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11. 19. 08:28

<노트르담 드 파리>

일시 : 2013.09.27. ~ 2013.11.17.

장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원작 : 빅토르 위고

대본 : 뤽 플라몽동

작곡 : 리카르토 코치인테

연출 : 질 마으

출연 : 홍광호, 윤형렬 (콰지모도) / 바다, 윤공주 (에스메랄다)

        마이클리, 정동하, 전동석 (그랭그와르) / 문종원, 조휘 (클로팽)

        민영기, 최민철 (프롤로) / 김성민, 박은석 (페뷔스)

        이정화, 안솔지 (폴뢰르 드 리스)

주최 : (주)마스트엔터네인먼트

 

눈 먼 표가 생겨서 예정에도 없던 마이클리의 <NDP> 막공을 봤다.

사실 티켓팅이 시작됐을때 관람여부를 조금 고민했었는데 홍광호 콰지모도라서 과감하게 놔버렸다.

홍광호 콰지모도는 1번의 관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일곱번의 관람 중 그랭그와르는 전부 마이클였고, 프롤로는 전부 민영기였다.

최민철 프롤로를 못 본 건 솔직히 아쉬움이 없는데

박은석 페뷔스를 못 본 건 많이 아쉽다.

특히나 김성민의 목상태가 이 지경이 된 마당에는 더욱 더.

이틀 전보다 목상태가 더 심각해진 김성민을 교체가 되지 않은 건 지금도 의아하다.

관객도 관객이지만 저러다 배우 목이 완전히 상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마이클리의 막공이라서 그랬을까?

배우들이 서로 으샤으샤(?) 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한 작품에서 같이 공연한 누군가의 마지막 무대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배우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특별한 감회를 남기는 모양이다.

이날은 특히나 댄서들의 움직이 아주 가볍고 탄력 넘쳤다.

마치 몸에 최고 성능을 내는 스프링을 장착하고 나온 것 같다.

그들이 보여준 점프와 덤플링, 춤들.

그 속도와 높이과 탄성에 수도없이 감탄을 쏟아냈다.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흥행할 수 있었던 건 밑바탕에는 분명 이들이 있다.

"Dechire"에서  "Bell"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남자 댄서 5명이 보여준 역동적인 춤과 정적인 등장은

정말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날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바다 에스메랄다와 민영기 프롤로.

바다는 그랭그와르의 말처럼 그야말로 "나의 여신, 나의 림프, 나의 뮤지"였다.

"Ave Maria Paiien"는 감동적이었고 "Vivre"은 너무나 고혹적이라 눈이 부실 정도였다.

관극의 횟수가 늘어날때마다 첫인상의 이질감을 하나씩 하나씩 날려줘서

이젠 그녀를 온전히 뮤지컬 배우 "바다"로 보게 만들었다.

홍광호 콰지모도는,

여전히 볼륨조절장치가 컨트롤이 안됐지만

바다 에스메랄다와는 생각보다 음색이 잘 맞아서 윤공주와의 관극때보다 느낌이 훨씬 좋았다.

그래도 홍광호의 일방적인 "Bell"과 "불공평한 이 세상"에는 한번도 만족하지 못해 정말 아쉽다.

"Bell"은 김성민의 상태가 절망적이라 아예 기대를 접어서 그했는지 최악까지는 아니었지만

"불공평한 이 세상"은 간절한 절규가 아니니 세상에 대한 불만과 비난만 느껴졌다.

(확실히 홍광호 콰지모도는 윤형렬 콰지모도보다 표현적인 면에서 여러 의미로 미성숙하고 어린 것 같다)

제일 아쉬웠던 곡은 "새장 속의 갇힌 새"

가창력하면 바다도 만만치 않은데 그런 그녀도 홍광호의 볼륨을 따라가느라 정말 온 힘을 다 쓰더라.

이 곡이 정말 좋은 곡인데 본의 아니게 두 가수(?)의 가창력 배틀이 되버리고 말았다.

  

민영기 프롤로.

민영기때문에 난 프롤로의 사랑도 충분히 이해됐고 심지어 동정까지 하게 됐다.

한동안 그가 도돌임표를 찍고 있는 것 같아 좀 답답했었는데

이 작품 덕분에 그의 진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배우의 힘이라는 게 이렇게 대단하고 무서운거다.)

민영기 프롤로와 마이클리 그랭그와르의 듀엣곡 "피렌체"는

두 배우가 서로의 목소리에 기꺼이 발란스를 맞춰줘서그런지 언제나 듣기가 참 좋다.

(이 사실을 홍광호가 빨리 알아내고 실현했으면 정말 좋겠는데...)

그리고 이날 마이클리는 "Lune"은 정말 압권이었다.

또 다른 콰지모도가 되어 불렀던 "Lune"

무대 앞 뒤에 서있었던 콰지모도와 그랭그와르가 완벽하게 합치되는 느낌이었다.

마이클리 그랭그와르.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그로서는 참 쉽지 않은 작품이고, 쉽지 않은 배역이었을텐데 잘 해줬다.

처음 관극했을때는 솔직히 이 정도까지 만들어낼 줄은 정말 몰랐었는데...

