림.
그걸 다른 시간의 품에서 꼭 한 번 확인하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0. 05:40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도착한 곳은 예레바탄 지하 저수지(Yerebatan Sarinci, 10TL).
8시 30분부터 관람객을 받는 이곳을 먼저 보고 박물관으로 이동할 작정이다.
솔직히 말하면 메두사의 머리나 보고 나오자는
참 겁없고 건방진 생각으로 들어갔었다.
그런데 막상 계단을 통해 내려가니 걸음이 저절로 멈춰진다. 
웅장한 음악이 물과 벽, 천정을 통해 공명되는 소리는 너무나 장엄하면서도 엄중했다.
마치 신의 영역에 들어가는 듯한 몽환적이고 묵시론적인 느낌. 
이른 아침이라 관람객이 적어서였는지도 모르지만
그 한적한 고요와 웅장함에 덜컥 겁이 나서 몸이 움츠려졌다.



6세기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건설한 지하 물 저장소.
예레(yere)는 '땅에'라는 의미고 바탄(Batan)은 '가라앉다'는 뜻의 터키어란다.
외적의 침입이 빈번했던 이스탄불 통치자의 물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설물.
이곳은 "지하궁전"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저수지의 전체 크기는 길이 140m, 폭 70m, 높이 9m로
한번에 무려 8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물은 도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베오그라드 숲에서 공급된단다.
지하 저수지는 28개의 원주가 12줄씩 모두 336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지탱되고 있는데
19세기말에 안타깝게도 90개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 거대한 대리석을 도대체 어떻게 가져갔을까????)
실제로 들어가 보면 잘 정렬된 기둥 때문에 마치 고대도시의 궁전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내부는 시원하다 못해 오히려 으스스한 한가마저 감돈다.



이른 아침에 그것도 혼자서 가장 안쪽에 있는 메두사의 머리를 찾아가는데
머리카락이 다 주삣거린다.
사실은 그냥 나갈까 하다가 다른 관광객이 지나가길래 소심하게 바짝 붙어서 따라갔다.
(그 관광객들 이 사람 뭐니? 했을거다...^^)
1984년 보수공사 때 지하에 쌓여 있던 진흙을 치우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메두사의 머리!
지금도 그 용도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단다.
전부 2개인데 하나는 옆으로 서 있고 하나는 거꾸로 누워 있다. 
신비롭도록 정교하고 아름답지만
왠지 오래 바라보기가 두렵다.
그대로 돌이 되버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
(특히 거꾸로 서 있는 메두사의 머리는 그 눈을 오래 보기가 어렵더라)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도 괜찮았겠다 싶다.
아니 좀 오래 대면하고 있을 걸 후회도 된다.
돌이 돼서 터키에 남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텐데...
그리움이...
너무 깊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