아마도 당분간 그는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그가 한국에 조금 더 머물면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내내 한국에서만 작품하라는 건 결단코 아니고!)

그런 날이 오면 살짝 정체되어 있는 남자 뮤지컬배우의 세계도 꽤 흥미진진한 지각변동이 예상되지 않을까?

마이클리가 "팬텀"을 하고 마이클리가 "지킬"을 한다!

나쁘지 않은 경우의 수다.

아니 솔직히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사심 가득한 마무리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1. 18. 08:25

<Murder Ballad>

일시 : 2013.11.05. ~ 2014.01.26.

장소 : 롯데카드 아트센터

작사 : 줄리아 조단(Juila Jordan)

작곡 : 줄리아나 내쉬 (Juliana Nash)

한국어 가사 : 이정미

연출 : 이재준

음악감독 : 원미솔

안무 : 정헌재

출연 : 최재웅, 강태을, 한지상, 성두섭(Tom) 

        임정희, 장은아, 린아, 박은미 (Sara)

        홍경수, 김신의 (Michael) / 홍륜희, 문진아 (Narrator)

프로듀서 : 김수로

협력 프로듀서 : 최진, 임동균

제작 : 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주)쇼플레이

 

결정했다.

그냥 이 작품에 중독되기로!

<NDP> 수요일 낮공연을 보고 집에 가다 그야말로 즉흥적으로 합정역에서 내려버렸다.

현장예매를 하러 갔더니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stage석이 1자리 남아있었다.

한지상 Tom과 임정희 Sara, 홍경수 Micheal.

다행히 캐스팅도 첫번째 관람과 문진아 Narrator만 빼고는 전부 달랐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한지상, 강태을, 최재웅으로만 1번씩 관람할 예정이었는데

단 두 번의 관람만으로 "중독"을 결정해버렸다.

그래, 한번 지긋지긋해질때까지 이 작품에 빠져보는거다!

 

정말 많이 기대했던 한지상 Tom.

(원래 이 녀석 Tom은 12월 8일에 볼 예정이었는데...)

먼저 봤던 강태을 Tom이 퇴페적인 나쁜남자였다면

한지상 Tom은 허풍과 허세를 버리지 못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미성숙한 과도기(?) 어른 같다.

그래선지 임정희 sara와도 연상연하처럼 보여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느낌이  별로 안들더라.

노래를 부를 때도 한지상은 일부러 음도 좀 다르게 낸다.

불협까지는 아니지만 어딘지 뭔가 균형을 깨는 음이라 처음엔 많이 의아했다.

표현하자면 모두 장조로 부르는데 혼자 단조로 부르는 느낌이랄끼?

듣는 나는 참 난감하고 어색한데

무대 위 한지상은 마치 그 음이 정확한 음인것처럼 초지일관으로 당당하고 자유롭다.

그래서 할 말이 없다.

(배우가 이렇게 자신있어 하는데...)

그래도... 한 마디 하자면 같이 공연하는 배우들과 음의 발란스는 어느 정도 맞춰줬으면 좋겠다.

어찌됐든간에 한지상의 음이 현장에서 듣기에 튀는 건 사실이니까.

 

stage석이라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임정희 sara는 목소리가 좀 막혀있었다.

발음도 정확성이 떨어졌고 넘버들도 거의 비슷한 뉘앙스로만 불러 아쉬웠다.

표정과 연기도 아직은 자유스럽지 않았고

한지상 Tom과 터치 장면은 조금 망설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최재웅과 임정희 페어로 29일 봐야 하는데 살짝 망설이게 된다.

 물론 최재웅이 확실하게 리드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홍경수는 Micheal이라는 배역 자체가 지금껏 그가 해왔던 배역과 너무나 달라서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는데

Sara의 부정을 알고 폭발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밋밋했다.

그래도 홍경수로써는 그의 배우 인생 최초의 일탈이고 변신이지 않았을까!.

문진아 Narrator는 두번째도 역시나 매력적이다.

초반도 그렇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더 매력적으로 변하는 배역이고 배우다.

홍륜희 narrator는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이미 문진아로 취향이 정해버린 것 같아 걱정이다.

그야말로 이 작품으로 제대로 포텐 터뜨렸다.

 

기대했던 stage석!

참고로 뒷줄 stage석은 절대로 비추다!

배우들이 들락날락하는 옆모습 보는게 처음엔 좀 신기했는데 그것 뿐이다.

반대편 무대를 보는 건 진즉에 깨끗이 포기해버렸고

배우들이 연기하는 거라도 보려고 계속 고개를 뺐더니 급기야 어깨 통증까지 오더다.

게다가 스피커 사각지대라 노래와 연주, 음향이 계속 울리게 들리는 것도 은근히 신경쓰였다.

앞쪽 side stage석이나 bar석은 모르겠지만

연주자 라인 stage석은 여러모로 각오하고 앉는게 좋을 듯.

(한자리가 남이 있었던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끈적하고 은밀한 "Mouth Tatto"와 "The Crying Scene"

감미로운 "Sara"와

확고한 현실과 간절한 환상 사이의 줄타기 같은 "Answer Me"

사이코틱하면서도 애절함이 가득 담긴 "I'll Be There"

너무나 다른 느낌을 주는 Tom, Sara, Micheal  세 사람의 "You Belong To Me"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한동안 난 이 넘버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 거.

이 작품은 어쩌면 나를 향한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이 경고를,

나는 과연 받아들이게 될까?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1. 16. 07:58

<노트르담 드 파리>

일시 : 2013.09.27. ~ 2013.11.17.

장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원작 : 빅토르 위고

대본 : 뤽 플라몽동

작곡 : 리카르토 코치인테

연출 : 질 마으

출연 : 홍광호, 윤형렬 (콰지모도) / 바다, 윤공주 (에스메랄다)

        마이클리, 정동하, 전동석 (그랭그와르) / 문종원, 조휘 (클로팽)

        민영기, 최민철 (프롤로) / 김성민, 박은석 (페뷔스)

        이정화, 안솔지 (폴뢰르 드 리스)

주최 : (주)마스트엔터네인먼트

 

내가 <NDP> 라이선스 공연을 이렇게까지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분명 첫인상은 강렬하지고, 감동적이지도 않았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걸까?

마이클리로 시작해서 윤형렬과 민영기, 바다와 조휘로 이어지는 각별한 느낌은

마치 바통터치하듯 곧바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 나도 이 작품 덕분에 독특한 경험을 현재 진행형으로 하고 있는 중이다.

윤형렬, 바다, 마이클리, 조휘, 민영기

이 캐스팅으로 한번은 꼭 다시 보고 싶었다.

(페뷔스가 박은석이었다면 더 완벽했을텐데....)

윤형렬과 바다는 점점 더 배역과 완전한 일체감을 보여준다.

바다는 기교를 부렸던 초반의 모습을 완전히 버리고 자유로운 에스메랄라도 완벽히 바뀌었고

윤형렬 콰지모도는 감정의 절제와 폭발을 본인의 의도대로 적절하게 구사하며 작품 전체를 휘어잡는다.

그가 부르는 "불공평한 이 세상"은 정말 가슴을 쥐어뜯게 만든다.

그리고 그 표정들...

개인적으로 나는 무대 위에서 표정과 시선을 끝까지 유자하는 배우가 너무나 좋은데

이날 윤형렬 콰지모도가 그랬다.

뒷모습을 보이면서도 그가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선명히 느껴지더라.

윤형렬은 어떻게 환희와 좌절, 기쁨과 절망을

이렇게까지 시선과 표정, 몸짓 속에 담아낼 수 있었을까?

관람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작품과 배역에 깊게 빠져있는 윤형렬 배우의 진심에

나도 자꾸 더 많이, 더 깊이 감동하게 된다.

윤형렬 콰지모도의 목소리에는 확실히 주변을 품어내는 따뜻함이 있는 것 같다.

바다 에스메랄다.

이제 그녀의 에스메랄다가 프랑스팀보다 훨씬 더 좋고 사랑스럽다.

"살리라"는 부르는 바다에게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의 초연함까지 느껴지더라.

진심으로 고혹적이고 매혹적이었다.

 

확실히 클로팽은 "조휘"가 문종원보다 훨씬 좋다.

불필요한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문종원은 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데

조휘는 몸놀림도 가볍고 고음도 깨끗하고 춤도 과하지 않으면서 힘이 있다.

철근(?) 위에서 번쩍 뛰어오를 때는 뭔가가 펑 뚫리는 쾌감까지도 느껴지더라.

문종원은 배우로서 자신의 캐릭터를 한 번 과감하게 파괴해봤으면 좋겠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어깨가 뻐근하다.

 

민영기 프롤로!

확실한 진화고 당연한 결과다. 

급기야 나는 그의 프롤로에게서 인간적인 안스러움과 연민까지 느끼고 있다.

에스메랄다를 향한 프롤로의 마음도 정말 "사랑"이구나 인정할 수밖에 도저히 없다.

또 다시 민영기라는 배우가 "프롤로"라는 인물로 나를 완벽하게 설득시켰다.

 

마이클리는 목상태가 좋지 않아 고음은 좀 불안했지만

그래도 깨끗한 음색은 여전했고 

한국어 발음은 그 사이 더 좋아졌다.

표현적인 면에서도 예전보다 훨씬 더 유연해지고 편안해진 것 같다.

김성민 페뷔스.

도대체 어쩌다 목이 그 지경까지 되고 말았을까?

이정도로 심각하면 박은석으로 교체해야 하는건 아니었을까?

페뷔스의 넘버처럼 객석에서 그의 모습을 보고, 듣고 있는게 참 많이 괴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나 바다와 안솔지가 김성민 페뷔스를 너무나 잘 서포트해줘서 그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공연방식이 특이하긴 한 모양이다.

<NDP>의 경우만 봐도 결코 장기 공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배우의 목상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버리는 걸 보면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배테랑 배우들조차 피로도에 나가 떨어지는 걸 보면

좀 안스럽고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생각해보면 100% 컨디션이라는 건 말도 안되는 건데 항상 200%, 300%를 바라고 있으니..

당근과 채찍이라는데

배우들에게 채찍만 들이대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매 공연마다 모든 걸 쏟아길 바라는 관객의 욕심(?)

그걸 좀 버려야 하는데...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5. 08:30

노트르담 대성당보다 무려 700년이나 먼저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아야 소피아.

실제 이곳 내부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통째로 들어앉을 수 있을 정도라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가늠이 안 될 정도다.

바닥에서 천정까지가 무려 55미터고

황금색 돔에 마흔 개의 서까래, 마흔 개의 아치형 창문을 가진 이곳은

내랑과 외랑 이중의 배랑 구조로 되어 있다.

신의 영역과 인간과의 거리를 단절시키겠다는 경건함의 의미였을까?

커다란 청동문을 모두 닫아버리면 실제로 이곳은 완벽하게 고립된 신의 세계가 될 것 같다.

실내 공간을 묘하게 중앙에 집중시켜 실제보다 훨신 더 넓어 보이게 만든 착시현상.

그 비밀을 알면서도 2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규모가 주는 압박감때문에 저절로 위축이 됐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곳곳이 보수 중이라서 원래의 그 규모를 명확히 알기는 솔직히 힘들다.

(이곳뿐만 아니라 이스탄불은 지금 현재 보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2년이란 시간이 참 짧다고 생각했는데 변화 앞에선 참 긴 시간이구나 깨달았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아야 소피아의 상들리에.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줄에 매달려있는 상들리에를 보고 있으면

위태로움과 평화과 함께 느껴진다.

그리고 성모마리아상 옆에 있는 거대한 두 개의 동판.

암호에 가까운 이 문자는 마호메트와 알라의 이름을 아라비아어로 써놓은 것이란다.

그림에 가까운 이 문자를 앞에 두고 느껴야 하는 막막함은

두번째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감소되지 않았다.

읽을 수 없는 문자앞에선 어떠한 상상력도 감히 발동되지가 않는다.

암호같은 문자를 품고 싶다는 열망이 햇빛처럼 쏟아질 뿐...

 

 

아야 소피아의 모자이크화들.

여행을 계획하면서 망원렌즈를 굳이 구입했던 이유는 이 모자이크화들 때문이었다.

커다란 그림을 하나하나 채우는 섬세한 큐빅 조각들을 어떻게든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기독교 성당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면서 훼손된 시간의 조각들도 조금 읽어보고 싶었다.

회칠로 덮어져야만 했던 비밀의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고 버텨왔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그림 앞에서의 현실은

난독증으로 괴로워하는 한 인간의 무지뿐이었다.

이곳을 몇 번쯤 더 와야 이 비밀의 끝자락이 열리게 될까?

결국 2층 회랑 한쪽에 있는 단돌로의 무덤 (Henricus Dandolo)에 애궃은 하소연만 해버렸다.

 

신의 모습을 어떻게든 이미지로 그려내려했던 기독교와

인간이 감히 어떻게 신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이슬람 문화의 교차는

이 넓은 아야 소피아에 특징적인 흔적들을 곳곳에 남겼다.

신을 감히 표현하지 못하고 신이 창조한 우주의 아름다움을

글자와 기하학 패턴으로 표현한 이슬람의 흔적을 보면서

어쩌면 이들이 더 경외심 가득한 종교에 몰입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2층 갤러리와 돔에 숨어있는 모자이크들과 그림들을 보면서 카메라 셔터를 쉬지 않았던 건

최대한 기억해서 오래오래 각인시키고 싶어서였다.

특별한 조명 없이도 아치형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만으로도 빛나는 저 작은 조각들은

하나하나가 다 들숨과 날숨을 쉬는 생명체였다.

어쩌면 인간이 오랫동안 꿈꿔온 불사(不死)의 삶이 여기, 이곳에 담겨져있는 건 아닐까?

저 작은 조각마다 그 수만큼의 인간이 기록되어 있는것 같아 가슴 속이 뻐근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나는 그걸 내내 읽고내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하나의 큐빅 조각이 되어 그곳에 박혀있고 싶었는지도...

 

아야 소피아.

그 자체가 하나의 위대하고 완벽한 경전인 곳.

나도 모르게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무릎이 꺾이는 곳.

그래서 누구라도 아야 소피아에 들어가면

자신만의 신과 대면할 수 있다.

그러니 부끄러움없이 기꺼이 마주볼 수 있기를...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4. 13:26

예레바탄 지하 저수지.

처음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땐 이곳을 아침 일찍 찾아갔었다.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이 거의 없어 혼자 이곳을 독차지하며 다녔었다.

그러다 지하를 가득 채우던 내 발소리에 내가 섬득했고

솔직히 말하면 혼자서 메두사의 머리를 대면하는데 귀기(鬼氣)가 느껴저 눈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두번째 대면은,

다행이 늦은 오후라 관광객도 제법 많았다.

게다가 신기한 눈초리로 쫒아다니는 조카들 때문에

심지어 메두사의 머리도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가 않더라.

아이의 순수를 이길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는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이번 여행에서

정말 엄청난 무기를 양쪽에 대동하면서 다녔던거다.

이곳도 두번째 방문이라고 조금 익숙해졌다.

여행을 가기 전에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를 읽어산지 소설 속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지하궁전 물 속에 들어가 뭔가를 찾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

내가 로버트 랭던도 아니면서...

예레바탄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신비감과 오묘함은 2년의 시간이 흘러도 에전했다.

어두운 지하에 각지에서 가지고온 기둥들을 세우느라 노예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곳을 채우고 있는 물이사실은 죽음같은 노역을 견뎌낸 노예들의 눈물같아 바라보는게 뻐근하다.

공간이 주는 울림보다

역사가 남긴 흔적의 울림이 더 웅장하고 깊다.

정면으로 마주보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린다는 전설 속의 메두사의 머리가

그토록 오랜 세월 진흙 속에 묻혀있었던 이유도 사실은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차마 머리를 바르게 세우고 있을 수 없었던 메두사.

인간의 눈물은 신화의 힘을 뛰어 넘는다.

물에 잠긴 도시 "예레바탄"을 나오니

공교롭게도 이스탄불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이 흐려있었다.

초겨울같은 쌀쌀한 날씨.

계속 날씨가 이러면 어쩌나 걱정이 될만큼 차가운 바람에 당황했다.

꼭 메두사의 저주 같았다.

예레바탄에서는 도저히 힘을 쓸수 없어 낯선 이방인의 틈을 노렸던건지도...

이 도시에서 돌로 변해버린다면!\나는 기꺼이 그곳에 오래 오래 서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메두사여!

그대 노여움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길...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3. 09:35

술탄 아흐멧 1세 자미.

2012년 이스탄불을 처음 방문했을때

아쉽게도 이곳 내부를 못봤었다.

이스탄불에 머무는 동안 한번쯤은 보겠지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결국 내부를 못보고 돌아와버렸다.

아마도 그게 내내 마음에 남아있었나보다.

아테네에서 이스탄불로 넘어와서 처음 간 곳이 이곳인걸보니...

 

블루 모스크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자미 내부 창문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이지니크에서 생산된 푸른색 타일이 유명하다.

한낯의 햇빛을 그대로 흡수되는 이곳의 내부는

왜 이곳이 꿇어 엎드리는 "자미"인지를 실가케한다.

그들의 신에 대한 경외심이 때문이 아닌 쏟아지는 빛이 주는 경외심 때문에 무릎이 저절로 꺾인다.

그리고 엄청난 인원의 관광객들에게 또 한 번 무릎이 꺽이고...

   

블루모스크는 내부와 외부에서 느낌이 너무 달라 개인적으론 좀 당혹스러웠다.

외부의 모습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수도원처럼 고요하고 장중한데

내부는 여기저기에서 수근대는 느낌이다.

햇빛때문인지, 사람들 때문인지, 기도하는 소리 때문인지는 명확히 모르겠지만...

(어쩌면 내가 이곳에서 환청을 듣었던건지도!)

예전에는 정해진 기도 시간엔 광관객이 아예 들어가지 못했던 모양인데

지금은 구별없이 오픈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자미 안쪽의 기도하는 곳은 오로지 "only man"의 공간이라 여자 관광객은 들어갈 수가 없다.

(남자 관광객들은 자유롭게 들어가더만...)

현지 여자들도 기도하기 위해선 자미 외벽에 별도로 설치된 공간만 이용할 수 있다. 

신기한 건,

검은 히잡으로 몸피를 가리고 기도하고 있는 여자들을 보면

그 모습이 그대로 하나의 종교처럼 느껴진다.

가만히 그 옆에서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고 싶어지는 마음.

나는 그때 그들 옆에서 어떤 간절함을 기도하고 싶었을까?

블루모스의 햇빛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상태로

나는 묻고 또 물었다. 

왜 나를 이곳을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그리워했을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할 이유는 없을 거다.

지금도 그곳엔 내가 남겨둔 내가 나를 계속 부르고 있다.

빨리 돌아오라고...

기다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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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3. 11. 12. 08:33

<Murder Ballad>

일시 : 2013.11.05. ~ 2014.01.26.

장소 : 롯데카드 아트센터

작사 : 줄리아 조단(Juila Jordan)

작곡 : 줄리아나 내쉬 (Juliana Nash)

한국어 가사 : 이정미

연출 : 이재준

음악감독 : 원미솔

안무 : 정헌재

출연 : 최재웅, 강태을, 한지상, 성두섭(Tom) 

        임정희, 장은아, 린아, 박은미 (Sara)

        홍경수, 김신의 (Michael) / 홍륜희, 문진아 (Narrator)

프로듀서 : 김수로

협력 프로듀서 : 최진, 임동균

제작 : 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주)쇼플레이

 

김수로 프로젝트가 선택한 일곱번째 작품 <Murder Ballad>

김수로가 뉴욕에서 이 작품을 보고 10분만에 라이선스를 사야 되겠다고 생각했단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김수로풍의 허풍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실제로 보고 난 느낌은...

김수로의 안목이 탁월했다는거다.

막장의 줄거리는 워낙에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익숙한 코드라 이젠 낯설지도 않고 오히려 식상한 쪽이지만

이 작품은 확실히 눈과 귀를 확 잡아끄는 묘하고 강한 매력이 있다.

넘버도 너무나 좋거 가사 번역도 훌륭하다.

라이선스 쏭스루 뮤지컬 경우 특히나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가사가 많이 어색해지는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았서 놀랐다.

심지어 누가 한국어 가사를 손봤는지 찾아보기까지 했다.

(이정미란다. 뉘신지는 잘 모르지만 진심어린 찬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주 은밀하고, 자극적이고, 위험하고, 파괴적인 작품.

<Muder Ballad>의 첫느낌은 그랬다.

 

사랑 그건 몸의 흔적이 삶의 낙인이 되네

사랑 그건 살을 도려낸 삶의 흉터가 되네

 

극중 Sara와 Tom이 부르는 넘버가 내내 귓가에 남아있다.

비밀을 간직하기로 작정한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위험한 은밀함.

같은 사람과의 다시 사랑하기로 결정했다면 

결말은 오직 파멸 하나뿐일까?

그게 답의 전부일까?

어쩌면 나는 이 막장의 드라마를 보면서

나의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비춰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작품에 이렇게까지 미치게 휘말리고 있는 중인지도...

나처럼 위험한 이 작품을.

나는 앞으로 몇 번은 더 보게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탐과 마이클, 사라 중에 누구에게 점점 더 동의하게 될까?

이 작품에 빠지게 되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강태을의 Tom.

<그날들>에서 본 배우 강태을의 모습이

내게 <Murder Ballad>을 첫공 선택을 주저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의 노래와 연기가 아주 탁월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Tom이라는 배역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배우와 작품 속 인물이 잘 어울린다는 건 확실히 양쪽 모두에게 행운이다.

이로써 강태을과는 <그날들>과 <Murder Ballad>두 작품으로 완벽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화해를 한 셈이다.

장은아의 sara와 강태을 Tom의 케미 아주 좋았고

둘은 은근히 퇴폐적인 느낌이라서 작품과도 잘 어울렸다.

장은아 Sara가 성두섭, 한지상 Tom과는  어떨지 좀 걱정되긴 하지만

두번째 뮤지컬 작품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느낌이 좋았다.

똑똑하고 현명하게 자신의 보이스와 잘 맞는 역할을 아주 잘 선택했다.

미친 가창력 몽니 김신의.

처음에 그가 Tom이 아니라는 게 너무 이상했는데 후반부에서 그 이유를 완벽히 이해했다.

감정적으로 가장 극과 극을 오가야만 하는 Micheal.

초반부의 연기는 사실 좀 오글거리긴했다.

그래도 후반부의 폭발적인 모습은 확실히 김신의스러웠다.

(그게 좀 문제이긴 했다. 마이클이 아니라 몽니 김신의가 더 많이 보여서...)

마지막으로 나레이터 문진아.

문진아가 이런 작품, 이런 역할에도 잘 어울린다는게 개인적으론 놀라운 반전이었다.

나레이터가 이 작품의 key이고 제목과도 제일 관계있는 인물일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막상 예상한 그대로의 결말을 보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바로 이어지는 커튼콜때문에

결말의 임펙트가 충분히 살지 못한 건 역시나 너무 아쉽다.

마치 지금까지가 인트로고 커튼콜이 본공연같은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론 극이 시작되기 전에 배우들이 객석까지 나와 관객과 너무 가까이 있는 것도 좀 불만이다.

Tom과 Sara, Micheal로 있었던 게 아니라

단지 강태을과 장은아, 김신의, 문진아의 접객을 받는 것 같아서...

심지어 배우들을 어셔로 알고 티켓을 보여주면서 좌석을 찾아달라는 아저씨도 있더라.

노파심일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다 극이 시작되면 집중이 될까 실기도하고...

(너무 속좁은 개인적인 생각인가!)

stage석은 괜찮은데 bar 석은 앞자리 관객의 시야방해를 만드는 건 좀 문제다.

1열에 앉아서 bar 석의 관객을 몸과 머리를 피해가면서 관람하느라 좀 피곤했다.

그리고 배우들이 눈을 마주칠때마다 어찌할줄 몰르는 관객의 모습을 보는 것도

커튼콜에 배우들과 달리 멀뚱하게 서있는 관객을 보는 것도 좀 그렇더라.

적당한 거리라는 건 확실히 필요한 것 같다.

bar석을 예매하는 관객에게 부탁 하나 하자!

좋아하는 배우를 가까이 볼 수 있다는 밀참감에만 현혹되지 말고

무대 위에서 확실히 미칠 자신이 없다면 bar석은 과감히 피해주는 용기를 보여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꼭 bar석에서 봐야겠다면,

그냥 모든걸 던져버리고 과감히 미쳐라!

그래야만 작품도 살고,배우도 살고, 관객도 산다.

격하게 공감되지 않나???

 

그런데 Sara와 Micheal,

두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 다음 관람은 기대하고 기대하고 있는 최재웅 Tom과 임정희 Sara.

  게다가 stage석이다.

  최재웅만으로도 난 기꺼이 미칠 준비가 됐다! ^^

  (bar석만큼 과감히 미칠 자신은 없어서 stage석에서 최선을 다해 미쳐볼란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1. 11. 09:15

<풍월주>

일시 : 2013.11.09. ~ 2014.02.16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대본 : 정민아

작사 : 박기현

연출 : 이종석

음악감독 : 구소영

출연 : 정상윤, 조풍럐 (열) / 신성민, 배두훈 (사담)

        김지현, 전혜선 (진성여왕) / 임현수, 최연동 (운장)

        김보현(궁곰), 이민아(여부인), 김지선(진부인)

제작 : 극단 연우무대, CJE&M

 

재연 소식을 듣고 기다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작품을 기다렸던 건 아니고 정상윤을 기다렸다.

리딩공연에서 그가 보여준 열이 아주 인상적이였기에..

그런데 정작 올려진 초연에서 정상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윤미의 신작 <블랙메리포핀스>와 <풍월주> 중에서 정상윤은 전작을 선택했고

나는 그런 정상윤이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평가했다.

배역은 좀 다르지만 정상윤과 김재범이 이번엔 작품을 바꿔서 출연한 것도 개인적으론 참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론 이 두 배우가 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걸 보고 싶다.

그러면 섬세함의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작품도 아마 "정상윤" 열이 아니었다면 굳이 프리뷰까지 챙겨보진 않았을거다.

 

초연때도 작품 자체의 줄거리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가슴 밑바닥을 건드리는 은근한 감성은 꽤 오랜동안 여운으로 남았었다.

초연만한 재연은 없다고 하지만 초연이 성공적이어서 크게 바뀌진 않을거라고 예상했는데

완전히 허를 찔렸다.

이재준 연출이 만들어 놓은 감성은 이종석 연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누군가는 그러더라.

좋은 배우들이 낭비되고 있다고!

솔직히 말하자.

이 발언에 100% 동감한다.

심지어 초연때보다 너무 가벼워서 살짝 천박하기까지 했다.

무대와 의상, 조명도 초연때가 훨씬 단정하고 의미있다.

공고를 떠올리게 하는 풍월들의 옷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팔을 스치는 소림사같은 인사법도 옷자락을 휘날리며 바닥에 엎드리는 인사법도 슬램스틱 코미디같다.

투우사들도 아닌데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배우들이 어찌 그리 옷들을 펄럭거리던지...

사담과 열의 밀고 당기는 액션도 너무 과해서 우스꽝스럽다.

초연때도 춤사위는 많이 많이 어색했는데 재연에 비하면 그때 춤사위는 인간문화재급이라 하겠다.

마당놀이를 떠올리게 하는 천막도 흉흉했고

배우들이 움직일때마다 삐걱거리던 소리도 계속 귀에 거슬렸다.

기생집에 울리던 산사의 종소리도

열과 진성여왕의 말도 안되는 춤사위는 암담했다.

도저히 감성과 아련함이 자리 잡을 틈을 안줘서 보면서 너무 많이 당황했다.

(무대에서 작두를 탈 것 같던 장님 의원인지 점장이인지도 황당했고

시기 질투로 가득찼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전무했던 궁곰도

호위무사가 담을 공격하는 장면도

백만대군을 이끄는 장군같던 임헌수 운장도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음악도 경박해졌고 배두들의 동선은 서로 엉키고 꼬이고 말도 아니었다.

 

왜 이렇게 되버린걸까?

도대체<풍월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암담했고 답답했고 막막했다.

단지 위안이 됐다면 김지현, 정상윤, 신성민의 연기였다.

신성민은 매작품마다 참 성실히, 열심히 쑥쑥 자라는 게 보였고

정상윤 열의 오열하는 모습은 가슴을 허물어지게 만들었다.

험난하고 뒤죽박죽한 작품 속에서 정상윤은 정말 꿋꿋하게 잘 버텨서 그게 더 신기했다.

(그래도 그 정체불명의 춤사위는 좀...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다 아쉽고 씁쓸했지만 제일 아쉬웠던 건 앤딩 장면.

위에서 내려온 하얀 천이 무대 전체를 감싸고

그 위에서 다시 만난 사담과 열.

이 장면을 없앤 건 정말 큰 실수다.

아무래도 초연만한 재연이 없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초연때도 프리뷰 이후에 수정을 했던에 이번에도 수정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러기엔!

너무 큰 대수술이 필요할텐데...

이쩌면 좋을까.

이 아까운 배우들을...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1. 8. 08:37

<번지점프를 하다>

일시 : 2013.09.27. ~ 2013.11.17.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대본 : 이문원

작사 : 박천휴

작곡 : 월 애런슨 (Will Aronson)

무대 : 여신동

연출 : 이재준

출연 : 강필석, 성두섭 (인우) / 전미도, 김지현 (태희)

        이재균, 윤소호 (현빈), 임기홍 (대근), 진상현 (기석)

        박란주 (해주),  이지호 (재일) 외

제작 : (주)뮤지컬해븐, CJE&M

 

<번지점프를 하다> 세번째 관람.

이번 관람을 자체 막공이라고 작정했다.

계속 보게 되면 정말이지 감당히 안 될 것 같다.

공연이 중반 이후를 넘어가서인지 배우들의 감성이 더 많이 깊어졌다.

특히나 강필석 인우는 이 작품을 하면서 심정적으로 참 많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스럽다.

잊으려고 했던 태희의 기억이, 아니 태희라는 존재 자체가

인우의 몸 속에서 사태지듯 들어와 점유해버렸으니...

머리는 잊어도 심장이 기억하는 사랑이 있다.

인우와 태희의 사랑이 그렇다.

그걸 다시 감지하는 순간,

시간은 정지되버리고 그들은 시간의 바깥에서 숨을 쉬게 된다.

사랑은...

질기고 독한 몽유다.

 

이날 가장 인상깊었던 배우는 이재균 현빈.

드디어 이재균이 윤소호 현빈을 완벽하게 뒤집었다.

두번째 관람때 나는 이재균 현빈이 흘린 실없고 바보스러운 웃음이 참 싫었었다.

그런데 이날 보면서 알았다.

이재균 현빈이 인우의 웃음을 기억해서 보여준 거였다는 걸...

확실히 두 사람의 웃음은 묘하게 닮아있었다.

학교에서 쫒겨난 인우를 향해 독선을 뱉어내며 울먹이는 현빈을 보면서 나는 또 봐버렸다.

그 대사의 끝을 꽉 붙잡고 있는 태희의 마음을...

그러니까 라이터의 불이 켜지기 전부터 태희가 현빈 속에 깨어나 있었던 거다.

그래서 현빈은 그 장면에서 그렇게 아플 수밖에 없었던 거였고.

그걸 감지했든 감지하지 못했든...  

스물 다섯의 배우에겐 녹녹치 않은 장면이었을텐데 보면서 솔직히 놀랐다.

드디어 만나는 무대 위 하얀 선처럼

이재균의 모든 감각도 현빈과 태희 모두에게 연결됐다.

 

이 작품의 무대와 조명, 음악은

정말이지 너무나 좋다.

여관방 장면에서 간판을 깜박임을 표현한 조명도 너무 애뜻했고

왼편은 태희를 오른편은 인우를 떠올리게 만든 전체적인 무대도 아련했다.

연강홀의 좁은 무대를 복층으로 만들어 시간과 공간을 확대한 것도 현명했고

현과 건반 중심의 음악도 아주 감성적이고 따뜻했다.

확실히 이 작품은,

기교가 아닌 진심과 감성으로 빈틈없이 채워진 작품이다.

연출도, 무대도, 조명도, 음악도, 배우들도...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정말 그런 것 같다.

사랑하지 않으면 멸종될 것 같은 그런 느낌.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단다.

자신의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과

미움을 간직하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는 사람.

이 작품이 내게 계속 말을 건다.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그대도 된다면,

인우의 마지막 나레이션으로 이 물음에 답하련다.

내 선택은 이러하다고...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거라고 당신은 말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7. 11:28

여행을 계획하면서

아테네에서 산토리니까지 이동하는 문제로 꽤 오래 고민했었다.

처음엔 당연히 항공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외국에서 페리를 타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도 같고,

페리를 탈 거면 기왕 야간 페리에서 하룻밤을 자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내렸다.

산토리니로의 in은 쾌속페리로, out은 야간 페리로!

결론은!

현명한 선택이었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서둘러서 예약한 덕분에 야간페리는 4명이 잘 수 있는 독립된 룸이여서

조용하고 오붓하게 갈 수 있었다.

이층 침대를 보자마자 조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엄청 좋아하더라.

소음이나 흔들림이 걱정되긴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어서 다행이었다.

뭔가 전체적으로 몸이 붕 떠 있는 정도!

확실히 비행기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더라. 

침대칸을 예약하지 못한 여행객은 그냥 배의 바닥이나 카페테리아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던데

그게 또 히피스러워보이는게 살짝 부럽더라.

아무 거리낌없이 바닥에 그야말로 널부러져서 자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묘한 일탈과 자유가 느껴졌다.

 

조카와 동생이 자고 있는 새벽에 또 혼자 일어나

카페테리아에서 커피 한 잔을 산 뒤 갑판으로 나갔다.

바람이 쎈 편이라 사람들이 없을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설마 이곳에서, 이 바람 속에서 밤을 보낸 건 아닐테고 참 부지런들 하다.

선상 위에서 보는 아침해는 깨끗하고 정갈했다.

그야말로 방금 세수를 하고 나온 느낌.

예뼜고 수줍었다.

사실 좀 더 오래 그곳에 머물고 싶었는데

피레우스항에 도착 예정이라는 안내방송 때문에 내려왔다.

조카들과 동생을 깨우러!

(이 가족들! 참 곤하게, 제대로 숙면을 취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의 길라잡이는 해와 빛, 이 둘이었던 같다.

의외의 곳에서 나는 그들을 만나 눈부셨고,

그들 덕분에 뽀송하게 건조됐다.

어쩌면 나는 그 속에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하얗게 햐얗게 날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눈부시게 하얀 옥양목처럼...

 

 

Posted by Book끄-Book끄